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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시론] 사랑과 평강의 침묵

 최근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고 하나님은 위대한 사랑을 위해 침묵으로 어떠한 행위도 용납하신다는 신앙의 역설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있었다.  
 
1638년 3월 25일 '산타 이사벨'호에 승선한 세 젊은 사제들은 일본 선교를 위해 포르투갈의 리스본 항을 출발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횡단하고 마카오를 지나 나가사키 지역으로 밀입국을 했다. 젊은 사제들은 목숨을 걸고 선교를 했지만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은 너무나도 혹독했다. 펄펄 끓는 온천수로 고문을 당하는 수많은 신도들과 안개비 내리는 바다 속으로 돌덩이 마냥 가라앉는 신도들의 순교현장에서도 아무런 말씀이 없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그들은 원망을 했다.  
 
"하나님 왜 아직도 침묵하고 계십니까?"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 그들이 무신론자가 되거나 아니면 믿음이 시련에 부딪쳐 결국 불신앙을 드러내 놓게 된다.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경험하고 있다. 곤혹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침묵이 너무나 완강하고 장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을 못 견뎌 하고 하나님이 침묵 중에 일하신다는 사실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침묵은 절망이라고 쉽사리 단정을 짓는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시종일관 침묵을 하시는 걸까. 하나님은 태초적 침묵 자체이며 스스로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침묵은 용서와 사랑을 위한 토대이자 하나님의 본질이며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이 사랑을 통해 우리에게 진리로 전달된다. 하나님의 침묵은 냉담한 무관심이 아닌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평강의 침묵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다리시며 침묵하고 계신 것이다.  
 
그것은 포도나무에 연결되어 있는 가지가 침묵 속에서 가지에 수액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포도가 자연스레 열리는 원리와도 같다. 가지는 포도나무에게 왜 침묵하느냐고 묻질 않는다. 그냥 묵묵히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면 포도나무는 사랑의 수액을 가지로 흘려보내 열매를 맺게한다. 마치 포도나무와 가지 사이에 침묵이 존재하듯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침묵을 통한 지속적인 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침묵 속에 깊이 가라앉아 분해되어 침묵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침묵과 결합하기 위함이다. 결국 우리는 침묵이 가져다주는 신뢰감으로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침묵 속에 커다란 도움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단지 너희와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이란다."
 
우리가 침묵 가운데서 사랑을 느낄 수 있을 때 평강의 침묵 속에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완벽한 침묵은 완벽한 말의 메아리로 들린다."  
 
침묵을 간결하게 정리한 막스 피카르트의 말이 지금 내 영혼 속에서 울리고 있다. 

손국락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ㆍ라번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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