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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수저 이야기

금수저·흙수저가 일상적인 언어로 자리 잡았다. 열에 아홉은 수저 계급론을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고 인정한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 물고 태어난 수저 색에 따라 개인의 인생이 좌우된다는 것을 체감한다는 방증이다.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아울러 이를 때 사용하지만 금수저·흙수저처럼 숟가락을 달리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숟가락만을 가리켜 수저라고도 하는데 외려 잘못 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숟가락과 젓가락의 받침을 두고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바늘과 실처럼 짝을 이루어 사용해서 ‘수저’로 불리고 둘 다 똑같은 가락인데, 받침이 ‘ㄷ’과 ‘ㅅ’으로 다른 이유는 뭘까. 숟가락은 퍼 먹기 좋은 모양이고 젓가락은 집기 편한 모양이라는 건 우스갯소리다.   ‘젓가락’은 한자어 ‘저(箸)’에 순우리말 ‘가락’이 더해진 단어다. [저까락]으로 된소리가 나므로 사이시옷 규정에 따라 사이시옷을 넣어 준다. 여기에 영향을 받아 ‘숟가락’을 ‘숫가락’으로 잘못 표기하기도 한다. 젓가락처럼 [숟까락]으로 된소리가 나므로 ‘수’에 ‘가락’이 붙은 말로 생각하기 쉽지만 ‘숟가락’이 바른 표기다. 젓가락은 ‘저+가락’이지만 숟가락은 ‘술+가락’으로 구조가 다르다.   “밥 두어 술 더 뜨고 나가”라고 할 때의 ‘술’과 ‘가락’이 결합한 구조다. 이를 ‘숟가락’으로 적는 것은 한글맞춤법 제29항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적에 ㄹ 소리가 ㄷ 소리로 나는 것은 ㄷ으로 적는다”는 규정에 따라서다. 원래 ㄹ 받침을 갖고 있던 말이 다른 말과 결합하면서 ㄹ이 ㄷ으로 변하고, 그 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굳어졌다면 굳이 어원을 안 밝히고 굳어진 발음대로 표기한다는 것이다 숟가락은 수에 ㄷ이 붙은 게 아니라 ‘술’이 ‘숟’으로 변한 말이다. 우리말에는 이런 사례가 여럿 있다. 섣달(설+달), 이튿날(이틀+날), 사흗날(사흘+날), 반짇고리(바느질+고리), 섣부르다(설+부르다)가 대표적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우리말 바루기 이야기 수저 숟가락과 젓가락 수저 이야기 수저 계급론

2025-01-21

[우리말 바루기] ‘소고기’일까 ‘쇠고기’일까

직장인 회식 메뉴 1위는 무엇일까? 한 취업포털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삼겹살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소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 때문이라고 한다. 가격에 신경 쓰지 않고 아무 고기나 시켜도 된다면 아마도 삼겹살이 아니라 소갈비나 소등심 등 소고기를 시킬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기사를 접한 네티즌 가운데는 “회식메뉴 삼겹살, 살짝 지겹다. 좀 바꾸자” “소고기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요”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문제 하나. 어떤 사람은 ‘소고기’라 부르고, 어떤 이는 ‘쇠고기’라 하기도 한다. 어떤 것이 맞을까? 둘 다 맞는 말이다. 어느 것을 써도 관계가 없다. 과거에는 ‘쇠고기’만 표준어로 인정하고 ‘소고기’는 사투리로 취급해 ‘소고기’란 말을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 그러나 1988년 맞춤법을 개정하면서 둘 다 표준어로 인정했다(복수표준어).   ‘쇠’는 ‘소의’의 준말이고, ‘소의 고기’가 ‘쇠고기’다. 고기는 소의 부속물이므로 ‘소의 고기’라 부르던 것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쇠고기’로 변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소고기’라고도 많이 쓰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복수표준어로 인정했다. 그렇다고 ‘소’나 ‘쇠’를 아무 데나 똑같이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의 부속물인 경우에만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선호하는 메뉴인 ‘소갈비’ ‘소등심’은 소의 부속물이므로 ‘쇠갈비’ ‘쇠등심’이라고 해도 된다. ‘소가죽·소기름·소머리·소뼈’ 등도 ‘쇠가죽·쇠기름·쇠머리·쇠뼈’ 등으로 함께 쓸 수 있다.   소의 부속물이 아닌 ‘소달구지·소도둑’은 ‘쇠달구지·쇠도둑’으로 쓸 수 없다. ‘소의 달구지’ ‘소의 도둑’이 아니라 ‘소가 끄는 달구지’ ‘소를 훔치는 도둑’이란 뜻이므로 쇠달구지·쇠도둑은 성립하지 않는다.우리말 바루기 소고기 쇠고기 회식메뉴 삼겹살 직장인 회식 결과 삼겹살

