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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전용 항공사 나왔다

반려견들을 위한 전용 항공 서비스가 시작돼 화제다.   최초의 반려견 전용 항공사 바크(Bark)에어의 첫 취항 비행이 지난 23일 뉴욕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공항을 떠나 LA지역 밴누이스 공항에 안착한 것.   바크에어는 최대 15마리의 반려견과 견주들이 탑승할 수 있는 걸프스트림 G5s 전용 제트기를 투입하고 있으며 충분한 공간 제공을 위해 항공권을 편당 10매로 제한하고 있다.     동반 승객은 최소 18세 이상만 탑승 가능하다.   반려견 1마리와 견주 좌석이 포함된 편도 티켓 가격은 국내선이 6000달러, 국제선은 8000달러며 동반인이 있을 경우 티켓을 2매 구매해야 한다.     기내 서비스로 음악부터 라벤더향 수건은 물론 물 또는 사골육수, 이착륙 기내 압력 변화 대비 귀 보호 기구 등이 제공된다.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취항 초기 소비자들 반응은 뜨겁다. 특히 현재 운항 노선 외에도 신규 취항에 대한 요청도 1만5000건이나 된다고 ABC방송이 전했다.   바크에어 웹사이트(air.bark.co) 예매현황에 따르면 이날 취항편이 조기 매진된 데 이어 24일과 31일 LA발 뉴욕행도 완판된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30일 취항하는 첫 국제선 노선인 뉴욕-런던 항공편도 매진됐다.     지난 2011년 설립된 반려견 전문업체 바크는 ‘반려견을 위한 비행 혁명’을 내걸고 지난달 반려견 중심 항공 체험 서비스를 발표했다.   현재 운항 노선은 LA-뉴욕, 뉴욕-런던이며 승객 수요에 따라 추가할 예정이다. 박낙희 기자 [email protected]항공사 전용 전용 항공사 전용 제트기 la발 뉴욕행 반려견 바크에어 Bark Air

2024-05-27

[기고] 노금석 대위 미그기 귀순 사건

3년 간의 6·25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마무리 된 지 채 2개월이 못 되는 1953년 9월 21일 아침, 소련제 MIG-15 제트기 귀순이 있었다.  MIG-15 제트기를 몰고 김포공항에 착륙한 주인공은 당시 21세의 노금석 전 북한 공군 대위다. 바로 그가 지난달 26일 플로리다주 데이토나비치 자택에서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1932년 함경남도 신흥에서 출생한 노 대위는 1949년 북한 해군 군관학교에 입학해 이듬해 만주에서 비행 훈련을 받은 뒤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19세였던 그는 최연소 전투기 조종사로 소련제 MIG-15 전투기로 100회 이상 출격했다고 워싱턴포스트의 블레인 하든 전 기자가 출간한 책 ‘위대한 수령과 전투기 조종사’에서 회고했다   당시 미국은 공산 측 최신 전투기인 MIG-15기를  피해서  야간에 폭격해야 했다. 당시 매우 우수한 전투기였던 MIG-15의 기체 정보를 알기 위해 미극동사령부는 이 기체를 몰고 귀순하는 최초의 조종사에게 포상금 10만 달러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나중에 밝혀진 얘기지만 노금석은 그 엄청난 금액의 포상금이 있는 줄 모르고 귀순했다고 한다.   그는 훈련을 핑계로 평양순안비행장을 이륙한 뒤 김포공항으로 기수를 돌렸고 17분만인 오전 9시 24분 착륙했다. 이때의 극적인 광경을 전한 보도에 의하면, 김포공항에 착륙한 노 대위는 은색의 제트기에서 내린 즉시 북한 공군의 계급장을 떼었으며, 기타 신분증을 땅에 던져버리고 미군 비행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고 한다. 이후 노 대위는 미국으로 건너가 닉슨 부통령을 면담하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친필로 직접 서명한 미국 시민권을 받아 미국으로 이주했다. 어머니가 이미 월남한 상태여서 극적인 모자 상봉도 쉽게 이뤄졌다.   신변 보호 및 안전상 이유로 노 대위는 1954년 5월 미국에서 케네스 로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  그리고 델라웨어주립대학 항공공학과를 졸업한 뒤 듀폰 웨스팅하우스 등에서 항공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리고 2000년 퇴직 전까지 데이토나비치에 있는 대학에서 17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노 대위를 만난 어머니는 “꿈만 같아서 믿어지지는 않는다”며  “금석이는 외아들로 5년 전 흥남화학학교에 다녔는데, 소위 인민군에서 해양대학에 보내주겠다고 데려간 후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고 했다.  아무튼 철의 장막을 뚫고 날아온 노금석 대위는 꿈에도 잊지 못하던 어머니와 5년 만에 다시 만나는 극적인 모자 상봉 장면을 보여줬다.   이제 고인이 된 노금석 대위는 생전 VOA와 인터뷰에서 “공산주의 독재 정치로 갈수록 후퇴하는 북한과 민주주의 국가로 번창하는 한국을 보면서 곧 통일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평소의 느낌을 말했다. 그의 어머니 고 여사도 기자의 물음에 몇 번이고 이와 똑같은 대답을 했다. 고 여사는 월남 후 4년간 피난민수용소에서 삯바느질하며 아들과의 상봉을 기다리며 살았다고 한다. 아들과 상봉 당시 고 여사는 거칠고 주름진 손으로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고 얻은 검은 십자가를 어루만지며 신기한듯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또 보고 하늘에 감사했다.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했던 북한 공군 조종사 노금석 대위 귀순 사건은 1953년 9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었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노금석 미그기 노금석 대위 제트기 귀순 최신 전투기인

202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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