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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섶나무와 쓸개

어릴 적 배운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사자성어를 생각한다. ‘정신상담’과 첫소리만 빼면 발음이 똑같고 뼈에 사무친 내 직업의식 때문인지 늘 머리를 떠나지 않는 말이다.   대학입시 공부할 때 교감 선생이 멋모르는 우리에게 와신상담해서 꼭 좋은 대학에 붙으라고 언성을 높여 당부하던 말. 쓸개의 쓴맛이 입안에 느껴지는 말. 이빨을 득득 갈면서 마음을 독하게 먹고 노력해서 어떤 일을 성취한다는 뜻으로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말. 그 이상한 말의 내막을 공부한다.   때는 바야흐로 기원전 3, 4세기 춘추전국시대다. 오(吳)나라 왕이 월(越)나라와의 전쟁에 패배하고 전사한다. 아들이 원통해 하며 삐쭉삐쭉한 섶나무를 매일 밤 깔고 자는 아픔으로 아버지를 위한 복수를 다짐한다.   아들은 얼마 후 전쟁에 이겨 월나라 왕을 굴복시키지만 양국 신하들의 꼬임에 빠져 그의 목숨만은 살려준다. 월나라 왕은 그 굴욕감을 잊지 않으려고 매일 곰의 쓸개를 핥으면서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다시 오나라를 무너뜨리고 섶나무를 침대로 삼았던 오나라 왕을 자살하게 한다.   나는 훌륭한 학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와신상담에 나오는 옛날 중국사람이 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입때껏 살아왔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둘이다. 그들은 복수의 화신, 집념의 사나이들이었다. 아픔과 굴욕이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스스로를 ‘알파 메일’이라 칭하면서 툭하면 다른 환자들과 주먹 다툼을 하는 병동환자 리처드는 자기가 고등학교 때 권투 선수였다고 자랑한다. 그때 남들에게 많이 맞았다며 어두운 표정으로 실토한다. 그래서 복수하는 마음에서 너는 지금 40이 넘은 나이에 맨날 남들을 때리고 싶어하느냐? 그는 고개를 떨구며 그렇다고 말한다. 생각이 다른 데로 번지지만, 아, 이놈도 그동안 와신상담을 해 왔구나. 내 생각이 틀렸나.   이상한 게 있다. 옛날 중국 오나라, 월나라 왕들은 그들 복수의 대상과 이유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서도, 리처드는 왜 아무런 죄도 없고 관련도 없는 애먼 남들에게 복수하려고 덤벼드는가.   대답은 뜻밖으로 단순하다. 리처드뿐만 아니라 대체로 우리는 모두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라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모욕을 당한 자리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못 하고 다른 곳에 가서 화를 내다니.   노갑이을(怒甲移乙), ‘갑에게 당한 노여움을 을에게 옮긴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어디가 종로인지 어디가 한강인지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잘 분별하지 못한다.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고생한 며느리가 못된 시어머니 노릇 한다’는 속담도 ‘노갑이을’의 좋은 예다.   우리 정신세계의 비주얼이 고화질, ‘High Definition’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상황판단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이유로 숱한 오류를 범하는 우리. 얻어맞는 것이 싫어서 권투부에 가입했던 리처드가 그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병동을 복싱 링으로 착각하는 것과 유사하다. ‘revenge, 복수’는 원래 14세기 라틴어로 권리를 주장하거나 벌을 준다는 뜻이었다.   전쟁에 시달린 사람들이 와신상담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집단현상이 일어난다. 춘추전국시대를 겪은 중국이며 오랜 세월을 실향민(diaspora)으로 사는 유대인들이 그런 경우라 할 수 있겠지. 육이오 후에 일어난 ‘한강의 기적’ 또한 그런 메커니즘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종로에서 뺨 맞고 미국에 와서 웃음 짓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섶나무 쓸개 병동환자 리처드 옛날 오나라 그동안 와신상담

2023-01-10

[이 아침에] 쓸개 없는 우리 부부

 남편과 나는 쓸개 없는 사람이다. 불과 몇 년 차이를 두고 그리 됐다. 남편은 폐 CT를 찍다가 쓸개에 물혹이 발견돼 제거했고 나는 돌이 있어 떼어냈다.     5년 전 한국에서 수술을 했다. 이른 새벽 긴 병원 복도를 걸어갔다. 보호자와 같이 온 사람은 신고 있던 신발을 건네주고 소독된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나는 신발을 받아 줄 사람이 없어 침대 끝에 매어 두었다. 새벽 공기가 서늘했다. 벗어 놓은 신발을 다시 신지 못하게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 순간 슬픔이 몰려왔다.   한잠 자고 일어나니 수술은 끝나 있었다. 배에 생긴 네 개의 구멍에는 거즈가 붙어 있었다. 의사가 건네준 플라스틱 병에 콩알 만한 돌이 다섯 개나 들어 있었다.     돌을 보며 생각했다. 도를 닦아 경지에 이른 스님의 몸에서는 사리가 나온다는데 나는 어찌하여 쓸데없는 돌멩이만 지니고 살았는가. 그동안 화를 너무 많이 내고 살아 돌멩이로 만들어졌을까. 쓸개 빠진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중학교 시절 맹장을 떼어냈다. 몸에서 다른 장기를 떼어낸 것이 두 번째인 셈이다. 맹장 없이도 지금까지 불편함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러니 쓸개가 없어도 별일 없을 것이다.     다음엔 또 어떤 장기에 문제가 생길까. 늙는다는 것은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일까. 젊은 시절 세상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산다는 것은 상처를 하나씩 더해 가는 것인가 생각한 적이 있다. 지나고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있던 것이 없어지기도 하고 불필요한 것이 혹처럼 붙기도 한다.     쓸개도 없는데 왜 이렇게 사는 일이 어려운지 모르겠다. 화를 삭이고 잘 다스려야 할 나이에 여전히 작은 일에 화를 낸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나면 작은 일에 화를 낸 자신 때문에 또 화가 난다.     오늘도 작은 일에 화를 냈다. 어찌 보면 중요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일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받는 약인데 준비해 놓지 않아 약국을 다시 가야했고, 전화로 주문한 음식은 내가 찾으러 갈 때까지 잊고 있어 오래 기다렸다. 의자 모서리에 정강이를 부딪혀 피를 보기도 했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화가 났다.     남편은 쓸개를 떼어낸 때문인지 갱년기가 온 탓인지 요즈음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젊을 때는 강하고 거침없던 사람이 TV에 나오는 잔혹한 장면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쓸개의 다른 이름인 담낭에서 ‘담대하다’라는 말이 나왔다더니 담낭이 없어지며 담대함도 사라졌나 보다. 점점 자잘한 존재가 되어간다.     쓸개 없는 인간 둘이 한 집에 산다고 늘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소리 높여 다투지는 않는다. 서로 의견이 달라지면 남편은 슬며시 자리를 피하고 나는 입을 다문다.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어도 사는 모습은 마찬가지다.   쓸개 빠진 인간이 되었으니 실실 웃으며 살고 싶은데 쉽지 않다. 쓸개 없는 다른 사람들은 화를 내지 않을까. 갈등할 필요 없이 웃기만 하면 될 터인데 그게 어렵다. 쓸개를 떼어냈으니 화도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박연실 / 수필가이 아침에 쓸개 부부 우리 부부 새벽 공기 의자 모서리

20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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