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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숲속에 있어요. 나에게 눈길을 줘요’라고 반딧불이 나를 향해 반짝이는 듯했다. 나는 크리스마스트리 불꽃이 반복해서 깜박거리는 듯한 어두운 숲속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불빛을 쫓는다. 반딧불들이 내 검은 옷에도 앉아 불을 밝힌다. 자세히 들여다봤다. 머리는 핑크색이고 날개 부분은 검은색이다. 세련된 조합이다.   올여름은 더위가 일찍 시작했다. 무더위가 계속된다. 나는 일상 스케줄을 바꿨다. 새벽에 공원을 산책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창문마다 커튼을 내린다. 실링 팬을 틀고 가만히 앉아 일을 한다. 저녁엔 에어컨을 켜 놓고 공원에 간다. 벤치에 앉아 반딧불을 구경하다가 어둠이 땅속으로 스며들면 집으로 돌아온다. 다른 어느 해보다 반딧불이 왕왕 불빛을 발한다.     나는 늘 혼자다. 남편은 아침 7시에 작업하러 스튜디오에 갔다가 저녁 7시에 돌아온다. 작업에 빠졌는지 일요일도 간다. 오히려 남편이 나가주면 나는 좋다. 우리는 각자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만큼은 잘 맞는다. 내가 외롭다고 하면 그가 힘들 것이고 그가 외롭다면 내가 힘들어질 것이다. 서로 통하는 것은 별로 없지만, 둘 다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     매슬로(Maslow’s hierarchy of needs)의 5단계(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애정 소속 욕구,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 욕구)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실현 욕구의 한 예로 학교 선생이었던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이따금 떠오른다. 이 여자는 50세에 퇴직하고 사이도 나쁘지 않았던 남편에게 이혼 조건으로 퇴직금 반을 줬다. 그리고 작은 백팩 하나 메고 한국을 떠났다. 동남아시아를 떠돌며 배가 고프면 알바하며 자유인으로 혼자 산다. 게다가 자유인, 인도 애인도 있다. 둘이 가끔 우연히 만나면 하룻밤 함께 지내고 헤어지고 지금까지 떠돌아다닌단다.     나는 남편과 함께 여행한다. 하지만 다른 어떤 일도 함께하자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동남아시아를 떠도는 이 여자처럼 살 용기가 나에게 있을까?   ‘나 여기 있어요. 나에게 눈길을 주세요.’ 하는 외로운 몸짓으로 석양에 빠진 비행기 한 대가 하늘에 멈춘 듯 떠 있다. 혼자 있는 나에게 ‘나도 당신처럼 외로워요.’ 손짓하는 듯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외로운 사람들이다. 파트너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나는 저 멀리 떠가는 비행기처럼 서로가 방해하지 않는 온전한 너와 나다. 우리는 떨어져서 각자 평정심으로 자유를 즐긴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자아실현 욕구 욕구 자아실현 욕구 존중

