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시카고의 연말
우리는 이들을 취약계층이라고 부른다. 코로나19에 가장 쉽게 노출되고 치명률도 높은 부류를 이렇게 부르고 꽤 익숙해졌다. 팬데믹 초기에는 요양시설에 장기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에 속했다. 이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보통 나이가 많았고 대부분의 경우 기저질환이 있었다. 그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라 감염의 위험에 빠지기 쉽고 한번 감염되면 제대로 손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생명을 잃고 말았다. 백신도 보급되지 않았고 날마다 사망자가 속출하던 당시 취약계층은 속절없이 팬데믹의 가장 약한 고리가 됐다. 지금까지의 통계를 봐도 팬데믹 희생자들은 대부분 고령층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한인 요양시설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조심하고 방역수칙을 지킨다 하더라도 팬데믹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집요하게 파고 들 것이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터다. 취약계층과 상당 부분 겹치지만 연말이면 보살핌의 손길이 더욱 절실한 분들이 있다. 아무래도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나 결손가정, 저소득층 주민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크리스마스, 연말연시가 되면 이들이 떠오른다. 묵은 해가 지나가고 새로운 해를 기다리면서 평소에 하지 못했던 부채의식이 발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기억을 되살려 보면 시카고 한인사회에는 참 인정이 많았다. 연말연시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인정 많은 한인사회는 참 정겹다. 굳이 인구 유입이 많은 다른 도시와 비교하지 않아도 시카고 한인사회는 오랫동안 그래왔다. 한인단체를 중심으로 해서 연말이면 노인아파트나 요양원을 찾아 어르신들을 살피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한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노인 아파트를 찾아갔고 한인 복지 단체에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활에 꼭 필요한 쌀을 들고 가기도 했고 위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가지고 가면 그럴 듯한 행사가 됐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이었고 그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피로회복제와 같은 역할을 했다.
푸드바스켓이라는 행사도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주로 남부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인들이 주축이 되어서 지역사회에 음식을 기부하곤 했다.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을 나누고 행사장에는 지역 경찰과 정치인들도 동참해 한인들의 온정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흑인사회와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는데 큰 기여를 했다. 노숙자들을 위한 겨울용 방한의류를 나눠주는 행사도 한인들의 참여가 활발했다. 이 행사는 시카고에 그치지 않고 한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서부와 기타 지역에까지 퍼져 한미우호 증진이라는 대의에도 도움이 됐다.
아마 지금도 주위 이웃을 챙기는 한인들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알려지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온정을 나누는 한인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카고의 겨울이 예년과 같지 않다. 추수감사절이 지나고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왔는데 첫 눈이라고 부를 정도의 적설량이 보이지 않고 있다. 칼바람과 함께 오는 혹한도 아직은 나타나지 않고 있어 올해 겨울은 이렇게 보내는 건 아닌가 싶다.
팬데믹으로 지쳐서였을까? 오미크론 변이로 인한 위축감이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주위를 한번 둘러보는 연말이 되기를 기대한다. 크리스마스 장식과 트리 점등식, 다운타운에서 벌어지는 관련 행사는 작년에 모두 취소됐다가 올해 다시 시작됐다. 밀레니엄파크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그렇고 매그니피션트 마일의 화려한 전구가 그러하다. 리차드 데일리 센터 앞 광장에 마련된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Nathan Park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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