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종교와 트렌드] 약한 자 세워야 할 이민교회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묻지마 흉기와 총기사건이 연일 일어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얼마 전 개봉한 드라마 '비프(Beef)'는 주인공의 사소한 운전 다툼으로 시작된 에피소드가 인간의 근원적인 분노와 좌절까지 연결되면서 과연 누가 나의 적이고 친구이고 이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 현대사회를 '분노 사회'라고 부를 수 있겠다.   특히 최근 한국 뉴스를 보면 한국도 이제는 치안 안전 국가가 아닌 것 같다. 묻지마 흉기 난동이 일어나고, 여성들이 대낮에도 성폭행을 당할 수 있는 불안한 나라가 되었다. 그 이면에는 한국인들의 좌절과 불안, 사회 전체가 병들었음을 나타내는 신호라고도 생각한다. 한국 사회가 점점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금수저가 금수저를 낳는 사회를 만들고 흙 수저들에게는 절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약육강식 사회가 되었다.     또한, 한국에 가끔 출장을 가서 운전을 하다 보면 사람들의 운전 매너 때문에 놀라곤 한다. 끼어들기를 하면 욕설에, 보복 운전에 살벌하기 그지없다. 누구 하나 걸려봐라 하는 식 같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을 보면 범죄자들의 태연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SNS로 인해 사람들이 즉각적인 쾌락을 느끼고 조금만 남이 피해를 주면 바로 응징하려 한다. 또한, SNS로 남들과 비교 당하는 기분 때문에 쉽게 좌절을 느낀다. SNS는 진중한 사고력을 떨어트린다. SNS가 사람들의 참을성을 더욱 약하게 하는 것 같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전후 맥락을 사고하는 능력도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한국은 점점 공동체성을 잃어가는 사회가 되고 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사회를 지탱해 주는 힘은 공동체성이다. 서로 돌보는 것이 사회적 자본이라 생각한다. 각자도생의 사회가 될수록 나의 이웃은 이겨야 할 경쟁자가 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심한 듯하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돌보지 않는 사회가 되면서 취약 계층이 더욱 많아지는 것 같다. 나만 빼고 다 행복해 보여서 대중을 향한 테러를 하는 행동은 사회가 암에 걸려서 나타나는 증상이라 생각한다.   특히 한국 교육들이 나만 잘 살고 보자는 엘리트주의에 빠져있고 모두가 의사, 변호사가 되려는 사회는 정상일 수 없다. 앞으로 겪게될 초고령화 사회로 인해서 한국의 경제는 밝지 않다. 한국은 지금 경제적으로는 최고 절정을 이룬 듯하다. 그러나 서로 돌보는 공동체성이 결여되어 있는 한 지속적인 풍요를 이루기 어렵다.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적이 되어 '만인이 만인에 대한 투쟁'이 되고 국가가 이를 통제하는 사회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약한 자들을 챙기는 사회가 되어야 지속적인 풍요를 누릴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미국이 아직은 희망이 있다. 미국의 경쟁력은 여러 비영리 단체와 봉사자들, 장애인 배려와 약한 자를 돌보는 배려 사회에서 나오는 것 같다. 미국에 있는 한인 이민교회의 역할도 교회에서 돈 있는 사람들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들을 세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jay@jnbfoodconsulting.com 이종찬 / J&B 푸드 컨설팅 대표종교와 트렌드 이민교회 한국 사회 한인 이민교회 사회 구성원들

2023-08-28

"이민교회 미래 밝지 않지만…연합해서 힘 모아야"

