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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인연을 대하는 자세

살면서 인연을 차곡차곡 쌓기도 하고 때로는 포기하는 시간을 운명처럼 맞이한다. 20년 전쯤, 우리 부부는 우연히 진돗개 백구를 입양해 키웠다. 서로 마음껏 사랑을 주고받았다. 똑똑하고 건강한 백구는 가족 같은 존재였다. 백구는 그렇게 17년여를 우리 옆에 있다가 제 삶의 시간을 모두 채우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백구를 만난 인연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봉사 활동을 하다 보면 늘 가슴 아픈 장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버림받은 개와 고양이들이 철창에 있는 모습을 보면, 인연을 이렇게 쉽게 포기하나 싶어 참으로 안타깝다. 사랑으로 맺은 인연이 이렇게 끝날 줄 누가 알았을까.   오래전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와의 마지막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많이 쇠약해져 병원에 입원했고 입버릇처럼 30년 넘게 지내신 ‘우리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하셨다. 가을이 되면, 집 마당에는 먹음직스러운 모과가 주렁주렁 열렸고, 떨어진 모과를 담아 가려는 동네 사람들로 북적였다. 또 대문 옆에는 특별히 아끼는 푸른 소나무 두 그루가 멋진 자태로 우리 가족을 지켜 보고 있었다. 연못에는 잉어를 키웠고, 동물을 좋아한 아버지 덕에 고양이와 강아지도 키웠다. 주말이면 마당 잔디를 깎고 식탁에 모여 앉은 가족들과 도란도란 아침 식사를 하며 보낸 따뜻한 시간이 집안 곳곳에 쌓여 있었다.   아버지는 삶을 보내며 쌓은 인연의 흔적들로 가득한 집을 그리워하며 병원 침대에서 맞이할 마지막을 끔찍해 했다.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 왔지만 상태가 안 좋아져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고, 한 달 후 아버지는 그렇게 싫어하는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생사를 오가는 시간 동안 삶 속에서 맺은 인연들 혹은 추억들과 어떤 이별을 하며 떠났을까? 아마도 포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아버지와의 마지막이 인연 포기는 아니었다.   부모와 자식이 인연을 끊고, 부부가 헤어지는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이런저런 이유로 버리고 버려지는 관계의 단절 속에서 일생을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이런 단절의 고통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드러나기도 한다.   거리의 홈리스들도 가족이 있을 것이다. 그 가족들은 홈리스가 된 자녀, 배우자, 형제와의 관계를 포기한 것일까 버린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인연의 마지막은 고통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듯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을 살다 보니 인연을 대하는 나름의 방식이 생겼다. 이제는 마음 상하고 골치 아픈 관계는 하나둘씩 포기하기도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효과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연을 포기하되, 상대의 안녕을 비는 마지막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운명처럼 결혼 인연을 맺어 주는 일을 오랫동안 하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이별의 고통 없이 따뜻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 수 있는 인연을 맺어 주려고 노력한다. 한 번 생각하고, 두 번 생각하고, 백번 생각하면서 소개를 하다 보니 회원들과 깊이 인연을 맺고 일하고 있다.   나 역시 인연을 맺고 때로 포기하기도 하지만, 그 선택이 늘 옳지만은 않다. 좋은 인연을 맺어 주는 일에 마음을 다하면서도 인간이기에 점점 ‘Disown(절연)’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이 제니퍼 / 듀오 결혼정보회사 팀장일터에서 인연 결혼 인연 인연 포기 진돗개 백구

2024-11-28

[일터에서] 나의 휴식

나의 휴식 공간은 비행기 안이다. 최근 뉴욕에 지사를 오픈하면서 자주 오가다 보니 오랜 비행시간을 활용하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냈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뇌가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 생각하고 가능한 유익하게 보내려 노력한다. 편안한 옷차림과 자세로 책을 읽고, 휴대폰 사진을 정리하고 이메일도 확인한다. 또 업무 관련 스케줄 정리까지 하다 보면 뉴욕까지 6시간의 비행시간도 짧게 느껴진다.       뉴욕까지 직항편이 편하긴 하지만 경유 노선도 좋아한다. 주마다 스타벅스 커피 컵도 다른 것도 재미있고, 공항에서 지역적 특징들을 보는 즐거움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가끔 혼자 다니다보면  “싱글이세요?” “그렇게 다녀도 남편분이 뭐라고 안 하시나 봐요?”라는 물음부터 “시차 때문에 힘들던데 건강하신 것 같아요” “뉴욕이 좋으세요? LA가 좋으세요?”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무슨 일을 하시나요?” 등 다양한 질문들을 받기도 한다.     뉴욕은 사계절이 있는 역동적인 도시다. 세계적 도시인 만큼 유명한 식당, 그리고 맛있는 빵과 커피가 많은 것도 좋다. 시크한 표정에 빠른 걸음으로 걷는 멋쟁이 뉴욕 주민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처음 뉴욕을 찾았을 때 가장 좋았던 곳은 센트럴파크였다. 이른 새벽부터 조깅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 무슨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센트럴파크의 일상적인 이른 아침의 모습이었다.  맨해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으라고 뛰어야 하는 현실을 보는 것만 같았다.     센트럴파크는 애완견의 천국이기도 했다. 주인과 함께 잔디밭에서 뒹굴고 공놀이를 하며 뛰어다니는 애완견이 많이 보였다.     길거리에 과일가게가 많아 아침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살 수 있는 것도 서부지역과는 다른 매력이다. 또 일주일에 파머스마켓이 4번이나 열려 갓 구운 머핀과 꿀을 살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 다양한 뮤지컬 등 볼거리가 넘치는 곳도 뉴욕이다.     이런 곳에서 살다 보면 꼭 결혼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할 만하다고 느꼈다. 싱글 생활을 즐기는 젊은 층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삶으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뉴욕이 지사를 오픈한 이유이기도 하다.   뉴욕도 장점이 많지만 LA공항에 도착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길거리 과일가게도, 저녁 늦게까지 걸어 다닐 수 있는 곳도, 24시간 운영하는 식당도 많지 않지만 일을 마치고 돌아갈 수 있는 가족과 집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할 일이 많아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 잦을 것 같다.  이 제니퍼 / 결혼 정보회사 듀오일터에서 휴식 휴식 공간 멋쟁이 뉴욕 최근 뉴욕

