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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가운데서] 미스 에밀리의 스토리

영 그레이 / 수필가

지난 8월부터 함께 운동하는 여인이 있다. 그녀의 인상이 작년에 세상을 떠난 둘째 사위의 할머니와 같은 분위기라 처음부터 마음이 열렸다. 매일 만나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사귀니 그녀가 자신은 영국 이민자며 이름은 ‘에밀리’라 했다. ‘폭풍의 언덕’을 쓴 소설가 에밀리 브론테가 떠올라서 더 친근감이 들었다.  
 
언젠가 운동을 하다가 몇 사람이 힘이 든다고 살살 불평을 토해내니 강사가 나이를 들먹였다. 자신은 70세인데 “당신은 몇 살이냐?” 차례대로 묻다가 막상 미스 에밀리가 88세라 하자 모두 놀라서 입을 꽉 닫았다. 불평없이 잘 따라서 운동하는 그녀는 그날부터 함께 운동하는 그룹의 영웅이 됐다. 모두 그녀의 건강을 부러워하며 이것저것 물으니 그녀는 발레를 67년동안 가르치다가 올 7월에 퇴직한 젊은 노인이었다. 영국 리버풀 근교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는 ‘미스 리버풀’ 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발레가 좋아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다가 그만 둘 줄을 몰랐다는 그녀는 대단한 욕심꾸러기였다. 더구나 아침에 깨어나 세수만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선 나의 부수수한 모습이 민망할 정도로 그녀는 매일 머리 손질도 잘 하고 손톱 발톱도 빨간 매니큐어로 다듬고 간혹 립스틱도 바르고 운동하러 온다. 그녀의 깔끔한 외모 앞에서 나는 기가 죽는 날이 많지만 그녀의 나이가 되어도 내가 그렇게 단정하게 가꾸고 살기를 바라게 됐다.  
 
우리는 소소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다가 누가 하루 운동을 빠지면 서로의 근황을 챙겼다. 그러다가 이제는 밥을 같이 먹는 지인이 됐다. 그녀를 보면 마치 영국 여행중에 만났던 사위의 할머니와 마주 앉은 듯 편안하다. 헤어지면서 “내 손자를 부탁해” 하던 그녀의 얼굴이 미스 에밀리로 바뀐 듯 착각이 든 적이 있었다.  
 


사람마다 가진 스토리에 난 언제나 자석처럼 끌린다. 영국에 주둔한 미 공군 군인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고 미국으로 온 미스 에밀리는 나와 같은 공군 가족이다. 결혼한 다음해 큰딸을 낳고 이어서 줄줄이 5명을 낳았다. 큰딸이 8세 된 해, 그녀가 결혼한 지 9년째 되던 해 남편이 뇌수막염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어린아이 다섯을 혼자 키워야 했을 적에 친정 어머니가 와서 도와주셨다. 그때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그녀의 어머니는 “물에 빠져 죽던지 아니면 헤엄쳐서 살아라” 했다.  
 
그 조언을 받아서 아이들 키우고 돈 벌며 바쁘게 사느라 전혀 다른 생각을 못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한 공군을 만났다. 그녀의 두번째 남편이 된 좋은 남자는 다섯 아이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어줬다. 덕분에 아이들이 잘 성장한 것을 그녀는 감사해 했다. 친 아버지 기억을 못하던 아들 딸들이 따르고 사랑하던 그녀의 두번째 남편도 9년 전에 세상을 떠나서 그녀는 혼자가 됐다.  
 
성인이 된 자식들은 모두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 다섯명의 아이들이 그녀에게 15명의 손주를 안겨줬고, 다시 15명의 손주들은 25명의 증손주를 안겨줬다. 복 많은 여인이다. 내가 성경의 창세기에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것을 “당신은 착실하게 잘 실천했다” 했더니 그녀는 크게 웃었다.  
 
내가 스모키 마운틴 중턱의 캐빈에서 신선한 산의 정기를 받으며 딸네들 가족과 모여서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내 삶의 가을을 감사하는 동안 미스 에밀리 역시 플로리다에서 바닷바람을 받으며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장성한 자식들과 후손들, 대가족이 모여서 그녀의 삶을 축하했다. 집을 떠나기 전에 우리는 진정 멋지고 풍성한 감사의 수확을 거두자고 서로에게 다짐했었다.
 
얼마전에 89 생일을 맞았던 미스 에밀리는 연말에 플로리다로 떠난다. 그곳에 집을 짓는 딸네로 이사 들어가서 딸과 함께 바닷가 동네에서 아름답게 살 것이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재미있다. 오래전 내 딸이 발레를 배울 적에 분명 미스 에밀리가 가르쳤을 것이고 올해 그녀와 인연을 맺었던 나는 그녀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열정적인 삶을 사는 그녀가 “절대로 운동을 그만두지 마” 한 조언을 따라서 열심히 운동하며 건강을 지킬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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