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화재 경보
늦잠이 달다. 아무런 구속이나 방해 없이 온전하게 혼자인, 독거노인들에겐 자신의 몸이 원하는 대로 기상 시간이 천차만별이다. 62세 이상이면 입주 신청이 가능한 아파트에선 60대, 70대, 80대 그 이상 나이까지 다양한 연령의 노인들이 산다. 요즘 내 나이도 노령으로 진입 중이다. 이젠 누굴 돕겠다고 선 듯 나서기도 쉽지 않다. 감당하기 버겁다. 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내 상태가 축복이고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오라는 곳 없고, 가야 할 곳 없는 자유로운 날들이니 아침 기상 시간도 고무줄이다. 기분 좋게 눈을 떠보니 9시 반이 지나고 있다. 느닷없이 또 화재 경보가 악을 쓰기 시작이다. 입주 초년 시절엔 가슴이 벌렁대고 짐을 싸야 하나 어쩌나 당황해서 갈팡질팡 놀래기도 여러 번, 이젠 10년째 툭하면 울려대는 소리가 그저 주민들의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임을 무겁게 느낄 뿐이다. 뭔가 조리하다 또 태운 모양이겠지. 연기가 나면 경보기는 울어댄다. 그러려니. 혹시나 하고 문밖 복도 분위기를 살피러 간다. 방문을 열려는 찰라, 문틈으로 순식간에 물이 들어온다. 뭔 돌발 상황이래? 급히 방문을 열자 홍수가 난 듯 들이닥치는 물살에 그만 숨이 턱 막힌다. 큰 목욕 수건을 바닥에 깔아 물을 닦은 후 대야에 수건을 짜는 방법으로 내 방에 침투한 물을 제거해 보지만, 속수무책 계속 들이닥치는 물의 양은 늘어만 간다. 문밖 복도엔 아파트 매니저 부부와 직원들이 물 흡수하는 기계를 돌리며 제거 작업으로 바쁘다. 도대체 무슨 일로 이런 상황이 되었느냐 물으니 3층 복도 천정에 위치한 수도관이 터져 천정이 무너지며 물바다가 된 것이란다. 누구 다친 사람은 없느냐? 얼마나 많은 방에 물난리가 난 거냐 물었더니 오직 한 곳 내 방 근처 천정과 복도에만 피해가 발생해 내 방에만 홍수가 발생한 것이란다. 순간 큰소리로 시원하게 웃음이 터졌다. 이 얼마나 귀하게 선택된 자란 말인가? 아파트 120여 주민 중에 이런 사고를 당했을 때, 재빠르게 판단하고 사고에 맞게 수습할 만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모두 늙고 기운 없어 자기 방 하나 청소하기 힘들어하는 주민들 아닌가. 내 방이라 천만다행이다. 나니까 이렇게 큰 젖은 수건을 들어 짤 수도 있고 빠르게 대처할 순발력도 있으니 하늘이 허락하신 악재라고 받아들였다. 저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내게 미안해하는 그들에게 긴장을 풀도록 이끌어 주며 하늘 아버지의 뜻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왜 하필 저예요? 보다는 저를 택해주셔서 감사합니다로 편한 마음이 된다. 분명 '노기제'는 넉넉히 감당할 수 있음을 아시는, 하늘이 선택하신 자로서 긍지를 갖고 내게 닥친 사고에 임하고 있다. 노기제 / 통관사이 아침에 화재 경보 화재 경보 복도 천정 문밖 복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