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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파란 H’의 삶과 ‘빨간 H’의 삶

사람의 속마음처럼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부부라도 속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지내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까지 생겨났을 거다.   우리 주위에는 이른바 지도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지도자란 거짓말보다는 참말을 해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나다니엘 호돈의 소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에는 딤즈데일이란 목사가 남자 주인공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주인공 헤스터는 나이 많은 의사 남편을 찾기 위해 보스턴에 왔지만 그를 찾지 못하고 젊은 딤즈데일 목사와 사랑에 빠져 딸까지 낳게 된다. 그러나 헤스터는 젊고 유망한 딤즈데일을 매장할 수 없어 스스로  감옥에 간다. 이후 딤즈데일은 7년이란 세월을 밤낮으로 깊이 생각하고 헤아리는 ‘주사야탁(晝思夜度)’의 삶을 살다 끝내 양심의 가책으로 죽음을 선택한다.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주인공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의 감옥생활을 한다. 형기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오지만 전과자인 그를 반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좌절과 분노가 거의 터질 무렵, 미리엘 신부를 만나게 되고 은촛대를 얻게 된다. 그는 늘 이 은촛대를 지니고 다니면서 미리엘 신부의 말을 되새긴다. 그러다가 그는 인공 진주를 발견해 큰 부자가 됐고 ‘마드렌느’란 이름으로 시장까지 된다. 그런데 장발장 사건을 다뤘던 자벨 경감은 마드렌느 시장이 장발장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자벨 경감은 마드렌느 시장 덕에 목숨을 건지게 된다.  자벨 경감은 장발장의 인격 앞에 고민하다 센강에 몸을 던지고 만다.   두 소설의 주인공은 H로 시작하는 대조적인 의미의 두 프랑스어 낱말과 같은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어 Honnetete(정직)과 Hypocrisie(위선)이다. 색으로 파란색은 정직을, 빨간색은 위선을 상징한다. ‘파란 H’의 삶을 살던 딤즈데일 목사는 ‘빨간 H’의 삶으로 죽음을 맞게 되고, ‘빨간 H’의 삶을 살던 장발장은 ‘파란 H’의 삶으로 훌륭한 지도자가 된다. 죄인이던 장발장은 올바른 지도자가 되었고, 거짓말만 하던 목사 딤즈데일은 불쌍한 사람이 된 것이다.     요즈음 이스라엘에 관한 목사들의 설교를 가끔 듣는다. 구약 성서에 나와 있는 대로 이집트를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매우 자랑스럽게 설교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이런 설교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이스라엘이란 낱말을 들을 때마다 매우 부정적인 생각이 앞선다. 성서적인 설교가 오늘의 현실과는 대조적으로 ‘빨간 H’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사람은 거짓 없이 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좋은 뜻의 거짓말이라도 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도자라면 ‘순청색 정직’ 을 택하는데 ‘참정절철(斬釘截鐵, 결단성 있게 일을 처리함)’ 해야 한다. 그러면 저 푸른 하늘처럼 ‘파란 H’를 가슴에 깊이 새겨 넣은 지도자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윤경중 / 목회학박사·연목회 창설위원열린 광장 주인공 장발장 여주인공 헤스터 프랑스어 낱말