50대로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목회지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토한인장로교회도 변화가 필요했다. 그때부터 목회를 두고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토론토한인장로교회 20주년(1987년)을 한 해 앞두고 당회에 조심스럽게 리더십 교체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당회도 덤덤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서로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했다.     서로의 생각을 확인한 뒤 기도의 시간을 갖고 있는 가운데 교회는 20주년을 맞았다. 때마침 그때 나성영락교회에서 청빙 제의를 받았다. 청빙을 받기 1년 전부터 당회에 사임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그해 9월 사표를 냈다.   물론 자세한 이야기를 모르는 일부 교인들은 '큰 교회로 가려고 사표를 냈다'는 오해도 했다. 그런 게 절대 아니었지만 항변하지 않았다.     처음 나성영락교회에 청빙을 받아 간 것은 1988년 1월이었다. 당시 김계용 목사 후임으로 청빙을 받았고 1989년 10월부터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받았다.   김계용 목사님과의 인연은 깊다.     청년 시절 서울장로회신학대학 재학중에 대구에서 군대(당시 2군 사령부ㆍ1957~1960) 생활을 했었다. 군시절 잠시 외출했다가 대구중앙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는데 그때 김 목사님이 그 교회에서 담임 목회를 하고 계셨다. 당시 김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정말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분의 설교, 성품 등 모든 것을 본받고 싶었다.     이후 김계용 목사님은 대구에서 서울 무학교회로 목회지를 옮기셨다. 그 사이 나는 제대를 한 뒤 남은 학업을 다 마쳤다.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장 먼저 무학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 김 목사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며 '무학교회에 교육 전도사 자리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분 밑에서 사역을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김 목사님은 '자리가 없다'며 거절하셨다. 훗날 나성영락교회에서 청빙을 받은 뒤 김 목사님을 만나 예전 일을 물어봤다. 그때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돌이켜보면 인연이란 건 참 신기하다. 그때 무학교회에서 사역은 못했지만 김 목사님은 27년 후에 나를 후임 목회자로 결정하셨다. 그렇게 인생의 방향이 또 한번 바뀌게 됐다.     처음 LA에 갔을 때 김계용 목사님은 은퇴를 앞두고 안식년을 보내고 계셨다. 청빙을 받고 일단 행정목사로 사역했지만 주일 설교도 하고 대리당회장 역할도 맡았다. 이후 김 목사님이 돌아오셔서 8개월 정도 공동 목회를 했다.   젊은 시절 김 목사님과 꼭 같이 사역을 해보고 싶었는데 뒤늦게나마 LA에서 그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 짧지만 김 목사님과 공동목회를 했던 그 시간은 참으로 유익했다.     당시 나성영락교회는 리더십 이행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사역 철학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김 목사님과 함께 수개월간 사역하며 그분의 목회를 이해할 수 있었고 부작용없이 사역을 인수인계 하는 시간이 됐다.   당시 나성영락교회는 동양선교교회와 함께 LA의 양대 교회였다. 그때 한인 사회에는 이민 교계를 대표했던 목회자 4명이 있었다. 나성영락교회 김계용 목사님을 비롯한 임동선 목사(동양선교교회), 조천일 목사(라성빌라델비아교회), 김의환 목사(나성한인교회) 등이다.   그때 한인 교계의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오렌지카운티 지역에서는 김광신 목사의 은혜한인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이민 교회가 서서히 활기를 띠는 시기였다.   그 가운데 젊은 목회자가 청빙을 받아 왔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기대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담임목사가 되고 나서 3년간 교회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주보 양식까지 그대로 두었다.   이유가 따로 있었다. 담임목사로 부임했다고 오자마자 기존의 것을 바꾸기 시작하면 전임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일이다. 전임자를 따르던 교인들에게도 섭섭한 감정이 생길 수 있다. 교회가 잘 해오던 것을 굳이 바꿀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그것을 이어가는 노력이 더 중요할때도 있다.   