2024-07-25

[열린광장]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

현재 한국 사회에는 분열과 편 가르기의 이분법적 증오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상대 집단을 집요하게 혐오하고 공격한다. 이런 행동은 실체적 진실은 외면하고 자신의 사고와 일치하는 것만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 편향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며 편견에 치우친 폭력이다.     상대방을 매도하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자신의 공격적 태도나 행동도 정당화시킨다. 이들은 본인이 속한 단체의 내부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라기 때문에 비이성적인 편견으로 상대방을 공격한다.     특히 한국의 정치는 머리와 가슴을 짓이기는 이분법적 격돌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격돌 정치의 한복판에 있는 정치인들도 한때는 자신의 분야에서 정상에 올랐던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그래서 국민은 그들을 대표자로 선출했다. 하지만 정치 현장에서 그들은 사유 능력이 없는 꼭두각시의 모습을 보이며 국민을 실망하게 하고 있다.     지난 1961년 ‘뉴요크’지에 실린 한나 아렌트의 기사는 자기 주도적으로 생각하는 능력 없이 상관의 지시만을 따른 한 정치인이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전체주의의 기원’과 ‘인간의 조건’ 저자이며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한나 아렌트는 히틀러의 최측근 친위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재판을 취재했다. 아이히만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로 이송한 후 살해한 주범이었다. 그런데 재판을 참관하고 돌아온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그 시대 최고의 악랄한 범죄자 중 한 명이 되게 한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상관의 지시를 따르기만 했을 뿐 스스로 사유하는 능력은 모자랐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자세히 관찰하면, 갈등을 통해 이득을 얻는 기득권 세력들의 의도적인 조작 때문에 적대감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득권 세력들이 이러한 조작과 반목을 부추기도록 만든 시스템과 제도들을 감지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띄지 않는 사회적 메커니즘들이 조직적으로 우리를 서로 반목하게 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서로 반목하는 대신 힘을 모아 그런 악의적인 시스템과 제도를 타파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각자의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공유적 인간애를 구축함으로써 연대감을 강화해야 한다. 왜냐하면 서로의 다름이 우리가 위험한 집단사고의 난관에 봉착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증오의 반대는 상호 연대를 통해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자각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증오를 끝낼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각자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공통적인 인간성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설득할 뿐 아니라 결국 세상을 변화시킨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라번대학 겸임교수열린광장 존중 사회 사회적 갈등 사회적 메커니즘들 한나 아렌트

2023-09-19

칙필레 '너무 깨어있다' 비판 무슨 일?

일요일마다 문을 닫고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등 신앙심과 보수적인 가치를 강조해온 조지아의 대표 패스트푸드 체인 '칙필레(Chick-fil-A)'가 '너무 깨어있다'는 이유로 보수파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파 트위터 유저들이 최근 며칠 사이 칙필레가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부서'가 있다는 점을 비판하며 보이콧을 하겠다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애틀랜타 저널(AJC) 등 다수의 매체가 보도했다.     칙필레DEI 홈페이지에 따르면 부서는 자사 직원들의 다양한 배경을 존중하고 서로를 위하는 사내 문화와 지역사회 봉사를 위해 앞장서는 곳으로, 2020년 만들어졌다. 최근 '타겟' 등과 같은 기업이 6월 'LGBT 프라이드의 달'을 맞아 다양성 존중을 주제로 캠페인을 벌이며 칙필레의 이러한 행보도 주목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자신을 목사라고 소개한 트위터 유저는 칙필레를 언급하며 "그 자리(DEI 부서)를 지키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다른 유저는 칙필레가 기독교적 가치를 유지하면서 DEI 부서를 둔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며 비즈니스에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 유저는 자신의 트위터에 "칙필레는 반-LGBTQ 혐오 단체에 기부하는 기업"이라며 "칙필레가 다양성을 지지한다고 비난하는 보수파들이 우습다"는 의견을 남겼다. 윤지아 기자비판 보수파 트위터 트위터 유저 다양성 존중

