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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행복할 수 있는 권리

가끔 마주치는 치과의사가 나에게 항상 얼굴이 환해 보인다고 한다. 오늘도 아침에 마주쳤는데 좋은 일이 생겼냐고 묻는다. 나는 답한다. “내가 속이 비어서 그래요. 웬만하면 채우려고 기를 쓸 건데 나는 그러지 않고 그냥 이대로가 좋아요.” 그러면 그녀는 어리둥절해 한다.  
 
지난날 어렵게 살 때는 우체통 열어보기가 두려웠다. 주머니는 비었는데 청구서는 매일 들이닥치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자동차 연체료, 모기지, 전기료, 전화료, 보험료 청구서가 우체통에 가득했다. 그것에서 벗어나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르겠다. 거기에 친구들 모아 저녁 한 끼 살 수 있는 여유까지 있으니 얼마나 부자인가.  
 
내 동생이 이렇게 말한다. 언니는 아파트 하나 없어 아들에게 얹혀살면서 속이 정말 없다고. 그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 하면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페이먼트 때문에 돈 빌리러 가지 않는데 뭐가 더 필요한가.  
 
내 주위에 있는 친구들을 보면 여유가 있어 일찍 은퇴했다. 돈도 많고 시간도 많아 일주일에 몇 번씩 골프 하고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이지만 유심히 얼굴을 바라보면 걱정거리들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배불러 행복한 소리 같지만 그늘져 있다.  
 


목요일은 오후에 손자 녀석을 유치원에서 픽업한다. 점심을 유치원에서 일찍 먹으니까 데려오면 저녁을 먼저 먹으라고 한다. 손자 녀석에게 물어본다. 뭐 먹고 싶어? 김밥 먹고 싶어요. 그래 피자는 어때 하면 아니라고 당차게 말한다. 5살짜리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 골라서 먹고 옷도 좋아하는 것 골라 입는다. 나도 손자처럼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고 싶다.
 
작가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양식’에서 본성에 따르는 자신의 인간적 욕망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걷고 싶은 욕망 거기엔 하나의 길이 열리고, 쉬고 싶은 욕망 거기에 그늘이 부른다. 깊은 물가에서는 헤엄치고 싶은 욕망, 침대가에 이를 때마다 사랑하고 싶은 욕망 혹은 잠자고 싶은 욕망… 나는 대담하게 각각의 사물 위에 손을 내밀었고 내 욕망의 모든 대상에 대하여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지드가 말한 욕망은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었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밟고 가거나 피해를 주는 탐욕적인 욕망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런 욕망은 숨길 필요가 없는 자신의 권리인 셈이다.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기쁨 좋아하는 것을 하는 즐거운 마음의 평온과 안락함이 주는 충만함, 그리고 사랑의 행복. 이 모든 것은 인간이라면 갖고 태어나는 본성이다. 굳이 그것을 감출 이유도 억압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그런 욕망을 줄곧 억압하며 살아왔다. 먹고 사는데 쫓겨서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혹은 다들 어려운데 나만 행복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하지만 이제 행복해지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소중히 간직하며 나를 위해 살기로 마음먹을 때이다. 이제는 나를 챙기면서 일상의 굴레로부터 외출하는 나를 만들어가자. 

양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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