2025-01-20

[아름다운 우리말] 시절을 노래하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라는 책을 읽다가 놀란 점이 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일본의 시 장르인 ‘하이쿠’에 대한 언급입니다. 저도 일본 ‘바쇼’의 하이쿠를 읽은 적이 있고,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하이쿠의 예도 본 적이 있습니다만, 롤랑 바르트는 하이쿠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책 속의 여러 강의 내용이 하이쿠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했고, 시를 소개하면서 하이쿠를 아주 매력적인 장르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서양에서 하이쿠의 위력 또는 매력을 2000년대 초반에 미국의 작은 마을 도서관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래된 작은 도서관에서 ‘하이쿠’ 창작 모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영어로 하이쿠를 읽고 쓰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무엇이 서양인에게 하이쿠가 매력적으로 다가갔을까요? 하이쿠에 나타나는 선시(禪詩)의 분위기가 작은 깨달음을 주는 모습이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우리 시조(時調)와 가사, 고려가요, 향가 등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시는 얼마나 알려져 있을까요? 어떤 매력으로 소개되고 있을까요?     우리가 어릴 때 배웠던 대부분의 시조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거나 교훈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정몽주)’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김상헌)’ 같은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는 노래가 많았습니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정철)’이나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황진이)’ 같은 교훈성이 있는 시조가 많았습니다.     시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내용이 많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만 학생들은 시조의 매력에 빠지기 어려웠습니다. 문학 교육이 오히려 문학 향유에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문학적으로도 완성도가 높고, 절묘한 가락을 담은 시조를 가르치고 기억하게 한다면 시조를 즐기는 사람도 더 많아질 겁니다. 여러 작가가 노력하고 있지만, 시조는 우리 문학에서 사라져가는 느낌입니다.   좋은 시조나 가사, 고려가요, 향가를 문학적으로 깊게 이해하고 감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라 향가가 일본의 만엽집처럼 많이 남아있다면 좋을 텐데요. 현존하지 않는 향가집 삼대목이 발견되기 기대해 봅니다. 남아있는 신라시대의 향가 14수에서 향가의 매력을 다 찾아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저는 ‘삶과 죽음이 여기에 있음에 나는 간다고 말도 못다 이르고 가는가(제망매가)’에서 누이를 잃은 깊은 슬픔에 동감합니다.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고려가요는 우리의 감정을 더 깊이 드러냅니다. 민요와 이어지는 깊은 연계도 느낍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가시리)’나 ‘살어리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청산별곡)’의 운율과 솔직함을 만납니다. 시조도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춘풍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황진이)’ 등의 묘사에서 낭만을 만납니다.   향가에서 고려가요로, 다시 시조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우리 노래들입니다. 시조의 매력을 잘 살피고,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에게도 알리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감정을 그대로 담고 있고, 우리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를 넘어서는 공통의 감정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미처 알리지 못한 매력을 찾아내어 세계 속으로 잘 소개해야겠습니다. 좋은 번역이 필요한 이유도 되겠습니다. 시조(時調)의 시는 때라는 뜻입니다. 한 시절을 노래하는 시(詩)가 시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노래 우리 시조 향가집 삼대목 가사 고려가요

2025-01-19

[우리말 바루기] 판이하게 다르다고요?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있다.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다 보면 부부간에 취향과 습관이 비슷해져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좁혀지지 않는 차이가 분명 존재하기도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면 이러한 차이에 대해 “우리 부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 문제가 생기면 매번 싸움으로 끝난다” “판이하게 다른 취향 때문에 취미 생활을 같이할 수 없다”와 같이 푸념하는 글이 많이 올라 있다. 하지만 “판이하게 다른 성향과 성격을 지니고 있어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다” “판이하게 다른 취향 차이로 인해 다양한 취미 생활을 공유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으니 받아들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른 점이 나쁘기도 하지만,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위에서 말한 ‘판이하게 다른 성격’ ‘판이하게 다른 취향’ ‘판이하게 다른 성향’은 바른 표현이 아니다. ‘판이한 성격’ ‘판이한 취향’ ‘판이한 성향’으로 고쳐 써야 바르다.   ‘판이(判異)하다’는 ‘판가름할 판(判)’ 자에 ‘다를 이(異)’ 자를 써서 비교 대상의 성질이나 모양·상태 등이 아주 다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판이하게 다르다”고 하면 “아주 다르게 다르다”와 같이 중복된 형태가 되므로 ‘판이하다’ ‘다르다’ 중 하나를 선택해 써야 한다.   많은 이가 “판이하게 다르다”고 쓰는 이유는 ‘판이하다’를 ‘아주’ ‘매우’ 정도의 뜻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이하다’는 ‘다르다’와 의미가 중복되므로 같이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이와 비슷하게 간혹 “상이하게 다른 계약 조건 때문에 협상이 결렬됐다”와 같이 ‘상이하게 다르다’를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상이하다’가 ‘서로 다르다’는 뜻을 지니고 있어 중복된 표현이 될 수 있으니 ‘상이한 계약 조건’ 또는 ‘매우 다른 계약 조건’ 등으로 고쳐 써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판이 취미 생활 취향 차이 취향 때문