2024-11-05

[독자 마당] 퀘벡 프랑스어와 LA 한국어

나는 프랑스에서 학위를 받고 캐나다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퀘벡에서 사용되고 있는 프랑스어가 현재 프랑스에서 쓰고 있는 프랑스어와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 이유를 연구해 본 적이 있다.     현재의 프랑스어는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가 명사 뒤에 위치한다. 하지만 퀘벡의 프랑스어는 영어처럼 명사 앞에 형용사가 붙는다. 숫자 90의 경우 현재의 프랑스어는 ‘20X4+10=90’, 즉 분해해서 읽는다. 이것이 현재 표준어다. 그러나 퀘벡에서는 바로 ‘90(Noinante)’이라고 읽는다.     이런 차이가 있는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마 세월이 흐르면서 젊은이들이 재미로 사용하던 슬랭들이 지금의 말로 고착되었고, 옛날 퀘벡에 이민 온 프랑스인 후손들이 지금도 옛 표준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프랑스어로 공부를 한 사람들은 퀘벡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말할 때 ‘저 사람은 퀘벡에서 왔군’하고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이를 보면 현재 LA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국어도 언젠가는 퀘벡의 불어처럼 ‘LA 한국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옛날식 표현이나 단어들을 LA에서 종종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 한인 라디오 방송에서 날짜를 알려주면서 “오늘이 8월 초아흐레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8월 9일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오늘이 며칠이라는 거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국 방송에서는 이제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 방식이기 때문이다. 마치 현대 프랑스어와 퀘벡 프랑스어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세월이 더 흐르면 한국에서의 한국어와 LA에서의 한국어도 현대 프랑스와 퀘벡 프랑스어처럼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박대원 / LA거주·전 외교부대사독자 마당 프랑스어 한국어 퀘벡 프랑스어 현대 프랑스어 la 한국어

2024-09-17

[별별영어] 프레지던트(president)

 대선이 다가왔습니다. 영어로 대통령을 뜻하는 프레지던트(president)는 본래 여럿이 모일 때 ‘앞에(pre) 앉는(sid) 사람(ent)’이라는 의미예요. ‘회의를 주재하다’라는 ‘preside’와 어원을 공유하며 ‘학생회장, 모임의 장, 사장’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 단어의 뿌리는 라틴어 prae와 sidere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라틴어의 후손인 중세 프랑스어에서 유래했습니다. 1066년 영국 왕 에드워드가 후사 없이 죽자 바다 건너 노르망디의 공작 윌리엄이 친척으로서 계승권을 주장하며 쳐들어옵니다. 이를 ‘노르만의 정복’이라고 하는데 지배층이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로 바뀌어 200여 년간 영어가 수모를 겪지요. 그래서 게르만어 계통 언어인 영어에 프랑스어 단어들, 특히 문화와 사회제도 관련 용어가 많이 들어왔고 president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를 ‘민주주의 국가의 수반’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한 것은 미국인들입니다. 초대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이지요. 그가 맡을 새 직위의 명칭으로 극존칭 ‘highness’와 ‘excellency’가 들어간 길고 다양한 문구들이 고려됐는데 많은 사람이 숙고한 끝에 ‘선출되어 잠시 나라를 대표한다’는 의미로 president를 택합니다. 즉, 이 단어에는 한 사람에게 힘을 실어 주면서도 평등을 강조하고 부작용을 배제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말 ‘대통령’은 한자어라서 ‘대(大), 통(統), 령(領)’이 각각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지만, ‘통령’이 단어를 이뤄 근대기에 조선, 청나라, 일본에서 두루 쓰였습니다. 이는 ‘선단을 이끄는 자’ 혹은 ‘장군’을 지칭하는 관직명이었다고 해요. 여기에 ‘클 대(大)’자를 붙여 임시정부 시절부터 사용했습니다. 대만에서는 같은 직위를 ‘총통’이라 부르는데 여기에 ‘대’는 붙이지 않네요. 그래서인지 대통령은 권위적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어원과 상관없이 ‘대통령’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은 지금 이 단어를 사용하는 우리들입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 누구나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최선을 다한다면, 대통령을 ‘통치하는 큰 권력자’가 아닌 ‘우리를 대신해 잠시 나라 살림을 맡아 민주주의의 근간을 세우는 지도자’라는 의미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워싱턴은 연임 후 더 일해 달라는 청을 받았지만 “권력을 사랑하면 독재에 빠지기 쉽다”며 물리치고 국민에게 “지나친 당파의 대립과 권력의 집중을 끊임없이 경계하라”는 말을 고별사에 남깁니다. 세계 최초의 대통령이 후대에 전하는 당부일 것입니다.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프레지던트 president 초대 대통령 프랑스어 단어들 민주주의 국가

202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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