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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후회

“아파 누운 아버지는 놔두고 맨 날 돌아다닌다.”  
 
아들의 핀잔에 입 밖으로 뱉지 못한 분노가 가래처럼 끓었다.
 
작년 말 남편과 나는 노후대책으로 구입한 G 타운의 조그만 쇼핑센터를 개축 중이었다. 복잡한 개축공사와 함께 내 수필집 출판까지 겹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개축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남편이 시름시름 기운을 잃어갔다. 나는 그것이 과로로 나타난 노화현상인 줄 알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남편이 안방에서 쓰러졌다. 바로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그는 악성 백혈병 말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얼마 전부터 기력을 잃어가는 남편을 보며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가 백혈병을 앓고 있는 줄은 몰랐다. 온 몸이 어둠 속에 묻힌 것처럼 답답했다. 슬픈지 어쩐지 감각이 없었다. 왜 그는 내게 말하지 않았을까. 내가 알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었을까. 3년 전인가 피검사를 받으러 가는 남편을 몇 번 따라 갔었다. 담당의사가 아내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마 의사가 남편의 병을 알려주려고 그랬던 것 같았다.  
 


의사는 그때 남편이 백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내게 말했을 것이다. ‘루케미아(Leukimia)’ 영한사전에도 백혈병이라고 나와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그 루케미아를 폐렴으로 오해했었다. 폐렴인들 남편의 나이에 가벼운 병은 아니었지만 병치레를 해본 적 없는 남편이라 죽을 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만일 그때 내가 그의 병을 정확히 인지했더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적어도 남편이 백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았을 것이고 그리고 우리 두 아들과 시댁 식구들이 알게 됐을 것이다. 겨울 낙엽처럼 내려앉는 남편을 보며 나는 후회와 죄의식과 안타까움에 몸을 떨었다.  
 
아픈 아버지는 집에 두고 맨 날 돌아다닌다, 작은 아들이 홧김에 한 말이다. 그랬다. 남편이 워낙 건강했기에 나는 내 문학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의사는 사전에 그의 병을 알았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했다. 나는 이 말에 나의 후회와 죄의식과 슬픔을 매어달고 싶은 것이다.  
 
낮에는 두 아들이 남편 곁에서 밀착 간호를 했지만 밤에는 내가 그의 곁을 지켰다.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누워있는 남편을 보며 죽음의 그림자가 이미 그를 싸안았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이 앓아눕자 나는 지금껏 배워오던 기타 레슨과 문학공부를 중단했다. 그리고 개축공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것으로 남편이 가기 전에 개운한 마음으로 그를 보내고 싶었다.  
 
의사는 일주일이 남편의 지상에서의 삶이라고 했다. 두 아들과 나는 상의 끝에 투석을 결정했다. 세 번의 투석 끝에 남편은 5개월의 생명을 연장 받았다. 평소에 건성건성 하나님을 믿던 나는 어쩔 수없이 하나님을 잡고 매달렸다. 그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착하기만 한 남편에게 그런 벌을 내리는 것일까. 벌을 주고 싶다면 오히려 방만하게 살아온 내게 줘야 하는 것을.
 
아침부터 아들에게 큰 소리를 낸 것은 내 잘못이었다. 이런 때일수록 어른답게 행동해야 하는 것을. 작심한 듯 내뱉는 작은 아들의 말이 또 가슴을 훑는다. 너만 슬픈 것 아니야. 내 가슴도 아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갈 무렵 쇼핑센터 사인판 견적을 받았다. 설계사가 설계했다는 쇼핑센터의 샘플을 둘러본 뒤 그를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작은 아들에게 단단히 일렀다. 내일 아침은 바쁘니 좀 일찍 일어나라고.  
 
그런데 다음 날 내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게으른 것 같으니. 어제 밤에 말했잖아? 오늘 아침에 쇼핑센터를 돌아보고 간판설계사 만나기로 했다고. 네가 게으름 피우는 바람에 다 늦었어.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작은 아들네가 2층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2층 난간을 올려다보며 몇 번인가 헛기침을 해대자 한참 후 아들이 땡감 씹은 얼굴로 며느리와 손녀를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내 머리 속은 이미 부글부글 끓는 냄비처럼 부글부글 타고 있었다. 나와 아들의 말다툼은 차 속에서도 이어졌다. 남편이 애원하다시피 말렸지만 나는 아들과 계속 시시비비를 가렸다. 그게 엄마한테 할 소리야?  
 
조용하고 너그러운 남편을 닮은 큰 아들. 내 붕어빵인 작은 아들, 남편과 작은 아들은 스포츠 친구다. 풋볼, 야구, 농구 등 경기가 있는 날은 두 부자의 명절이다. 특히 남편의 모교인 네브래스카 대학 콘허스커스팀 경기는 두 부자를 겨울 난로처럼 달군다. 그래서 작은 아들은 또 남편을 유난히 따른다.
 
작은 아들이 은연중 퍼부은 말, 아픈 아버지는 놔두고 맨 날 돌아다닌다. 그랬다. 남편이 건강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말은 내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아들이 빨간불에 정지를 했다. 순간 나는 차 문을 열고 내려버렸다.  
 
아들이 유턴을 해서 내려오고 있었다. 행여 아들 눈에 띌까봐 나는 심술궂은 마귀할멈처럼 얼른 옆의 빌딩 뒤로 몸을 숨겼다. 바로 그때 남편이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뛰쳐나와 남편을 부축했다. 남편의 푹 꺼진 눈이 촉촉이 젖어있었다. 내 가슴도 써늘하게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아들이 스르르 내 옆에 차를 세우며 엄마, ‘미안해’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아들의 눈이 빨갛게 충혈 돼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같이 훌쩍거렸다.  
 
2017년 8월 15일, 남편이 마지막 이별을 고했다. 그가 쓰러져 누운 5개월,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깊고 깊은 늪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허우적거렸다. 괴로웠던 시간들을 되새기며 이별이 어떻게 우리를 갈라놓는지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쇼핑센터 사인판이 의젓한 모습을 드러냈다. 상가 앞에 우뚝 선 간판.  그 옆에 남편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임지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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