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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내 인생의 산타는 아직 오지 않았다

 딸애가 왔다 갔다. 집 떠난 자식은 올 때 반갑고 갈 때 더 반갑다는 말은 맞고도 틀린다. 새벽 4시에 잠든 이이들 차에 태우고 떠나는 딸을 보며 눈물이 핑 돈다. 자식이 뭐고 부모가 누구길래 때가 되면 철새처럼 품으로 날아드는지. 뉴저지에 사는 딸은 애들이 어린 탓에 비행기 여행이 힘들어 자동차로 다니러 온다. 이른 새벽에 출발하면 아침까지 애들이 잠을 자기 때문에 여행하기가 쉬워진다.  
 
샌디에이고 사는 아들은 어린애 둘 데리고 항공여행이 위험할 것 같이 오지 말라고 했다. 근교에 사는 처갓집에서 추수감사절 보냈는데 며느리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시부모가 아무리 잘 해 준다 해도 딸과 며느리는 촌수부터 엄청 다르다. 들어온 돌이 아무리 예쁘고 좋아도 뿌리 깊게 박힌 돌을 이기지 못한다.
 
할머니 노릇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인내심이 하늘에 닿고, 배려와 사랑이 넘치고, 아이디어가 기발하며, 몸놀림이 번개처럼 재빠르고, 최신 유행하는 동화책 장난감 목록까지 줄줄이 외워야 애들과 대화가 가능하다. 내 멋대로 선물도 못 사준다. 애들에게 물어보고 허락 받는다.  
 
올해는 좋아하는 성탄절 선물 사는 것도 전쟁이다. 인기 품목은 벌써 품귀 현상이다. 다행히 부지런한 딸이 여기저기 뒤져서 양쪽 집 손주들 선물을 미리 온라인으로 구매했다.
 
내 유년의 기억에는 산타가 없다. 산타라는 할배가 있는 줄도 몰랐다. 교회당 종소리가 울리면 쪼르르 달려가 나무 판때기 깐 바닥에 앉아 외국에서 원조품으로 보낸 알록달록한 예쁜 카드 받을 내 차례를 기다렸다. 스미스씨가 살리에게 보낸 해묵은 카드에 적힌 사랑의 말들을 읽지 못했지만 반짝이는 금박 박힌 재활용 카드를 오래 간직했다. 배 불룩하고 동그란 안경 쓴 양키 할아버지를 카드에서 본 것도 같다. 그 사람이 공짜로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클로스인지 몰랐다.
 
동화책도 장난감도 산타클로스 없어도 내 유년은 별처럼 반짝이고 행복했다. 늦은 저녁이면 살평상에 드러누워 옥이 언니가 개작한 콩쥐 팥쥐나 길 잃고 호랑이 등에 업혀 자란 씩씩한 소년의 이야기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배트맨, 수퍼맨, 원더우먼은 없었지만 대신 척척박사인 엄마 아빠가 모든 일을 해결했다.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못 하는 것은 없었다. 삼만이 아재가 지게로 옮기던 쌀가마니도 번쩍 들어 올렸다. 청상과부로 병아리 같은 두 남매를 키우며 내 새끼 위해서는 목숨도 내 놓을 만큼 수퍼우먼이 된 용감하신 내 어머니. 싸움 하다가 지면 쪼르르 달려가 엄마에게 일러바쳤다. 동무도 수퍼맨 아버지를 등장시겼다. 바야흐로 수퍼우먼과 수퍼맨의 혈투가 시작 될 조짐이었지만 호박꽃이 흐드러지게 핀 담장 앞에서 동무와 내가 손 들고 무릎 꿇고 벌 서는 걸로 평화협정을 맺었다.  
 
주파수가 잘 안 맞아 찍찍거리는 구식 라디오에 맞춰 유행가를 따라 불렀다. 예나 지금이나 내 인생은 고장난 라디오처럼 주파수가 잘 안 맞는 걸까. 애들 대화에도 튕기고 손주들 질문에도 대답이 헷갈린다.  
 
착하게 살면 나이 먹어도 산타클로스가 오지 않을까. 생의 힘든 모퉁이 이리 저리 부딪히며 살아온 날들을 쓰다듬어 줄 산타가 붉은색 망토 속에 선물을 감추고 이리저리 공중을 날아다닐지 모른다. 썰매는 아직 땅에 닿지 않았을 뿐이다. 

이기희 / Q7 파인아트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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