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광장] 호기심의 캐비닛
얼마 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국제 아트 페어에 참여해 많은 컬렉터와 미술 애호가를 만났다. 닷새간 일정에서 수확도 많았다.특히 지난 6월 스위스 아트 바젤에서 해외 언론들이 한국을 국제 미술시장의 허브로 예견한 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예년에 비해 해외 메이저 갤러리들의 참가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전시장에 들어오려고 길게 늘어선 사람들, 또 작품을 보러 부스를 메운 사람들을 보며 미술시장의 저변 확대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소수 작가들의 블루칩 작품에 투자(혹은 투기)하려는 자본의 흐름을 확인했고, 집안에 그림 한 점 걸어 놓고 싶어하는 애호가도 골고루 만났다.
예년에 비해 가장 두드러진 점은 언론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MZ세대 컬렉터들이 부쩍 늘어났다는 것이다.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MZ세대는 온라인 컬렉터 클럽 등을 통해 현재 떠오르는 작가들이나 세계 미술계의 동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단순히 투자 측면이 아닌 미술이 삶에 주는 정신적인 가치나 자신들의 취향을 먼저 생각하는 건강한 컬렉션 마인드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작품을 보면서도 “미래에 금전적인 가치가 오를까요”라고 질문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고 소개되는 과정을 궁금해했다. 작가 이력과 갤러리 역사를 물으면서, 미술계의 성장을 지원하며 함께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작품이 싫어도 일단 사두면 무조건 두 배가 된다’ 라고 말하며 작품을 판매하는 일부 갤러리스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는 미술 시장은 이제 좀 더 세련되어지고 진정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한창 성장해 나가야 할 작가들의 작품이 경매에서 몇 배나 올랐다거나, 어떤 연예인의 거실에 걸려 있다거나 하는 뉴스에 현혹되기보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에 집중해야 한다.
그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가 어떠한 생각으로 작업하며, 그동안 어떻게 성장해왔고, 또 앞으로 어떤 발전을 이룰 것인지에 대해 먼저 질문해야 한다. 작가나 갤러리의 문화적인 성장이 있어야 재정적인 성장도 따라올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서양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생기기 이전에 컬렉터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오브제나 예술품을 수집하여 한 방에 모아 놓고, 이 방을 ‘호기심의 캐비닛(Cabinet of curiosities)’이라고 불렀다. 호기심의 캐비넷은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곳으로 자리 잡아 왔다. 앞으로 미술 작품을 한 점 살 때마다 이 ‘왜?’로 시작되는 약간은 신비하고 약간은 흥분되는 오랜 문화적 여행이 주는 재미에 푹 빠져들기를 기대해본다.
최선희 /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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