2024-02-23

[일터에서] 시간의 부자

나이 70에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의 부자가 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게는 온종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잘 사용해야 시간의 부자가 되는 걸까. 당연히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40년 넘게 시험관 아기 박사로서 한 우물을 파는 직업이 있으니, 이거야말로 최고의 부가가치를 만드는 일이다. 더군다나 이제 일하는 것을 고급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하니 즐거운 일이 됐다.     내일은 일요일이지만 아침 7시 반부터 얼린 수정란 녹이는 작업을 하고, 8시부터는 난자 채취를 하고, 환자 남편의 정자를 처리해서 시험관 아기를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9시 반에 수정란 이식을 위해 다른 환자 부부가 오면 엄마의 아기집에서 자랄 수정란을 잘 지키기 위한 조언을 해주고 함께 명상 수행도 할 예정이다. 수정란이 아무리 잘 자라도 엄마의 아기집이 좋은 상태가 아니면 잘 자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부부의 정성이 담긴 진짜 자식 농사는 수정란 이식 후에 시작된다. 이때 중요한 일은 항상 ‘태풍의 눈’을 찾는 명상을 해야 한다는 거다. 부모의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는 엄마의 아기집에서 자라는 수정란에는 태풍 같은 위협이다.   수정란 이식이 끝나면 집에서 휴식시간을 즐긴다. 낮잠도 자고 빈둥거리다가, 오후 3시쯤 다시 수정란 실험실에 가서 아침에 채취한 난자들 가운데 활성도가 좋은 것에만 특수처리 후 보관해둔 환자 남편의 정자들을 합해준다. 체온 상태의 시험관에 15만 개의 정자들이 들어가면, 활성화가 되어 엄청 빠른 속도로 난자들을 향해서 돌격한다. 18시간  동안 정자와 난자들이 스스로 수정하는 작업을 밤새도록 하게 한 다음 다음 날 아침 10시쯤 수정 상태를 확인하고, 수정된 난자들을 선별해 엄마의 아기집과 유사한 환경을 제공하는 특수 배양기에서 나흘 동안 키운다.  잘 자란 수정란은 얼려 놓았다가, 엄마의 아기집이 최적화되었을 때 이식을 하게 된다.   내일 난자 채취를 하는 환자는 부부가 다 혈액 질환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전에 태어난 아이는 이미 혈액 질환으로 고통을 받는 상태다. 이럴 경우에는 수정란이 사흘 동안 자란 16 세포 중에서 세포 하나를 떼어내 유전자 검사 실험실로 보내고, 유전자 검사 실험실 요원은 밤새 작업을 해서 다음 날 아침 8시에 내게 수정란의 염색체 이상 유무를 통보해준다. 나는 즉시 환자 부부에게 결과를 통보해주고, 정상적인 수정란들을 개별적으로 얼려야 한다.     유전자 검사 실험실 요원은 염색체가 정상으로 판명 난 세포들만 따로 혈액 질환 유전자를 검사하는데, 결과가 나오는 데는 14일이나 걸린다. 다음에 혈액 질환 유전자가 없는 수정란을  엄마의 아기집에 이식하게 된다. 겸상 적혈구 빈혈증(Sickle cell anemia) 등 유전적 질환들도 이런 식으로 검사하게 된다. 수정란의 성별도 이식하기 전에 미리 알게 되고, 다운 증후군문제도 미리 알게 되니 환자들에게는 필요한 시술이다. 김학남 / 시험관 아기 박사일터에서 시간 부자 수정란 실험실 수정란 이식 유전자 검사

202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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