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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몽상] 서부극의 오묘한 변신

 대개의 영화 장르가 미국에서 발전한 것이지만, 그 중에도 서부극은 지극히 미국적인 장르라는 데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미국적이라고 곧 미국산이란 뜻은 아니다. 1960~70년대에는 이른바 스파게티 웨스턴, 즉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산 서부영화가 붐을 이루기도 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 같은 스파게티 웨스턴은 미국으로 역수출돼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스타로 만들었고, 지금도 할리우드 고전들과 나란히 서부극의 명작으로 꼽힌다.
 
지난달 극장 개봉을 거쳐 이달 초 넷플릭스에 공개된 ‘파워 오브 도그(The Power of the dog)’는 새로운 서부극이다. 1925년 미국 몬태나의 목장이 배경인데, 총싸움이나 결투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물리적 폭력 대신 언어·심리적 폭력에 움츠러드는 인간, 유약해 보이지만 무섭도록 비정한 인간 등이 얽혀 결말을 예상하기 힘든 드라마가 펼쳐진다.
 
무엇보다 서부극의 전형성과 사뭇 다른 캐릭터의 매력이 돋보인다. 그 중에도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필은 곱씹어볼 만한 오묘한 캐릭터다. 함께 목장을 경영하는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가 무던한 사업가처럼 보이는 것과 달리, 필은 말과 행동이 거칠고 담대한 카우보이다. 한데 이와 다른 면모가 켜켜이 드러난다. 실은 예일대를 다닌 지적인 인물이고, 혼자 연주하는 벤조 솜씨도 일품이다.  식당에서 종이로 만든 꽃을 보고 그 솜씨에 감탄하는 것도, 꽃을 만든 사람이 여성이 아니라 식당 주인 로즈(커스틴 던스트)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 맥피)라는 것을 알고 무자비한 조롱과 모욕을 안겨주는 것도 필이다. 교양과 폭력을 동시에 분출하는 필은 동생 조지가 남편 잃은 로즈를 아내로 맞은 이후 더욱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캐릭터의 면면에서 짐작하듯, 기존 서부극과 사뭇 다른 이 영화에선 황량하고 광활한 자연을 비롯해 서부극의 고전적 분위기가 물씬하다. 한데 이 자연은 미국 서부가 아니라 뉴질랜드에서 촬영했다. 주연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알다시피 미국 서부는 커녕 영국 출신이다. 장엄한 분위기를 북돋우는 음악은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의 솜씨다. 그리고 감독은 제인 캠피온이다. 1993년 ‘피아노’로 칸영화제에서 여성감독으로는 사상 처음 황금종려상을 받은 바로 그 뉴질랜드 감독이다. 이 영화는 그에게 무려 12년 만의 신작이다. 어느덧 60대 후반에 접어든 그는 군더더기 없고, 빈틈없는 유려한 연출의 이 새로운 서부극으로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아카데미상을 비롯해 서부극의 본고장, 미국 영화제의 반응도 궁금해진다.

이후남 / 한국 문화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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