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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삶의 행간을 읽다

요만큼이라도/ 좀 쉬었다가 갔으면 해서/ 행간을 둬 놓았습니다// 쉬엄쉬엄 가야만/ 후회할 일도 덜 생길 거고/ 생각도 더/ 영글 게 아니겠습니까// 노상 빨리빨리/ 서둘러 살아온 삶이라서/ 많이도 후회되고/ 낭패도 많았답니다// 좀 늦기는 해도 앞으로는/ 숨 고르는 일만 남았답니다.   -김시철 시인의 ‘행간(行間)’ 전문       행간이란 글의 줄 또는 행 사이를 말한다. 쓰거나 인쇄한 글의 줄과 줄 사이, 또는 행과 행 사이의 공간이다. 글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으나 저자가 실제로 나타내려는 숨은 뜻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명석한 독서법은 행간을 잘 읽어내는 일이다. 특히 시 읽기에 있어서는 행간에 숨어 있는 참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중요한데 상당한 독서 훈련이 되어 있어야 가능하겠다. 저자와 독자와의 눈높이나 지적 안목의 차이가 커도 행간에 감춰진 의미를 해석하기는 쉽지 않다.     행간을 이해하려면 사고의 확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분야의 일정한 지식과 더불어 사고의 영역이 넓어야 한다. 행간을 잘 이해해야 고도의 문해력에 도달할 수 있는데 글도 말도 행간을 정확하게 읽어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행간을 읽는다는 말은 행간에 숨은 의미만을 찾아내는 것이라기보다 문장의 전후 맥락을 감각·지각적으로 아울러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몇 해 전이다. ‘동백꽃 필 무렵’이란 TV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 드라마에 “넌 사람이 행간이 없잖아”라는 대사가 있었다. 영리하지는 못하지만 비교적 한 솔직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 것 같은데 행간이란 말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이 단어를 찾아보느라 검색어 1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말의 쓰임새란 놀랍다. 행간에 무엇을 배치해 두지 않고 글자 고유성만으로 소통하려는 것처럼 사심이 제거된 순수한 사람을 행간이 없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작가의 언어 조탁 능력에 감탄되기도 했다.   김시철 시인은 행간이란 말에 다른 의미를 제시한다. 행간은 쉼의 자리이기도 하다. 직진만이 관건이 되는 일상에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적 공간을, 빨리빨리에서 비켜나 좀 여유를 주고 싶다고 한다. 그래야 생각도 더 여물 것이고 삶이 던지는 질문들을 경청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행을 바꿔야 할 때가 있다. 의미를 저장하려는 치밀함 말고도 숨을 고르기 위해서이거나 후회나 다짐의 때에 행을 바꾸고 싶어진다. 문장에 마침표를 꾹 찍고 나서 심기일전 행을 바꾸기도 있지만 피로감이 누적되어 쉼표를 찍고 행을 바꿔 보고 싶기도 하다.     행과 행 사이는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안 된다고 생각된다. 너무 멀면 의미의 연속성이 흐릿하고 너무 가까우면 전체를 보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행간을 알아야 한다. 삶의 내력이 사건 중심으로 적힌 이력을 보고 그 사람을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의 인생 행간에는 뜨겁거나 아프거나 아니면 가장 치명적인 무엇이 불립문자처럼 스며있기도 하다.   어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하면서 나는 비로소 어머니 삶의 행간에 주목한다. 행간에 고여 있는 눈물을 바라본다. 언제까지 받기만 해도 되는 줄 알았던 사랑 뒤에 숨어 있던, 생을 관통하던 어머니의 아픔이 이제야 선명하게 보인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행간 인생 행간 김시철 시인 시간적 공간

2023-06-06

[카운터어택] 두 줄 부고의 행간

‘홍인자씨 별세, 김소영(전 서울시의원·전 체조 국가대표)씨 모친상=11일, 서울성모장례식장(...)’.   최근 신문에서 우연히 만난 부고 하나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딱 두 줄인데, 생각이 그 행간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전 체조 국가대표 김소영. 기자가 되기 훨씬 전부터 들어 알고는 있던 이름이다. 하지만 스포츠 기자, 더구나 체조 담당 기자를 할 때도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가 한때 ‘체조 요정’으로 불렸고,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됐고, 불굴의 의지로 새로운 길을 걸어갔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개막(9월 20일)이 한 달도 남지 않은 그해 8월 28일. 체조 국가대표이자 메달 유망주인 청주여고 1학년 김소영은 서울 올림픽공원 체육관에서 훈련 중이었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종합대회.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쏠린 기대는 무거운 압박감이었다. 김소영은 이단평행봉 훈련 도중 떨어져 목뼈를 심하게 다쳤다. 그렇게 수술대에 오른 김소영은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1988년 서울올림픽이 다 끝난 그해 12월 16일에야 재활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 그사이 전해진 소식은 대통령이, 총리가, 장관이 ‘격려금을 전달하고 위로했다’는 정도였다.   김소영에게 다시 세상 시선이 쏠린 건 그로부터 5년 뒤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비교적 이른 51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딸의 사고로 인해 아버지는 크게 상심했다고 한다. 굳이 듣지 않아도 짐작할 만했다. 김소영의 새로운 꿈이 된 미국 유학을 위해 아버지가 노력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한 종교단체 후원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에서 유학한 그는 학위를 마치고 귀국했다. 이후 ‘인간 승리’의 상징으로 살았다. 그 ‘승리’ 뒤에는 아버지 별세 뒤로 지난한 세월을 보냈을 어머니가 있었을 거다. 이젠 중년인 딸을 두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김소영의 ‘승리’에는 대개 주변의 ‘선의’가 함께했다. 많은 운동선수가 ‘국가’의 부름을 받아 훈련장이나 경기장에서, ‘국가’의 이름을 걸고 뛰다가 부상하거나 심지어 생명을 잃는다. 전장·병영에서 또는 사건·사고 현장에서 부상하거나 생명을 잃는 군인·경찰 등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얼마 전까지 선수와 그 가족은 국가의 ‘책임’ 대신 주변의 ‘선의’에 기대어 스스로 앞길을 헤쳐가야 했다.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으로 2015년부터 부상 또는 사망한 국가대표 체육유공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진 건 다행이었다. 김소영의 경우 사고 29년 만의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부고 행간 체조 국가대표 국가대표 선수들 국가대표 체육유공자

20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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