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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주홍색 백팩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행동은 잊어버리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는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Maya Angelou가 한 말이다. 나는 이 인용문을 입증하려는 듯 선거 날만 되면 잠깐 스쳤던 한 여자를 떠올리곤 한다. 그녀의 등에 얹혀 그녀를 짓눌렀던 주홍색 백팩의 암울한 덩어리는 개 양귀비 핏빛으로 뇌리에 문득문득 떠오르며 요즈음도 그녀는 그 무거운 주홍색 백팩을 메고 다닐까? 궁금하다.   오래전, 나는 쪼들리는 불안한 삶을 하루하루 버티며 예비 선거와 총선거 당일 직원으로 여러 해 동안 일했다. 새벽 6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해야 하는 장시간 노동이지만, 적지 않은 급료를 받을 수 있는 두 날만큼은 빼먹지 않았다. 어느 해 11월 초, 화요일 총선거 날이었다. 퀸즈 초대교회 근처 어느 고등학교 투표소로 기억한다. 그날 그곳에서 나는 선거 당일 직원으로 나온 그녀를 만났다. 둘의 나이가 비슷해서였는지 선거 오전 중 이미 통성명을 트고 친해졌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하러 나갔다. 바윗돌 같은 주홍색 가방이 그녀의 몸을 누르고 뒤로 밑으로 당기며 등에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무너지지 않을 자세로 어깨를 구부리고 백팩을 끌어당기며 보폭을 넓게 내디뎠다.     근처 중국집에 들어갔다. 그녀는 가방이 자기의 분신인 양, 옆 의자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새벽부터 찬 공기를 씐 우리 둘은 몸을 녹이려는 듯 웨이트리스가 다가오자 동시에 짬뽕을 외쳤다. 나는 양이 너무 많아 반도 못 먹고 남겼다. 그녀는 며칠을 굶은 듯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베큠클리너가 흡입하듯 단숨에 먹어 치웠다. 그녀의 시선이 내가 남긴 붉은 짬뽕에 아쉽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꽂혀 있었다. 나는 먹기 전에 덜어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녀는 잘 먹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운 것인지 남겨진 짬뽕이 아까운지 분간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짬뽕을 순식간에 해치운 그녀의 손이 가방끈을 꽉 잡고 있었다.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렇게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녀요?”   “이 가방 안에는 나의 중요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어요.”   “중요한 물건이라면 더욱더 집에 둬야지. 들고 다니다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무겁지 않아요?”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데 내 물건을 뒤지고 손대는 것 같아요. 무겁지만, 이렇게 가지고 다니는 것이 마음 놓여서.”     ‘그 무거운 주홍색 백팩이 당신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짓누르며 육신을 변형시킬 텐데’라고 나는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주홍색 백팩을 당연히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로 굳어진 그녀의 비쩍 마른 몸과 어두운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주홍색 백팩 주홍색 백팩 주홍색 가방 화요일 총선거

