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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카르페 디엠

라틴어 ‘카르페 디엠’은 영어권에서는 “오늘을 즐겨라”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더 나아가,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로 쓰이기도 한다. 이 말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가 쓴 송가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싯구이며, “오늘을 붙잡게”라는 의미라고 한다.   ‘카르페’는 과실을 따거나 추수한다는 의미의 ‘카르포’라는 동사의 명령형이다. 과실을 수확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힘든 일이다. 농부에게 추수는 매우 보람 있고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그래서 ‘카르포’ 동사에 “즐기다, 누리다”라는 의미를 더해 “오늘 하루를 즐겨라”라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시인의 뜻과 달리 현대에서는 이 말이 쾌락주의를 조장하는 말로 다소 변질되어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호라티우스가 속해 있던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주의를 지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들이 추구한 쾌락은 세속적이고 육체적이며 일시적인 향락이 아니라 정신적인 쾌락이었다. 이들이 추구한 쾌락은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영혼의 평화로운 상태였다. “오늘을 즐겨라”는 말도 눈앞의 것만 보고 감각적인 즐거움을 찾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순간 생의 의미를 느끼며 살아가라는 뜻이다.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에서)   40여 년 전, 미국에 와서 만난 이민 선배들은 모두 바쁘게 살았다. 장사하는 이들은 휴일도 없이 연중무휴. 직장 다니는 이들은 투잡 또는 오버타임을 찾아다니며 일을 했다. 쉬고 노는 일은 자리를 잡고 나중에 천천히 하면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한인 부모들은 자녀에게 이와 똑같은 기대를 한다. 지금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만 들어가면, 좋은 직장을 얻으면, 그때 너 하고 싶은데로 하고 살라며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라고 요구한다.   한국은 대학에 들어가기는 힘들어도 들어가면 누구나 졸업이 가능하다. 공부는 입시를 위한 것이다. 미국의 대학은 들어가기는 비교적 쉽지만 공부를 계속하지 않으면 졸업이 어렵다. 많은 학생이 전공 없이 입학하거나, 입학 후 전공을 바꾸기도 한다. 대학 1, 2학년에는 교양과목과 선택과목을 많이 듣게 되는데, 이때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찾아 전공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는 것은 청소년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부모 세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녀를 위해 나의 오늘을 할애하고, “나중에 돈 벌어서”를 외치며 오늘을 포기한다. 오늘 하루를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내일이 와도 마찬가지다.   세상사는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여유가 생기고 나니, 때는 이미 지나버렸다. 내겐 자녀가 여럿이며 손주도 많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자리 잡고 나서” 또는 “나중에 돈 벌어서”라는 핑계로 내가 미루었던 일들을 지금 하며 지낸다.   ‘카르페 디엠’은 이제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기 때문이다. 더 미룰만한 여유가 없다. 아침이면 내게 주문처럼 말한다. “오늘 하루를 즐겨라.”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카르페 디엠 카르페 디엠 라틴어 수업 노세 노세

