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광장] 나이 든 사람들의 가을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며칠 전 날씨 예보를 보니 기온이 떨어진다고 해서 히터의 온도를 69도에 맞추어 놓고 잤다. 새벽에 두어 차례 히터가 돌았다. 어제는 아내가 침대의 이불을 바꾸고 그동안 쓰던 여름용 이부자리를 세탁했다.얼마 전까지 하늘을 향해 꼿꼿이 몸을 세우고 있던 감나무 잎사귀도 모두 아래로 고개를 떨구고 있다. 누렇게 가을색으로 물들어 간다. 성질 급한 놈들은 벌써 바닥을 뒹굴고 있다.
아침에 카이저 보험에서 부스터 샷을 예약하라는 이메일이 왔다. 내게만 오고 아내에게는 오지 않았다. 신문을 펼치니, 65세 이상의 고령자부터 먼저 접종한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내가 고령자라고?
나보다 몇 살 아래인 한국의 지인은 얼마 전에 ‘아버님’ 소리를 들었다며 의기소침해한다. 나는 당신 나이에 ‘어르신’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고 위로해 주었다. 돌산을 깎아 절경을 만들고, 돌멩이를 갈아 모래를 만드는 것이 세월 아닌가. 세월에 맞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그게 바로 문제다. 외모는 자꾸 변하고 나를 바라보는 남들의 시선과 기대치는 달라지는데 내 마음은 20년, 3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으니 이를 어쩐다. 7080 노래를 들으면 아직도 내가 20대라는 착각에 빠지고, 달달한 연애소설을 읽으면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첫사랑의 기억을 꺼내 본다.
아이들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면, 철이 없다고 한다. 철없이 하는 언행을 사람들은 너그러이 이해하고 쉽게 용서해 준다. 나이 든 사람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면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책이라고 흉을 본다. 억울한 일 아닌가.
나이가 들어 좋은 일도 있다. 뒤에서 흉은 볼지언정, 나를 나무라고 꾸짖는 어른은 없다.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대개는 참고 들어준다. 마음이 편해졌다. 무슨 일이 닥쳐도 한 두 번은 겪어 본 일들인지라 편하게 넘어간다.
세상사 지내고 보면 다 그렇고 그렇다.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 같던 일도 그럭저럭 수습이 되고, 죽어야 없어질 것 같던 일도 계절이 지나면 잊힌다.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가져오고, 없어지면 그 빈자리에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있다. 말이 많아졌다. 팬데믹 덕에 집에만 있으니 이런저런 것들이 눈에 띈다. 도와준다고 하는 말이 아내에게는 잔소리로 들리는 모양이다. 조카 녀석들에게도 한마디하면 될 것을 장황하게 앞뒤 설명을 붙이다 보니 말이 길어진다. 이런 현상은 진화 유전자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생물은 종족보존 본능을 가지고 있어 자신이 경험한 지식을 후대에 물려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욕심이다. 살아보니 인생은 말로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터득할 수밖에 없다.
나이 든 내가 해야 할 말은 잔소리보다는 위로와 격려가 아닌가 싶다. 다저스 팬이라면 ‘푸홀스’라는 베테랑 선수의 행동을 보았을 것이다. 그는 홈런이나 안타를 치고 들어오는 동료를 안아준다. 실수를 하거나 상대팀 타자들에게 두들겨 맞고 강판되어 들어온 선수 곁에 가서는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곤 한다.
고령자란 인생의 베테랑 아닌가. 곧 11월이고, 가족 모임이 늘어나는 계절이다. 나도 베테랑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텐데.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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