2025-01-19

[우리말 바루기] ‘데’의 띄어쓰기

뇌가 외부 자극에 반응해 알맞은 단어를 찾아 표현하기까지 0.6초가량 걸린다고 한다. 말은 순식간에 나오지만 이를 글로 옮기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띄어쓰기다.   문장에서 어떨 때는 붙여 쓰고 어떨 때는 띄어 쓰는 말이 적지 않다. ‘데’가 대표적이다. “지금 굉장히 추운데 그렇게 입고 괜찮으세요?”의 경우 ‘추운데’로 붙여 써야 한다. “그 추운 데서 하루 종일 고생이 참 많다”의 경우 ‘추운 데’로 띄어 써야 바르다. 왜 그럴까?   먼저 의미를 살펴봐야 한다. ‘데’가 ‘곳이나 장소’ ‘일이나 것’이라는 뜻을 나타낼 때에는 의존명사로 띄어 쓴다. “지금 네가 가려는 데가 어디지?” “이번 과제는 환경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에서 ‘데’는 각각 ‘가려는 곳이’‘깨닫게 하는 것에’로 바꿀 수 있다.   ‘데’가 ‘경우’의 뜻을 나타낼 때도 의존명사로 띄어 써야 한다. “머리 아픈 데 먹는 약과 감기 예방에 좋은 생강차를 여행가방에 넣어 뒀다” “이 찻잔은 매우 귀한 거라 특별한 손님을 대접하는 데나 내놓는다”에서 ‘데’는 ‘경우’의 의미로 사용됐으므로 띄어 쓰는 게 바르다.   ‘데’가 어미일 때는 붙여야 한다. ‘-ㄴ데/-는데/-은데’ 등은 뒤에서 어떤 일을 설명하거나 묻거나 시키거나 제안하기 위해 그 대상과 관련되는 상황을 미리 말할 때에 쓴다. “그렇게 아픈데 하루도 수업을 안 빠지다니!” “편의점에 가는데 뭐 사다 줄까?” “볼 것은 많은데 시간이 너무 부족해”의 경우 모두 붙여야 한다.   뜻으로 구별이 잘 안 될 때는 ‘데’ 뒤에 격조사 ‘에’를 붙여 보는 방법도 있다. ‘데’가 의존명사로 쓰였을 경우에는 뒤에 ‘에’가 결합할 수 있다. “지금 굉장히 추운데(에) 그렇게 입고 괜찮으세요?”는 ‘에’가 결합할 수 없다. ‘~ㄴ데’는 연결어미이므로 붙여 쓴다. “그 추운 데(에)서 하루 종일 고생이 참 많다”는 ‘에’가 결합할 수 있다. 이때의 ‘데’는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쓴다.우리말 바루기 띄어쓰기 외부 자극 약과 감기 이번 과제

2025-01-16

[우리말 바루기] 칠칠맞은 여친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 이런 것이 있었다. 남녀 관계에서 발생하는 고민을 들어 주면서 그에 관해 참견하고 진단하는 프로그램인데 이날의 주제는 ‘칠칠맞아도 너무 칠칠맞은 여친’이었다. 연애를 지속해야 할지 고민하는 남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얘기인즉슨 똑똑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음식을 먹다 옷에 흘리거나 길바닥에 가방을 뒤엎는 등 실수를 연발하는 여자친구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것이었다. 남친 집에 인사드리러 갔다가 가구를 긁고 화장품을 흘렸다는 사연에 이르러서는 토론자들도 탄식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라면 그 여자친구는 사실은 칠칠맞은 여친이 아니다. 칠칠맞은 여친은 아무 문제가 없는 여친이다. ‘칠칠맞은 여친’은 ‘성질이나 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진 여자친구’의 뜻이어서 프로그램 내용과 맞지 않는다. ‘칠칠맞다’는 ‘칠칠하다’와 같은 뜻의 단어로, 성질이나 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로그램 내용에 맞게 하려면 ‘칠칠맞은 여친’이 아니라 ‘칠칠맞지 못한 여친’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반듯하거나 야무지지 못하다는 뜻이 된다. 즉 실수를 연발한다면 ‘칠칠맞지 못한’ 또는 ‘칠칠하지 못한’이란 표현을 써야 한다.   “사람이 칠칠맞지 못해 이 모양이다” “그는 매사에 칠칠하지 않았다” 등처럼 사용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여친 프로그램 내용 tv 프로그램 여자친구 때문