교회 사역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 건 담임목사가 되고 나서 3년 정도 지났을 때다.   전통 형식의 예배 대신 현대적인 느낌의 '컨템포러리(Contemporary)' 예배를 도입했다. 과감하게 목회자 가운도 벗었다. 설교를 하는 강단도 좀 더 자연스럽게 바꿨다.   외형을 바꾼다고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다. 그 당시 이민 목회를 경험하면서 느낀 부분 중 하나는 교회에서는 열심인데 직장이나 가정에서는 비신자처럼 살아가는 신앙인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민 생활 자체는 절대 녹록하지 않았다. 삶이 고단하다 보니 마음의 상처를 가진 이민자도 많았다. 경제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거나 가정이 깨져 아픔을 안고 있는 이들도 많았다. 가정을 바로 세우고 치유하는 사역도 필요했다.     1세대 이민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으면서 2세들도 미국에서 태어나기 시작했다. 차세대 기독교 교육의 필요성도 절실히 느끼기 시작했다. 한인교회가 더 이상 울타리 안에만 있어서는 안 됐다. 지역사회, 타인종과도 교류해야 하는 중요성도 절감한 게 그때다.   교회 규모가 크니까 토론토에서 사역할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300명 정도까지는 목회자와 교인이 어느 정도 관계성을 가질 수 있었는데 큰 교회로 오니까 그 부분이 참 아쉬웠다.   사역은 관계가 중요하다. 당회원 가정을 개인적으로 만나 좋은 식당에서 대접을 했다. 그들의 삶을 듣고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고자 했다. 나중에는 3가정씩 함께했다. 당회원들도 부부끼리 친해지고 관계성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목회 비전을 세웠다. 총 7가지였는데 ▶복음적 설교와 사역을 통한 전인적 구원 ▶이민자의 아픔과 필요를 채워주는 교회 ▶평신도 리더를 키워 그들과 함께하는 교회 ▶2세 교육과 차세대를 세워주는 목회 ▶세계선교 리더십을 발휘하는 목회 ▶지역사회를 섬기는 목회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 만들기 등에 주력했다.   목회를 하면서 무엇보다 차세대 사역에 중점을 뒀다. 이중언어가 가능한 교역자를 모집했다. 주일학교 교사들도 이중언어를 사용하게 했다. 그때 2세들을 위해 영어권 목회도 시작했다. 이중언어 사역을 시작했더니 어느덧 주일학교 학생들만 1500명 이상 모였다.   1000만 달러 장학기금 모으기 운동을 시작했다. 1세대에서 끝나는 한인사회가 아니라 미래를 살아갈 차세대 한인들을 위해 씨앗을 심는 게 필요했다. 장학기금을 모았더니 매해 30만 달러가 나왔다. 그 장학금으로 목회하는 동안 3000명 이상 학생을 도왔다. 박사 학위 과정에 있는 학생만 100여 명 이상이었다. 지금은 그 학생들이 곳곳에서 대학 교수, 목회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도 나성영락교회는 그때 모인 기금으로 장학회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을 키운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부교역자의 성장도 필요했다. 함께 동역 하면서 그들을 최대한 많이 격려했다. 그때 부목사로 있었던 진재혁 목사, 박형은 목사, 양춘길 목사 등 많은 교역자가 이후 교계 곳곳에서 자기 몫을 다하는 목회자가 됐다. 그야말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성영락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27가정에 매월 2000달러씩 지원하며 선교사를 파송했다. 선교지 현지 목회자 160명도 도왔다.     IMF때 한인 선교계도 너무나 힘들었다. 그때 KAMSA라는 기관을 조직해서 500명의 선교사에게 매월 200달러씩 보내는 운동을 펼쳤다.   그렇게 나성영락교회에서 16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70세가 정년이었지만 나는 68세에 은퇴를 결심했다. 전임인 김계용 목사님도 정년을 채우지 않았었다.     나는 참으로 받은 게 많은 목회자다. 목회를 하며 이렇다 할 위기도 사실 없었다.   요즘 젊은 목회자들을 보면 사실 마음이 아프다. 목회 환경이나 상황이 예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지고 있다. 신학을 하겠다는 젊은이도 줄고 있다. 주변을 보면 택시 기사를 하는 목사들도 있다. 특히 중고등부 같이 차세대를 담당하는 사역자들이 그렇게 힘들다고 하소연을 한다. 한인 교회도 팬데믹을 거치며 많이 사라졌다.   인간적으로 이민교회 미래를 생각하면 사실 밝지 않다. 그럴수록 소형 교회들은 오히려 연합 운동 등을 통해 힘을 모아야 한다. 이중언어가 가능하고 합리적인 젊은 목회자들이 헌신하는 마음으로 열정을 갖고 임하면 그래도 한인 교계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관련기사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던가" 고 박희민 목사가 남긴 이야기<1> 정리=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이민교회 미래 나성영락교회 김계용 훗날 나성영락교회 후임 목회자

