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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편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서양 고등교육의 시초라 하면 보통 11세기에 창시된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이나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언급하지만, 그 근원은 훨씬 더 오래전인 고대 그리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BC 387년 플라톤이 창설한 학교 ‘아카데미아’가 바로 서구 최초의 대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학계를 총칭하는 용어인 ‘아카데미’도 플라톤의 학교 이름에서 유래한다. 여기서 그의 가장 유명한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17세 때부터 플라톤이 사망할 때까지 근 20년을 공부했다.   기원전 5세기 말까지 고대 그리스의 교육은 사춘기 이전 신체와 지능을 복합적으로 훈련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한편으로는 군사적 기량이 뛰어난 인물을 배출하고, 한편으로는 시·음악·문학에 조예가 있는 지적인 바탕을 키우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신체 단련을 마음 단련만큼 중요시하는 것이 그리스 전통 교육 사상의 특징이다. 그런데 기원전 420년께부터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소피스트 철학자들이 활동하면서 사춘기 이후에도 계속되는 고등교육이 유행했다. 이때부터 지적인 교육이 신체적 교육보다 중요시되었고 수학과 천문학, 그리고 논리와 윤리를 포함한 철학이 주된 관심거리가 되었다.   특히 소피스트라고 불리는 철학자들은 비싼 교육비를 받아가며 정치가에게 필수인 레토릭, 혹은 웅변술과 같은 현실적·실용적인 기술을 즐겨 가르쳤다. 그 이유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순수철학을 고집하는 사상가들에게서 미움을 사고 ‘궤변가’라는 악명을 얻었다.   소크라테스 사망 이후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아테네를 떠난 플라톤이 10년 후에 돌아와 세운 아카데미아는 이와 달리 교육비를 받지 않았고 수학·천문학·기하학, 그리고 다양한 주제의 철학 교육을 실행해 이상적인 지식인을 양성했다. 플라톤의 고등 교육이념은 그 사회를 이끌어 갈 지도자를 기르는 엘리트주의의 산물이었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아카데미아 플라톤 서양 고등교육 소피스트 철학자들 고등 교육이념

2023-07-21

[잠망경] 아리스토텔레스와 투란도트

대학 시절 한 여대생과 사랑에 빠졌었다. 어느 날 그녀가 “우리 이젠 그냥 친구로 지내요” 한다. ‘플라토닉 러브’ 관계 비슷하게 지내고 싶다는 것.   양파에 식초를 뿌려가며 짜장면을 먹으면서 마주 앉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호되게 설레던 나에게 플라토닉 러브는 아주 이상한 외래어였다. 문학청년 티를 내며 시(詩)에 대하여 호들갑을 떨지 말았을 걸 그랬지.   플라톤의 저서 ‘The Republic, 공화국’(BC 380)에 나오는 ‘시인(詩人) 추방론’을 읽었다. 그는 진리의 원형질, ‘이데아’와 그것을 모방하는 현상계와 현상계를 재차 모방하는 예술가들, 특히 시인들이 공화국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했다. 족쇄를 찬 노예들이 관람하는 동굴 벽의 그림자놀이의 프로듀서들이 예술가라는 사연이다. 동굴 밖에 건재하는 ‘이데아, Idea, 이념(理念)’에 도달하는 것을 훼방 놓는 예술가들!   음악에 대해서도 그는 말이 많았다. 어떤 음계법은 자제력, 용기 같은 덕성을 강화하고 어떤 음계는 애처로움, 연약함을 야기한다는 둥, 흥분을 일으키는 모종의 관악기는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는 ‘건전 가요’를 주창했다. 내가 색소폰으로 연주하는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들으면 그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야.   미켈란젤로, 다빈치와 어깨를 나란히 한 르네상스 3대 천재 화가 라파엘로의 바티칸 궁전 벽화 ‘아테네 학당’을 응시한다. 플라톤이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머나먼 천상을 기리는 이상주의자와 지상의 이슈에 급급하는 현실주의자의 차이가 극명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과 뜻을 달리하여 “정치는 철학이 될 수 없다”고 저서 ‘정치학’(BC 350)에서 설파하면서 자칫 독재로 빠지기 쉬운 군주정치에 반하여 다수가 운영하는 정부를 선호했다. 플라톤은 사유재산 금지, 공동거주, 공동육아를 주장했고 사회주의의 원조라는 비판을 받는다. 권력의 사유화는 왜 금지하지 않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BC 330)에서 “시는 역사보다 진실하다”라 일갈한다. 그는 플라톤이 꺼리는 ‘나쁜 음악’마저도 카타르시스를 통하여 유용하다고 가르친다. 슬플 때 슬픈 음악을 들으면 슬픔이 가시듯이.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아리아 ‘네순 도르마, Nessun Dorma, 모두 잠들지 못하리’를 격한 남성 합창으로 들었다.   남성 혐오증이 심한 투란도트 공주는 청혼자가 세 개의 수수께끼 풀지 못하면 죽여버린다. 러시아 왕자 칼라프가 그녀의 수수께끼를 다 맞춘다. 테스트를 패스했지만 그녀는 이름도 모르는 왕자와의 청혼을 거절한다고 아버지에게 선포한다. 칼라프는다음 날 아침까지 자기 이름을 공주가 알아내면 목숨을 바치고 그러지 못하면 약속을 지키라는 조건을 내세운다. 그리고 내일의 결말을 다짐하며 ‘네순 도르마’를 목청껏 뽑는다. 비장한 카타르시스의 발로다.   투란도트는 왕자의 이름을 알아내려고 그를 짝사랑하는 노예를 심하게 고문한다. 노예는 자결하고 왕자가 성급하게 덤벼들어 투란도트와 짙게 키스한다. 차가운 마음이 사라지면서 정염의 불길이 솟는 공주는 왕자와의 약속을 지키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이 제시하는 세 개의 수수께끼를 풀고 국민과 사랑의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취임식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린 네순 도르마가 우리의 장래를 위한 카타르시스가 되기를 기원한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아리스토텔레스 투란도트 투란도트 공주 스승 플라톤 러시아 왕자

