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네트워크] 냉전 올림픽 어게인?
‘미투’ 폭로 뒤 사라졌던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가 얼마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통화하면서 ‘실종설’은 봉합됐다. 펑솨이는 그의 안부를 염려해온 세계인들에게 “사생활을 존중받고 싶다”고 알렸다. 인권·개인주의 등을 강조하는 서구사회 가치를 미러링하는 중국식 되치기다.중국 외교부는 이 같은 입장을 강조하는 회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올림픽 개막식 참석 소식도 알렸다. 펑솨이 문제 등을 지적하며 ‘외교적 보이콧’ 조짐을 보인 미국·영국 등 서방국가에 “빠질 테면 빠져라, 우리끼리 문제없다”고 으스대는 듯하다.
중국은 “성대한 행사를 서로 돕는 것은 중·러 사이에 여러 해 동안 형성된 전통”이라고도 했다. 실제로 2014년 소치 올림픽 때 미·영·독 등 주요 국가 정상이 불참했을 때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달려갔다. 당시 서구 진영의 ‘외교적 보이콧’에 러시아는 “올림픽의 본령은 선수들의 경쟁”이라며 “세계 정상들의 올림픽 참석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중국 측은 “(보이콧을 주장하는) 그들이 없으면 올림픽은 더 순수해질 것”이란 식이다. 냉전 시기 1980년과 84년 동서 진영이 각각 세를 나눠 불참했던 이후 ‘갈라치기’가 구태로 보이는 걸 이렇게 이용한다.
스포츠와 정치가 ‘무관함’을 보여준 역설적 사례가 2008년 베이징 여름올림픽이다. 8월 8일 개막식에 참석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푸틴으로부터 러시아-조지아(그루지야) 간 전쟁 발발 소식을 들었다. 나토의 지원을 기대했을 조지아는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러시아에 패퇴했다.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러시아 병력이 증강되는 이 시점에 베이징에서 ‘어게인 2008’이 벌어진다면 서방 지도자에겐 악몽일 수밖에 없다. 보이는 스포츠 무대 안팎에서 물밑 외교 관리를 할 필요성은 바이든도 시진핑에 못지않단 얘기다.
“냉전기 경쟁은 군사력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경제력, 첨단기술, 가치 등 복합적 경쟁의 시대라는 점에서 냉전(冷戰)이라기보다 열전(熱戰)의 시기”라고 최근 니어재단이 펴낸 ‘외교의 부활’(131쪽)은 지적한다.
얼마 전 르몽드 사설이 되짚었듯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만 해도 미국·유럽은 중국이 경제적 발전을 하다 보면 정치적 개방에 이를 것으로 낙관했다. 시진핑 체제의 권위주의는 그게 ‘서구의 환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식 민주주의만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중국의 서슬퍼런 위력 앞에 IOC 위원장이 나서서 ‘펑솨이 사태 진화’에 애쓸 정도다.
냉전 때처럼 갈라서진 않는다 해도 ‘기묘한 화합’의 무대가 다가오고 있다.
강혜란 / 한국 중앙일보 국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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