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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에 미친 할리우드, 여긴 마치 이태원

  K팝을 트렌드라 하지 마라. 음악 장르의 범주를 넘어섰다.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글로벌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젊은 세대에게 K팝은 문화적 아이콘이다. 26일(내일)부터 사흘간 LA에서는 K팝 최대 축제인 케이콘(KCON)이 열린다. 거대 이벤트를 통해서만 이러한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 할리우드에서조차 K팝이 흐르고 있다.    지난 18일 본지는 K팝에 모두가 미쳐있는 현장을 찾아갔다. 할리우드에서는 지금 ‘서울’이 구현되고 있다.     “다 꼼짝마라, 다 꼼짝마”    빅뱅의 노래(뱅뱅뱅) 가사다. 한인도 아닌 타인종들이 목청껏 한글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다.   18일 오후 11시, 이곳은 할리우드 불러바드 한복판에 있는 클럽 ‘아카데미 LA’다. 세계적 음악 잡지 ‘디제이매그’가 선정한 전 세계 클럽 24위에 오를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은 지금 발 디딜 틈이 없다. ‘일렉트릭 서울(ELECTRIK SEOUL)’ 이벤트가 열리기 때문이다.    소주가 보드카를 대신하는 이벤트다. 디제이가 밤새 전자음악(EDM)을 뒤섞은 K팝만 튼다. 그야말로 할리우드 속 서울인 셈이다.    이 클럽의 보안요원 닉은 “클럽 오픈 한 시간 만에 이렇게 사람이 가득 차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며 “보통 자정을 넘어야 가득 차는데, 유명 디제이가 오지 않는 목요일 행사인데도 이렇게 사람이 몰려드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클럽 측에 따르면 이미 1000여명 정도가 클럽에 입장했다. 클럽 밖엔 입장을 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긴 줄을 이루고 있다. 클럽 직원들이 나와 티켓이 매진되어 더는 입장이 불가하다고 알리고 있다.    클럽 내부에서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K팝이 쩌렁쩌렁 울리고 있다. 1층의 천장과 벽 등을 둘러싼 LED 대형 스크린에는 온통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온다.    백인, 히스패닉, 아시안 할 것 없이 모두가 형형색색의 야광봉을 흔들고 있다. 바텐더들은 야쿠르트와 버블티를 섞은 칵테일을 쉴 새 없이 만들고 있다.    갑자기 환호가 더 커진다. 블랙핑크의 곡(핑크베놈)이 흘러나오자 난리가 났다. 곳곳에서는 떼창을 하고 심지어 블랙핑크의 안무까지 그대로 따라 한다. 이곳이 할리우드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서울 속 이태원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일렉트릭 서울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5월2일(아카데미 LA)과 6월13일(아발론 할리우드) 등 할리우드 지역 클럽에서 진행됐던 이벤트에도 매번 1000명 이상씩 몰려들었다.    이날 외주를 받아 영상 촬영을 한 조나(TFTI 이벤트사)는 “한인 위주의 행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인종이 참석해서 너무 놀랍다”고 말했다.    2층으로 향했다. ‘네 컷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네 컷 사진은 최근 SNS와 한국 내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셀프 사진 방식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선 웨슬리(28)는 “평소 K팝뿐 아니라 한국 인디 밴드 음악까지 즐겨 듣는다”며 “최근 관광차 한국을 방문했는데, 한국 문화, 음식, 사람들 다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아이돌 포토 카드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아이돌 카드를 집어 든 히스패닉계 에딧(24)은 “노래가 좋고 음료가 특별해, 세 번의 행사에 모두 참여했다”며 “평소 한국 드라마도 즐겨 보고, LA한인타운의 한식당도 자주 간다”고 말했다.    LA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아시아계 레아(48)는 “일렉트릭 서울 때문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왔다”며 “막걸리랑 소주가 집에 쌓여 있고, 조만간 한국도 방문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일렉트릭 서울’ 중심에는 한인이 있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음악 페스티벌과 클럽 등에서 이벤트를 개최하는 주류 회사 인섬니악(Insomniac)에서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매니저로 활동하는 이승훈(25)씨가 일렉트릭 서울의 총괄 프로듀서다. 그는 인섬니악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인이다. 본래 EDM 페스티벌을 주로 기획하는 인섬니악이 K팝 이벤트를 기획한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프로듀서는 “K팝의 수요를 인지하고 이에 부응하는 재미난 행사를 기획하기 위해 회사에 EDM과 결합한 이벤트를 제안했었다”며 “K팝은 단순히 음악 장르를 넘어 하나의 큰 움직임이 됐는데 중독적인 가사와 멜로디에 EDM의 에너지까지 더해지면서 시너지가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실제 K팝의 열기는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최근 ‘2023년도 4분기 외래 관광객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 K팝과 같은 ‘한류 콘텐츠(31.9%)’를 가장 많이 꼽았다.    한인 2세 디제이 벤저민 이(31)씨는 “음악뿐 아니라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최근 수년간 한국 문화들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며 “한국의 콘텐츠는 이제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일렉트릭 서울은 계속된다. 네 번째 이벤트는 내달 9일 샌디에이고 지역 유명 클럽인 블룸에서 진행된다. 이어 22일에는 LA지역 익스체인지 LA에서도 다섯 번째 이벤트가 열린다.    미국에서 서울을 느낀다. 그 중심에 K팝이 흐른다.  할리우드=정윤재 기자 jung.yoonjae@koreadaily.com할리우드 K팝 케이팝 일렉트릭 서울 LA 로스앤젤레스 미주중앙일보 인섬니악 ELECTRIK SEOUL 이승훈 빅뱅 네컷 사진 방탄소년단 BTS 블랙핑크 KPOP