2023-05-29

한어, 영어권 교회 복음 동역 나눴다

      열린문장로교회(담임 김용훈 목사)가 한어, 영어권 교회 지도자들을 초청해 복음 동역의 고민과 비전을 함께 나눈 2023 열린문 컨퍼런스를 성황리에 종료했다.   북미 전체에서 모인 24개 교회 목회자와 평신도 리더들, 열린문 교회 목회자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대 교회 현장과 신학적 관점에서의 미래교회를 주제로 세미나와 강의가 열렸다.     컨퍼런스는 32년의 여정을 통해 동역을 이루고 있는 열린문 교회의 ‘상호의존교회(Interdependent Church) 모델’ 사례를 나누며 다음 세대와의 사역과 비전을 도모했다.     개회예배에서 김용훈 목사는 “생존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목회를 하자”면서 “열린문 컨퍼런스가 목회의 노하우를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과 은혜로 하나님이 이끄는 각 교회 고유의 지문을 발견하는 건강한 교회를 꿈꾸자”며 참석자들을 고취시켰다. 이어 존 차 목사와 함께 30년 역사에서 보여준 상호의존 교회의 선교 경험을 나누었다.     저녁 집회를 이끈 김대영 목사(휄로쉽교회,MD)는 선교적 교회는, ‘교회 본질인 선교를, 교회 성장의 프로그램으로 전락시킨 기독교의 반성에서 시작한다’는 레슬리 뉴비긴의 말을 인용하며 “교회의 본질을 다시 고민하고 선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초점을 맞추자”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선교적 교회는 지역간, 세대간, 인종간 통합을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주제 강의에서 피터 차 교수(트리니티 신학교)는 한인 2세, 3세 이민자들이 다시 이민 교회를 찾는 상황을 설명하며 “미국 기독교는 건강하고, 선교적인 교회들이 필요하다”면서 미국내 디아스포라 교회의 큰 그림을 보여주었다.   2023 열린문 컨퍼런스는 북미 이민교회의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를 계획하도록 구성돼 ‘전통적 교회에서 선교적 교회로’ 라는 주제로 이민 교회 변화에 대해 평신도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이 고민하며 의견을 나누는 것으로 진행됐다.     컨퍼런스는 열린문 교회 김용훈 목사와 영어권 존 차 목사의 ‘상호의존 교회 케이스 스터디’ 및 트리니티 신학교 피터차 교수의 ‘이민 교회의 큰 그림과 디아스포라 교회에 대한 제안’, 데이비드 장 목사와 김대영 목사가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하는 ‘전통적 교회의 선교적 교회로의 전환에 대한 개교회의 변화”를 설교했다.   컨퍼런스 셋 째날인 10일에는 열린문 장로교회에서 32년 목회한 김용훈 담임목사의 '이민 교회의 리더십’을 나누었다.   김용훈 목사는 “북미 전역에서 온 목회자들과 평신도 리더들이 참여해 다음 세대와 함께 하는 목회와 선교에 대해 질문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해줘 더욱 도전이 되는 시간이 되었다”며 컨퍼런스 주최 소감을 밝혔다.  문의: 703-318-8970(한어권) 703-318-8972 (영어권)        conference@opendoorpc.org,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영어권 교회 영어권 교회 교회 목회자 북미 이민교회

2023-05-12

"복음의 동역을 꿈꾼다"

      열린문장로교회(담임 김용훈 목사)가 복음의 동역을 함께 지향하는 한어권과 영어권 교회 지도자들을 초청해 오는 5월8일 부터 10일까지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이번 컨퍼런스는 한어권과 영어권 공동체가 서로 협력하며 의존하는 ‘상호의존교회(Interdependent Church) 모델’을 통해 사례를 나누고 다음 세대와의 사역과 비전을 나누는 컨퍼런스로 준비된다.  올해 2023 열린문 컨퍼런스는 ‘전통적 교회에서 선교적 교회’를 주제로 이민 교회 변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평신도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이 함께 하도록 구성돼, 지금껏 참여했던 리더들에게도 북미 이민교회의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시간으로 마련될 예정이다.   김용훈 목사는 “미주 전역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목회의 경험을 함께 나누어 주기를 기대한다”며 “세대와 문화의 벽을 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함께 동역하기를 기대하며 초대한다"고 강조했다. 컨퍼런스는 김용훈 목사와 영어권 존 차 목사의 상호의존 교회 케이스 스터디와 트리니티 신학교 피터 차 교수의 이민 교회의 큰그림과 아스포라 교회에 대한 제안 , 전통적 교회의 선교적 교회로의 전환에 대한 개교회의 등 고유한 변화를 향해 도전하게 된다.  저녁 집회 강사로 나서는 김대영 목사(휄로쉽교회,MD)는 한어권 사역의 관점에서 영어권 교회와의 동역에 대해 강의하고, 열린문 영어권 교회의 데이비드 장 목사는 한어권 교회와의 동역에 대해 말씀을 전할 예정이다.   그동안 열린문 컨퍼런스는 다민족 신학을 대표하는 트리니티 신학교의 Tite Tienou교수 등 신학자들과 이민교회의 리더들을 초청해 다민족 사회의 미국 이민교회 비전을 공유해 왔다. 문의 : 703-318-8970 장소: 3001 Centreville Rd. Herndon VA20171(열린문 장로교회)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복음 컨퍼런스 북미 이민교회 이민교회 비전 영어권 교회

2023-04-12

"교인들과 교감 없는 목회는 불가능 합니다"