2023-05-31

군인을 존중하고 예우해야 강국이 된다

군인을 존중하고 예우해야 강국이 된다   / 나는 해병대에서 5년을 보냈다.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주임무로 하는 국가전략기동부대다.  해병대는 다른 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지만, 소수정예를 의미하는 ‘작지만 강한 해병대’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해병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강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다. 해병대는 붉은 명찰과 팔각모로 상징된다. 붉은 명찰은 피와 정열, 용기, 신의, 약동하는 젊음을 의미하며, 글자색인 황색은 땀과 인내를 의미한다.     소위로 임관되어 처음 배속 받은 곳은 포항 제 1상륙사단 11연대였다. 병과가 포병이었기 때문에 가끔 야외로 포사격훈련을 나갔다. 일선부대 근무를 하면서 나는 선배들로부터 6.25전쟁 때 해병대가 피땀 흘려 쌓아올린 ‘상승해병’신화를 들었다. 그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도솔산 전투다. 한국전쟁 중 도솔산 전투는 원래 미 해병대가 맡았던 전투였다. 도솔산은 강원 양구의 중동부전선에 위치한1148고지로 태백산맥 중 가장 험준한 곳이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도솔산 점령 임무가 갑작스럽게 한국 해병대로 바뀌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미 해병대가 도저히 이 전투를 수행할 수 없다며 발을 뺐기 때문이었다. 미 해병대가 도솔산 전투를 포기한 이유는 도솔산이 워낙 험준할 뿐만 아니라 그곳을 방어하던 북한군이 좁고 가파른 암석지대에 지뢰를 묻고 수류탄과 중화기를 배치해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요새화함으로써 이를 공략해야 했던 미 해병대는 처음부터 엄청난 인명손실을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 해병대가 그런 인명 손실을 내고도 도솔산 전투를 도저히 승리로 이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도솔산 점령 임무는 미 해병대에서 한국 해병대로 바뀌었다.   한국 해병대는 미 해병대와 교대해 도솔산을 점령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누구 할 것 없이 어안이 벙벙했다. 세계 최강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미 해병대가 포기한 도솔산 점령을 화력과 장비가 미군에 비해 월등히 부족한 한국 해병대가 어떻게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인가. 한국 해병대는 결의를 다지며 각오를 새롭게 했다. 김대식 연대장은 “미 해병대가 못한 일을 기필코 해냄으로써 한국 해병의 기개를 보여주자!”며 움츠려있던 부하 장병들을 다독였다. 1951년 6월 4일 해병대는 공격작전을 개시했다. 해병대는 험준하기로 이름난 도솔산의 가파른 능선 자락을 기어오르며 피와 땀으로 얼룩진 혈전을 치렀다. 인명 손실이 많은 주간공격이 막히자, 야음을 이용한 기습작전을 감행했다. 특공대원들은 대검 한 자루와 수류탄 두 발을 들고 낮은 포복으로 전진해 목표를 하나씩 공략해 나갔다. 이때 소대장들이 앞장서 지휘했다.     그렇게 견고하기만 하던 북한군의 방어진지도 해병들의 목숨을 건 투혼에 하나둘씩 무너졌다.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대대장·중대장·소대장들도 총상을 입고 여기저기서 쓰려졌다. 그러나 그들은 후송을 거부한 채, 이를 악물고 부대를 지휘했다. 해병대는 도솔산에서 모두 그렇게 싸웠다. 해병대의 도솔산 전투의 승리에 군 수뇌부는 물론이고, 이승만 대통령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과 신현준 해병대사령관이 맨 먼저 달려와 승전 축하와 함께 부대표창을 했다. 도솔산 점령 소식을 들은 이승만 대통령은 ‘영웅’들을 격려하기 위해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부대 표창을 하고 ‘무적해병’이란 친필 휘호를 내린다. 또 이 대통령은 그날 생일을 맞은 공정식 대대장에게 깜짝 이벤트도 마련했다. 헬기로 생일 케이크를 공수해 온 것이다. 이 대통령은 태극기와 성조기로 장식된 케이크를 공정식 대대장에게 직접 전달했다.     군대의 존재목적은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 군대는 여름철 난로와 같다. 당장 쓸모가 없다고 해서 내팽개쳐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다. 미국인들의 제대군인(Veteran)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예우는 남다르다. 군대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두 배도 더 비싼 비행기 좌석을 양보받기도 하며, 군인들에게는 항공사의 우대고객인 1등석 승객조차 밀리는 것이 미국에서 군인들의 위상이다. 수년 전 미국의 한 6·25전쟁 참전용사 장례식에 고인과 일면식도 없는 수천 명의 시민이 몰려 화제가 되었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스프링 그로브 묘지에서 90세에 별세한 참전용사 헤즈키아 퍼킨스 씨의 장례식이 열렸다. 그런데 건강상 문제로 유족들이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묘지 측은 장례식 하루 전날 SNS에 특별한 안내문을 올렸다. “젊은 시절 한국을 위해 싸운 미국 군인의 상주 역할을 가족을 대신해 지역주민이 해주길 요청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놀랍게도 장례식날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수많은 시민과 함께 여러 전쟁에 참여했던 제대군인들이 제복을 입고 참석했으며 일부는 수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달려왔다. 장례식에선 군악대의 연주와 오토바이를 선두로 한 추모 차량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퍼킨스씨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나라를 위해 싸운 군인들을 일상의 삶 속에서 우대하는 정서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이 공공장소를 찾거나 비행기에 탑승하면 방송으로 알리고 주변 사람들은 기립박수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또 대통령과 장군을 비롯해 누구나 할 것 없이 이들에게 먼저 경례를 하며 존경의 뜻을 표한다. 2009년 10월29일 새벽 4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 중 전사한 18명의 유해가 비행기에 실려 공군기지로 돌아올 때 새벽 시간임에도 운구가 끝날 때까지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미국이 세계 1위 군사 강국을 장기간 유지하는 비결은 세계 최고 국방비 등 첨단 군사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보훈제도와 국민들 사이에 깊이 뿌리를 내린 보훈문화가 미국을 장기간 유일 초강대국으로 유지하게 하는 힘이다.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군 초급장교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학군사관후보생과 사관학교의 중도퇴교자가 늘고 선발경쟁률은 갈수록 내림세다. 이유는 박봉과 열악한 근무여건 때문이란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이 더는 ‘애국 페이’에 기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군의 초급장교는 국가안보의 중추다. 국방의 중추가 흔들리는 것은 보통문제가 아니다.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수많은 군인들과 군 복무에 자신의 인생의 일부를 바친 모든 이들이 미국의 군인들처럼 존경과 감사를 마땅히 누릴 수 있는 날이 대한민국에도 오기를 바란다. 그들의 꽃같은 청춘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국민의 의무라는 이유로 오롯이 감당한 군인들은 국가와 국민의 감사와 존중을 누림이 마땅하다. 군인을 존중하고 예우할 줄 모르는 나라가 강국이 될 수는 없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김지민 기자군인 존중 한국 해병대 신현준 해병대사령관 도솔산 전투

