[기자의 눈] 아시안 증오범죄의 뿌리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 이제 이 말은 낯설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아시아계 증오범죄. 단순 폭행인지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범죄인지 구분하는 기준으론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는지 여부를 가장 먼저 본다.
끔찍한 아시아계 증오범죄가 급증하던 지난해,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바로 ‘고 백 투 유어 컨트리’, ‘너희 나라로 돌아가’였다.
미국 최장수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에 첫 아시아계 캐릭터로 등장하며 큰 주목을 받은 지영이도 인종차별 경험을 털어놨다. 집에서 나오는데 어떤 아이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쳤다는 것이다. 목소리도 크고 친구도 많은 활발한 소녀이지만 검은색 머리에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종차별 발언을 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지영이는 한국계 부모 밑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인데 그들이 돌아 가라는 ‘너희 나라’는 도대체 어디라는 말인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시아계를 향한 차별은 20세기 초반에도 있었다. 중국인들은 19세기 초, 일본인들은 19세기 후반부터 미국 본토로 대거 이주하기 시작했다. 당시 본국이 가난하고 먹고 살기 힘들어 저임금 노동자로 넘어온 그들은 대부분 서부에 집중됐다.
그들은 철도 공사장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당시 지역 백인들은 이들 아시아계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세력을 빼앗길까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20세기 초 아시아계 이민은 제한됐다.
‘미국에서 태어난 누구든 인종에 상관없이 미국인’이라 규정된 수정헌법 14조와는 별개로 연방의회는 1880년대부터 아시아인의 이민을 억제했고 1940년대까지 이어졌다. 1965년이 돼서야 비로소 미국 이민법이 개정됐고, 한국계를 포함한 아시아계의 대규모 이민이 가능해졌다.
취재를 하다 보면 아시아계 증오범죄가 계속 이어지는 이유에 대해 “아시아계 미국인을 질투하기 때문”이라는 대답도 많다. 좋은 집에 근사한 차를 타고 전문직 종사자도 많다 보니 배 아파한다는 것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편견이 다양하게 섞여있는 것도 문제다. 한국, 중국, 일본, 태국 등 아시아에 속하는 국가는 다양하고, 미국인에게 아시아계 미국인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친절하고 법을 잘 준수하며 학구열이 높다는 등의 좋은 시선도 있다.
하지만 “아시아계는 동물 학대를 많이 한다”는 등의 부정적인 편견도 존재한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발원한 것을 두고 ‘아시아계 사람들을 기피해야 한다’는 편견이 지난해 결국 수많은 아시아계 증오범죄를 낳기도 했다.
인종에 대한 편견을 만드는데 미디어도 큰 동조를 했다.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 뤽 코다르는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 아닌, 반영의 현실”이라고 했다. 즉, 실제 현실이 아닌, 영화 제작자들이 만들어낸 의식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만 봐도 다른 아시아계 국가 캐릭터는 저임금 노동자, 범죄 조직원, 인신 매매범 등의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할리우드 영화 속 이슬람계 캐릭터도 테러리스트 연계 인물로 자주 등장한다.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아시아계 배우가 설 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렇게 고착화된 이미지는 대중문화 속에서 재생산돼 우리의 인식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영화 ‘스타워즈’에 보면 “두려움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증오를 낳고, 증오는 고통을 낳는다”는 대사가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한 두려움이 결국 분노와 증오를 낳아 고통을 주었다.
할리우드 업계를 비롯해 아시아계의 진입이 수월해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고위층은 백인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민족 국가답게 편견 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태어난 우리의 아이들, 그다음 후손들이 더 이상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으며 불안해 해선 안 된다.
홍희정 / JTBC LA특파원·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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