2025-01-15

[우리말 바루기] ‘금세’ ‘요새’를 구분하는 법

다음 낱말 가운데 틀린 것을 고르시오.   ㄱ.금새. ㄴ.요새 ㄷ.그새 ㄹ.밤새   젊은이들이 쓰는 신조어 가운데 ‘금사빠’와 ‘금사식’이 있다. ‘금사빠’는 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금사식’은 금세 사랑이 식어 버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금방 상대에 대해 싫증을 내기도 하므로 ‘금사빠’와 ‘금사식’은 한몸인 셈이다.   ‘금사빠’와 ‘금사식’의 ‘금’은 ‘금세’ 또는 ‘금방’의 줄임말이라 볼 수 있다. ‘금세’는 적을 때 가장 헷갈리는 말 가운데 하나다. 막상 적으려면 ‘금세’ ‘금새’ 어느 것으로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에’와 ‘애’가 발음으로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무엇의 준말인지 따져보면 된다. ‘금시(今時)에’가 줄어든 말이므로 ‘금세’가 된다. ‘시에’는 줄어 ‘세’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새’는 어떻게 될까? 혹 ‘요세’로 적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역시 무엇의 준말인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요사이’의 준말이므로 ‘요새’가 된다. ‘사이’는 줄어 ‘새’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줄어 ‘애’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새’ ‘밤새’ 역시 ‘그사이’와 ‘밤사이’의 준말이므로 모두 ‘새’로 적는 것이 맞다. 따라서 정답은 ㄱ ‘금새’. ‘금세’로 고쳐야 한다. 다만 지금 바로가 아니라 물건 값 또는 물건 값의 비싸고 싼 정도를 나타낼 때는 ‘금새’도 성립한다.우리말 바루기 구분 신조어 가운데 다음 낱말

2025-01-14

[우리말 바루기] ‘~중이다’를 줄여 쓰자

중학교 때 영어를 처음 접하면서 ‘~ing’를 배우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영어의 진행형인 ‘~ing’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우리말로 ‘~중이다’로 가르친 것으로 기억된다. 이를테면 ‘~ing = ~중이다’ 공식이 성립하는 것으로 배웠다. 영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진행형을 이해시키기에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말에서 진행형이 꼭 이렇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말에서 기본적으로 진행형은 ‘~하고 있다’이기 때문이다. “공부하고 있다” “수업하고 있다” “회의하고 있다” 등처럼 서술어에서는 ‘~하고 있다’가 현재 진행을 나타내는 고유한 표현 방식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부 중이다” “수업 중이다” “회의 중이다”처럼 ‘~중이다’ 형태가 많이 쓰이고 있다. 이는 영어의 진행형인 ‘~ing’를 배우면서 ‘~중이다’가 익숙해진 탓이라고 보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특히 영어를 번역하는 경우 대부분 이렇게 옮긴다.   우리말의 ‘~중’은 ‘공부 중, 수업 중, 회의 중, 공사 중, 협상 중, 임신 중’ 등과 같이 어떤 상태나 ‘동안’의 뜻으로 쓰일 때 잘 어울린다. 물론 이런 의미에서 “공부 중이다” “수업 중이다” 등의 표현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보통은 ‘~하고 있다’가 자연스럽다. 진행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공부하는 중이다”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처럼 ‘~하는 중이다’ ‘~하고 있는 중이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 역시 ‘~하고 있다’ 형태인 “공부하고 있다”가 가장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중이다’를 남용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비상근무 중인 대책본부는 범정부 협업체계를 가동 중이다. 전국에서 관계 공무원이 24시간 비상근무 중이다”와 같은 예다. ‘중인’ ‘중이다’ ‘중이다’ 등 ‘중’으로 가득하다. 실제로 글에서는 이런 형태가 많이 나온다. 서술어에서는 가급적 ‘~중이다’ 대신 ‘~하고 있다’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우리말 바루기 비상근무 중인 범정부 협업체계 관계 공무원

