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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의사, 손기술보다 ‘마음’

딱히 내색은 하지 않아도 물질적 풍요와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는 시대에 모날세라 순응하며 살아간다. 이성적 자각에 부끄러워지면 본디 사피엔스는 욕구에 충실한 존재라며 애써 합리화한다. ‘잘살아 보세’라며 앞만 보고 달려온 근대화 시대는 그렇게 인간의 정신마저 산업화로 이끌었다. 그러나 성찰하고 제어 가능해야 사람이다. 생명을 보듬는 의료는 더더욱 그렇다.
 
한국 사회는 의료가 환자에 대한 보편적 서비스로 전환되는 변곡점에 놓여 있다. 그러나 능력주의 시스템이라 불리는 배타적 의료시장의 프레임 안에서 수익 지향 방식은 여전히 필연적 현실이라는 점도 서글프지만 부인하기 어렵다. 국민의 건강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데 필요한 의사로서의 도덕적 능력은 위축되고 인술이 아닌 상술이라는 비난에 부끄러워지는 배경이다. 그러나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각양각색의 모난 의료적 행태도 있을 테지만 생존이 버거운 의사도 있기 때문이다.
 
무릇 인간의 삶이란 결함 있는 내면의 자아와 끊임없이 충돌하며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필자도 늘 부족하지만 그 길을 따라가려 노력한다. 환자 앞에서 겸손과 절제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며, 외적 성공이 아닌 내적 성숙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실존이 거칠지 않은 의사의 자질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럴 때 인술은 마음 술이 되고 환자의 예후도 좋기 때문이다.  
 
딴 세상 이야기만 같았던 4차 산업혁명은 온갖 화려한 수사와 기능을 달고 우리 일상을 잠식하고 있다. 미래학자의 예언을 굳이 들이대지 않아도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겨내지 못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현재의 의료 행위의 태반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운용할 수 있는 의사들만이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 앞에서는 서늘하기조차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의사들의 대처는 여전히 수동적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애써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다고 직면한 의학의 위기가 극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의료현장, 현직 의사의 일상적 공부는 여전히 지난하다. 아니 여력이 없다. 궁색한 변명일지라도 현실이 그렇다.
 
코로나19로 낯선 타자와 대면할 기회는 현저히 줄고, 플랫폼의 형상들이 표준이 되는 사회가 도래했다. 오직 자신에게 익숙하게 길든 것만 상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된 사회에서 다양한 통증의 아픈 환자를 상대할 의사의 미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참으로 암울하다. 변화에 무감각한 존재는 환자의 통증에도 무심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연대와 균열의 경계에 서 있다. 구닥다리 근거라고 힐책해도 사실 호모 사피엔스 이전 원시 인류는 타인을 수용하고 배려할 줄 아는 협업적 존재였다. 나를 넘어 공동체를 생각하는 더불어 사는 인간이었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무리 속에서 성찰하는 존재였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인간의 궁극적인 조건은 본디 타고난 이타심 아니었던가. 이타심이 실종된 시대에 우리 의사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기능적 역할에만 의사의 정체성을 국한할 것인가.
 
환자에 대한 애정을 건조한 이윤으로 바꾸지 않고, 사람의 향기를 품고 걸어가는 것, 그게 바로 의사로서의 공동체적 삶의 태도가 아닐까. 의사로서의 이러한 태도만큼 맵시 좋은 우아함이 어디 있을까.
 
희망은 현실 초월의 다른 말이다. 아프고 고단한 코로나19 시대에 속절없이 맞닥뜨린 거대한 절망은 오히려 담대한 용기를 준다. 먹고사는 것들에 대한 허약한 속살로 데면데면해 가는 건조한 시대를 넘어서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꾸역꾸역 진심을 다해 환자를 보듬고 포스트 코로나를 채비하면 인술은 위로가 된다.
 
천지가 농익은 늦가을, 통렬하게 묻는다. 불과 20여 분의 진찰 시간 동안 환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만을 묻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하고 싶은 말만을 언구럭 부리며 환자에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손기술만을 수행하는 의사는 아니었는지, 생명을 살리는 어진 인술을 마음 술로 살갑게 구현하고 있었는지를.

안태환 / 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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