LA를 대표하는 교회 중 하나인 '충현선교교회'가 40대 목회자를 담임으로 세웠다.     국윤권(46) 목사가 충현선교교회 제3대 담임목사로 공식 취임한 지 한 달째다. 이 교회는 1985년에 설립됐다. 40년 가까이 LA한인교계와 역사를 함께 한 이 교회는 부침이 적었다. 1대(고 정상우 목사), 2대(민종기 목사) 등 담임 목회자들이 꾸준하게 사역을 해오며 탄탄한 교회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한인 이민 교계는 이제 세대, 문화 등으로 변화의 갈림길에 서있다. 이 가운데 충현선교교회는 1.5세이자 40대 젊은 목회자를 통해 다시 한번 미래를 그리고 있다. 최근 국 목사를 만나 그가 그리는 교회의 모습을 들어봤다.   -민종기 목사(전임)와 잠시 함께 사역했는데.   "10개월 정도 함께하며 많은 감동을 받았는데…그 중 37년간 교회가 두 명의 담임 목회자와 함께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여러 이유로 리더십이 자주 바뀌는 이민 교계를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거다. 교인들이 기본적으로 목회자를 불신하기보다 신뢰해준다. 매우 건강한 교회라는 것을 느꼈다."     -과도기의 이민 교계다.   "어르신들의 신앙이 다음 세대로 연결돼야 하는 상황이 맞다. 나는 이민교회에서 자랐고, 이민교회를 경험했다. 그 누구보다 이민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한 면에서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민교회에 대한 경험은.   "14살 때 LA 인근 롤랜드하이츠 지역에 이민 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를 시카고로 갔다. 이후 애틀랜타, 시애틀에서도 한인 이민교회를 다녔다."   -어떤 모습을 봤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교회가 하나 되는 것보다는 분열과 갈등하는 것을 종종 봤다. 친구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도 지켜봤다. 그래서 내 관심은 '목회자와 성도가 하나가 되어 나아갈 수 있을까' 였다. 저마다 자기 주장도 있고 배경도 다르다. 하나 되기 위해 예수의 마음으로 낮아지는 것이 이민 교회에서 제일 힘든 부분이 아닐까 싶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다음 세대가 일어나려면 먼저 기성세대가 하나 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 세대는 기성세대를 보면서 꿈을 꾼다. 나 역시 그런 모습을 위해 낮아지고 배우고 훈련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소통과 사랑이다."   -변화는 쉬운가.   "변화가 없다면 교회는 발전할 수가 없다. 기성세대와 대화를 해보면 그들도 변화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을 바탕으로 '나'부터 넉넉해져야 한다. 예수가 이 땅에 성육신한 그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 이 과정을 모두가 함께 겪으면 사랑을 바탕으로 소통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소통을 중시하는 것 같다.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을 쪼개서라도 교인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성도와 교감이 없으면 목회는 불가능하다. 못 만나면 목회를 안 하는 게 낫다. 목회자에게 필요한 말을 귀 담아 들으려고 한다. 교인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도해드려야 한다. 그걸 놓치면 목사로서 너무 불행하지 않겠나. 나는 그게 목회라고 배웠다."   -목회에 영향을 준 인물이 있나.   "아버지가 목회자였는데 장애인이었다. 생전에 장애인 사역을 하셨는데 아버지를 통해 목회를 배웠다. 자신보다 더 성한 교인들을 찾아가서 손 잡아드리고 기도해주시는 모습을 많이 봤다."   -사회적으로 교계 이미지가 부정적인데.   "정말 목회자 중 한 사람으로서 죄송한 마음이다. 그만큼 신앙생활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행복이 복음에는 있다. 우리는 부족하더라도 예수는 정답이다. 그런 부분에서 교회의 본질을 세상이 봐줬으면 좋겠다. 물론 교회도 잘해야 하겠지만 사람의 부족함 때문에 교회의 본질을 오해하거나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다."   -꿈꾸는 교회 상은.   "선교하는 교회를 꿈꾼다. 사실 선교라는 용어보다 '미션'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내려놓고 독생자를 보내 신 것처럼 나를 내려놓고 이타적 방향으로 사는 것, 이게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이다. 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어디든 가는 게 우리의 삶이 아닐까 한다. 교회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방침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뜻과 타인의 필요를 구하는 것이 미션이다."   -어떤 목회자로 남길 원하나.   "사랑이 많은 목회자였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다른 건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목사였다는 말을 듣는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국윤권 목사는   캘스테이트롱비치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트리니티시학교에서 목회학 석사(M. Div)와 신학 석사(Th.M) 학위를 받았다. 이후 시카고 여수룬교회, 애틀란타 새한장로교회, 시애틀 형제교회 등에서 사역했다. 목사 안수는 지난 2006년 미국장로교(PCA)에서 받았다. 장열 기자불가능 목회 한인 이민교회 담임 목회자들 애틀란타 새한장로교회