2025-01-13

[우리말 바루기] ‘호동이예요’의 함정

“오늘 발표할 내용이 뭐죠?”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학생들이 두 가지 대답을 내놓았다. 한 무리는 “먹이에요”로, 다른 한 무리는 “먹이예요”로 답을 했다. 누가 맞춤법에 맞게 대답했을까?   수업 시간에 다룰 내용이 문방사우(文房四友) 중 하나인 ‘먹’이라면 “‘먹’이에요”라고 해야 옳지만 동물의 생육에 필요한 먹을거리에 관한 것이라면 “‘먹이’예요”라고 하는 것이 바르다.   ‘-이에요’는 서술격 조사 ‘-이다’의 어간 뒤에 어미 ‘-에요’가 붙은 말로, 체언 뒤에 쓰인다. ‘붓’처럼 체언의 끝말에 받침이 있으면 ‘-이에요’를 사용하면 된다. 이때의 “붓이에요”는 줄어들지 않으나 ‘벼루’처럼 받침이 없는 체언에 붙을 때는 ‘-예요’로 줄기도 한다. “벼루이에요”가 “벼루예요”로 줄어든다.   문제는 사람의 이름 뒤에 나타나는 ‘이예요’다. 받침이 있고 없음에 따라 “정우성이에요” “김남주예요”라고 하면 되지만 “호동이예요”에 이르면 헷갈린다. “호동이에요”로 고쳐야 할 듯하나 “호동이예요”가 바른 표현이다. 받침 있는 인명 뒤에 어조를 고르는 접사 ‘-이’가 덧붙은 경우다. 받침이 없는 체언과 같아져서 ‘호동+이에요’가 아니라 ‘호동+이+예요’로 분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니에요”는 왜 ‘-에요’로 쓸까? ‘아니다’의 경우 체언이 아닌 용언이므로 서술격 조사 ‘-이다’가 필요 없다. 어미 ‘-에요’만 붙이면 되므로 “아니에요”로 사용한다. “아니예요”는 잘못된 표현이다. “아니에요”에 영향을 받아 “대형 사고에요”처럼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형 사고예요”로 바루어야 한다.   “다시 올 거에요”도 마찬가지다. ‘거’는 ‘것’을 구어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받침이 없으므로 ‘거예요’로 써야 한다. ‘거에요’는 잘못된 표현이다. “이게 다 우리 것이에요”의 경우 받침이 있으므로 ‘-이에요’가 오는 게 바르다.우리말 바루기 호동 함정 서술격 조사 수업 시간

2025-01-12

[아름다운 우리말] 문화번역과 옥스퍼드 사전

한국어 번역을 제대로 하려면 한국 역사에 대한 이해, 한국어에 대한 이해,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옥스퍼드 사전에 한국어 어휘가 계속 추가 되고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에 따르면 2021년에 오빠, 언니, 누나, 삼겹살, 스킨십, 잡채, 김밥, 콩글리시, 만화, 먹방, 애교, 대박, 반찬, 불고기, 치맥, 대발, 동치미, 파이팅, 갈비, 한류, 한복, 피시방, 당수도, 트로트, K-복합어, K-드라마 등의 단어가 등재되었고, 2024년에는 달고나, 노래방, 형, 막내, 찌개, 떡볶이, 판소리 등 7개 단어가 추가되었습니다.      한국어 어휘가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는 것은 영어의 외래어 항목에 한국어가 추가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어 속에도 수많은 외래어가 있는데, 이제 한국어도 다른 언어에 외래어가 되어 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외래어는 주로 문화와 함께 들어가기 때문에 한국 문화가 영어권으로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와 한국 문화가 세계 속으로 퍼지고 있으니 훨씬 많은 어휘가 영어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옥스퍼드 사전에 추가된 한국어 어휘를 보면서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호칭이나 지칭에 관한 어휘가 많다는 점입니다. 오빠, 언니, 누나, 형, 막내는 번역하기 매우 어려운 어휘입니다. 친족명이기는 하지만 친족명으로 쓰이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많습니다. 심지어는 애인이나 남편을 오빠라고도 합니다. 외국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번역할 때는 더 괴로울 겁니다. 같은 오빠라는 어휘라고 하여도 번역은 달라져야 합니다.      언니도 매우 어려운 어휘죠. 한국의 미용실이나 식당에서 부르는 언니는 주로 친척이 아닙니다. 손님이 일하는 사람을 부르기도 하고, 일하는 사람이 손님을 부를 때도 있습니다.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누나, 형도 상황에 따라 번역을 달리해야 합니다. 막내가 새로 사전에 오른 것은 아마도 회사에서 막내라고 지칭하는 일이 많아서일 겁니다. 부서의 막내라는 표현을 막냇동생과 헷갈려서는 안 되겠죠. 막내라는 말의 느낌까지 번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음으로는 음식 이름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겹살, 잡채, 김밥, 불고기, 치맥, 동치미, 갈비, 달고나, 찌개, 떡볶이 등이 있습니다. 영어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화적인 설명이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삼겹살과 소주’, ‘김밥과 떡볶이’, ‘치맥’ 등은 그야말로 문화어휘입니다. 문화적 배경이나 한국인의 생활을 이해해야 번역할 수 있습니다. 불고기와 갈비, 동치미와 찌개도 쉽지 않습니다. ‘달고나’는 아마도 오징어게임 때문에 포함이 된 듯합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문화번역이 어려운 어휘는 그대로 외래어가 되기도 합니다. 외래어가 되면 번역이 쉬워지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한류, 한복, 먹방, 만화, K-복합어 등은 한류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어휘입니다. 일본어의 ‘망가’라는 말이 있는데도 만화가 들어간 것은 흥미롭습니다. 또한 영어에서 기원한 말이 다시 의미가 바뀌어 영어로 들어간 것도 흥미롭습니다. 스킨십이나 파이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물론 콩글리시도 특이한 표현입니다. 외래어는 원어와는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의미의 범위나 용법에서 차이가 납니다. 한국에 들어왔던 외래어가 문화번역에서는 오히려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어 ‘마담’은 영어의 마담(madam)과는 큰 차이가 있는 말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어가 세계 속에 나아가기를 기대합니다. 다만 가능하다면 좋은 의미의 어휘도 함께 퍼지면 좋겠습니다. 사랑이라든가 아름다움이라든가, 고맙다 등의 어휘가 세계인의 마음에 새겨지기 바랍니다. ‘힘 내, 잘 될 거야, 멋지다’와 같은 표현도 기대해 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문화번역 옥스퍼드 한국어 어휘 한국어 번역 옥스퍼드 사전

