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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

내가 동물학자임을 알기에, 헨리는 함께 있을 때면 늘 동물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예를 들어, 그는 인도코끼리와 아프리카코끼리의 윤곽과 피부 질감 차이를 아주 상세히 분석하고 싶어 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이 거대한 동물들을 움직이는 조각품으로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특히 그는 코끼리의 머리뼈 모양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데즈먼드 모리스『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   ‘나’는 『털 없는 원숭이』로 유명한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 ‘그’는 조각가 헨리 무어다. 초현실주의 예술가이기도 한 모리스가 프랜시스 베이컨·앙드레 브르통 등 초현실주의 미술가 32명에 관해 쓴 책이다. 1차 세계대전 후 기성체제를 비판하며 짧게 유행했던 초현실주의 운동은 분석이나 계획 없이, 이성의 개입이나 미의 추구 없이 “가장 어둡고 비합리적인 생각이 무의식에서 솟구쳐 나와서 캔버스에 자신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모리스가 직접 교류했던 작가들의 개인사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마도 책의 핵심은 다음 문장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초현실주의는 실패했다. 세계를 바꾸지 못했으니까. 다른 의미에서 보면, 초현실주의는 그것의 가장 원대한 꿈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 예술 작품들을 현재 전 세계의 수많은 이가 감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명과 분석을 원하는 이들을 제외해도, 화가의 무의식적 마음에서 관람자 자신의 마음으로 이미지가 직접 와 닿도록 하겠다는 생각으로 작품 앞에 서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초현실주의자 은밀 초현실주의 예술가이기도 동물학자 데즈먼드 초현실주의 미술가

2024-05-22

20세기 대표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 특별전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시카고 미술관은 18일부터 6월12일까지 달리 특별전을 진행한다.     ‘살라도르 달리:사라진 이미지’라는 제목의 이 특별전은 시카고 미술관이 처음으로 마련한 달리 특별전이다.     289번 갤러리에 마련된 달리 특별전에는 30점의 그림과 드로잉, 사진, 조각, 초현실 오브제, 프린트, 책 등이 전시된다.     달리는 사물이 사라지는 현상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작가이면서 20세기 가장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로 꼽힌다.     시카고 미술관은 그의 유명 작품인 Inventions of the Monsters(1937), Venus de Milo with Drawers(1936), and Mae West’s Face Which May be Used as a Surrealist Apartment(1934–35) 등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 소장 작품들과 함께 미국과 유럽의 주요 미술관이 소장 중인 달리의 작품 역시 이번 시카고 미술관 특별 전시회에서 선보인다.   또 최신 기술로 달리의 작품에 숨어 있거나 사라진 이미지들을 복원해 그가 시도했던 다양한 페인팅 기법들을 소개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시카고 미술관은 달리가 그의 초현실주의 작품을 그린 직후인 1933년 관련 작품들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미술관들이 미처 달리의 작품 세계를 인정하기 전에 미리 그의 능력을 알아채고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시카고 미술관은 달리의 작품 40여점을 소장하게 됐다. 하지만 달리의 작품만 따로 모아 특별전을 개최한 것은 이번 전시회가 처음이다.     달리는 1904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1989년 사망했으며 인간 잠재 의식의 내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다.     그의 화풍은 프로이트의 책과 프랑스 파리에서 당대 유행하던 초현실주의파의 영향을 받았는데 무의식적 심상을 환각 상태의 작품으로 이끌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시카고 미술관에서는 평소 신관인 웨스트 윙의 밀레니엄파크가 보이는 북쪽 끝 갤러리 3층에서 달리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Nathan Park 기자초현실주의 특별전 초현실주의 화가 대표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 작품

2023-02-17

[잠망경] 아령의 흉터

맨해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2021년 11월 현재 전시 중인 ‘Surrealism Beyond Borders’를 관람했다. ‘경계 없는 초현실주의’의 황홀한 시간!   프랑스 시인, 정신과 의사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 1986~1966)이 1924년에 선포한 ‘초현실주의 성명서’를 곱씹는다. 그의 폭탄선언은 시(詩)에서 출발하여 모든 예술 분야에 걸쳐 전 세계에 번졌다. 브르통은 당시 프로이트가 주창한 ‘무의식’과 그의 획기적인 논문 ‘꿈의 해석’에 큰 영향을 받았다 한다.   초현실과 꿈은 무의식의 텃밭에서 피어나는 의식의 꽃이다. 초현실의 뿌리에는 무의식이라는 본능이 도사리고 있다. 초현실에는 심리적 안전을 꾀하는 방어기전과 성적본능의 줄기와 잔가지들이 숨어 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수면 아래에 잠겨서 맨눈에 뵈지 않는 빙산 아랫도리의 비밀을 파헤친다.   초현실은 꿈의 탁본(拓本)이다. 비석, 기와, 기물 따위에 새겨진 글씨나 무늬에 종이를 문질러 떠낸 사본(寫本)이다. 초등학교 때 자주 나갔던 사생(寫生)대회가 그랬고 지금도 핸드폰으로 찍어 대는 사진(寫眞)이 또 그렇다. ‘베낄 寫’! 꿈과 초현실은 현실을 베껴 복사한다. 영화처럼 복사체는 실제가 아니다.   꿈에는 전위(轉位, 자리바꿈)라는 현상이 있다. 본능 속에 파견 나와 있는 검열 당국이 꺼리는 출현자나 배경을 바꿔치는 수법. 이 디펜스는 생시의 언어생활에도 확실히 적용된다. 직설을 피하는 완곡한 말 습관, 섹스를 언급하는 대신 ‘같이 잤다’는 표현이 좋은 예.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이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노린다. 이른바 낯설게 하기,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이다. 일상적 사물에 적용되는 상식을 뒤엎고 생뚱맞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시에서는 전위와 데페이즈망 둘 다 자유자재로 쓰이는 것이 재미있다.   꿈도 예술도 시도 드라마가 있어야 제격이지. 그래야 나라는 내 꿈의 관람자와 미술관 방문자와 시 독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법. 애매모호한 추상은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구체성을 추구한다. 비주얼(visual, 시각적) 감각이 강한 자극을 제공하는 구체성!   내가 좋아하는 낯선 이미지의 대가, 벨기에의 초현실파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는 이렇게 말한다. - “상징적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이미지에 담긴 시(詩)와 미스터리를 파악하지 못한다.” 얼마나 통쾌한 발언인가.   꿈은 여러 요소를 응집한 압축파일이다. 꿈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초현실을 감추고 있다. 자꾸 더 캐물으면 보충설명을 하는 작화(作話, 말짓기) 증세를 내보인다. 어차피 꿈의 어원은 ‘꾸미다’라는 학설이 유력한 터. 거짓 꿈도 꿈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다녀온 그 날 밤 꿈에 아령을 보았다. 고등학교 때 손에 잡고 흔들던 그 아령에 큰 흉터가 보인다. 아령을 하고 싶은 욕망을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불현듯 다음날 아마존에서 아령을 주문했다.   아령이 배달된 며칠 후 ‘아령과 비둘기’라는 제목으로 이런 시를 썼다. -- (전략)… 아령의 흉터에 심하게 신경을 쓴다/ 아령은 내게 막강한 권리를 부여한다/ 아령이 나를 서서히 장악한다/ 아령 양 가슴에 이윽고 튀어나오는 알통/ 회색 바탕에 무지갯빛 맴도는/ 사나운 비둘기 한 마리 푸드득 날아가는 순간에… (후략)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아령 흉터 아령과 비둘기 초현실주의 예술가들 초현실주의 성명