2023-01-09

[삶과 추억] 건강한 이민교회 만들기 헌신…LA기윤실 창립 유용석 장로

LA기독교윤리실천운동(LA기윤실)을 창립한 유용석 장로(사진)가 4일 오전 8시20분 별세했다. 97세.   유 장로는 미주 한인 이민 교계를 위해 평생 헌신해 온 인물이다. 그는 건강한 이민 교회를 세우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지난 1993년 LA기윤실을 창립했다. 당시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교수), 김인수 교수(고려대 경영학과), 손봉호 장로(고신대 석좌교수) 등이 유 장로를 도와 LA'기윤실'에 힘을 보탰다.   유 장로는 평소 “신앙을 실천하고 정직하고 검소하게 나누며 살자”고 말해왔다.   이로 인해 LA기윤실은 창립 이후 한인 교계에서 골수 기증운동, 고려인 생활 필수품 및 의약품 지원, 북한 어린이를 위한 사랑의 빵 나누기 운동, 탈북자 돕기 운동, 조선족 학생 장학금 제공 등 수많은 지원 사업 및 캠페인을 전개해왔다.   특히 유 장로는 기독교인으로서 건강한 이민 교회를 만드는 일에도 사력을 다했다.     그는 LA기윤실을 통해 교인들을 위한 생활신앙운동, 교회를 바로 세우는 건강교회운동 등을 전개했다. 또, 한인 교계의 투명한 재정을 위해 정직한 세금 내기 운동은 물론 매해 건강교회 포럼, 목회자 초청 공개강좌 등도 정기적으로 개최했었다.   유 장로는 1925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3살 때 어머니에 업혀 북간도로 갔다. 이후 20대 중반까지 평양 등에 살다가 1.4 후퇴 때 월남했다. 생전 그의 애창곡은 ‘눈물 젖은 두만강’이었다. 평생 북녘땅을 가슴에 품고 북한 어린이 돕기 등에 앞장섰던 이유다.   그는 교사로 일하다가 1975년 도미했다. LA로 이민 온 뒤 그는 무역업에 종사했었다. 당시 유 장로는 이민자이자 기독교인으로서 사회 생활을 하는 가운데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LA기윤실 창립의 근간이 된 생각이었다.   그는 지난달 30일 호흡이 어려워지며 풀러턴 지역 그린필드케어센터로 들어갔다. 이후에도 방문객 한 명씩 모두 기도를 해주며 삶을 정리해나갔다.   아들 유대호 목사(갓즈패밀리교회)에 따르면 유 장로는 이날 오전 가족과 함께 마지막 예배를 드렸다. 이후 “다 끝났다” “내가 더 고맙다” “I love you” 라며 마지막 세 마디를 하고 눈을 감았다.   장례 예배는 오는 16일 오전 10시 나성성결교회에서 진행된다.   ▶연락: (909)910-9261 장열 기자삶과 추억 이민교회 유용석 유용석 장로 건강교회 포럼 생활신앙운동 교회

2022-04-04

"이민교회, 1세와 2세의 공통분모 될 수 있나"