2022-05-17

[이 아침에] 단답형으로 살기로 했다

단답형으로 살기로 한다. 구질구질하게 변명 안하고, 속에 든 보따리 펼쳐 안 보이고, 허세로 잘난 척 자랑하지 않고, 솔직하고 단순명료하게 살기로 했다.     그동안 만연체로 장문으로 살았다. 내 인생을 지리멸렬하게 늘어놓으며 별 볼일 없는 일도 열심히 까발려 점수를 따기도 했다. 나를 위한 홍보 책임자가 된 나는 내 삶이 그려내는 화폭에 덧칠을 하며 광대처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했다.     없는 것 부족한 것은 부풀리고 늘리고, 모르는 것은 아는 체 얼버무려 은근슬쩍 넘어가고, 있는 체 아는 체 잘난 체 하며 사느라 항시 피곤했다. 모나고 이지러지고 못난 모습 감추느라 피곤한 삶을 살았다. 장황한 설명과 화려한 수식어로 핑크빛 사랑을 노래했고 마른 장작으로 목숨이 다한 나무둥치에 생명의 언어를 새기려 발버둥쳤다. 생긴 그대로 내 모습대로 살면 편하다. 허장성세 부리며 살다 보면 허세에 목덜미 잡힌다.     ‘글은 곧 사람이다’는 유형의 문체, 즉 언어 사용자 성격의 발로로서 문장이 가지는 개성을 말한다. 고전시학에서 ‘무엇인지 모를 그 무엇’으로 정의된 문체는 필자의 개성을 나타낸다. 문장은 ‘지적 내용’이 동일하더라도 ‘정적 내용’이나 문장의 표현이 다를 경우 확연히 다른 인상을 주게 된다.     수사학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그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한 언어기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수사(修辭)란 언사(言辭)의 수식(修飾)이란 뜻으로 말과 글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정립된 수사학과 스승 플라톤이 주장하는 수사학은 효과적인 담론을 생산하는 기술이며 단지 말의 치장술에 불과하다는 인식으로 반기를 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의 논리성을 주장하며 소피스트들이 수사학이 인간의 정서를 유발하는데 초점을 둔 데 비해 지적 반응을 부각시키려 했다. 대중을 설득하기 위한 방식으로 화자를 미덥게 보이기 위한 ‘에토스’ 방법과 청중과 소통하는 부분인 ‘파토스’를 수사학에 포함시키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궁극적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말의 기술이 아니라 설득의 방법을 발견하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능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의 주치의인 아버지 덕에 부유하게 생활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외모 치장에 공을 들였는데 키는 작고 실눈에 대머리인 데다 혀가 굳어 말을 더듬거렸다. 하지만 지칠 줄 모르는 근면성과 탁월한 재능으로 플라톤의 사랑을 받았다. 플라톤이 ‘책벌레’ 또는 ‘아카데메이아의 예지’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그를 특별히 사랑했다. 지각을 할 때는 도착할 때까지 강의를 시작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의 진가는 외모나 말솜씨로 평가 받지 않는다. 말 잘 한다고 사람들이 그 말을 모두 믿지 않는다. 진실에 기반을 두지 않는 말은 거짓이고 사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용모를 가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우리는 더 나아지기 위해, 오늘보다 더 빛나는 내일 위해, 더욱 아름답게 생을 치장하기 위해, 좋은 말과 진솔한 말을 하고 언어를 가꾸고 화장을 한다.     장황하게 살아 온 인생을 기술과 설득으로 설명하지도 꾸미지도 말자. 지금 보이는 나의 참모습이 내가 살아 온 인생의 수사학이다.   이기희 / Q7 파인아트 대표·작가이 아침에 단답형 살기 기술과 설득 스승 플라톤 핑크빛 사랑

