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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눈물로 양파를 까던 친구

 양파를 고른다. 양파는 작고 단단한 것이 좋다. 큰 것을 다 쓰지 못하고 남겨두게 되면 신선도나 향이 덜해지기 때문이다.      
 
둥글고 반질반질한 모양새가 당차다. 양파 안은 나이테처럼 자라난 동그라미로 꽉 차 있다. 가운데 심지를 중심으로 점점 큰 동그라미로 둘러싸여 탄탄하다.  
 
양파를 깐다. 까는 일은 조금 번거롭다. 겉껍질이 단단히 붙어있어 까기가 쉽지 않다. 먼저 양파 밑동과 위를 잘라내고 껍질을 한 겹씩 벗긴다. 하얀 속살이 드러난 양파에서 매운 내가 났다.  
 
그림 그리는 내 친구는 울고 싶은 날 양파를 깐다고 했다. 눈물이 나는 것은 양파 때문이라고 핑계 댈 수 있으니 좋단다. 너무 힘들어서 울고 싶은 날 양파를 까며 눈물을 흘린다 했다. 그러고 나면 새로 시작할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친구는 오랫동안 눈물의 시간을 보냈다. 타국에서 외로움과 싸워야 했고 공부는 지지부진했다. 부족한 것이 많은 세월이 오래 계속되었다.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시간이 간다고 무엇이 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작품은 숯과 한지를 수없이 반복해서 덧입혀 질감을 표현한다. 겹겹이 싸인 양파처럼 한지와 숯을 번갈아 덮어 두드린다. 수백 번의 쇠솔질을 하고 나면 숯과 한지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재질로 섞이어 또 다른 세계가 된다. 손에 지문이 다 없어질 정도의 노동이다. 몇 십 년의 세월을 견디며 작품을 만들던 친구는 지금 그 분야 최고가 되었다.  
 
나는 이제 양파를 까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눈물을 참는 것이 아니라 웬일인지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요즈음 양파는 예전처럼 맵지 않은 것일까. 젊은 날의 양파는 더 맵게 느껴졌던 것일까. 몇 십 년 주부 내공이 눈물 안 흘리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일까. 나이 들며 감정이 무디어진 탓일까. 진짜 인생은 양파 매운맛보다 훨씬 맵다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일까.  
 
얇게 자른 양파를 프라이팬에 볶는다. 매운 냄새가 사라지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올라온다. 열을 오래 가할수록 더 달아진다. 하얀 양파가 갈색이 될 때까지 뒤적여 주었다.  
 
볶은 양파를 맛보았다. 달콤하다. 인위적인 단맛이 아니라 볶이고 단련된 다음에야 스며드는 은근한 맛이다. 그것은 오랜 시간 뜨거운 불을 인내하고 난 후에야 맛볼 수 있는 단맛이다.  
 
양파를 맛보며 생각했다. 내 젊은 날들은 뜨거운 열에 볶이면서 달콤함이 배어나올 때까지 잘 버텼는가. 눈물 때문에 포기한 적은 없었는가. 어려운 시절을 보낼 때 언젠가 나에게도 달달한 시절이 오리라는 믿음을 가졌던가. 뜨거운 불을 견딘 자는 모두 달콤함으로 정당한 보상을 받았을까. 모를 일이다.  
 
양파의 달콤함이 은은하게 혀끝에 남아있다. 매운 맛을 보고 난 후 올라오는 단맛의 향긋함이다. 눈물로 양파를 까던 친구 생각이 난다.

박연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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