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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감성 여행

-93세 아버지와 63세 아들이 함께 떠난 여행(9)

남원을 뒤로하고 광주-대구 고속도로에 올랐다. 병풍을 두른 듯한 험준한 산세를 느끼며 이 도로를 달리다 보면 그 기운이 모이는 깊은 터널로 접어들고 그 터널을 빠져나오면 높은 교각이 도로를 받쳐 주어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다. 왼쪽은 높은 산이고 오른쪽 아래는 작은 집들이 저만치 보이고 금빛 논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이 고속도로를 지나는 동안 계속 연출되었다.
 
지난 여행 이후 아버지는 이 여행을 계획하시며 동서를 가로막은 소백산맥을 시원스레 통과하는 이 고속도로에 푹 빠져 계셨다. 나들목, 분기점, 휴게소, 최고 교각의 높이, 터널이 몇 개인지부터 시작하여 한반도 미래에 미칠 영향까지 연구를 많이 하셨다. 영호남 지역은 소백산맥이 가로놓여 예로부터 교류가 원활치 못하였고 언어, 생활, 풍습, 서로 다른 이질적 문화권을 형성했으며, 교류가 소원한 관계로 말미암아 고질적인 지역감정이 자연히 더 싹트게 되었으며, 특히 남부 내륙 지역은 낙후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고 하셨다.
 
많은 나라가 지역주의를 겪는다고 하시며 예컨대 미국의 남북지역주의도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급변하기 시작했는데, 경제적 균형 발전이 가능케 한 것이었다고 얘기하셨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미국 남부도 북부에 가졌던 상대적 박탈감도 덜 갖게 되었고 결국 경제적 여유가 정치적으로 닫힌 마음을 열게 했다는 예를 드셨다. 이런 맥락에서 이 ‘광주 대구 고속도로’(구 88고속도로)는 영호남 지역을 직접 연결해 상호 교류가 촉진되었고, 두 지역의 산업을 연계하여 두 지역의 인적 물적 교류가 확대됨에 따라 지역 격차를 완화되는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학습 결과는 요즘 말로 대박이었다.
 
아버지와 내가 떠난 여행은 무엇을 보는 여행이나 먹는 여행은 아니었다. 우리의 여행은 93세 아버지와 63세 아들이 같이 만들어 보는 둘만의 공간과 시간을 함께하는감성 여행이었다. 빨리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며 서로를 위로하고 지난 세월을 자축하는 축제와 같은 여행이었다. 어릴 땐 그렇게도 무섭고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와 친구가 되고 63살 난 아들이 93세 아버지께 어리광도 부려 보는 시간이었다. “아버지 그때는 왜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그렇게 무섭게 그랬어요?” 아들이 따지듯 묻자 “누나들 틈에서 강하게 키우고 싶었지.” 나름 많이 미안해하시며멋쩍은 표정을 지으셨다. 일찍 부모를 잃고 어렵게 홀로서기를 하신 아버지의 깊은 눈가엔 많은 생각이 스치고 있는 듯했다.
 
우리의 대화 속에 가장 많이 나오는 인물은 단연코 어머니셨다. 당시 군인의 아내란 역할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남편이 배 타고 바다로 출동 나가고 월남이란 낯선 나라에 전쟁까지 하러 나가시고 보직이 바뀌실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보따리 싣고 이사를 전전하셨던 그 과정을 묵묵히 다 겪으셨던 어머니셨다. 이 대목에서 아버지와 나와 서로 깊게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에 대해 고마움이었다.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이룬 다음부터 비로소 기본을 갖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고백하셨다. 어머니는 이 두 남자의 인성을 만들어 주신 위대한 스승이었다. 어머니와는 함께 떠나 보지 못했던 여행을 뒤늦게 후회하는 두 사람이 탄 차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입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강영진 /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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