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네트워크] 사소한 실수가 만드는 ‘정상 사고’
미국의 예일대 교수였던 찰스 페로(1925~2019)는 ‘정상 사고(Normal Accident)’라는 개념을 제시했다.현대사회의 재난은 비정상적 징후나 큰 실수가 있는 경우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 잘못이 없더라도 사소한 실수가 겹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주장이다.
기술발달로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대형 사고 발생 가능성은 더욱 커졌으며, 예측이 어려워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페로 교수는 1979년 3월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섬의 원전유출 사고를 계기로 이 이론을 정립했다.
당시 섬에 있는 원전 2기 중 1기의 냉각장치가 파열되고, 노심융용이 일어나면서 핵연료가 외부로 유출됐다. 인근 주민들이 긴급히 대피했고, 카터 대통령은 조사단을 꾸려 원인 파악에 나섰다. 페로 교수도 이 조사단에 참여했다.
조사결과, 사소한 잘못과 우연이 재난을 빚어낸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우선 원자로 냉각수 필터에 불순물이 끼면서 냉각수 공급이 중단됐다. 이런 일은 종종 발생하는데, 보통 비상 냉각수 펌프가 작동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하필 사고 이틀 전 보수 작업이 있었고, 이때 펌프 밸브를 잠가뒀다. 밸브가 잠긴 걸 몰랐던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밸브 개폐 여부를 표시하는 계기판 위엔 우연히 점검 기록표가 놓여 있었다.
똑 부러지게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셈이다.
복잡한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한국 사회 역시 언제든 사고의 위험을 떠안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다양한 디지털 기술이 생활에 접목되는 초연결사회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5일 KT의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하면서, 통신과 결제 시스템이 중단됐고 일상은 완전히 무력화됐다.
KT 측은 처음엔 “대규모 디도스 공격이 원인”이라더니 2시간 만에 “라우팅(네트워크 경로 설정) 오류”라며 추가 조사를 약속했다.
혹시 사소한 실수가 만들어낸 ‘나비효과’였다는 결론이 나오는 건 아닐까. 설사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고만 여길 수는 없다.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 너무 큰 탓이다. 값비싼 수업료를 낸 만큼, 실패에서 철저히 배워야 한다. 모든 사고를 예방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사고의 재발은 막을 수 있다. 또다시 같은 이유로 세상이 마비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건 진짜 비정상 사고다.
장주영 / 한국 중앙일보 기자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