2025-01-12

[우리말 바루기] 느낌적인 느낌

요즘 ‘느낌적인 느낌’이란 표현이 많이 쓰인다. “눈빛에 담긴 느낌적인 느낌” 등처럼 자주 사용한다. 일반인의 글뿐 아니라 인터넷매체 등의 기사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노래 제목으로도 많이 쓰였다.   우선 ‘느낌적인’의 ‘적’에 대해 살펴보자. ‘~적(的)’은 본래 ‘~의’ 뜻으로 쓰이는 중국어 토씨로, 일본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을 우리가 따라 쓰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메이지(明治) 시대 초기에 영어의 ‘-tic’을 번역하면서 처음으로 ‘~적’이란 말을 썼다고 한다(다카다 히로시 『本のある生活』).   우리나라에서는 개화기 잡지나 소설에서 ‘~적’의 사용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렇게 해서 두루 쓰이게 된 ‘~적’은 이제 우리말의 일부분이 됐다. 적절하게 사용하면 된다. 문제는 남용하는 것이다.   ‘~적’은 대체로 ‘그 성격을 띠는’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환상적’이라고 하면 생각 등이 현실적 기초나 가능성이 없고 헛된 성격을 띠는 것을 가리킨다. ‘낭만적’ ‘문화적’ 등도 그렇다. 그러나 ‘느낌적’은 어색하다. ‘느낌’이면 ‘느낌’이지 느낌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은 모호하다. 더구나 ‘느낌적인 느낌’ 구조는 더욱 어설프다.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냥 느낌일 뿐이다. 이처럼 내용은 없이 듣기 좋게 꾸민 글귀를 언어유희라고 한다. 쉽게 얘기하면 말장난이다.   ‘애처로운 느낌’처럼 어떤 느낌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말이 ‘느낌’을 수식하는 구조여야지 그말이 그말인 ‘느낌적인 느낌’은 지극히 어색한 표현이다. ‘생각적인 생각’ ‘공감적인 공감’ 등처럼 같은 구조의 말을 만들어 보면 이 말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따지고 보면 ‘느낌적인 느낌’은 어떤 느낌인지를 정확하고 섬세하게 묘사하지 못하고    가벼운 말장난에 의존하는 표현이다. 자기 느낌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표현하면서 나 자신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우리말 바루기 느낌 자기 느낌 다카다 히로시 개화기 잡지