  ━   한인 교회가 사라진다 〈5〉     이민 1세대와 생각 다른 2세들 교회 운영, 철학, 방향성도 달라   1세들은 이민자, 성인 사역 추구 2세들은 아시안, 다민족 중심 사역    이민교회 유지, 생존에 몰두해와 장기적 안목 갖고 미래 준비해야    한인교회는 이민자의 모임이다. 거기서 파생되는 여러 특수성은 곧 이민교회의 정체성이 됐다. 한인교회는 민족성 언어 문화 사고 등의 공통분모를 소유한 이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 한인교회가 이민 사회를 지탱하는 한 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문제는 이민 역사가 길어지면서 세대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 1세대 중심의 한인 교회에도 급격한 변화를 요구한다. 그 흐름 속에 어쩌면 소멸과 생존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미래는 다가오고 있다. 이민교회는 왜 변해야 하는가. 오늘날 한인 교회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장열 기자   2세들은 1세 교회의 운영 방식 등을 답습할 수 있을까.   내셔널서베이위원회가 발표했던 '북미주 전국 한인교회 실태' 조사(4109명 참여)에 따르면 한인 2세 목회자 5명 중 2명(40.7%)이 '주류 교계 지도자를 사역 모델로 삼고 배우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결과는 2세들이 1세 목회자에게 배울 점이 없다거나 윗세대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2세들의 사고로 운영되는 교회는 1세권 교회와 토양 구조 등에서 차이가 있다.   한인 2세 제이든 김 목사는 "1세들의 영성 신앙적 열심은 배울 게 너무 많다. 그러나 교회 운영 시스템 색깔 방향성 등은 1세들의 모임과 다른 부분이 많다"며 "주류 교계는 백인 중심에서 다민족화 되고 있다. 2세들도 이민자에서 아시안으로 아시안에서 다민족으로 사고가 바뀌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민교회는 '이민자'를 위해 존재한다. 한인 이민자가 모이는 집단이다 보니 언어나 문화적으로도 동일한 색을 지니고 있다. 한인교회가 단순히 종교 기관으로서의 기능 외에도 이민자를 위한 다양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다.   지금은 이민 인구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고 있다. 바다를 건너 타향(미국)에 정착하는 한인보다 미국서 나고 자란 세대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한국 중심의 문화가 편했던 이민 세대는 점점 '이중 문화주의(biculturalism)'로 옮겨가고 있다.   센서스국 통계에서 한인 인구 구성을 분석해본 결과 전체 한인 중 미국 태생(약 22%)과 한인 혼혈(약 21%)을 합한 비율이 이제는 한국 태생(약 56%)에 육박한다. 한인 혼혈의 경우 2015년과 비교하면 무려 21% 증가했다. 그만큼 이중 문화의 융합이 가속화되는 추세다.   미주성시화운동본부 최문환 이사장은 "내 경우만 봐도 증손자까지 있는데 아이들이 다 영어를 사용하고 며느리도 한인이 아니다"라며 "이들은 이민 1세대와는 다르다. 자신을 '이민자'가 아닌 미국에서 나고 자라났기 때문에 이 사회의 일원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언어의 차이는 곧 문화와 사고방식의 괴리를 낳는다. 이민 1세대를 중심으로 모인 교회에서 2세와의 언어 문화 차이는 가장 뚜렷하게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다.   LA지역 한 중대형교회에서 시무장로를 역임했던 최익수 장로는 "집에서 부모는 한국말 자녀는 영어로 말하는 한인 가정이 이제는 많아졌다. 거기서도 괴리가 생기는데 하물며 이민교회는 어떻겠는가"라며 "많은 한인교회가 그 괴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양세대간 교류가 언어나 문화 차이로 쉽지 않다. 이런 부분을 해결하는 게 한인교회가 당면한 과제"라고 말했다.   1세는 '이민자' 2세는 '아시안-아메리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기독교내에서도 이러한 정체성의 차이는 교회의 존재성을 두고 완전히 다른 역할 기능 등을 요구한다.   어바인 지역 데이브 노 목사는 "2세들도 사회 활동을 하면서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 민족적인 자부심이 있다. 그러나 교회도 그 정체성을 가진 이들만 모여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며 "미국은 다민족 사회 아닌가. 태생적으로 다양한 인종을 만나며 교육받고 성장했다. 2세가 생각하는 미국과 1세가 생각하는 미국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교회뿐 아니라 기독교 단체 활동만 봐도 변화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현재 남가주 한인교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마운틴 무버(전문직 종사자 모임)' '아이노스(오케스트라 모임)' '레드 스레드(자원봉사)' 'GMIT(영화 및 문화 사역)' 'G2G(2세 기독교육 기관)' 등 한인 2세 기독 단체만도 100여 개 이상이다.   북한 인권 기독교 운동 단체에 속한 마크 최(40)씨는 "한인 2세 중심으로 모이는 부분도 있지만 타인종 크리스천들도 함께 활동한다"며 "한인 2세들의 사역이라기보다 사실상 다민족 사역이다. 오히려 더욱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사역하는 걸 추구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 교회가 '한인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세대간 공통분모가 되려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LA지역 필립 이 목사는 "그동안 한인 1세 부모들은 자녀의 신앙이나 정체성 교육에 대해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 이를 교회나 타기관에 일임했다"며 "반면 이민 교회는 생존 문제에 시달리다 보니 성인 사역 중심으로 운영된 부분이 있었다. 이제는 미래에 대한 위기감을 갖고 장기적인 안목과 계획을 가져야 할 때"라고 전했다. 장열 기자이민교회 공통분모 이민교회 유지 한인 이민자 한인 교회

