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배우며] 단풍 구경
김홍영 / 전 오하이오 영스타운 주립대 교수
11월 1일 월요 등산대원들이 Black Rock Mountain State Park으로 단풍구경을 갔다. 둘루스에서 한 시간 반 운전 거리, 30여명이 8대 차에 나눠 타고 9시에 떠났다. 8대의 차는 순서를 정하여 일렬로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중간에 다른 차가 끼어들면, 앞차가 속도를 줄이고 깜박등을 켜니 중간에 끼었던 차가 떠났다.
달리는 85 하이웨이 가장자리로 늘어선 숲과 나무들이 찬란한 가을 아침 햇빛에 선명하게 빛나고 누런 단풍들이 가을을 보여주었다. 우리 부부가 탄 차의 운전 수가 노래를 시작한다: ‘가을이라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오니.’ 초등학교 시절에 부르던 가을 노래, 나도 따라 불렀다. 차의 뒷자리에서 끝없이 이야기하던 두 여자도, 이야기를 멈추고 어려서 부르던 가을 노래를 나직이 따라 부르며 추억을 상기하는 모양이었다.
“와, 산으로 높이 올라가니 단풍이 곱게 들었네!” 하는 운전사의 외침에 산 중턱을 오르는 차창을 내다보니 단풍들이 찬란했다. “와, 저 햇빛을 등진 단풍잎을 봐, 가을을 맞으려고 알록달록 연지곤지 찍은 새 각시 같네!” “와 산에 높이 오를수록 단풍이 너무 곱네!” “높을수록 더 기온이 떨어지니 단풍이 더 일찍 드나 봐.” 그런 소리들이 나왔다.
목적지 공원 산꼭대기에 도착하여 쉘터 옆 주차장에 주차하고 사람들은 차에서 나오자마자 확 트인 전망에 와! 소리쳤다. 해발 1,110 미터의 고지에 서서 멀리 보이는 햇빛 쏟아지는 산들이며 들판과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노랗고 빨간 색깔로 덮은 넓은 산등성이 아득한 끝자락엔 불루-리지 산맥의 먼 산들이 철썩 이는 파도 같이 작아져서 지평선을 이루었다. 많은 미국사람도 검은 바위 위에 서서 단풍 든 산들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사진도 찍었다.
울긋불긋 단풍 든 산등성 골짜기에 작은 마을의 집들이 성냥갑 보다 적게 보인다. 사람도 곰도 사슴도 살쾡이도 다람쥐도 수많은 새와 동물들도 드넓은 산속에서 서로 먹이 사슬에 얽혀 살아간다. 차에서 내릴 때 우리도 모르게 “와!” 하고 감탄한 이유는, 매일 살아가는 일상의 작은 일들에만 매달렸던 시선이 넓은 세상, 생명체의 의지를 넘어 큰 자연, 초월적인 것을 느끼는 순간 감사의 환호가 아닐까?
점심 식사 전 모두 공원의 숲길을 걸었다. 숲길로 들어서니 길가로 늘어선 단풍들이 눈길을 끈다. 숲속 그늘의 작은 나무도 단풍잎을 흔들며 우리를 맞았다. 낙엽들이 산길을 푹신하게 쿠션을 만든다.
식사 당번들은 산길 걷지 않고 고기들을 굽고 여러 가정에서 준비해온 음식을 탁자 위에 준비했다. “와, 세상에 어느 쉐프의 음식보다 더 맛있네!” “음식에 정성도 들어갔지만, 찬란한 단풍 속에서 먹으니 맛이 더하지 않을까요?” 감탄의 소리를 냈다.
점심식사 후엔 여성들의 라인 댄싱이 있었다. 햇빛 드는 쉘터 자리에 탁자들을 치우고 빈 콘크리트 자리에 서서 여자들이 핸드폰에서 나오는 ‘어부바 부리 부비바 내 사랑 나의 어부바’ 노래에 맞추어 율동하며 라인 댄싱을 신나게 했다. 부인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하다.
“이제부터 오징어 게임을 시작하겠으니 모두 여기 선 밖에 서세요.” 총무가 인도했다. 첫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였다. 그는 저만큼 앞에서 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뒤를 돌아보며 움직이는 사람들을 지적해서 탈퇴시켰다.
무궁화 게임에서 생존자는 3개의 유리구슬을 받았다. 일 미터 떨어진 콘크리트 바닥에 그려놓은 동그라미 속에 구슬을 굴려서 넣는 구슬치기가 두 번째 게임이었다. 오, 와, 오오, 신음 속에 와 하고 성공시킨 환호 소리도 들렸다.
구슬치기에서 성공한 6명의 선수가, 이번엔 딱지치기를 했다. 종이 딱지를 쳐서 땅에 있는 딱지를 뒤집는 게임을 했다. 딱지치기에서 최후 승자에게 주어진 상품은 회원 모두에게 한 병씩 줄 음료수였다. 아득한 옛날 즐겼던 게임을 엮은 오징어 게임을 하며 추억도 살리고 신나게 게임을 하고 응원하는 모두의 얼굴은 건강한 웃음으로 단풍처럼 빛났다.
가을은 어김없이 어디에나 오지만, 찬란한 단풍들로 장식한 산자락 공원에서의 하루는 감격의 일탈이었고, 옛 추억을 살려 새로운 추억 한 켜를 만들었고, 자연에 대한 감사와 은혜를 가슴으로 느꼈고, 우리들 우정이라는 나무에 한 겹의 나이테를 키웠다.
김홍영 / 전 오하이오 영스타운 주립대 교수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