2021-11-30

[잠망경] 꽃의 맛

옛날 정신과 수련의 시절에 어느 우울증 환자에게 “Keep your chin up!(턱을 치켜드세요! - 힘내세요!)”라 한 적이 있다. 그 퉁명스러운 60대 여자는 그런 말은 자기도 할 수 있다면서 발칵 화를 내면서 방을 나가버렸다. 낯이 뜨거웠다.   지도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건 마치도 우울증 환자에게 우울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충고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그가 말한다. 내과 의사가 배가 아픈 환자에게 아프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싸가지 없는 말을 한 셈이다. 불행한 사람에게 행복하세요! 하는 싸구려 입버릇처럼.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나중에 ‘will power, 의지력(意志力)’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입에 올렸다. 그게 뭔지 모른다며 설명을 해달라 해서, ‘will’은 의도(意圖), 즉 무엇을 원하는 상태라 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원하는 예를 든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격언까지 침을 튀기면서 설명한다.   한자어 ‘뜻 意’를 생각한다. 의도, 의지 외에도 의사(意思), 의견(意見), 의욕(意欲), 의의(意義) 같은 말들이 입에 붙어 다닌다. 우리는 늘 자신의 생각과 견해와 욕심과 옳음을 주장하고 싶은 법이다.   의미(意味, 순우리말로 ‘뜻’)에 ‘맛 味’가 들어간다는 사실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러니까 의미라는 한자어는 대뇌 기능이 아니라 미각이다. 말초감각 중에 하나다. 사물의 뜻을 알기 위하여 꼭 그렇게 자장면이나 짬뽕처럼 무엇이든 단무지를 곁들어 먹어봐야 한다는 재래식 중국적 사고방식이다.   사물의 의미라는 것은 개개인의 입맛처럼 주관적인 기능에서 태어난다. 삼라만상의 의미는 팩트가 아니라 미각적(味覺的) 해석일 뿐. 그것은 개인의 심리상태이기도 하다. 물리학을 제외한 우주의 객관적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물은 무의미하다. 무색, 무취, 무미(無味)!   ‘뜻’에 해당하는 ‘meaning’은 좀 드라이하다. 13세기에는 ‘기억하다, remember’라는 의미였다. 뜻은 연상작용에서 온다. 전인도유럽어에서는 의도, 의견, 생각이라는 말이었으니 이 또한 주관적 심리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철학의 거성, 칸트(1274~1804)의 ‘thing-in-itself, 물자체(物自體)’ 개념이 당신과 나 사이에 훌륭히 거론된다. 내가 은하수에 고춧가루라도 뿌려 맛보지 않아도 내가 자는 사이에도 은하수는 자체적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이 은하수에 애써 부여하는 의미는 철두철미하게 무의미하다.   김춘수(1922~2004)는 그의 대표 시 ‘꽃’에서 꽃의 이름에 큰 의미를 하사했다. 이름이 없는 꽃은 한갓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1976년도 저서 ‘의미와 무의미’에서 그는 시의 무의미성을 성심성의껏 선포한다. 구태의연한 시적 자아의 설렘을 떠나서 언어의 즉물성(卽物性)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괜스레 물자체, 즉물성 같은 어려운 말을 해서 당신에게 좀 미안하다.   초현실주의 시류(詩流)가 나를 휩쓴다. 개꿈,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몽, 꿈을 각색하는 자각몽, 등등 모든 꿈과 초현실은 내게 각별히 유효하다. 김춘수가 초현실주의의 텃밭이었다는 생각을 간간 한다.   옛날 그 환자에게 니체의 명언을 풀이해서 설명해줄 걸 그랬다. “삶은 고통이다. 생존한다는 것은 그 고통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다”라고. 니체가 신의 사망선고를 내린 후 삶의 니힐리즘에 대항하는 그의 초인사상을 알기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줄 걸 그랬지, 정말.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의미 순우리말 초현실주의 시류 우울증 환자

20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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