2023-06-21

[문화산책]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한국어의 세계화가 눈부시다. 세종대왕께서 얼마나 기뻐하실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세계 여러 곳에서 대접을 받는다고 하니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엄청난 K-팝 열풍 덕분에 한국어를 배우는 젊은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유네스코가 제정한 문맹 퇴치 공로상 이름이 ‘세종대왕 문해상’이고,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모국어로 채택했고 등등…. 이런 예를 들자면 정말 많다. 자랑스럽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려는 한글의 세계화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어에 들어와 세력을 펼치고 있는 외래어에 관한 것이다. 영어가 우리말처럼 천연덕스럽게 쓰인 지는 벌써 오래되었고, 지금은 불어나 이태리말, 스페인어 등도 많이 쓰이는 모양이다. 게다가 일본말 찌꺼기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야말로 국제적으로 화려하다.   이상야릇한 콩글리시에, 홍수처럼 발명되는 신조어에, 한없이 밀려오는 외래어…. 정말 복잡다단하다. 상업 제품 이름, 가게 상호, 고급 아파트 이름에 사용되고, 언론이 거르지 않고 마구 쓰고, 드디어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저항 없이 사용된다. 그중에는 미국에 사는 나도 모르는 영어도 적지 않다.   죽은 언어(死語)인 라틴어도 있다. 흔히 쓰이는 말 중에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같은 멋쟁이(?) 말은 라틴어다. 이제 한국 사람들은 라틴어까지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그야말로 세계인이 된 것이다. 라틴어는 소멸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오래전 죽은 언어다. 라틴어를 모국어로 삼은 나라는 이제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부활할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얄궂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로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지은 시에 나오는 명언으로 유명하고, 이어령 선생이 생전에 강조하던 생명의 진실이기도 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현재를 즐겨라’ 또는 ‘이 순간에 충실해라’로 번역되는데,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으로 열연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덕분에 널리 알려졌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운명을 사랑하라(運命愛)’로 흔히 번역되는데, 철학자 니체의 책 ‘즐거운 학문’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가수 김연자의 노래 덕에 널리 알려졌다.   하나같이 심오한 뜻의 말씀들이다. 라틴어로 말하면 한결 멋있고 의미심장하고, 뭔가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즐겨 사용하는 모양이다.   라틴어를 아는 분에 따르면, 이것 말고도 상당히 많은 라틴어가 우리말처럼 쓰이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왕관), 아쿠아(물), 아모르(사랑), 디바(여신), 페르소나, 호모 사피엔스, 보너스, 유비쿼터스, 무시카 등등….   그런데, 이걸 꼭 라틴어로 해야 하는 건지 의심스럽다. 메멘토 모리나 생자필멸(生者必滅)이나 그게 그거고,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 운명을 사랑하라는 우리말로도 충분히 통하는데 구태여 라틴말을 써야 하나?   언어는 우선 의사소통의 수단이지만, 생각과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나 나라의 품격을 상징하기도 한다. 말이 곧 정신이다. 그러니까, 민족정신을 올곧게 지키려면 지나친 외국어 사용을 절제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세종대왕께 아부하자는 게 아니다.   어디선가 근엄한 꾸짖음 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슈, 그런 걱정할 시간 있으면 영어공부나 하슈. 재미동포 주제에!”   “아, 소생은 영포중생이 올시다.”   “영포중생? 그건 또 뭐요?”   “영어를 포기한 중생!”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메멘토 카르페 아모르 파티 메멘토 모리 디엠 아모르

2023-03-20

[문화산책]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한국어의 세계화가 눈부시다. 세종대왕께서 얼마나 기뻐하실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세계 여러 곳에서 대접을 받는다고 하니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엄청난 K-팝 열풍 덕분에 한국어를 배우는 젊은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유네스코가 제정한 문맹 퇴치 공로상 이름이 ‘세종대왕 문해상’이고,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모국어로 채택했고 등등…. 이런 예를 들자면 정말 많다. 자랑스럽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려는 한글의 세계화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어에 들어와 세력을 펼치고 있는 외래어에 관한 것이다. 영어가 우리말처럼 천연덕스럽게 쓰인 지는 벌써 오래되었고, 지금은 불어나 이태리말, 스페인어 등도 많이 쓰이는 모양이다. 게다가 일본말 찌꺼기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야말로 국제적으로 화려하다.   이상야릇한 콩글리시에, 홍수처럼 발명되는 신조어에, 한없이 밀려오는 외래어…. 정말 복잡다단하다. 상업 제품 이름, 가게 상호, 고급 아파트 이름에 사용되고, 언론이 거르지 않고 마구 쓰고, 드디어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저항 없이 사용된다. 그중에는 미국에 사는 나도 모르는 영어도 적지 않다.   죽은 언어(死語)인 라틴어도 있다. 흔히 쓰이는 말 중에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같은 멋쟁이(?) 말은 라틴어다. 이제 한국 사람들은 라틴어까지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그야말로 세계인이 된 것이다. 라틴어는 소멸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오래전 죽은 언어다. 라틴어를 모국어로 삼은 나라는 이제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부활할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얄궂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로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지은 시에 나오는 명언으로 유명하고, 이어령 선생이 생전에 강조하던 생명의 진실이기도 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현재를 즐겨라’ 또는 ‘이 순간에 충실해라’로 번역되는데,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으로 열연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덕분에 널리 알려졌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운명을 사랑하라(運命愛)’로 흔히 번역되는데, 철학자 니체의 책 ‘즐거운 학문’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가수 김연자의 노래 덕에 널리 알려졌다.   하나같이 심오한 뜻의 말씀들이다. 라틴어로 말하면 한결 멋있고 의미심장하고, 뭔가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즐겨 사용하는 모양이다.   라틴어를 아는 분에 따르면, 이것 말고도 상당히 많은 라틴어가 우리말처럼 쓰이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왕관), 아쿠아(물), 아모르(사랑), 디바(여신), 페르소나, 호모 사피엔스, 보너스, 유비쿼터스, 무시카 등등….   그런데, 이걸 꼭 라틴어로 해야 하는 건지 의심스럽다. 메멘토 모리나 생자필멸(生者必滅)이나 그게 그거고,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 운명을 사랑하라는 우리말로도 충분히 통하는데 구태여 라틴말을 써야 하나?   언어는 우선 의사소통의 수단이지만, 생각과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나 나라의 품격을 상징하기도 한다. 말이 곧 정신이다. 그러니까, 민족정신을 올곧게 지키려면 지나친 외국어 사용을 절제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세종대왕께 아부하자는 게 아니다.   어디선가 근엄한 꾸짖음 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슈, 그런 걱정할 시간 있으면 영어공부나 하슈. 재미동포 주제에!”   “아, 소생은 영포중생이 올시다.”   “영포중생? 그건 또 뭐요?”   “영어를 포기한 중생!”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메멘토 카르페 아모르 파티 메멘토 모리 디엠 아모르

