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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오페라 투란도트의 감동

푸치니의 투란도트 오페라를 떠올리면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네슨 도르마 (Nessun dorma) 곡 하나뿐이다. 그것도 전부가 아닌 중간부터 시작되는 아리아 한 소절만 알고 있다. 어느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들어 본 것 같기도 하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치도 도밍고가 즐겨 불렀고, 발레 수업 시간에도 센터 아다지오나 림바링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음악이어서 이 곡 하나만 친숙하다. 네슨 도르마 하나를 듣기 위해  일 년 전 미리 시즌티켓을 사두었다고도 할 수 있다.   LA 오페라의 투란도트는 20년 만에 다시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공연장은 빈 좌석 하나 없이  꽉 찼다. 오페라를 보러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 있다. 내 좌석에 내 이름이 쓰인 카드가 있다는 것이다. 어김없이 ‘Dear Jean Choi, 투란도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가 여러분의 마지막이 아니기를 바라며 2025년 시즌 티켓 좌석 예약을 기대합니다.’ 결국 티켓을 사라는 말이지만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 같아 감동이었다. 집에 돌아와 결국 나는 2025년 시즌 티켓도 예약을 하고 말았다.     푸치니의 12개 오페라 작품 중 라보엠, 투란도트, 토스카, 마농레스코, 나비부인 등은 알고 있다. 그중 투란도트는 중국을 배경으로 푸치니가 미완성 작품으로 남긴 채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제자인 프란코 알파고에 의해 1926년 초연이 됐다. 중국 황제의 딸인 얼음공주 투란도트와 그녀의 수수께끼를 푸는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핑, 퐁, 팡 대신들의 재치와 익살스러운 모습, 죽음으로 사랑을 지키는 시녀 류의 극적인 이야기가 웅장한 음악과 어우러져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특히 화려한 의상, 수많은 등장인물, 데이비드 호크니가 디자인한 환상적인 무대는 근래에 보기 드문 대작으로 공연 내내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호크니는 89세의 나이지만 지금도 회화뿐만 아니라 아이패드, 판화, 카메라, 복제 등 다양한 수단과 매체를 탐구하고 즐기는 예술가다. 내가 존경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공연 내내 등을 꼿꼿이 세우고 놀란 토끼 눈을 하고 가슴이 꽁당꽁당 뛰는 것을 느끼며 무대를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네슨 도르마를 들으며 호크니의 무대 배경 앞에서 춤을 추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글리사드 아라베스크 통베 파도브레 피루엣 안디당 턴’. 발레작품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생각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카르페 디엠(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라)’, 푸치니는 이렇게 나에게 다가와 속삭인다. 진 최 / 한미무용연합회회장·진 발레스쿨 원장열린광장 투란도트 오페라 투란도트 오페라 오페라 투란도트 얼음공주 투란도트

2024-06-27

[잠망경] 아리스토텔레스와 투란도트

대학 시절 한 여대생과 사랑에 빠졌었다. 어느 날 그녀가 “우리 이젠 그냥 친구로 지내요” 한다. ‘플라토닉 러브’ 관계 비슷하게 지내고 싶다는 것.   양파에 식초를 뿌려가며 짜장면을 먹으면서 마주 앉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호되게 설레던 나에게 플라토닉 러브는 아주 이상한 외래어였다. 문학청년 티를 내며 시(詩)에 대하여 호들갑을 떨지 말았을 걸 그랬지.   플라톤의 저서 ‘The Republic, 공화국’(BC 380)에 나오는 ‘시인(詩人) 추방론’을 읽었다. 그는 진리의 원형질, ‘이데아’와 그것을 모방하는 현상계와 현상계를 재차 모방하는 예술가들, 특히 시인들이 공화국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했다. 족쇄를 찬 노예들이 관람하는 동굴 벽의 그림자놀이의 프로듀서들이 예술가라는 사연이다. 동굴 밖에 건재하는 ‘이데아, Idea, 이념(理念)’에 도달하는 것을 훼방 놓는 예술가들!   음악에 대해서도 그는 말이 많았다. 어떤 음계법은 자제력, 용기 같은 덕성을 강화하고 어떤 음계는 애처로움, 연약함을 야기한다는 둥, 흥분을 일으키는 모종의 관악기는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는 ‘건전 가요’를 주창했다. 내가 색소폰으로 연주하는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들으면 그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야.   미켈란젤로, 다빈치와 어깨를 나란히 한 르네상스 3대 천재 화가 라파엘로의 바티칸 궁전 벽화 ‘아테네 학당’을 응시한다. 플라톤이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머나먼 천상을 기리는 이상주의자와 지상의 이슈에 급급하는 현실주의자의 차이가 극명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과 뜻을 달리하여 “정치는 철학이 될 수 없다”고 저서 ‘정치학’(BC 350)에서 설파하면서 자칫 독재로 빠지기 쉬운 군주정치에 반하여 다수가 운영하는 정부를 선호했다. 플라톤은 사유재산 금지, 공동거주, 공동육아를 주장했고 사회주의의 원조라는 비판을 받는다. 권력의 사유화는 왜 금지하지 않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BC 330)에서 “시는 역사보다 진실하다”라 일갈한다. 그는 플라톤이 꺼리는 ‘나쁜 음악’마저도 카타르시스를 통하여 유용하다고 가르친다. 슬플 때 슬픈 음악을 들으면 슬픔이 가시듯이.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아리아 ‘네순 도르마, Nessun Dorma, 모두 잠들지 못하리’를 격한 남성 합창으로 들었다.   남성 혐오증이 심한 투란도트 공주는 청혼자가 세 개의 수수께끼 풀지 못하면 죽여버린다. 러시아 왕자 칼라프가 그녀의 수수께끼를 다 맞춘다. 테스트를 패스했지만 그녀는 이름도 모르는 왕자와의 청혼을 거절한다고 아버지에게 선포한다. 칼라프는다음 날 아침까지 자기 이름을 공주가 알아내면 목숨을 바치고 그러지 못하면 약속을 지키라는 조건을 내세운다. 그리고 내일의 결말을 다짐하며 ‘네순 도르마’를 목청껏 뽑는다. 비장한 카타르시스의 발로다.   투란도트는 왕자의 이름을 알아내려고 그를 짝사랑하는 노예를 심하게 고문한다. 노예는 자결하고 왕자가 성급하게 덤벼들어 투란도트와 짙게 키스한다. 차가운 마음이 사라지면서 정염의 불길이 솟는 공주는 왕자와의 약속을 지키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이 제시하는 세 개의 수수께끼를 풀고 국민과 사랑의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취임식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린 네순 도르마가 우리의 장래를 위한 카타르시스가 되기를 기원한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아리스토텔레스 투란도트 투란도트 공주 스승 플라톤 러시아 왕자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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