2023-05-25

[기고] 다양성 존중은 언어에서부터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이 어우러진 미국에 살면서 포용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늘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다양성 가치를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머리로 생각했다면, 미국에 와서는 다양성의 가치를 매 순간 ‘지금 당장 나의 문제’로 느끼고 있다. 검은 머리 아시아인의 외모로, 여성으로, 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서 다양성을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많다.   최근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친구와 시애틀 여행 중에 주변 현지인(백인)들과 대화한 적이 있다. 늘 그렇듯이 아시아인 외모를 한 우리는 “어디서 왔냐(Where are you from)?”는 질문을 받았다. 미국에 와서 정말 아주 많이 받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라고 대답하면 100이면 100명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원래 출신이 어디인데(Where are you originally from)?”라고 되묻는다. 이는 무례한 질문으로 들릴 수 있다. 그 백인 미국인은 ‘미국인이면 이렇게 생겼을 것이고 영어가 모국어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고, 아시아인 외모 사람은 당연히 외국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야 미국에 온 지 4년 정도밖에 안 됐다지만, 그 한인 친구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미국 사회에서 배제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한다.   사실 일상에서 편견을 없애고 다양성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는 일은 그런 미국 백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나 자신도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언어 표현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돌아보게 된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 역사가 있는 미국에서는 자칫하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들을 낮추본다고 오해받거나, 남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다.   미국에 온 뒤 얼마 안 돼서 매달 기자들과 공부하는 프레스 이벤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별 생각 없이 자주 쓰던 ‘브라운백 런치(Brown bag lunch)’라는 단어를 써서 ‘브라운백 런치 프레스 미팅’이라고 내부 문서를 작성하고 동료들과 공유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료가 조용히 다가와 ‘브라운백 런치’에는 흑인에게 부정적인 스토리가 있으니 다른 말을 사용하는 게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그런 내용을 전혀 몰랐던 나는 바로 인터넷에서 그 용어에 대해 찾아봤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1960년대 한 대학교 학생들이 브라운백(마트 등에서 샌드위치 등을 싸던 종이) 색깔을 기준으로 흑인의 피부색을 측정해서 파티 입장 허용 여부를 가렸다는 내용을 봤고, 그런 이유에서 ‘브라운백 런치’란 말을 피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브라운백 런치를 ‘런치앤런 (Lunch and Learn)’ 으로 바꾸었다. 이를 계기로 나 자신부터 언어 민감도를 좀 더 높이고, 또 어떤 말이나 표현을 써서는 안 되는지 찾아보게 됐다.   회사 직원들이 모아놓은 ‘포용적인 언어 리스트’와 작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발표한 같은 내용의 리스트를 늘 챙겨보며, 외부로 나가는 공식 문서뿐 아니라 내부 문서도 성별, 인종, 장애인,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표현은 없는지 두 번 세 번 리뷰한다. 가능하면 성별을 굳이 나타내지 않아도 되는 성 중립성 단어들을 사용한다. 남편/아내, 남자/여자친구를 지칭할 때는 partner를 사용하는 식이다.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인 대변인은 spokesman 대신 spokesperson을 쓴다. 장애를 나타내는 단어는 일반 표현에 섞어 쓰지 않는다. 시각 장애를 부정적으로 고착화할 수 있는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 대신에 ‘인지하지 못한 부분’(not knowledgeable)으로 표현한다. 또한 개발자 용어에서도 포용적 단어를 사용하는데, 예를 들면 허용/비허용을 나타내는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 대신에 허용리스트(allowlist)와 비허용 리스트(denylist)라는 말을 사용한다.   한가지 문화와 인종이 두드러지는 한국 사회에서 50년을 살면서 놓쳤던 부분을 미국에 살면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 시각을 포용하는 일상의 민감도를 높이게 되었다. 내가 소수자로서 나의 나 됨을 존중받고 싶은만큼 우리 주변의 다양한 모습 사람들이 그들 본연의 모습으로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정김경숙 /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기고 다양성 존중 다양성 가치 브라운백 런치 언어 표현

