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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나우] 반도체 전쟁에서 희생양만 될 것인가

대중(對中) 반도체 제재에 일사불란했던 미국 내부에서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와 인텔·퀄컴 등 주요 기업들은 제재 확대에 우려를 표명하고, 대응방안을 미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 퀄컴·NVDIA같은 기업은 중국시장에서 매출 감소 가능성을 걱정한다. 인텔은 타워세미컨덕터(TS) 인수에 대한 중국 정부의 승인 건이 걸려있다. 미국으로서는 마이크론 제재, 갈륨(Ga)·게르마늄(Ge) 같은 반도체 원소재수출제한 같은 중국의 반격도 부담스럽다. 게다가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오히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자생력을 키워주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이제 미국이 기업이익과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어떻게 조율할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인데, 최근 뉴스를 보면 미정부는 규제 강화를 선택한 듯하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전략은 크리스 밀러가 쓴 『칩워(Chip War)』에서 배경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반도체 분야 전·현직 CEO 등 주요 인물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잘 요약해, 반도체의 역사를 쉽게 설명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밀러는 미국 반도체 생태계의 장점인 핵심 공정장비·첨단설계툴 등을 활용해 중국의 반도체 산업 성장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각종 대중 수출제한조치로 현실화했다. 그 결과 글로벌 분업체계가 무너지고 냉전시대의 블록 경제체제가 부활한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조치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 내 공장에 대한 장비도입제한, 대중국 장비 수출감소 등 직접적 타격을 입고 있다. 첨단장비의 중국 현지공장 반입 제한의 경우, 전용 장비의 목적 외 사용 금지나 원격 제어를 통한 감시체계 확립 같은 대안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민간기업에만 협상을 맡겨 두다 보니 현실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국가 간 반도체 산업의 내재화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정 수준의 디커플링은 피할 수 없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우리나라 소부장기업·소자기업이 당하기만 하는 상황을 더는 방관할 수 없다. 극단적 예로 우리나라에 불리한 교역정책을 시행하는 국가들에 ‘최첨단 HBM 고속메모리와 같은 대체재가 없는 전략제품을 수출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떨지 생각해보자. 상대 국가는 원소재나 장비수출 규제보다 더 즉각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인류 공통의 자산이 되어야 할 반도체 산업의 숨통을 조이는 전략은 테러행위나 다름없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25% 가량의 지분이 있다. 다른 나라의 금수 조치 등에 휘말려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우리 위상에 걸맞은 글로벌 리더십을 보여주는 정부의 강력한 반도체 산업 정책을 기대해본다. 이병훈 /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마켓 나우 반도체 희생양 반도체 제재전략 반도체 산업 반도체 생태계

2023-08-24

[중앙칼럼] 실종된 책임의식

최근 심한 기침과 몸살을 동반한 독감을 앓았다. 기침이 심해 회사에 몇일간 병가를 냈다. 목감기용 물약을 두 병이나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 급한 마음에 예약도 없이 주치의에게 아침 일찍 달려갔다.     리셉셔니스트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괜찮다고 대답하고 앉아있으니 얼마 안 있어 주치의가 출근했다. 하필 그 때 주책없이 토하듯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한 간호사가 여차저차해서 예약 없이 환자가 왔다고 주치의에게 설명한다. 주치의는 환자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코로나 검사는?”이라고 짜증 섞인 듯 간호사에게 묻는다. 간호사는 두 번 검사했는데 다 음성이 나왔다고 한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 주치의는 이미 환자를 받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의 눈빛은 마치 세균덩어리를 한시라도 빨리 자신의 공간에서 제거해야한다는 확고함을 보여주는 듯 했다.     환자가 예약 없이 주치의를 찾은 것은 분명 잘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환자를 문전박대하는 것이 맞는지 당황스럽다. 아파서 의사를 찾는 게, 더구나 코로나19 시대여서 두 번이나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온 환자에게 상태를 체크하지도 않고 응급실로 가라는 말만 하는 것이 주치의가 할 일일까. 자신과 직원들의 안전을 생각한 조치였으리라는 점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만약 그게 전부였다면 그는 비즈니스의 좋은 사장님은 될 지 모르지만 좋은 의사, 아니 기본적인 의사의 본분은 내팽겨친 것과 다름 없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예악 없이 주치의를 찾은 기침이 심한 감기나 독감 환자는 모두 응급실로 보냈을까? 의사의 본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는 정말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이 섞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더 절실하게 느끼며 사는 요즘이다. 직업이나 지위에 상관 없이 수 많은 사람이 자신을 위해 더 많은 유무형의 이득을 취하려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그 방식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자신의 책임은 회피하면서 상대방이 잘못해서 일을 그르쳤다라고 말한다. 이런 부류는 대부분 적절한 변명과 희생양을 찾는 성향이 강하다.   결은 많이 다르지만 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에서도 책임을 회피하거나 희생양을 찾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156명이 서 있어도 부족할 것 같은 공간에서 156명이 숨지고 151명이 부상을 입는 대참사가 발생했을 당시 그 누구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경찰청장이나 소방청장은 물론 주무부서 장관이나 대통령까지 그 누구도 “제 탓입니다”라는 말을 아꼈다.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공무원이자 행정의 책임자들인데도 누군가의 잘못 때문으로 탓을 돌렸다. 심지어 외국 문화인 핼러윈데이 파티를 즐기러 그곳에 간 희생자들의 잘못인 것처럼 매도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번 참사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국가 기관들의 안이한 대응이 화를 키웠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가 최우선이다. 따라서 미리 재난이나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예상되는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없애야 한다. 특히 상식적으로 수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나 이벤트에 대해서는 철저한 사전조치가 필수적임은 물론이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의사의 존재 이유는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환자의 생명 보호가 최우선이어야 한다. 만약 기침이 심했던 환자가 문전박대 당해 집이나 응급실로 향하다 목숨을 잃거나 사고라도 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면 그 주치의는 뭐라 변명했을까 궁금하다. 의사든 국가든 아니면 각자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 의사나 공무원은 사리사욕이나 개인의 안녕보다는 환자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김병일 / 뉴스랩 에디터중앙칼럼 책임의식 실종 독감 환자 코로나 검사 변명과 희생양

202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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