2025-01-09

[우리말 바루기] 나는 ‘여’씨가 아닙니다

여직원·여교수·여의사·여비서·여군·여경-. 직업을 가진 여성을 지칭할 때 이처럼 ‘여’자를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남성에게는 대체로 ‘남’자를 붙이지 않는 데 비해 여성에게만 ‘여’자를 붙인다. 마치 모든 여성이 ‘여’씨인 것처럼 꼬박꼬박 이렇게 부르기 일쑤다. 다분히 성차별적인 용어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몇 년 전 대표적인 성차별 언어 10개를 선정해 발표했다. 성평등주간을 맞아 이 단체가 ‘생활 속 성차별 언어’ 시민 제안을 받은 결과 608개가 접수됐다. 전문가 자문을 거쳐 이 중 10개를 공유 대상으로 선정했다. 차별적 용어 가운데 최근 문제가 되거나 쉽게 개선할 수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골랐다.   가장 많이 제안된 사항은 바로 이 ‘여’자다. 여직원·여교수 등의 ‘여’자를 빼고 직원·교수·의사·비서·군인·경찰 등 성평등 용어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여자고등학교’처럼 여자고등학교에만 붙은 ‘여자’를 빼고 ‘○○고등학교’라 부르자는 의견도 선정됐다. 남자만 다니는 고등학교의 경우 일반적으로 그냥 ‘○○고등학교’라 부른다. 이에 비해 여자만 다니는 고등학교의 이름에 ‘여자’란 단어가 들어간 곳이 아직도 많다. 처녀작·처녀출전처럼 ‘첫’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처녀’ 표현도 성차별 용어로 선정됐다. 처녀작·처녀출전은 있어도 총각작·총각출전은 없다. 이들을 첫 작품, 첫 출전 등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아빠는 유모차를 끌 수 있을까? 유모차(乳母車)란 단어 속에는 아이와 엄마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어 마치 엄마만 유모차를 끌 수 있는 것처럼 비친다. 이에 대한 성평등 언어로 ‘유아차(乳兒車)’를 제시했다. 이 밖에도 ‘그녀’를 ‘그’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미혼’을 ‘비혼’으로, ‘자궁(子宮)’을 ‘포궁(胞宮)’으로 바꾸기로 했다. ‘몰래카메라’를 ‘불법촬영’으로,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를 ‘디지털 성범죄’로 바꾸는 것도 포함됐다.우리말 바루기 성차별 용어 성차별 언어 성평등 용어

2025-01-08

[우리말 바루기] '제주항공 참사'가 맞다

무안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여객기가 불에 타고 산산조각이 났다.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숨졌다. 언론은 처음 ‘무안공항 참사’라고도, ‘제주항공 참사’라고도 했다. 지금은 주로 ‘제주항공 참사’라고 부른다. 모두 ‘참사’라고는 했지만 지역명과 기업명을 두고는 정리가 덜 됐었다.   언론이 ‘사고’라고 하지 않은 건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고’에는 ‘우연’이란 의미가 깔려 있다. ‘참사’라고 불러야 사건의 책임 주체도 드러낼 수 있는 일이 된다. ‘참사’는 말 그대로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어서 사실을 더 적극 반영한 말이기도 했다.   ‘무안공항 참사’라는 표현에는 지역명이 들어간다. 그 지역에 부정적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지역 혐오를 부추기게 된다. 대신 참사를 일으킨 기업의 책임은 감춰진다. 2007년 12월 7일 일어난 삼성중공업의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는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불렸다. 기업의 책임은 희석됐고, 지역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졌다. 그래서 언론은 대부분 ‘제주항공 참사’라고 한다.   ‘제주항공 참사’로 숨진 사람들을 가리킬 때는 ‘사망자’가 아니라 ‘희생자’라고 한다. 사망자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이다. 희생자는 ‘어떤 일이나 사건으로 말미암아 죽거나 다치거나 피해를 본 사람’이다. 그들에게 희생자라고 하는 건 사전적 의미를 떠나 그들의 죽음이 개인적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죽음은 사회적이고 구조적이다.   어떤 일에 대해 명칭을 붙이는 건 중요하다. 정확한 표현이어야 사실이 뒤틀리지 않는다. 올바른 명칭은 진실로 가는 길이 되기도 한다.우리말 바루기 제주항공 참사 제주항공 참사 무안공항 참사 대신 참사