2023-03-16

[아름다운 우리말] 기다리는 사람

저는 요즘 기다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보통은 기다린다고 하면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겠지만 저는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때를 기다린다고 하니 마치 세월을 낚는 강태공이나 된 듯하지만 그런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성공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때마다 바뀌는 자연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인생이 짧게 느껴지는 것은 기다리는 게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사실 지나간 것은 아득합니다. 내 옆을 지나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지난주 일이 까마득한 과거로 느껴집니다. 이상한 일도 아닐 겁니다.   요즘 기다리고 있는 일은 무언가요? 기다린다는 말은 보고 싶다는 말도 됩니다. 보고 싶으니까 기다리지 보기 싫은데 기다리지는 않겠죠. 아름답다는 말이 보고 싶다는 말이라는 이야기도 일리가 있습니다. 보기 싫은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저마다 보고 싶은 것이 다를 테니 말입니다. 일률적인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그러니 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남에게 강요해서도 안 될 겁니다.   저는 기다린다는 말에서 ‘길다’의 흔적을 봅니다. 길다와 관련이 있는 단어로는 ‘기다랗다’가 있습니다. 기다리다와 기다랗다가 닮아서 왠지 기분이 좋습니다. 어원적으로는 더 공부해봐야 하겠습니다만 감정적으로는 두 단어가 이어집니다. 물론 기다랗다는 구체적이고 기다리다는 추상적입니다. 구체적인 상황이 추상적으로 변하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그리다’가 그림을 그리다와그리워하다의 의미로 나누어지는 것도 그러한 예입니다.   저는 기다림이 많으면 삶을 길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해서 인생을 짧게 사는 사람은 기다림이 적은 사람입니다. 기쁘게 기다리는 일이 없는 사람은 인생이 참 덧없고 허무하고 짧을 겁니다. 기다리면 시간이 느리게 갑니다. 단지 그래서 길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천천히 가기는 하지만 설레는 마음이 있기에 기다림은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듭니다. 가슴 두근거리며 하루를 살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요? 어떤 날을 기다리며 사는가요? 저는 요즘 숲길을 걷고 산을 오릅니다. 걸음걸음마다 가장 고마운 일은 주변이 늘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계절마다 내보이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걸을 때마다 기대감이 한가득입니다. 현재를 즐기면서도 미래를 꿈꿉니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겨울 눈길을 걸으면 새하얀 눈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합니다. 그러면서도 금방 봄이 오면 이 산에도, 이 길에도 꽃이 필 거라고 기대합니다. 생각만으로도 기쁩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계곡에 얼음이 녹기를 기다리고, 숲이 푸르기를 기다립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겨울에는 눈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꽃을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돌고 돕니다. 그러니 기다림에는 끝이 없습니다. 작년에 봤을 텐데 늘 새롭습니다.     사람을 기다리는 것도 비슷할 텐데 우리는 종종 기다림을 놓치고 사람을 놓칩니다. 사랑을 기다리고, 사람을 기다리고, 만남을 기다리고, 웃음을 기다립니다. 새로운 만남에 기뻐하고 오랜 만남을 즐거워합니다. 기다림은 지침이 아니라 설렘입니다. 만약 기다림이 없다면 앞으로 시간이 오는 게 두렵겠죠. 두려우면 당연히 사는 게 힘들 겁니다. 세상을 살면서 기쁘게 기다리는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 사는 게 기다려지기 바랍니다. 나는 오늘도 걷는 사람입니다. 나는 오늘도 새로움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겨울 눈길 카르페 디엠 요즘 숲길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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