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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소피아 딸

오래전 일입니다.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무언가를 보는 순간, 희미함을 뚫고 며칠 전 일처럼 머릿속에 들어와 자리 잡는 기억 말입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핍홀로 내다봤습니다. 소피아 딸 지니가 서 있었습니다.   “웬일이니?” “아줌마 집에 들어가도 돼요?”   “엄마가 찾지 않을까?” “엄마는 아침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나갔어요.”   “어린 너를 두고 어딜가? 아빠는?” “어제 고모와 함께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았어요. 고모가 나를 데리러 왔나 봐요.”   세상이 온통 눈으로 수북이 쌓인 어느 날, 훤칠한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의 이국적인 여자가 내가 사는 건물 안을 기웃거렸습니다. 불안과 초조로 방황하는 애처로운 그녀의 눈빛이 나와 마주쳤습니다. 사시나무 떨듯 근심으로 가득 찬 시선은 구원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눈 덮인 시베리아를 헤매는 주인공 라라를연상시켰습니다.   “한국에 파견된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미국에 와서 퀸즈에 살았어요. 신문사에서 일하던 남편이 갑자기 아파서 4년 전에 시집이 있는 오하이오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시누에게 아이를 맡기고 직장을 다녔지요. 제가 싫다는 데도 부득부득 시누 부부가 아이를 자꾸 입양하겠다는 거예요. 아이를 뺏길 것 같아 겁이 났어요. 마침, 온라인으로 아파트 렌트한다는 광고를 보고 야밤에 아이와 남편을 데리고 도망치다시피 왔어요.”   이사 오자마자 그녀에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네 고모가 너를 예뻐했다며.”   “아니요. 때리고 야단쳤어요. 저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저는 아줌마가 좋아요.”   한숨 쉬며 말하는 아이의 큰 회색 눈이 물기로 반짝였습니다.   “아이고, 불쌍한 것.”   나도 갑자기 눈가가 젖고 목멘 소리로 아이를 끌어안았습니다. 다섯 살인 아이는 백인 아빠를 닮아 금발 아래 회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른 흉내를 내는 제스쳐와 말씨로 쉬지 않고 떠들었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또 났습니다. 핍홀로 내다보니 아이 엄마 소피아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 지니를 보지 못했나요?” “우리 집에 있는데요.”   “너 여기서 뭐 하니? 얼마나 찾은 줄 알아. 말도 하지 않고 소리 없이 문 열고 나가면 어떡해.”   아이는 어른처럼 꼰 다리 위에 손으로 턱을 바치고 생각에 잠긴 얼굴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봤습니다.   “밖에 나갔다 오셨나요? 고모가 오셨다면서요?”   “고모요? 우리가 어디 사는 줄도 모르는데 고모가 어떻게 와요? 저는 온종일 집에 있었어요.”   나는 누구 말이 진실인지 헷갈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모녀를 번갈아 쳐다봤습니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에 훌쩍 이사갔습니다.   어른들의 불안한 틈바구니에서 자란 아이의 눈물 젖은 회색 눈동자가 이렇게 눈이 쏟아지는 날이면 떠오르곤 합니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소피아 어제 고모 회색 눈동자 어른 흉내

2025-02-06

[독자 마당] 베토벤 흉내

천재 음악가로 알려진 베토벤은 노년에 눈이 멀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달라 노년에도 창작 활동을 그치지 않았다. 전해 들은 일설에 의하면 베토벤은 다른 천재 음악가들과는 달리 어릴 때는 음악을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베토벤의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피아노 한 대와 함께 베토벤을 창고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잠가 버렸다고 한다. 베토벤은 이 창고 안에서 많은 음악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내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55세 되던 해였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LA시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닐 때였다. 당시 토요일에는 일하지 않아 낮에도 학교에 가곤 했었다.   어느 토요일에도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어느 구석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가보니 한 강의실에서 나는 기타 소리였다. 강의실을 들여다보니 젊은 학생들이 기타를 배우고 있었고 기타 선생님에게 나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기타 배우기가 시작됐다.   지금 내 나이가 86세이니 기타를 치기 시작한 것도 어언 31년이 되었다. 내가 가장 자신있는 기타 연주곡은 베사메무초다. 최근엔 ‘인생은 네 박자’라는 한국 대중가요를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도 부른다. 매일 이 두 곡은 빠짐없이 연주하고, 다른 여러 가지 음악을  최소한 3곡 정도 더 연주하면서 노래한다. 하루에 최소 5곡 이상은 연주를 하고 노래도 하는 셈이다.   나도 나이가 있어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눈이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런 증상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불완전한 귀와 눈으로 기타를 연주한다.  서효원·LA 거주독자 마당 베토벤 흉내 천재 음악가들 베토벤 흉내 음악 소리

202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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