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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조선 탄광의 기적

“정말 기적이라니까요!”   지난 20일 2년 반 만에 다시 만난 이노우에 요코 입에서 기적이란 말이 연신 쏟아져 나왔다. 올해 나이 74세. 그는 장생탄광으로도 불리는 일본 ‘조세이(長生)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의 공동 대표다. 시민단체를 결성해 조세이 탄광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선 건 1991년의 일이다.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에 비죽 솟아있는 굴뚝 같은 기괴한 물체에 대한 관심이 시작이었다. 1942년 2월3일 해저 갱도 천장이 무너지면서 183명이 수장됐는데 이 가운데 136명이 강제동원된 조선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유골 발굴에 몰두했다. 일본 정부를 찾아가 발굴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갱도 입구가 어딘지도 모르니 곤란하다는 거였다.   그러던 그에게 올 9월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일본 정부가 안 하니 직접하겠다고 결심하고 평생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크라우드 펀딩에 나섰다. 누가 돈을 낼까 싶었지만 1500여 명이 선뜻 지갑을 열었다. 1200만 엔(약 1억원)으로 갱도 입구 찾기에 나섰다. 우여곡절 끝, 위치 특정엔 성공했는데 공사가 문제였다. 잡목이 빽빽이 자란 땅을 파내야 하는데, 선뜻 나서는 업체가 없었다. ‘역사 문제가 걸려있다 보니 그런가’ 고민하던 그에게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한 회사가 나섰다. 장비를 동원해 길을 내고, 4m를 파 내려갔다. 마지막 한 삽을 뜨자 물이 솟구쳐올랐다. 갱구였다. ‘이곳에 희생자들이 잠들어있겠구나.’ 33년 만의 갱구 발견에 이노우에는 눈물을 훔쳤다. 가로 2.2m에 세로 1.6m. 소나무 판으로 만들어진 갱구는 생각보다 작았다.   기적은 또 이어졌다. 갱구 발견엔 성공했지만 이번엔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문제였다. 고민하던 그와 연락이 닿은 건 도쿄 출신의 30대 다이버이자 동굴탐험가, 아사지 요시타카였다. 지난 10월 29일, 갱도로 잠수해 들어간 그가 40분 뒤에 밝은 얼굴로 나왔다. “가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갱도 200m까지 들여다본 그의 말에 이노우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찬 바닷물에 기꺼이 뛰어들었던 잠수부는 내년 1월 유골 발굴 작업을 위해 현재 훈련에 들어간 상태다. 이노우에의 이야기에 고개가 숙여진다. 조선인이 많아 ‘조선탄광’으로 불렸던 이곳에서 일어난 비극을 82년간 방치해 온 건 우리 모두였다. 일본 정부도, 한국 정부도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외면했다. “단 한 조각의 유골이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이노우에는 또 한 번의 기적을 기다리고 있다. 김현예 / 한국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글로벌 아이 조선 탄광 조선 탄광 탄광 문제 탄광 수몰사고

2024-11-24

[음악으로 읽는 세상] 음악이 희망을 줄까?

마크 허먼 감독의 ‘브래스트 오프’는 생존의 마지막 수단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처한 가혹한 현실과 뼈저린 절망을 담은 영화다. 영화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1992년 영국의 한 탄광촌이다. 폐광 위기에 처한 그림리 탄광에는 10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브라스 밴드가 있다. 광산이 문을 닫으면 밴드 역시 해체될 운명이지만 그럼에도 그림리 탄광 밴드는 브라스 밴드 전국 대회에 출전한다. 그리고 준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해 런던의 로열 앨버트에서 열리는 결승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얻게 된다.   광부들이 승리감에 도취해 웃고 떠들며 마을로 돌아온 날, 그들 앞에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온다. 폐광이 최종적으로 결정됐다는 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리 탄광 밴드는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리는 최종 결선에 참가한다. 여기서 이들이 선택한 곡은 로시니의 ‘윌리암 텔 서곡’이다. 이 곡은 모두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이 영화에서 연주한 대목은 제4부 ‘스위스군의 행진’이다. 스위스군의 행진은 트럼펫의 팡파르로 화려하게 시작한다. 씩씩하게 행진하는 스위스 군인들의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군중들의 흥분된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로시니의 ‘윌리암 텔 서곡’은 스위스 판 ‘시련과 극복’의 드라마다. 시련의 끝에는 당연히 승리가 찾아온다. 그래서 그런지 피날레는 신나고 멋지다. 팡파르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킨다.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뿐이다. 희망찬 음악을 연주한다고 해서,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랴. 화려한 음악이 끝나고 나면, 깊고 어두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 음악이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이라 과신하지 말자.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얘기일 뿐이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음악 희망 우리 음악 그림리 탄광 로열 앨버트

2024-04-29

[역지사지(歷知思志)] 마거릿 대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영국에서 호불호가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강력한 추진력으로 ‘철의 여인’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비판도 거셌다. 영국 탄광 노동자 파업은 그녀의 정치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였다. 대처 전 총리는 영국 탄광 산업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탄광 노동자들의 격렬한 파업에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결국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다.   이로 인해 탄광 산업이 집중된 영국북부는 직격탄을 입었다. 2013년 그녀가 사망하자 일부 북부 지역에서는 축제가 열렸을 정도로 여론이 좋지 않다. 뮤지컬과 영화로 제작된 ‘빌리 엘리어트’가 바로 1980년대 중반 영국 북부 탄광촌 더럼에서 일어난 탄광 노동자 파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처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적잖게 등장한다.     5월 4일은 대처가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으로서 총리에 오른 날이다. 그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임기 동안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욕을 먹는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만큼은 평가가 일치한다. ‘영국병’에 대한 나름의 확고한 진단과 처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대처는 선거에서 연승했고, 영국 보수당 역사상 최장수 내각을 이끌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그가 어떤 처방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유성운 / 한국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마거릿 탄광 노동자들 마거릿 대처 탄광 산업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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