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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조화와 영감의 3악장 펼치며

나만 힘들 게 사는 줄 알았다. 죽자 사자 일하고 이리 뛰고 저리 머리 굴리고 종횡무진 숨막히게 사는 줄로 착각했다. 새집으로 이사 오고 깨달았다. 내 엄살은 어린아이 반찬 투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 동네에 이사 오니 여기저기 공사 중이라 먼지와 소음으로 북새통이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꼭두새벽에 출근해 해가 저물 때까지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비가 오는 날 우산도 안 쓰고 흠뻑 젖어 각자 임무를 수행한다.  
이기희

이기희

 
여태까지 공사장 인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 본 적이 없다. 땅 파고 지하 콘크리트 붓고 목제 프레임 올리고 청문 달고 지붕 올리고 벽돌 쌓고 전기공사에 배관공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2층 지붕 꼭대기에 올라가 곡예사처럼 겁도 없이 망치질한다. 한 팀이라도 낙오 되면 공사가 지연된다. 입주 할 날만 학수고대하는 집주인 입장에선 하루가 한 달이다. 흥분과 기대로 히루에도 서너 번씩 뼈대만 올라 간 집 보러 오고 또 온다. ‘어디에 살 건지 누구와 살 지는 하늘이 맺어준다’는 어머님 말씀 떠올리며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하늘 아래 기적처럼 솟아나는 집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막내가 첫 돌일 때 이사한 ‘등대집’은 내 청춘을 불태운, 작렬하는 태양 같이 뜨거운 시절이여서 흥분과 기대로 충만했다. 세상을 모두 가진 것처럼 행복으로 충만했다. 지금 새로 이사한 집은 기분이 전혀 다르다. 자랑할 것도 허무해 할 것도 없는 사람 사는 집이다. 인생의 남은 시간을 정리하며 묵은 둥치 잘라내고 잔 가지 치고 일필휘지로 써내려 갈 담백하고 진솔한 생의 작은 수첩이다.
 
미국에 사는 동안 세번 이사했다. 가방 한 개 달랑 들고 공항에서 픽업돼 도착한 집은 캐더링시 도시 청사(State house)였다. 미 육군 보급총사령관 관사로 사용 됐는데 패터선 사령관이 개인 저택에 살기로 결정해 보급사령관인 리사 아빠에게 배당됐다. 사령관 부인은 디자이너로 유명세를 떨치던 사람이였는데 오래된 구식 관사의 실내구조는 사치스럽고 요란한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백년 동안 위용을 자랑하던 캐터링 시의 도시 청사 건물은 육군에서 잘 보존해 작은 성을 방불케 했다. 3층 건물인 관사는 학교 기숙사처럼 크고 방이 많고 계단이 가팔라서 리사가 기어다니기 시작 할 무렵 작고 아담한 집으로 이사했다.
 
‘초원의 집(Highland Meadow)’이라 팻말 붙은 집에서 청춘의 달콤한 사랑과 무지개 꿈을 키웠다. 리사가 심장판막재생수술을 받았고 식도암으로 리사 아빠를 잃었다. 모진 고난과 아픔도 청춘이 지닌 희망과 용기를 파멸시키지 못했다.  
 
우서방 만나 ‘등대집 (Light house Trail)’으로 이사했다. 어머니 모시고 아이 셋 키우고 사업하며 회오리 바람 속에 장년을 불태웠다. 바로크 음악의 거장 비발디의 ‘사계’ 중에 바이올린 협주곡3번 G단조는 풍요로운 ‘가을’을 묘사한다. 가을의 1악장은 사냥꾼에 쫒기는 동물들의 긴박함이 3박자로 경쾌하게 펼쳐진다. 춥고 매서운 생의 마지막 장인 겨울이 오기 전 가을이 주는 계절의 환상과 기쁨, 생의 애절함이 찬란하게 묘사된다.  
 
생의 가을에는 어떤 색깔이 펼쳐질까. 글이던 그림이던 펜을 들고 붓을 쥔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 아무도, 누구도 내 슬픔, 나의 사계절을 그려낼 수 없다. 지나 온 삶이 오직 내 몫이였던 것처럼 남은 시간도 오롯이 내 손으로 다듬고 추스려야 할 시간이다. 슬픔이던 환희던, 눈물 닦아줄 사람도 오직 나 일 뿐.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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