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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침묵의 소리’까지 듣는 경청

 옛 성현들의 말씀에 따르면 사람들이 태어나 세상사를 습득할 때 그냥 건성으로 듣고 배우지 말고 무엇이든 귀 기울여 집중해서 들어야 깨우친다고 했다.  
 
영어로 말하면 ‘hear’하지 말고 ‘listen’하라는 얘기다.  
 
hear와 listen은 우리말로 하면 둘 다 ‘듣는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그러나 그 쓰임은 다르다. ‘hear’는 들려오는 소리를 자연스럽게 듣는 걸 의미하지만 ‘listen’은 귀 기울여 집중해서 듣는 걸 의미한다. 즉 경청(傾聽)을 의미한다.  
 
동서양의 고전 설화라 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나 ‘탈무드’ 또는 공맹의 어록에서도 ‘듣는 마음’을 곧 경청이라 했다. 이는 상대의 호감을 얻을 수 있고 어려움을 해결하는 열쇠일 뿐만 아니라 사람 됨됨을 상대에게 보이고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의 반대말은 ‘딴청’이라고 하는데 이는 동문서답을 말한다. 즉. 딴청을 부린다는 말이다. 나는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래서는 대화가 안 된다. 물론 소통도 안 된다. 아니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 의미공유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것이고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이다.
 
한자 풀이로 ‘듣는다’는 의미의 청(聽)은 ‘왕의 귀(耳+王)로 듣고, 열개의 눈(十+目)으로 보고, 하나의 마음(一+心)으로 대하고 듣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왕의 귀로 듣고, 열개의 눈으로 보고, 하나의 마음으로 대할 줄 아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는 남의 말에 귀 기울이려는 미덕이 없어진 것 같다. 가끔 사람을 만나 세상 얘기를 하다 보면, 어떤 대화이건 간에 상대의 말을 전혀 들어보려는 생각도 없이 논리도 안 맞는 자기 주장만 앞세우는 경우를 본다. 완전히 딴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아 황당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늘 소통이 문제라고 한다.  
 
경청에 대해서는 5가지의 여러 단계들이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1단계 무시하기, 2단계 듣는 척하기, 3단계 선택적 듣기, 4단계 귀 기울여 듣기 5단계 자신을 중심에 두고 공감적 경청하기 등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남의 말 듣기는 어디에 속할까. 현인들은 경청을 제대로 하려면 하심(下心)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선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어찌 되겠는가.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어찌 되겠는가. 세상이 온통 물들어 보일 것이다. 선입견을 버리고 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이러한 경청 5단계니 하는 ‘소리의 경청’보다는 우리 모두가 서로 간에 말하지 못하는 ‘침묵의 말’과 억눌러 놓았던 ‘내면의 소리’, 그리고 무심했던 이웃의 ‘신음소리’와 천리(天理)를 이르는 ‘하늘과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댜 한다. 진실을 듣고자 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손용상 / 소설가·한솔문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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