2021-11-19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단답형의 힘 빼는 수사학

단답식으로 살기로 한다. 구질구질하게 변명 안하고, 속에 든 보따리 펼쳐 안 보이고, 허세로 잘난 척 자랑하지 않고, 솔직하고 단순 명료하게 살기로 했다.   그 동안 만연체로 장문으로 살았다. 내 인생을 지리멸렬하게 늘어놓으며 별 볼 일 없는 일도 열심히 까발려 점수를 따기도 했다. 나를 위한 홍보 책임자가 된 나는 내 삶이 그려내는 화폭에 덧칠을 하며 광대처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했다. 없는 것 부족한 것은 부풀리고 늘리고, 모르는 것은 아는 체 얼버무려 은근슬쩍 넘어가고, 있는 체 아는 체 잘난 체 하며 사느라 항시 피곤했다. 모나고 이지러지고 못난 모습 감추느라 피곤한 삶을 살았다. 장황한 설명과 화려한 수식어로 핑크빛 사랑을 노래했고 마른 정작으로 목숨이 다한 나무둥치에 생명의 언어를 새기려 발버둥쳤다.     생긴 그대로 내 모습 대로 살면 편하다. 허장성세 부리며 살다 보면 허세에 목덜미 잡혀 허무의 신발가게에서 신 한 짝을 잃어버린다. 맨발로 절뚝거리며 먼 길을 간다. 내 삶은 대부분 설명과 변명이고 절름발이였다.   ‘글은 곧 사람이다’는 유형의 문체, 즉 언어 사용자의 성격의 발로로서 문장이 가지는 개성을 말한다. 고전시학에서 ‘무엇인지 모를 그 무엇’으로 정의된 문체는 필자의 개성을 나타낸다. 문장은 지적내용(知的內容)이 동일하더라도 정적 내용(情的內容)이나 문장의 표현이 다를 경우 확연히 다른 인상을 주게 된다.   수사학(修辭學)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그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한 언어기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수사(修辭)란 언사(言辭)의 수식(修飾)이란 뜻으로 말과 글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정립된 수사학과 스승 플라톤이 주장하는 수사학은 효과적인 담론을 생산하는 기술이며 단지 말의 치장술에 불과하다는 인식으로 반기를 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의 논리성을 주장하며 소피스트들이 수사학이 인간의 정서를 유발하는데 초점을 둔데 비해 지적 반응을 부각시키려 했다. 대중을 설득하기 위한 방식으로 화자를 미덥게 보이기 위한 ‘에토스’ 방법과 청중과 소통하는 부분들인 ’파토스’를 수사학에 포함시키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궁극적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말의 기술이 아니라 설득의 방법들을 발견하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능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의 주치의인 아버지 덕에 부유하게 생활하며 화려한 옷을 입고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외모 치장에 공을 들였는데 키는 작고 실눈에 대머리인 데다 혀가 굳어 말을 더듬거렸다. 하지만 지칠 줄 모르는 근면성과 탁월한 재능으로 플라톤의 사랑을 받으며 플라톤이 ‘책벌레’라거나 ‘아카데메이아의 예지’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그를 특별히 사랑했다. 그가 지각을 할 때는 도착할 때까지 강의를 시작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의 진가는 외모나 말솜씨로 평가 받지 않는다. 말 잘 한다고 사람들이 그 말을 모두 믿지 않는다. 진실에 기반을 두지 않는 말은 거짓이고 사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용모를 가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우리는 더 나아지기 위해, 오늘보다 더 빛나는 내일 위해, 더욱 아름답게 생을 치장하기 위해, 좋은 말 진솔한 말을 하고 언어를 가꾸고 화장을 한다. 장황하게 살아 온 인생을 기술과 설득으로 설명하지도 꾸미지도 말고 지금 보이는 나의 참모습이 내가 살아 온 내 인생의 수사학이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단답형 수사학 기술과 설득 스승 플라톤 핑크빛 사랑

20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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