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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애빌린 패러독스

직장 상사들은 술에 만취해 집에 들어와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부하 직원들이 술 먹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한잔 샀어.” 같은 시각에 부하직원은 집에 들어 가서 자기 아내한테 이렇게 이야기한다. “상사가 술 한잔 하자기에 거절도 못하고 억지로 먹었어.” 결국 서로가 상대방을 배려하다 보니까 원하지도 않는 술자리를 가진 것이다.   조지워싱턴대의 제리 하비 교수의 책 ‘애빌린 패러독스’에서 그는 이런 문제를 다룬다. 우리가 조직 속에서 매일 경험하는 이상하지만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일말의 설명이다. 개별적으로 보면 똑똑한 사람들이 조직 속에만 들어가면 왜 바보처럼 행동하는지,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직 속에서 자기는 그저 조직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만 하면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는지를 생각해보도록 한다.     하비 교수가 ‘애빌린 패러독스’라고 이름 지은 이 같은 현상은 조직 내부에서 벌어지는 의사소통의 문제, 즉 조직 구성원 누구도 자기의 생각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조직이 조직 구성원 누구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경우를 예를 들고 있다.   1970년대 초 어느 한여름, 텍사스 출신 하비 교수 부부는 텍사스 콜만에 있는 장인장모 댁에 머문 적이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장인장모 부부와 하비 교수 부부 네 사람은 더위에 지쳐 거실에 앉아 도미노 게임을 하면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단다.     그때 장인이 불현듯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애빌린에 다녀오자는 것이었다. 애빌린은 콜만에서 53마일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식당도 제대로 없는 별 볼 일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하비 교수의 부인도 장인의 제안에 찬성을 한다. 이때 하비 교수는 분위기를 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동조를 한다.   네 식구는 살인적인 더위에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1958년식 뷰익을 타고 텍사스의 모래 먼지를 뒤집어쓰며 왕복 두 시간 이상이나 운전을 해서 애빌린에 가서 저녁을 먹고 온다. 형편없는 식당에서 맛없는 식사와 미지근한 맥주에 불친절한 서비스를 받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와서는 하비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외식 그런대로 괜찮았죠?” 그러자 장모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난 하나도 안 좋았어. 집에 그냥 있을 걸 그랬어. 나는 이 양반하고 너희들이 애빌린에 가고 싶어해서 따라 갔을 뿐이야.” 그러자 하비 교수가 말했다. “저도 처음에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장인어른과 아내가 가고 싶어 하니까 할 수 없이 따라간 겁니다.” 그러자 하비 교수 아내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도 가기 싫었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장인은 아까 서로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 분위기가 너무 어색해서 그것을 깨려고 자기도 가고 싶지 않았던 애빌린에 가자는 말로 분위기를 깬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비 교수 가족들은 결국 애빌린에 가고 싶어 했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애빌린에 갔다 왔던 것이다.     수많은 조직과 조직 구성원들이 실제로 자신들이 원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목적지로 가는 경우가 있다. 하비 교수에 따르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거나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조직을 위해서도 애빌린 패러독스가 생기지 않도록, 정확한 의사표시에 의한 소통을 해야만 조직구성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직이 갈 수 있다.     오늘 하루라도 분노하지 말고 구성원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경청해 보자. 아니 나부터 먼저 하고 싶은 말을 한번 해보자.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패러독스 애빌린 조직 구성원들 애빌린 패러독스 조직구성원 모두