2024-07-24

[마음 읽기] 눈보라와 무공용

 최근에 제주에도 한파가 몰아쳤다. 눈보라도 연일 쳤다. 세상이 겨울 들판 같았다. 눈보라가 칠 때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찼다. 그것은 마치 바닷물이 제방을 넘어서 흐르는 월파(越波) 같았다. 눈보라 뒤에는 또 눈보라가 따라왔다. 나는 언젠가 아득하게 너른 들판을 지나가는 눈보라를 한참을 바라보았던 때가 있었다.   눈보라에 대한 느낌은 졸시 ‘눈보라’를 통해서도 쓴 적이 있다. “들판에서 눈보라를 만나 눈보라를 보내네/ 시외버스 가듯 가는 눈보라/ 한 편의 이야기 같은 눈보라/ 이 넓이여, 펼친 넓이여/ 누군가의 가슴속 같은 넓이여/ 헝클어진 사람이 가네/ 그보다 더 고독한 사람이 가네/ 그보다 더 기다리는 사람이 가네/ 눈사람이 가네/ 눈보라 뒤에 눈보라가 가네”라고 썼다. 정말이지 눈보라는 앞뒤 사정이 많은 한 사람의, 신산한 세상살이 같기도 하고, 우리가 가끔 갖게 되는 쓸쓸한 내면의 풍경 같기도 하다. 눈보라는 치지만 한쪽에는 핀 꽃이 또 있어서, 눈 속에서 동백은 더 붉고 한라봉 열매는 더 샛노랗다. 쌓인 눈을 밀어내고 나면 또 눈이 와 덮였다.     공터에서 엄마와 아이가 눈사람을 만드는 것을 보기도 했다. 두 개의 눈덩이를 굴려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서는 귤껍질을 이용해 눈과 코와 입을 만들고, 나뭇가지를 꽂아 팔을 만들어 놓고서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보며 흐뭇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절로 흡족하고 내 마음이 양지처럼 밝고 따뜻해졌다.     지붕에 쌓인 눈들은 처마 아래로 털썩털썩 떨어져 내리고, 그때마다 눈이 좋아 마당에 나와 뛰고 있던 강아지는 깜짝깜짝 놀라워했다. 물론 강아지는 곧 잊고 다시 흰 눈 위에 앙증맞은 발자국을 찍으며 뛰어갔다 뛰어왔지만. 처마 끝에는 고드름도 달렸다. 고드름을 얼마 만에 다시 보는 거야, 라고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눈을 치우다 몸이 지치면 툇마루에 걸터앉아 눈 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다시 기운이 나면 또 나가서 눈을 치웠다. 눈보라가 성가시다는 생각조차 잊고서. 며칠 동안 무언가를 한다는 의식 없이 눈세상 속에서 살았는데, 밤이면 아주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잠 속으로 이처럼 빨리 깨끗하게 빠져들 수도 있는 것을 왜 대개는 혼미하게 잠이 들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무공용(無功用)’이라는 말이 있다. 무공용은 어떠한 조작이나 작위 없이, 차별이나 분별이 없이, 물 흐르듯이 자연 그대로에 맡긴다는 뜻이다. 작고한 이승훈 시인의 유고시집을 평하면서 송준영 시인도 이 말로 이승훈 시인의 시 세계를 해석했다. 이승훈 시인의 시 가운데 ‘그저 있을 뿐이다’라는 제목의 시는 다음과 같다. “산에 붙은 것도 아니고 산에서 튀어나온 것도 아니다. 오 산사 보고 절한다. 눈이 오기 때문이다. ‘저게 산이야? 산이 아니야?’ 절 앞에서 눈발 맞으며 묻는다. 그저 있을 뿐이다. 모두 그저 있을 뿐이다.”   시인은 산에 갔다가 산사 앞에 이르러 묻는다. 산사는 산이라고 해야 하는지 산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지를.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산사는 그저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냥 그곳에, 그 자체로, 그 상태 그대로 줄곧 있다는 것을. 이 시에서처럼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무공용의 가치를 따르는 일일 테다. 신기할 것도 없이 그대로 그렇게 모든 것은 존재하고 있는 것일 테다.   지금 바로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도 그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옛일에 대해서도 잊지 못하고 매달리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아쉬움이 남더라도 아쉬운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별문제가 없어,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게도 한 해가 다 가니 이러하고 저러한 일들이 생각나지만, 무공용의 가치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선 한 해를 떠나보내 보는 것이다. 문태준 / 시인마음 읽기 눈보라 무공용 이승훈 시인 송준영 시인 겨울 들판

202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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