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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사람사전

“5분 후 죽게 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그 5분 동안 가장 중요한 말을 하라고 한다면, 모든 전화기들은 사랑한다는 말로 넘쳐날 것이다.” 미국 소설가 크리스토퍼 몰리의 말입니다. 늘 세상 모든 사람이 그 5분간의 심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좋겠습니다. 사랑의 홍수 사태가 좋기만 한 건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까요?     강준만 『당신의 영혼에게 물어라』   촌철살인 사회비평으로 유명한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행복을 위한 잠언집을 펴냈다. 방대한 인용과 각주 달기라는 평소 스타일대로 잠언집에서도 무수한 ‘인용 신공’을 펼쳐 보인다. 그중에서도 ‘사랑’에 대한 글에 눈이 간 건, ‘오늘도 무사히’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의 안위를 염려하며 살아가는 이즈음이어설지 모르겠다. “증오하던 사람이 오늘 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에 대해 계속 화를 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지니기 어려워진다.” 미국 작가 리처드 칼슨의 말도 인용했다.   “사랑스러운 것이 사랑스러운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당신이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랑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다” (롤랑 바르트),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의해 형성되고 변형된다”(볼프강 괴테), “최고의 행복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에서 온다”(빅토르 위고),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나태주) 등 다양한 결의 사랑론을 들을 수 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사람사전 결의 사랑론 강준만 전북대 촌철살인 사회비평

2022-11-30

[삶과 추억] ‘존버·졸혼’ 퍼뜨린 촌철살인 작가…소설가 이외수

소설가 이외수씨가 25일(한국시간) 오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76세. 2020년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반복했던 고인은 최근 폐렴으로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1946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견습 어린이들’로, 75년 월간지 ‘세대’에 중편소설 ‘훈장’으로 등단했다. 80년대 초반 이문열·박범신·윤후명·김원우 등과 함께 ‘작가’ 동인으로 활동한 고인은 동물적 폭력이 횡행하는 비윤리적인 세상에 맞서 어떻게 타락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섬세한 감각으로 천착했다. 후배 소설가 하창수 씨는 “춘천교대에서 미술전공을 해서인지 시각적으로 즉각 환원되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갖춘 분”이었다고 평했다.   1978년 장편 ‘꿈꾸는 식물’ 출간 당시 문단과 독자의 반응이 특히 폭발적이었다. 당대의 평론가 김현이 ‘섬세한 감수성과 뛰어난 상상력이 충격적’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기행을 서슴지 않아 문단 주류와는 거리를 두는 방외인의 모습이었다. 데뷔작을 두고 “영하 10도가 넘는 한겨울에 움막 같은 방에서 30촉짜리 백열등을 난로 삼아 꽁꽁 언 밥을 망치로 깨 먹으면서 쓴” 작품이라고 밝혔다.   대중의 주목을 한몸에 받은 건 촌철살인을 담은 에세이를 통해서였다. ‘하악하악’ ‘아불류시불류’ 등 대중적 에세이로 젊은층의 공감을 얻었다.     2012년 혜민 스님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존버 정신을 잃지 않으면 된다”는 고인의 발언을 옮겨 ‘끝까지 버틴다’는 뜻의 ‘존버’라는 단어를 퍼뜨리기도 했다. 당시 66세였다.     2019년 미스 강원 출신의 부인 전영자씨와 결혼 43년 만에 ‘졸혼’을 선언하며 ‘결혼생활의 졸업’이라는 화두를 한국 사회에 던진 주인공이기도 하다. 집필활동 외에도 트위터 등 SNS로 촌철살인을 하는 모습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았고, 화려한 말솜씨로 CF, 토크쇼, 예능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송 활동을 했다.   경남 함양 출생이지만 외가가 있는 강원도 인제에서 자라난 고인은 강원도 춘천에서 오랜 기간 집필활동을 했다. 고인이 2006년 이주한 강원도 화천군 ‘감성마을’은 ‘이외수 마을’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홍보대사, 평창 겨울스페셜올림픽 소셜미디어 명예 홍보대사를 지냈고 2013년에는 화천군 홍보대사에 임명되기도 했다.   고인은 2014년 위암 2기를 진단받고 수술 뒤 회복한 바 있으며, 이후로도 꾸준히 대중과 소통하며 집필활동 했으나 2020년 3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최근까지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전씨와 한얼, 진얼 두 아들이 있다. 빈소는 호반장례식장이다. 신준봉·김정연 기자삶과 추억 촌철살인 소설가 강원도 화천군 기간 집필활동 강원도 춘천

202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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