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특별기획] 애틀랜타 한인회, 이대로는 안 된다

한인사회 급성장 속 한인회는 오히려 퇴보 거듭

한인들에 외면당한 한인회 '빚더미' 앉아
김윤철 회장 탄핵·해임 요구 사태로 번져 
세계 최대 한인회관에 전기 끊길까 걱정 
 
지난 2014년 8월 15일 애틀랜타 한인회관. 광복절 기념식장을 가득 매운 참석자들과 함께 단상의 태극기와 성조기를 응시하던 오영록 당시 한인회장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한인회관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새 건물이 첫 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도라빌 소재 옛 한인회관이 갑작스러운 화재로 전소된 이후, 애틀랜타 한인회는 원로들과 뜻을 모아 회관건립위원회(위원장 김백규)를 구성하고, 모금 운동을 벌였다. 불과 1년도 채 안 돼 245만 달러를 조성하고, 노크로스에 새 건물을 매입했다. 처음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화한 것이다. 한인회 집행부와 이사회의 헌신적인 노력과 지역한인들의 뜨거운 관심이 시너지 효과를 낸 덕분이다.
 


노크로스에 있는 애틀랜타 한인회관 전경.

노크로스에 있는 애틀랜타 한인회관 전경.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애틀랜타 한인사회는 LA, 뉴욕에 이어 넘버 3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지만 한인회관은 옛 영화를 뒤로한 채 한인들로부터 잊혀지고, 한인회는 ‘빚더미’에 앉아 있다. 김윤철 현 애틀랜타 한인회장의 불투명한 재정 운영과 무분별한 사업 추진으로 한인회가 어려움을 겪자 일부 한인들은 김 회장의 탄핵을 발의했고, 급기야 전직 회장단이 그의 해임을 촉구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런 와중에도 대부분의 애틀랜타 한인들은 무관심하다. 뜻있는 몇몇 인사만 발을 동동구를 뿐이다.
 
애틀랜타 한인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한인회의 침몰은 지역한인사회 전체적으로도 큰 마이너스다. 애틀랜타 한인회가 한인 디아스포라의 중심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리고 지역한인들의 관심을 다시 끌고, 순항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중앙일보는 3회에 걸쳐 이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본다.
 
① 한인사회 발전 못 따라가는 한인회  
② 대표 단체 위상 어떻게 세워야 하나    
③ 좌담-우린 이런 한인회를 원한다  
  

1부 한인사회 발전을 못 따라가는 한인회

부실한 코리안 페스티벌, 애물단지로 전락   
1세대 중심의 구태의연한 운영 한계 직면   
차세대 육성은 말뿐 '그들만의 리그' 로 퇴보 
 
애틀랜타 총영사관은 제20대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를 앞두고 걱정이 많다. 투표 장소에 포함된 애틀랜타 한인회관이 만의 하나 전기가 끊겨 투표를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까 우려해서다.
 
아닌 게 아니라 한인회관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애틀랜타 한인회가 최근 공과금 1만여 달러를 미납한 상황이다. 김윤철 한인회장은 이를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 시각으로 쳐다보고 있다.
 
“인재에 의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애틀랜타 한인회는 지역 한인사회는 물론, 세계적인 망신거리가 될 것”이라고 한 전직 한인회장은 우려했다.
 
애틀랜타는 댈러스 등과 함께 미국에서 부상하고 있는5대 도시 가운데 하나다. 애틀랜타총영사관 웹사이트에 게재된 재외동포 현황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재외동포는 9만3662명으로 등재되어 있다. 여기에다 비공식 등록자, 유학생 등을 포함하면 13만~15만 명 정도가 애틀랜타를 중심으로 한 조지아에 거주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많게는 한인 유동인구를 20만 명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켈리 최 애틀랜타여성경제인협회장은 “최근 뉴욕, 시카고 등 동북부 지방에서 따뜻한 곳을 찾아 남하하는 추세에 편승해 한인들도 대거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하다. 조지아에는 기아자동차, SK이노베이션, 금호타이어 등 117개 기업이 진출해 있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애틀랜타 한인 이민사’에 따르면 지난 1960년대 초만해도 지역 한인 수는 불과 수십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한인사회는 괄목상대하게 발전했다. 1996년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애틀랜타는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한인사회에도 많이 알려진 것이다.
 
이후 미주 내 다른 도시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업이나 유학, 이민 등으로 애틀랜타를 주 생활무대로 삼는 한인들이 급속히 늘어났다.
 

한인사회 변화 대응 못해 구심점 역할 잃어  

이런 가운데 애틀랜타 한인회는 지난 1968년 유학생, 의사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됐다. 이후 50여 년 동안 한인회의 조직도 지역 한인사회 성장과 더불어 발전했다. 지역 한인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고(故) 이승남 회장시절인 1997년 도라빌에 첫 한인회관을 마련했다. 김백규 회장 시절(2002년)엔 귀중한 사료인 ‘애틀랜타 한인 이민사’도 발간했다. 한인회와 지역 한인 유지들의 의지와 땀이 합쳐진 산물이다.
 
