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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쓸개 없는 우리 부부

 남편과 나는 쓸개 없는 사람이다. 불과 몇 년 차이를 두고 그리 됐다. 남편은 폐 CT를 찍다가 쓸개에 물혹이 발견돼 제거했고 나는 돌이 있어 떼어냈다.  
 
5년 전 한국에서 수술을 했다. 이른 새벽 긴 병원 복도를 걸어갔다. 보호자와 같이 온 사람은 신고 있던 신발을 건네주고 소독된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나는 신발을 받아 줄 사람이 없어 침대 끝에 매어 두었다. 새벽 공기가 서늘했다. 벗어 놓은 신발을 다시 신지 못하게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 순간 슬픔이 몰려왔다.
 
한잠 자고 일어나니 수술은 끝나 있었다. 배에 생긴 네 개의 구멍에는 거즈가 붙어 있었다. 의사가 건네준 플라스틱 병에 콩알 만한 돌이 다섯 개나 들어 있었다.  
 
돌을 보며 생각했다. 도를 닦아 경지에 이른 스님의 몸에서는 사리가 나온다는데 나는 어찌하여 쓸데없는 돌멩이만 지니고 살았는가. 그동안 화를 너무 많이 내고 살아 돌멩이로 만들어졌을까. 쓸개 빠진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중학교 시절 맹장을 떼어냈다. 몸에서 다른 장기를 떼어낸 것이 두 번째인 셈이다. 맹장 없이도 지금까지 불편함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러니 쓸개가 없어도 별일 없을 것이다.  
 
다음엔 또 어떤 장기에 문제가 생길까. 늙는다는 것은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일까. 젊은 시절 세상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산다는 것은 상처를 하나씩 더해 가는 것인가 생각한 적이 있다. 지나고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있던 것이 없어지기도 하고 불필요한 것이 혹처럼 붙기도 한다.  
 
쓸개도 없는데 왜 이렇게 사는 일이 어려운지 모르겠다. 화를 삭이고 잘 다스려야 할 나이에 여전히 작은 일에 화를 낸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나면 작은 일에 화를 낸 자신 때문에 또 화가 난다.  
 
오늘도 작은 일에 화를 냈다. 어찌 보면 중요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일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받는 약인데 준비해 놓지 않아 약국을 다시 가야했고, 전화로 주문한 음식은 내가 찾으러 갈 때까지 잊고 있어 오래 기다렸다. 의자 모서리에 정강이를 부딪혀 피를 보기도 했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화가 났다.  
 
남편은 쓸개를 떼어낸 때문인지 갱년기가 온 탓인지 요즈음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젊을 때는 강하고 거침없던 사람이 TV에 나오는 잔혹한 장면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쓸개의 다른 이름인 담낭에서 ‘담대하다’라는 말이 나왔다더니 담낭이 없어지며 담대함도 사라졌나 보다. 점점 자잘한 존재가 되어간다.  
 
쓸개 없는 인간 둘이 한 집에 산다고 늘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소리 높여 다투지는 않는다. 서로 의견이 달라지면 남편은 슬며시 자리를 피하고 나는 입을 다문다.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어도 사는 모습은 마찬가지다.
 
쓸개 빠진 인간이 되었으니 실실 웃으며 살고 싶은데 쉽지 않다. 쓸개 없는 다른 사람들은 화를 내지 않을까. 갈등할 필요 없이 웃기만 하면 될 터인데 그게 어렵다. 쓸개를 떼어냈으니 화도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박연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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