2022-02-21

교인수 감소…한인 교계도 예외 아니다

 기독교의 교세 감소 현상이 심각하다. 미국을 비롯한 한국 유럽 등 기독교 전반에 걸친 이슈다. 특수성을 가진 미주 한인 이민 교계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이민 교계는 한국 교계의 모판을 그대로 옮긴 구조와 형태를 띤다. 미국 사회 속에 자리하면서 이민자를 대상으로 운영된다. 이민 교계의 교세는 기독교 전반에 걸친 영향력 약화와 1세대 이민자의 감소가 맞물려 축소된다. 교세 감소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실제 교계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과거의 성장세 쉽지 않을 것 세대 나뉘고 문화적 차이까지 젊은 세대 기독교 외면 한 몫 이민교회 정체성 고민해야 이민 교계에서 30년 넘게 사역해온 목회자 김모씨는 "교세 감소가 체감되느냐"는 질문에 한숨부터 쉬었다.   김 목사는 "솔직히 기독교의 영향력 자체가 축소되면서 목회 적으로 보면 앞으로 후배 목사들이 사역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수적으로만 봤을 때 과거 이민교회들이 경험했던 성장은 쉽게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민 교회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타국에서 민족적으로 동질성을 가진 이민자가 종교라는 공통 분모 아래서 모이는 집단이다. 기존의 기독교가 고민하는 영향력 사회적 역할 등의 고민은 물론 세대간 언어 문화적 차이 이민 사회의 변화까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각종 요소들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현재 존재하는 이민 교회의 터전은 1세대 이민자가 닦았다. 세대가 변하면서 중심축이 옮겨지고 있지만 이민교회의 유전자는 여전히 1세대 이민자가 기반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UCLA 유헌성 연구원(사회학)은 "과거 이민 사회에서 한인 교회들은 종교적 역할 외에도 이민자의 정착을 지원하고 정서적 유대감을 공유함으로써 양적 팽창을 이뤘다"며 "지금은 그러한 방식의 팽창은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의 영향력이 감소한 것도 원인이겠지만 한인 이민 역사가 오래되면서 이민사회의 구조와 정체성이 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실제 한인들의 이민은 1960년대 말부터 80년대까지 붐을 이뤘다. 한인 이민 사회는 주로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한국내 교회들과 달리 이민 교회는 종교적 목적 외에 친목 또는 사회적 공동체의 역할까지 담당했었다.     지금은 한인 이민 교회의 구성원도 많이 달라졌다.   한인 2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데이브 노 목사(어바인)는 "한인 이민자들의 경제적 수준도 높아졌고 문화적 언어적으로도 많이 주류사회에 동화되면서 구성원의 성질이 변했다"며 "이제 이민자의 유입만으로 교회의 덩치가 커지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새로운 한인 세대에게 기존의 이민 교회가 어떤 의미일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민 교계를 비롯한 기독교 전반에 걸친 교세 감소는 교회의 영향력 감소에서 기인한다. 기독교가 반드시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다.   한국의 경우 최근 발표된 갤럽조사를 보면 종교의 고립화는 심각하다. 한국인 5명 중 3명(61%)이 호감가는 종교가 없다고 답했다. 게다가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8%에 그쳤다. 이는 갤럽이 조사를 한 1984년 이래 처음으로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 증감 의견이 뒤바뀐 것이다. 특히 개신교인의 26%만이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이는 2014년(59%)의 응답과 비교했을 때 무려 30% p 이상 줄었다. 개신교인 조차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갤럽이 지난 4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젊은층인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 출생) 중 교회에 정식으로 소속된 비율은 36% 뿐이다. 이는 2010년(51%)과 비교하면 무려 15%포인트나 줄어들었다. 이는 X세대(1965-1980년 출생.50%) 베이비부머세대(1946-1964년 출생.58%) 전통적인 세대(1946년 이전 출생.66%) 중 가장 낮은 소속 비율을 보이고 있다.   실제 이번에 미국장로교단(PCUSA) 보고서를 보면 청소년이 교회 회원 자격을 얻는데 필요한 절차인 신앙고백은 2016년(1만1243명) 2017년(1만716명) 2018년(9578명) 2019년(9023명) 2020년(5319명) 등 계속해서 줄고 있다. 그만큼 기독교계의 젊은층 유입이 원활하지 않다는 의미다.   미주 한인 교계 역시 확실히 과거와 분위기는 달라졌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한인교계는 청년 사역의 부흥기를 보냈다. 각 교회에서는 크고 작은 청년부가 활발하게 운영되다 보니 청년 관련 집회나 청년 사역 기독 단체들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 남가주 지역 한인 교계에서만도 HYM(남가주청년연합회) 경배와찬양 R제너레이션 카약 등 여러 범교계 청년 사역 단체들이 활동했지만 지금은 관련 활동이 거의 없다.   기독교의 교세 감소는 교회의 존립 외에도 각종 문제를 야기한다.     리버사이드 지역 필립 이 목사는 "교세 감소와 맞물려 신학생도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는데 신학교 자체는 기독교가 성장할때 수준의 규모라서 운영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며 "목회자의 이중직업도 중요한 이슈다. 일부 중대형교회를 제외하면 그외 교회들은 운영 면에서 어려움이 많아졌다. 목회자의 생존 전략도 중요해지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의 교세 감소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기존 교계의 토양이 바뀌고 각종 시스템이 재편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세 사역을 담당하는 케빈 김 목사는 "지금은 숫자상으로 성장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며 "교회 건물의 활용도 지역사회속에 교회의 존재성과 역할 이민교회만의 비전 등을 다시 한번 고민하고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열 기자교인수 교계도 이민교회 정체성 과거 이민교회들 한인 교회들

2021-10-25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