은종국 회장(28·29대)은 이에 힘입어 2009년 제1회 코리안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이민 40년 만에 미국 사회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첫 행사였다. 이 페스티벌에는 한가위 분위기를 느껴보려는 1만 명 이상의 한인과 외국인들이 둘루스 시청 앞을 찾았다. 은 회장은 당시 언론인터뷰에서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여한 탓에 시청 측이 불만을 호소했고, 둘루스 시장을 한참 동안 전화로 설득해야 했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지난 2018년 10월 13일 노크로스 애틀랜타 한인회관 주차장에 설치된 2018 코리안 페스티벌 부스에서 참가자들이 한식을 경험하고 있다. [사진= 애틀랜타한인회 웹사이트]

지난 2018년 10월 13일 노크로스 애틀랜타 한인회관 주차장에 설치된 2018 코리안 페스티벌 부스에서 참가자들이 한식을 경험하고 있다. [사진= 애틀랜타한인회 웹사이트]

 
지난 2021년 9월 26일 노크로스 애틀랜타 한인회관 주차장에 설치된 2021 코리안 페스티벌 부스가 텅 비어 있다.

지난 2021년 9월 26일 노크로스 애틀랜타 한인회관 주차장에 설치된 2021 코리안 페스티벌 부스가 텅 비어 있다.

 
이같은 행사가 시간이 갈수록 애물단지로 변했다. 한인들의 관심은 더욱 멀어졌다. 뜨거운 관심을 지속시키지 못하고 해가 갈수록 열기는 식고 겨우 명맥만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한인회의 주먹구구식 운영으로 오히려 무용론까지 나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이 같은 현상은 지역 한인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인 인구의 폭발적인 유입과 함께 직업 패턴도 다양해진 까닭에, 공통관심사가 줄어든 탓이 크다. 또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가 직업군의 대거 등장은 한인사회가 더욱 세포 분열하는 계기가 됐다.
 
이는 한인회의 위상에도 영향을 크게 미쳤다는 게 지역한인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그럼에도 1세대가 중심이 된 한인회는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구태의연한 방법만 답습할 뿐이다.
 
최근 한인회 부도 사태만해도 회장 한 명의 일탈이 발단이 됐지만,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반응이다. 한인사회에 대한 봉사보다 명예만을 추구하는 일부 인사들이 한인회 주변에서 물을 흐리고 있다는 것이다.
 
몸에 맞지 않는 한인회관, 독이 든 성배
 
이런 가운데 노크로스 한인회관 구입과 관련, 지역 한인사회 일각에서 자성론도 일고 있다. 능력에 비해 규모가 큰 회관을 구입했다는 지적이다. 한달에 1만2000여 달러가 소요되는 회관 관리비는 역대 한인회장들의 발목을 잡았다.
 
도라빌 회관 시절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한인회장과 일부 독지가들의 기부금만으로도 충분히 꾸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새 회관은 체계적인 수익모델이 없이는 관리와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고, 상당한 재력이 있어야만 한인회를 꾸려 나갈 수 있다.
 
이는 역대회장 선거에서도 잘 나타난다. 노크로스 회관에서 치른 첫 회장 선거인 32대에는 입후보자가 없어 선거관리위원회가 초비상 상태였다. 우여곡절 끝에 배기성 회장이 총대를 메겠다는 의사를 밝혀 해피 엔딩으로 끝났지만, 일시적인 유예에 불과했다. 33대에도 등록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김일홍 회장을 추대 형식으로 떠밀었다.
 
이들은 임기 내내 관리비 마련 문제로 고생했다. 한인회 발전을 위한 새로운 비전 제시는 언감생심이었다.
 
이와 함께 세대교체 실패는 애틀랜타 한인회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미주 대부분의 한인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다. 실제 시카고 한인사회는 35대 회장 후보자가 없어 3차례 무후보 사태를 겪은 후에야 겨우 회장을 추대했다.
 
미주 한인사회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다른 커뮤니티와 소통해야 함에도 1세대 위주의 옛날 운영방식을 고수한 탓이다. 이는 미국 사회 진출에도 걸림돌이다.
 
그렇다고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세대와 1.5세대, 그리고 2세대의 공유와 연결 고리 역할은 역대 회장들의 역점 사업이기도 하다. 박영섭 27대 회장이 2006년 신년사에서 1세대와 2세대가 어우러지는 한인회를 만들겠다고 밝힌 데서도 잘 나타난다.
 
이후 역대 회장들마다 차세대 육성을 중점 사업으로 내세웠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시화한 성과는 없다. 그저 구호에 그쳤을 뿐이다. 지금까지 한인회는 1세들의 사랑방이 됐고,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 그마저 한인회를 개인적인 영예와 이권에 이용하려는 일부 인사들로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인회에 많은 법률자문을 했던 제이슨 박 변호사는 “최근 한인회는 전 애틀랜타 한인을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1세대만 관심을 갖는 단체로 전락했다”며, “그나마도 최근 34대 한인회를 둘러싼 잡음으로 ‘그들만의 리그’에서 일부가 아웃되는 상황으로 변했다”고 아쉬워했다.
 

특별취재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