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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가르침-원수를 사랑하라 2 (눅6:27-38)

 지난 칼럼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다루면서 ①원수까지 사랑하는 무조건적 사랑 ②교환과 목적론적 동기를 가진 조건적인 사랑이 본문에 함께 등장한다는 점을 다루었다. 이 문제를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  
 
맹자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달려가 구해주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인(仁)에 해당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하늘로부터 받은 본성이라고 주장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다고 믿는데, 하나님의 본성을 사랑과 의로움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의 가장 구체적인 내용은 타자를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맹자의 성선설과 기독교의 하나님형상사상은 “하늘로부터 받은 타고난 자비와 사랑의 성품”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유사하다. 그런데 누가복음 본문에서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은 단순히 인간 본성에 의지하는 “보편적인 무조건적 사랑”이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는 “극단적인 무조건적 사랑”이다. 과연 이러한 무조건 사랑이 가능할까? 인간 품성 속에 담겨있는 보편적 사랑도 일상 속에서는 제한적으로 발현될 뿐인데 어떻게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필자는 바누아투라는 아름다운 남태평양에서 2년간 신학을 가르쳤다. 숨을 멎게 하는 석양,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과 눈이 시리도록 밝은 달빛, 서로 용서하고 포용하는 것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바누아투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온몸과 마음이 온 우주와 모든 타자에게 확장하는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 순간에는 정말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호주에서 온 선교사가 제국주의적인 오만함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켰을 때, 우주적 사랑의 마음은 너무도 쉽게 깨어져 버렸다. 원수 사랑은커녕 이웃도 사랑하기 힘든 것이 인간이다. 우리가 직면하는 세상은 혼동, 외면, 이기심, 차별, 분노, 학대, 깨어진 관계, 학살과 전쟁으로 점철된 추악한 세상이다. 왜 예수께서는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을까?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몰트만은 필자가 다니던 웨스턴 신학교를 방문해서 강의한 적이 있다. 강의 후에 지역교회의 목회자가 “당신은 보편구원론자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2차 세계대전에서 포로수용소 경험을 한 몰트만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천국에서 결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류 모두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 모두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이다. 하나님은 가장 지키기 쉬운 약속조차 어긴 아담과 하와를 사랑하셨으며, 끊임없이 배반하고 다른 신을 쫓은 이스라엘을 눈동자처럼 사랑하셨다. 예수께서는 죄인들, 버림받은 자들, 심지어 자신을 떠난 제자들을 한없이 사랑하셨고, 성령은 자신을 훼방하고 시험하고, 거짓말하고, 슬프게 하고, 모욕하고, 소멸하고, 저항하는 자들을 사랑하시어 그들을 위해서 깊은 탄식으로 기도하시고 그들 안에 거하신다. 하나님은 참으로 원수를 사랑하신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인간의 도덕적 영적 능력에 관한 말씀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시는가” 관한 말씀이며, 그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자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초청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는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4:11-19).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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