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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 낙제생이 미국서는 1등”

1980년 3월 연세대 의예과 1학년으로 입학한 나는 학생들의 데모로 어수선한 시기에 캠퍼스 생활을 시작했다. 턱걸이로 의예과 2년을 간신히 마치고 본과에 진학했는데 본과 공부는 너무 힘들었다. 대학 입학 전 한국학교에 다녀 본 적이 없었던 나는 한국어로 유창하게 말할 수는 있었지만, 문자로서 한국어를 접해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해부학 용어를 익히고 암기 위주의 생화학 수업을 받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다.
 
나는 그렇게 본과 1학년을 끙끙거리며 학업에 매달렸지만, 유급을 면하지 못했다. “그 서양 애가 떨어졌대”라는 소문이 학교 전체에 퍼지게 됐고 이렇게 망신스러운 상황은 심적으로도 큰 부담이었다. 그래도 패배의식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본과 1학년 교실에 들어가 앉았다.
 
강의가 시작되고 고개를 들어보니 놀랍게도 내 주변에 아는 얼굴이 많이 보였다. 180명 정도의 1학년 동기 중 30명 이상이 함께 낙제한 것이었다. 첫날 수업 후 우리는 학교 근처 생맥줏집에 모여서 “너도 낙제했냐? 나도 낙제했다”라고 하며 진한 우정을 나눴다.  
 
2학년부터는 기초과목 외에 임상과목도 배우게 되는데 나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암기보다 이해 과목이 많아 공부가 수월해졌다. 4학년에 보는 의사 국가고시는 시험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한자어로 된 의학용어가 에베레스트산 같은 큰 고비였다. 3개월간 한자 어휘를 공부하느라 바빴고, 시험 당일에도 한글 읽는 속도가 느려 겨우겨우 시험을 치렀다. 다행히 국가고시는 합격이었고 이때는 정말 설 명절이 열 번 온 것 같이 행복했다.
 


열흘 뒤 미국 의사 국가고시 기초과목 시험이 있어서 역시 필사적으로 준비했지만 불행히도 1점 차로 합격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 도착해서 다시 국가고시를 준비해야 했다. 시험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미국의 사설학원에 등록해 3개월 동안 강의 테이프를 들으며 기초시험을 준비했다. 돈이 없어 끼니도 거르던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국가고시 시험을 다시 치렀다. 3000명이 시험을 쳤는데 합격자가 120명인, 합격률이 4%에 불과한 어려운 시험이었다. 그래도 나는 당당히 합격했다. 그 뒤 나는 수련병원을 구하려고 50군데가 넘는 병원에 지원서를 내며 면접을 봤고 한 병원에 6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그러나 이 시절,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미국 졸업생들은 알지도 못하는 작은 나라의 졸업생이라고 나를 무시하고 차별했다.  
 
그러던 중 수련의 평가시험이 있었다. 시험을 치르고 며칠 뒤 과장이 칠판에 내 이름을 적었다. 내가 수련의 중에 1등이었다. 나는 순간 내 이름을 보고 놀라서 몸이 얼어붙었다. 나는 한국 연세대에서도 본과 1학년을 낙제했던 낙제생 아니었던가.
 
미국 대학 졸업생들도 모두 놀랐고 그날 이후 나에 대한 무시와 차별 대우는 끝났다. 나는 화장실에서 한참을 울고 나왔다. 목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가 커지며 “한국의 낙제생이 미국 졸업생보다 뛰어나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한국의 힘은 이런 데 있다. 특별한 기술 없이 미국에 이민 온 한국 사람들도 평균 1년이면 80% 이상이 새 차를 사고 5년이 지나면 80% 이상이 집을 마련한다.  
 
미국에 이민 온 다른 나라 이민자들과는 견줄 수 없는 대단한 근면성이다. 참으로 한국 민족이 대단하고 또 나를 가르쳤던 교수님들과 세브란스의 교육에 너무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이렇게 월등히 우수한 우리 민족이 왜 그렇게 스스로 과소평가를 하는가는 의문이다. 지난 50년 동안 인류 역사가 가장 빨리 변하고 발전했고,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이 가장 큰 발전을 이뤄내고 인류 발전에도 가장 많이 이바지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어깨에 힘을 주고 목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가 커져도 될 만큼 자랑스러운 일이다. 나는 강연자로 어디에 서든 패배의식을 던져버리고 한국 민족의 우수성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인요한 /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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