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오딧세이] ‘백신 패스’에 대한 근심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대단한 열풍을 일으킨 ‘정의란 무엇인가’의 후속작이다. 저자 명성에서부터 무게가 느껴지지만 친절하게도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라는 첨언을 달며 독자의 지식 긴장감을 완화한다. 지극히 보편적이어야 할 가치들이 사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에 대한 일상 속 사례를 들어 비견하니 대중의 수용성은 탁월하다.샌델은 공정경쟁의 바이블 같았던 ‘선착순’ 개념이 오늘날 스멀스멀해지고 비용을 더 내면 공항 보안검색대든 테마공원 놀이기구든 줄을 서서 애써 기다릴 필요가 없는 패스트 트랙 확장을 새치기 경제학의 예시로 든다.
=새치기의 사전적 의미는 ‘순서를 어기고 남의 자리에 슬며시 끼어드는 행위’다. 어감이 매우 부정적이다. 집단 내 형평성은 물론이려니와 질서와 공정성의 규율은 무너져버려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결국 들이지 않아도 될 비용을 추가 지급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백신의 새치기는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익히 안다. 오히려 시민의 백신 줄 서기는 길고도 지난했지만 매우 모범적이었다.
백신 접종이 사회적 방역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백신의 부작용 또한 엄연히 존재하며 시민 각자의 건강 상황에 따라 그 선택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백신 줄 서기에 동참하지 않았더라도 새치기에 준하는 불이익이 부당한 이유이다. 백신은 공공재로서 기능하며 무료이다. 자발적으로 줄을 서서 백신 접종을 기다리려는 시민의 공동체적 마음이 건강 여건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미루거나 꺼리는 이유보다 더 나은 가치 평가 기준이라고 추정할 근거는 부족하다. 새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접종률이 높은 독일.프랑스·이탈리아·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 백신 접종 시민과 완치자에게 다중이용시설의 이용 제한을 완화하고 미접종자는 유전자 증폭검사 음성 확인서가 있어야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백신 패스를 시행 중이다. 접종일 기준, 6개월까지 효력을 인정하기도 한다. 일상 회복의 사전 단계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감소하지 않고, 탁월한 백신과 치료제도 부재한 상황에서 단계적 일상 회복을 위한 정책으로 한국 정부도 백신 패스의 시행을 앞두고 있다. 11월 중순경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사 직전의 자영업 시민과 교육의 질이 현격히 저하되고 있는 학생, 그리고 일상의 자유를 속박당한 시민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희소식이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백신 패스에 대한 걱정이 있다. 자율성 훼손, 인권침해 등 부작용 소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에선 반대 시위 또한 만만치 않다. 백신 패스가 차별이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백신 반대가 아닌 기저질환으로 맞고 싶어도 맞지 못하는 이들이다. 백신 미접종자의 일상 제한보다 접종자에게 혜택을 더 부여하는 방향으로 백신 패스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다.
다시 마이클 샌델,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많다. 개인의 자발적 선택과 인권은 그 범주에 응당 포함된다. 벌금은 도덕적으로 승인받지 못하는 행동에 대한 비용인 데 비해 요금은 도덕적 판단이 배제된 단순한 가격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백신을 맞지 않은 시민에게 벌금을 부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벌금이 자유에 대한 속박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왜곡된 인센티브로 변질하지 않도록 백신 패스가 작동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다.
속절없지만 시장 논리가 비시장 영역에 침투하는 시대에 산다. 새치기하지 않고 줄을 선 시민들에겐 정당한 혜택이 필요하다. 그러나 몸이 아파서 줄을 서지 못했던 시민에게까지 새치기가 전제되지 않은 불이익은 정의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소중하게 지켜왔던 시장 자유주의에 대한 기존 관념이 전체주의적 강제성에 함몰되지 않는 일, 백신 패스 도입의 절대가치다.
안태환 / 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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