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임팩트] 디지털 중독이 위험한 이유
우리나라의 커피 소비량이 세계 3위라고 한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고 하루를 시작하기 어려운 사람들, 소위 ‘카페인 중독자’가 많다. 마약류와 같은 남용 물질이 아니어도 일상생활에서 커피나 콜라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본다. 요즘 중·고령층 중에는 신문이나 TV 뉴스 대신 유튜브를 구독하는 사람이 많다. 지하철이나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서도 열심히 시청하는 것을 보면 집안에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어떤 습관이 끊기 어려운 의무로 느껴질 때 중독 상태가 아닌지 의심해 본다. 중독의 본질은 의존성이기 때문이다. 중독을 언급할 때 떠오르는 것은 마약이나 알코올 같은 물질에 의한 중독이다. 하지만 행동과학 전문가들은 사람을 자극할 수 있는 모든 개체가 중독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도박, 컴퓨터게임, 쇼핑, 채팅 나아가 성형수술이나 관계집착(스토킹) 같은 행동이 습관에서 의무적 행동으로 변해 끊기 어렵다면 중독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물론 모든 중독적 행동이 개인의 병리적 증세나 반사회적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일중독자, 설탕중독자, 취미광 경우처럼 중독 현상이 특정 행위의 탐닉에 그치기도 한다. 다만 우리도 모르게 특정 행동에 길들어지고 중독되어 의존적 인간형이 증가하는 추세는 우려스럽다. 모바일폰의 위력은 대단하다. 국내 3세~69세 스마트폰 이용자 1만 가구를 대상으로 지난해 정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약 25%가 스마트폰 과다의존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나 영상 보고 채팅하는 어른들이나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것이다. 지난번 일어난 카카오 서비스 장애로 대다수 사람이 불편을 겪었지만 동시에 카톡 소리에서 해방되고 카카오 의존증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는 사람도 많았다. 디지털 중독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특정 행동에 빠져드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지속적 약물 남용이 뇌의 보상시스템을 촉발하듯 행동중독도 유사한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게임, 과식, 운동, 인터넷 등에 과도하게 빠지는 것은 그 행동을 통해 경험하는 감정에 중독되는 것이다. 그것들을 행했을 때 희열을 느끼고, 하지 않으면 우울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행동중독이 나중에 약물 남용 같은 물질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최근 20~30대 젊은이들의 강박적 행동에 대한 우려가 크다. 지난 몇 년간 내 집 마련 꿈이 어려워진 청년세대는 빚을 내어 주식 투자하고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대출로 주택을 매입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금리 시대로 바뀌자 그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제는 한 푼의 이자라도 더 받기 위해 매일 바뀌는 예·적금 금리를 비교하고 은행을 옮겨가는 ‘금리 노마드족(유목민)’이 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 도박 중독을 치료받으려고 병원을 찾은 환자 10명 중 7명이 청년층이었다. 식약처가 발표한 지난해 마약사범 가운데 약 57%가 20~30대라고 한다. 청년층이 경제적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도박이나 마약류 남용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짊어질 미래 세대가 혼돈에 빠져 희망을 잃을까 걱정된다. 어떤 행동을 과도하게 하는 것은 중독된 상태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게임을 과도하게 하는 사람이 게임 중독자와 구분되는 지점은 자제력이나 자유 의지 문제일까, 아니면 뇌의 생화학적 변화일까. 학자들 간에도 중독을 뇌의 장애 즉 질병으로 보는 관점과 단지 선택 장애로 보는 관점이 공존한다. 분명한 것은 중독자 스스로가 자유 의지를 믿지 않을수록 자신의 중독 행동을 정당화하고 중독치료나 극복 노력을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환경과 기술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시대에 인간 스스로 자유 의지를 지키는 노력은 중요하다. 디지털 기술을 앞세운 기업들은 우리의 개인 정보를 분석하고 온갖 알고리즘과 감정 몰입 프로그램을 개발해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지 못하게 우리의 자유 의지를 포박한다. 중독사회를 살아가는 지금, 인간의 자유 의지가 새삼 강조된다. 작가 정여울이 쓴 칼럼에 “그 어떤 통계로도 분석 당하지 않는 마음, 분류 당하거나 통계화되지 않는 자기만의 독특한 감수성이야말로 우리가 저마다 지켜야 할 ‘나다움’이 아닐까” 라는 대목에 격하게 공감한다. 강혜련 / 이화여대 명예교수·경영학과휴먼임팩트 디지털 중독 디지털 중독사회 일중독자 설탕중독자 중독적 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