2024-04-04

[아메리카 편지] 진보라는 패러독스

기록을 깨는 무더위와 예상치 못한 폭우가 이어진 올여름이다. 한반도뿐 아니라 슬로베니아 등 중부 유럽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인류의 가장 큰 숙제인 기후 변화 대처 방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폭염과 산불 등 지구의 종말 같은 재앙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18세기 계몽주의의 후손인 우리는 미래를 향한 전진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인류의 삶이 계속 진보(progress)한다는 생각은 19세기 들어서야 형성된 개념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각종 재해가 줄을 잇는 오늘날, 인류가 과연 끊임없이 발전해서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호메로스와 더불어 그리스 서사시의 양대 전통을 이루는 헤시오도스는 『일과 날』에서 인류의 시대를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티탄들(거인족)이 지배하던 태평스러운 황금의 시대에서 시작해 올림포스 신들이 지배했던 은의 시대를 거치고, 무섭고 사나운 종족이 전쟁을 일삼고 죽음의 테마가 특징적인 청동의 시대에 다다른다. 네 번째 영웅의 시대는 트로이 전쟁의 배경이 되는,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같은 그리스 신화 영웅들이 거닐던 시대다. 그리고 마지막 철의 시대는 전쟁·질병과 번뇌가 가득한 현재로, 헤시오도스 자신이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며 작품을 끝맺는다.   영웅의 시대를 제외하고는 인간세계가 점차 타락해 가는 이미지를 그린 헤시오도스의 역사관은 그 이후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인류 역사가 퇴화하는 관념을 지지했고, 주기적으로 재앙과 질병 또는 홍수로 인구가 숙청되었다고 믿었다.   오늘날 우리는 무서운 속도로 발달하는 고도의 기술과 과학만을 바라보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 결과로 타격받고 있는 인류의 웰빙과 참된 행복은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닐까.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패러독스 진보 인류 역사가 오늘날 인류 재앙과 질병

2023-08-18

[종교와 트렌드] 스톡데일 패러독스

팬데믹 사태 3년차에 접어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기후 이상 등으로 온갖 나쁜 요인이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희망을 찾을 만하면 다시 불안의 구름을 맞게 되는 돌림 노래 같은 느낌이다.   이럴 때 우리는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를 생각해 봐야 한다. 베트남전 당시 미 해군 중령이었던 제임스 스톡데일은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된 동료는 수용소에서 고된 생활을 겪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가혹한 폭행이나 고문이 아니었다. 되려 곧 석방될 것이란 희망이 사라질 때마다 포로들은 빠르게 쇠약해졌고 무너져 내렸다.     처음에 포로들은 크리스마스면 미국과 베트남 간의 포로협상이 이뤄져 석방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부활절, 그리고 추수감사절을 기다렸으나 협상은 계속 결렬되었다. 그렇게 협상이 실패할 때마다 포로들은 큰 상실감에 빠졌고 병에 걸리거나 죽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스톡데일은 달랐다. 석방되리란 믿음은 있었지만 쉽게 풀려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놓지 않았다.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았으나 근거 없는 희망에 의지하지 않았다. 눈앞에 닥친 현실의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삶을 긍정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8년을 버틴 후에야 그는 수용소에서 풀려났고, 고국으로 돌아와 해군대학 학장을 지내고 중장으로 퇴역했다.   ‘Good to Great’란 책으로 유명한 짐 콜린스 교수는 스톡데일의 이러한 경험을 ‘스톡데일 패러독스’라 부르면서 막연한 낙관론이 비관적 상황을 극복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설파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은 갖되, 현실은 더욱더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대처하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의 태도가 위기 극복에 더 좋은 해법임을 시사한 것이다.   코로나 초기에는 ‘여름이 되면 코로나 없어진다’로 시작해서 ‘백신이 나오면 끝난다’ ‘3차 유행’이면 끝난다는 얘기로 희망을 가졌지만 되려 희망이 사라져 가면서 지쳐가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일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와중에 나보다 어려운 이웃이 있다면 돌봐야 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성찰할 것들이 많다. 개인의 삶을 돌아보고 내가 ‘왜 사는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 다시 돌아봐야 한다. 교회 또한 그동안의 관성과 매너리즘을 버리고 복음의 본질을 질문하며 앞으로 험난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세상에 희망과 대안을 주는지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 초기 교회가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힘든 상황이 됐지만 오히려 희망이 보였다. 교회가 자기 성찰과 혁신을 할 것이란 기대다.     개인의 일상에서 저지르는 죄뿐 아니라 우리가 바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지구와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되돌아 볼 시간이다. 이것이 고쳐지지 않는 한 팬데믹은 오래갈 것이고 각종 재난과 전쟁은 끊이지 않을 수 있다.   [email protected]  이종찬 / J&B 푸드 컨설팅 대표종교와 트렌드 스톡데일 패러독스 스톡데일 패러독스 제임스 스톡데일 코로나 초기

202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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