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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토네이도와 미디어

 켄터키주 메이필드로 나가는 고속도로 표지판이 나오면서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길가의 나무들은 도미노처럼 쓰러져 있었고, 둥치가 큰 것들은 뿌리째 뽑혀 있었다. 거인이 밟고 지나간 듯 구겨진 전봇대에 간신히 달린 신호등은 이미 불이 꺼진 지 오래였다. 시내로 들어가니 부서지고 뒤집어진 차들이 곳곳에서 널브러져 있었다.
 
지난주 2박 3일간 취재한 미 중부 토네이도 피해지역은 말 그대로 ‘비현실적’이었다. 무려 4개주에 거쳐 230마일을 이동하며 세력을 키운 ‘괴물 토네이도’라는 표현답게 지나는 모든 곳을 초토화했다. 폭삭 무너져내린 공장, 지붕이 뜯겨나간 집들, 날아가다 나뭇가지에 걸린 소파 등, 종군기자를 해야 볼 법한 장면이었다.
 
그중 잊을 수 없는 것은 집이 완전히 날아가 터만 남은 주변을 서성이던 한 여성의 눈빛이다. 침통한 표정으로 남편, 딸과 함께 잔해 속에서 구정물 묻은 인형과 옷가지를 챙기고 있었는데, 인터뷰는커녕 카메라를 들이댈 수도 없겠다 싶은 분위기였다. 낯선 외국인 기자에게 당장에라도 “어디 구경났냐”며 쏘아붙일 것 같았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건네자 의외로 쉽게 입을 열었다. 그는 이번 토네이도로 할머니까지 잃었지만 “남아 있을 추억을 챙기러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목이 메 말을 잇지 못하면서도,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신의 축복을(God Bless You)”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사실 출발 당시 취재가 쉽지 않을 거라 각오했다. 피해가 너무 큰 데다, 툭하면 “차이나 바이러스”를 외치며 인종 차별을 조장하던 트럼프의 지지층이 두꺼운 중남부 지역이란 선입견도 있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단 한 명의 주민도 카메라를 피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완전히 내려앉은 집 앞에서 잔해를 치우던 한 남성은 “언론들의 방문이 귀찮지 않으냐”는 질문을 오히려 의아해했다. 미디어를 통해 “이런 사정이 알려지면, 많은 사람이 기도를 해주고, 또 지원해주고, 그 덕에 대통령도 오는 거 아니냐”고 대답했다.
 
취재 기자들에게 물과 도시락을 전해주던 자원봉사자들 역시 연신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이런 분위기가 어쩌면 흔히 말하는 ‘남부 인심’일지 모르겠다. 아니면 정부 긴급 대책을 믿는 분위기가 쌓여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재난 상황에서 시민들이 미디어의 역할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모습은 상당히 신선했다. 우리가 지향점으로 삼을 만한 대목이기도 했다.

김필규 /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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