2024-01-26

[기고] 난 키우기로 배우는 자녀 교육

패티오 파라솔이 펼쳐진 식탁 위에 7개의 호접란들이 일제히 64개의 화려한 꽃들을 활짝 피웠다. 주홍색, 연분홍색, 호박색의 예쁜 꽃들이 뒤뜰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 중 3개는 누군가가 꽃이 졌다고 쓰레기통에 버린 것을 주워온 것이었다.     당시 첫 번째는 축 처진 잎이 하나 남아 있었지만 다행히 뿌리가 이끼로 덮여 있어 소생할 가능성이 조금 보였다. 두 번째도 뿌리가 가는 노끈처럼 바싹 말라 있었고 두 개의 잎은 햇볕에 타서 절반은 종잇장처럼 누렇게 변해 있었다. 세 번째 역시 뿌리 상태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마지막 남은 잎은 햇볕에 타서 말라 있었다.     버려진 호접란들을 통풍이 잘 되고 파라솔로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패티오 식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면서 깨끗이 잎을 닦아주었다. 가끔 설탕물도 주었다. 3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자 호접란들이 서서히 회복되면서 작은 꽃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호접란에는 자그마한 꽃 4개가 옹기종기 예쁘게 피었다. 꽃잎 직경이 2인치 정도 되는 주홍색 잎 가장 자리는 흰색으로 둘러졌고 주홍색 점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마치, 행복한 얼굴로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두 번째 호접란에도 하얀꽃 다섯개가 활짝 피었다. 꽃잎 위에는 가늘고 옅은 주홍색 줄들이 5개의 꽃잎 전체에 퍼져 있었고 마지막 꽃잎은 립스틱을 발라 놓은 것처럼 짙게 물들어 있었다. 세 번째 호접란 역시 연분홍색 꽃들이 화려하게 피었다. 잎 전체로 옅은 주홍색의 가는 줄들이 마치 혈관처럼 두루 퍼져 있었다.     호접란들이 재생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 보면서 난을 키우는 것이 자녀 교육과 무척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는 종종 자녀들의 잠재력에 접근하지 않고 단순히 그들의 현재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하고 고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부모는 자녀들이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해 있을 때 자신들도 한때 같은 처지에 있었다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말해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가 올바른 방향으로 행하려는 노력에 대해서 칭찬과 격려로 보답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녀의 실수를 인정하고, 성숙한 행동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그들의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해줄 때 자녀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는 자녀들이 한 두 가지 일만 실수해도 실패자라고 간주해버리는 100% 완벽주의 개념을 단연코 버려야 한다. 야구 경기에서는 3할의 안타만 쳐도 스타 플레이어가 되지 않는가.   그리고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자녀와의 견고한 인격적 관계의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자녀들의 죄책감, 두려움, 혹은 소외감으로부터 오는 불안감 같은 문제들을 예방할 수 있다. 자녀가 다소 못마땅한 행동을 보여도 부모가 변함없이 사랑해 준다면 그들은 더욱 성숙되며 그릇된 행동들을 버리고 개선되어갈 것이다.     또한 자녀들은 안전 지대가 필요하다. 이유나 조건이나 때를 가리지 않고 변함없는 사랑을 받으며 용납 받고 인정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안전 지대인 가정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녀들의 성숙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부모가 자녀의 능력을 찾아내어 계발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자녀의 강점을 알아야 한다.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로 하여금 강점을 활용하게 한다. 자녀의 강점이야말로 진정한 기회이다. 거기에는 경쟁이 없다. 하지만 커다란 강점을 지닌 자녀는 언제나 커다란 단점도 지니고 있는 법이다. 그것은 마치 산봉우리가 높은 곳에 깊은 계곡이 있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부모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위대한 원리는 가장 좋은 포도주는 제일 늦게 나온다는 사실이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 라번대학 겸임교수기고 자녀 교육 자녀 교육과 주홍색 연분홍색 안전 지대인

2022-06-29

[글마당] 지붕 속의 애환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침대에서 나오기 싫다. 남편도 같은 생각인지 잠에서 깬 듯은 한데 기척이 없다.   “추운 날 따뜻한 지붕 아래 누워 있다는 것이 감사하지 않아? 커피 마시고 싶네요.”   “네 사모님 알겠습니다.”   남편이 커피를 끓이러 간 사이 나는 추운 날 지붕 속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플로렌스에서 공부했던 아들을 방문했을 때가 떠올랐다. 아이와 함께 베니스 여행을 끝내고 플로렌스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는 기말고사로 바쁘다며 “엄마 내가 필요하면 이메일 해요. 차오” 인사하더니 바삐 학교로 가 버렸다. 그리고는 여행 중 아이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아들의 차가움이 절절히 느껴졌다. 호텔이 낯선 창고인 양 그 안에 갇힌 듯 답답하고 다리에 힘이 죽 빠졌다. 창밖 사그라지는 황혼이 감싸는 하늘 아래 다닥다닥 붙은 주홍색 지붕들이 물결치듯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끝 간데없는 지붕 속에서 삶의 비애가 속삭이며 나를 위로했다.     ‘너만 슬픈 것이 아니야. 우리도 힘들어.’   집마다 지붕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암암리 꿈틀대는 애환이 많다.     우리 친정 옆집에 남편이 죽자 딸 아이 둘을 데리고 갓 난 남자아이 하나 있는 영감에게 재가한 아줌마가 살았다. 머리가 백발인 할아버지와 젊은 여자가 산다는 것이 이상했다.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영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 다행히 가게 터와 살림집을 영감이 남겨서 본처에서 난 사내아이를 정성스럽게 키웠다.     아줌마의 둘째 딸은 디즈니 만화 영화에 나오는 포카혼타스처럼 생겼다. 나는 매력적인 그 언니를 따라다녔다. 친절한 그 언니는 국군 장병에게 보내는 위문편지인 내 숙제를 대필해주곤 했다. 결국엔 휴가 나온 군인 아저씨들이 그 언니를 만나보고 싶다고 학교로 나를 찾아오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글을 곧잘 썼던 그 언니는 펜팔로 미국에 사는 남자와 사귀다 결혼해 한국을 떠났다.     본처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사귀던 여자와 가정을 꾸렸다. 평화로웠던 집안이 며느리가 남편에게 ‘친엄마도 아닌데’라며 꾀어 재산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딸을 출가시키고 아들만을 믿고 살던 아줌마는 당황하여 우리 부모님에게 하소연했다. 그 아줌마가 불쌍했다. 위로한답시고 아줌마가 다니던 영락교회에 따라다녔다.     어린 시절 4층에 살던 나는 창밖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지붕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애환이 꿈틀댈까? 생각하며 창가에서 서성이다가 오지랖이 발동하곤 했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지붕 애환 주홍색 지붕들 지붕 뚜껑 지붕 아래

202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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