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수필] 못 말리는 딸의 용기

우리나라 속담에 ‘원님 덕에 나팔 분다’란 말이 있다. 나는 딸 덕에 나팔 분 엄마였다. 딸 덕에 무료 비행기를 수없이 타고 다녔다. 한 번은 고국 방문의 기쁨을 안고 한국행 무료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무료 비행기는 일반석으로 좌석 배당을 받는다. 그러나 이날은 일등석 좌석 가운데 빈자리가 생겼다며 승무원이 일등석으로 안내해 주었다.  
 
일등석이라 넓어서 편안하고 아늑했다. 그런데 갑자기 기체가 많이 흔들려서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얼마나 많이 흔들리는지 나로서는 처음 겪는 공포였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하나님 제발 살려주세요 하면서 하나님께 SOS 신호를 보냈다. 승객들은 공포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하고 긴장하고 있었다. 기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데 나의 기도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면서 딸 생각이 간절했다. 딸은 이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있을까, 아니면 오늘은 쉬는 날일까.
 
딸은 노스웨스턴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독수리가 큰 날개를 펴고 하늘 높이 훨훨 날아다니듯 딸은 청춘의 꿈을 하늘에다 미련 없이 불태우고 있는 낭만의 아가씨였다. 딸은 비행기 타는 것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항공사 승무원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딸이 비행기를 타고 다니니 마음이 늘 놓이질 않았다. 어디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라도 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딸은 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큰 종합병원에 회계사로 취직하여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이 지루하다며 사표를 내고 항공사에 취직해 승무원으로 국내선 국외선 비행기를 탔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테러 범의 비행기 자폭으로 차례로 무너지는 광경을 나는 TV뉴스를 통해 목격하였다. 세계가 망연자실했던 엄청난 광경을 지켜보며 큰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었다. 혹시 내 딸이 저 비행기를 타고 있었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딸의 안부가 몹시 궁금하였다. 딸에게 전화를 걸어도 불통이었고 연락이 안 되어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계속 뉴스에 귀 기울이며 두 쌍둥이 건물을 들이박은 비행기 회사의 이름들이 궁금했다. 나는 계속 기도하면서 딸에게 무슨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그동안 딸에게 잘해 주지 못했던 아픈 과거가 생각나면서 딸에게 미안한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처음 이민 와서 부모가 이국 땅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니까 공부만 하던 딸은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자기도 시간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 엄마 아빠를 돕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친구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공부할 시간에 학교 공부를 끝낸 방과 후 몇 시간씩 매일 일을 하겠다며 꽃가게에 취직하였다. 뉴포트비치 부잣집 동네에 있는 꽃가게에서 꽃 배달 일을 맡아 하루에 몇 시간씩 꽃을 배달하고 집에 돌아왔다.
 
하루는 딸이 일하는 바닷가 부촌에 자리 잡은 꽃가게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꽃배달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였고 주인 여자에게도 인사를 나누고 싶어서였다.  
 
나는 꽃배달을 한다고 해서 조그마한 6인승 승합차를 타고 다니는 줄 알았다. 한 두어 시간 후 딸이 꽃 배달을 다 끝내고 차를 몰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조그마한 차가 아니라 큰 밴이었다. 딸은 나보다 키가 작고 가냘픈 몸매를 한 조그마한 예쁜 체구였다. 나는 그 큰 밴을 보자 눈이 휘둥그래졌다. 어찌 저리 큰 차를 조그마한 처녀가 운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미국에 30여 년을 살고 있지만, 아직 밴을 운전할 줄 모른다.  
 
나는 그 자리에서 딸을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다. 나는 네가 이렇게 고생하는 줄 몰랐구나. 이제 일을 그만두어라. 교통사고로 다친 엄마 허리가 다 나아 직장에 곧 나가게 될 것이니 그동안 고생이 참 많았구나, 내 딸아.  
 
딸은 계속 일을 하겠다고 우겼지만 내가 그만두게 하고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해서 좋은 대학을 들어가게 되어 그나마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딸은 대학에 들어가서도 계속 시간제 일을 해서 학비를 충당하고 학교에서 장학금을 타면 생활비에 보태라며 나에게 주곤 했었다.  
 
나는 TV 뉴스를 지켜보며 딸의 행방을 알 수 없어서 애간장이 녹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약 3000명이 건물 잔해에 묻혀 죽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조 작업하던 소방관들도 거의 다 죽고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얼마 후에 비행기 소속 회사를 밝혔는데 딸이 근무하는 비행기 회사가 아니어서 나는 그때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딸에게 항공사 승무원 직업을 그만두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딸은 곰곰이 생각한 후에 단호한 결심을 하고 비행기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딸은 그 후 곧 결혼하게 되었고 지금은 북가주 새크라멘토에서 사위와 함께 잘 살아가고 있다.        
 
몇 년 전에 뉴욕시 허드슨 강 위에 비행기가 비상 착륙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또 한 번 놀란 일이 있었다. 갈매기가 프로펠러에 빨려 들어가 엔진이 정지되는 사고였다. 비행기 기장의 놀라운 기지로 비상 착륙에 성공하여 많은 사람의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다.      
 
그때에도 아찔한 마음에 딸을 생각하니 직장을 그만둔 것이 천만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딸이 비행기를 타지 않으니 나는 이젠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있다. 고등학교 졸업반이었을 때 큰 밴을 운전하면서 꽃배달을 하는 모습이 떠오를 때면 참 대견스럽고 기특하다고 생각한다.
 
독수리가 날개를 접고 암탉이 되어 두 병아리 새끼를 날개 밑에 품고 키우는 모습이 아름답다. 어미의 사랑을 마음껏 베풀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나 역시 행복 지수가 상대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경희해외동포문학상 수상작〉

김수영 /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