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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론] 교토국제고와 친일 논란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가 일본 전역에 TV로 생중계되면서 난리가 났다. 일본 고교 야구 꿈의 무대로 불리는 고시엔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교토국제고등학교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일본 공영 방송인 NHK는 ‘동해’를 ‘동쪽 바다’, ‘한국의 학원’을 ‘한일의 학원’으로 표기해 그 의미를 축소했다고 한다.     교토국제고는 왜 ‘동해 바다’가 포함된 교가를 부르는가?  동해 바다 건너 혼슈 땅은 백제인들이 건너와 세운 대화 왜 왕조가 있던 곳이다. 즉, 옛 백제인 조상들이 건네온 땅이라는 의미다. 교토국제고는 1947년 재일 한인들이 교토조선중학교로 설립했다고 한다. 1951년 동방학원으로 개명했다가 1958 교토한국중학으로 변경했고, 2004년 교토국제중고교가 되었다. 한국 정부는 1961년 교토한국중학교를 정식으로 인가했다.     교토국제고의 학교 소개 웹사이트에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등 삼중언어 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또 한국 지리와 한국사, 그리고 재일 한국인 역사도 가르친다고 한다.  학급당 최대 20명으로 맞춤식 교육을 한다고 자랑한다. 고교 3학년이 되면 학생마다 전담 진로지도 교원을 배정해 담임과 마지막까지 진로 상담을 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2004년 정식 일본학교  인가를 받으면서 한일 양국에서 학력을 인정하는 정규 학교로 성장했다. 교장 인사말에는 지금까지 배출된 2600여 명의 졸업생은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한국 대학에 진학한 학생도 있고,  한국 프로야구 선수도 배출했다.       최근 들어서는 한국의 10위권 대학과 일본 간사이 지역 명문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야구부는 교토부 내 각종 대회에서 상위권 입상을 거듭하면서 야구 명문교로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교토국제고는 오래전부터 재일동포 학생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거듭된 친일 논란으로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교토국제고 학생들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김형석 신임 관장이 취임한 독립기념관은 올해 자체 광복절 기념식을 취소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김 관장은 국회에서 “1945년 광복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멘트 안 하겠다”며 답변을 거부하기도 했다. 광복을 인정하지 않는 독립기념관장이 탄생한 것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일제 치하, 우리 부모님들 국적은 일본” 이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한국인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인은 ‘조선적’이거나 ‘무국적자’ 였다. 조선적은 일본인과는 차별을 두는 이등 시민을 의미한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한인 이민자들은 ‘무국적자’로 분류되어 대한인국민회의 신원보증을 받은 후에야 미국 입국이 허락된 것 등 역사적 사실들도 부정하고 있다.     인천교통공사는 지역 내 간석오거리역에 ‘독도 테마역’을 조성했는데, 얼마 전 독도 관련 시설물과 ‘독도 포토존’을 모두 철거했다고 한다.     재일 한인 대부분은 일제 강점기 징용 등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거나 가난 때문에  건너간 일제 강점기의 피해자들이다. 그들은 일본에서 엄청난 차별을 경험했고 2,3세들은 지금도 차별을 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토국제고 학생들이 재일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를 당당히 부른 것이다.   재일동포의 용기를 북돋워 주기는커녕 오히려 역사적 사실조차 외면하려는 현 정부의 역행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교토국제고 친일 한국어 교가가 한국어 영어 한국 프로야구

2024-09-11

"위안부는 한국 포주들이 고용했다" 친일본 성향 '미국인 역사학자'

"일본 정부는 끝도 없이 사과했다" 강제납치·위안부 숫자 근거 없다 일본은 성폭행 막으려 위안소 세워 한국은 베트남전서 야만적 성폭행 미국인 역사학자가 "위안부는 한국의 매춘 포주들이 고용한 여성"이라고 미국 안보전문 매체를 통해 주장했다. 또 일본은 위안부 제도로 전시 성폭행을 막기 위해 분투했지만 한국은 베트남전 당시 야만적인 강간과 살상행위를 벌였다고도 주장했다. '태스크앤퍼포스(Task&Purpose)'는 지난 12일 '한국 위안부에 대해 당신은 많은 부분을 잘못 알고 있다'는 제목 아래 일본 레이타쿠대학 제이슨 모건 조교수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모건 조교수는 기고문 서두에서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끝도 없이(endless) 사과했다"며 "한국은 위안부를 이슈화해 외교적 큰 성공(slam dunk)을 거둔 것으로 보이지만 이 문제를 압박할수록 더 불리해진다"고 썼다. 그 근거로 위안부 피해의 핵심 주장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에 의한)'조직적인 강제 납치(systematized forced abduction)'는 없었다"면서 "위안부 여성이 20만 명에 달한다는 증거 역시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재까지 위안부에 대해 알려진 많은 부분이 일명 '요시다 증언'에 근거한 '환상(fantasy)'이라고 썼다. 요시다 증언이란 1982년 요시다 세이지(2000년 사망)가 아사히신문과 한 인터뷰 내용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자신이 군부대를 이끌고 제주도에서 200여 명의 여성을 강제 징병해 위안부로 삼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는 제주도 자체조사로 허위로 밝혀졌고, 본인도 후에 거짓 증언임을 인정했다. 모건 조교수의 주장은 요시다 증언이 가짜이므로 다른 위안부 증언도 허구라는 논리다. 이는 요시다 증언을 문제삼아 위안부에 대한 본질을 흐리려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 같다. 모건 조교수는 "현재 위안부 옹호세력들은 요시다 증언을 재활용하고 있다"며 "유엔의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도 요시다 주장의 재탕(rehashing)"이라고도 주장했다.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준이 확립된 근거가 된 보고서다. 1996년 경제사회이사회 산하 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이었던 라디카 쿠마라스와미가 작성한 첫 위안부 조사결과로 "위안부는 국제인권기구 기준상 분명한 성노예며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지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유엔이 일본 책임을 요구한데 대해 모건 조교수는 '전쟁과 매춘의 불가분의 관계'를 내세워 위안부 문제를 정당화했다. 그는 "1·2차 세계대전 당시 매춘부들이 항상 군대를 따라다녔다"며 "세계 어느 나라도 떳떳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시 성폭행 '가해자'의 예로 하와이에 사창가를 운영한 미군과 베트남 전에 참전한 한국군을 들었다. 특히 한국군이 야만적인 성폭행을 저질렀고, 한국 군인과 베트남 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들이 그 증거라고 했다. 모건 조교수는 "이에 반해 일본은 위안소를 차려 군사들의 성폭행과 성병 확산을 예방하고 '군사기밀' 누설을 막기 위해 분투했다(strove)"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서 위안부는 매춘 포주들이 모집했다"면서 "당시 양반제도 아래 수세기에 걸쳐 어린 소녀들을 사고팔아 온 한국에서 위안부 모집은 수월했다"고 적었다. 그는 오히려 일본 여성을 전시 성폭행 피해자로 서술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연합군은 만주에서 성범죄의 광란을 저질렀고, 이 때문에 셀 수 없는 일본 여성들이 자살했다"고 했다. 모건 조교수는 해방 이후에도 위안부 제도는 한국 정부의 지원 아래 미군을 위해 계속됐다고 했다. 그는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양공주(Western princess)'들이 있는 '기지촌(camptown)' 정화운동을 한 이유가 주한 미군으로부터 달러를 벌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는 미일 외교 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는 중국의 비밀병기"라면서 "한국이 위안부 문제 압박을 중단해야 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chung.koohyun@koreadaily.com

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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