2023-03-10

[데스크 칼럼] 잘나지 않아도 존중받는 사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끝났다.   이번 대회에선 한인 2세 클로이 김 선수가 스키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부문 올림픽 2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인들에게 큰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소식이었다.     하지만, 대회 직전 김 선수는 4년 전 평창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을 ‘쓰레기통에 던졌었다’고 전했다.   올림픽 이후 매일같이 온라인에서 인종차별 피해를 겪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AP통신은 지난 13일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선수들이 인종차별적 공격과 이중잣대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이 항상 인종차별적 폭력에 노출돼 있으며 이는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일 경우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이들은 좋은 성적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때만 그나마 가치있게 여겨지는 것 같다고 기사는 전했다.   이 소식은 미국사회의 고질병인 인종차별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했다.   미국서 태어나 자신의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클로이 김이 이 정도라면 대부분의 한인들이 처한 현실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     가끔 미국생활을 오래 한 한인들과 인종차별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다.   사람마다 경험이 달라 인종차별 유무를 놓고 설전에 가까운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대체로 관찰되는 현상 가운데 두드러진 점은 자신의 분야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거나, 일부 전문직 종사자, 중산층 이상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 사는 사람일수록 이러한 ‘차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에 대한 차별 행위가 적을 수도 있다. 또는 차별적 행위가 아주 세련된 형태라서 미처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직장 내 승진 경쟁 등 차별을 해야 할 ‘결정적 순간’이 없었을 수도 있다.   반면, 불특정 다수 속에서 생업에 종사하거나 ‘잘 나가지 못하는’ 한인일수록 ‘차별’의 경험을 더 많이 갖고 있었다.   지난해 본지 설문조사에서도 한인의 절반 이상이 ‘인종차별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민자 또는 이민자의 자녀로 미국에서 사는 대부분의 한인들은 시민권 보유 여부에 관계 없이 스스로를 미국사회의 주인이자 당당한 구성원이라고 생각한다.   성실히 일해 세금을 납부하고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대우와 존중을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경우 주류사회에 두드러진 공헌을 하거나 탁월한 성과를 입증해야 겨우 차별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다.   이제는 우리 자녀들이 피부색에 관계 없이 올림픽 메달을 따지 않아도, 방역물품을 대량 기부하지 않아도, 잘나지 않은 평범한 시민이라는 것만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박기수 / 편집국장데스크 칼럼 존중 사회 인종차별 경험 인종차별적 폭력 인종차별적 공격

202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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