2025-01-07

[우리말 바루기] ‘완전 좋아요’의 함정

구매 후기도 물품 구입의 잣대 중 하나가 됐다. “완전 예뻐요” “완전 좋아요”라는 말을 참고한다는 이가 많다.   눈에 익을 정도로 후기나 댓글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완전+용언’의 형태는 문법적으로는 틀린 표현이다. 한 연예인이 “완전 사랑합니다”고 쓴 이후 따라 하는 이가 늘면서 확산됐다.   ‘완전’은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춰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을 뜻하는 명사다. 명사는 기본적으로 용언(동사·형용사)을 수식할 수 없다. ‘완전’은 “법률시장 완전 개방” “임금협상 완전 타결” “불순물 완전 제거” 등처럼 일부 명사 앞에 쓰인다. 명사가 형용사와 동사를 각각 수식하는 구조인 “완전 예뻐요” “완전 좋아요”와 “완전 사랑합니다” 형태를 사용할 수 없는 이유다.   용언을 꾸미는 품사는 부사다. “정말 예뻐요” “진짜 좋아요” “많이 사랑합니다”와 같이 고쳐야 자연스럽다. 아주·몹시·매우·무척·엄청·너무 등 문맥에 맞게 부사를 적절히 선택하면 된다.   부사를 만드는 접사나 부사어 자격을 갖게 하는 부사격 조사 등이 붙으면 명사도 용언을 꾸밀 수 있다. ‘완전’에서 파생된 부사 ‘완전히’는 용언을 수식하는 말로 사용할 수 있으나 주로 변화를 나타내는 동사와 어울린다. ‘예쁘다’ ‘좋다’ ‘사랑하다’와는 의미상 어울리지 않는다.     “맡은 일을 완전히 끝냈다” “둘은 완전히 갈라섰다” 등과 같이 써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완전 함정 임금협상 완전 법률시장 완전 불순물 완전

2025-01-05

[아름다운 우리말] 한국어와 한국사 이야기

한국어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동이(東夷), 고조선 등과 만나게 됩니다. 우리 민족을 동이족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역사책을 보면 동이 관련 항목에 우리 선조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고조선, 부여, 마한, 변한, 진한, 고구려, 동예, 옥저, 백제, 신라 등은 모두 동이족이 세운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책마다 차이가 있어서 그 무엇을 답이라고 정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후한서(後漢書)에 보면 동이에 관한 놀라운 기록이 나옵니다. 동방을 이(夷)라고 하고 이는 근본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이는 천성이 유순하여 도리로 다스리기 쉽기 때문에 군자의 나라라고 하고, 공자(孔子)도 동이에서 살고 싶어 하였다고 소개합니다. 또한 중국에서 예를 잃으면 동이에서 구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책마다 표현이 다르니 후한서의 기록만이 맞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중국 사서의 기록이 다른 민족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좋게 평가하는 부분은 놀라운 것입니다. 따라서 나쁜 기록보다는 좋은 기록에 집중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여, 고구려, 백제 등은 대부분 부여계이고 언어가 같다고 설명합니다. 술과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점을 강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삼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삼한의 경우는 여러 가지 수수께끼를 줍니다. 예를 들면 한(韓)은 면적이 사방 4000리라고 후한서,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등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국사책에서 배운 한반도 남쪽의 삼한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최치원 열전에 보면 이에 대한 근본적인 실마리가 나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글에 마한(馬韓)은 고구려, 변한(弁韓)은 백제, 진한(辰韓)은 신라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봐야 삼한이 4000리가 될 겁니다. 관점을 바꾸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최치원은 그 글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워낙 강대하여 중국의 남쪽인 오(吳)와 월(越)까지 공격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강역(疆域)도 국사책에서 배운 것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진한과 변한이 언어와 풍속이 다른 점이 있다는 후한서의 언급도 주목해야 할 겁니다. 진한의 말이 마한과 달랐다는 삼국지의 언급도 기억해야 합니다. 한편 변한과 진한의 언어가 서로 비슷하다는 삼국지의 언급에서 두 언어가 차이가 크지 않았음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옥저의 언어가 고구려와 비슷하다고 후한서는 전합니다. 삼국지에서도 고구려어와 옥저말이 대체적으로 같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濊)와 옥저(沃沮), 고구려가 본래 옛 조선 지역이라고 설명한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예와 고구려가 같은 종족이라고 노인들이 스스로 이야기한다는 설명도 흥미롭습니다.   송사(宋史)에 보면 고구려는 요동(遼東)을, 백제는 요서(遼西)를 경략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국사 시간에 배운 백제의 영토와는 전혀 다른 설명입니다. 구당서(舊唐書) 등에 보면 백제도 본래 부여의 별종이라고 설명합니다. 양서(梁書)에서 백제와 고구려가 언어가 거의 같음을 이야기합니다. 수서(隋書)에서는 백제를 설명하면서 신라, 고구려, 왜, 중국 사람이 섞여 있다고 언급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양서에서는 신라를 백제의 동남쪽 5000리 밖에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매우 특이합니다. 북사(北史)나 수서(隋書) 등에서 신라와 고구려, 백제의 풍속과 의복 등이 같다고 한 것은 삼국의 공통점을 보여줍니다.   중국 정사(正史)에 나타난 동이, 한국의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언어의 계통도 다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그렇게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국어와 만주어가 그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사를 통해 한국어의 계통 속 궁금증을 풀고 싶었지만 오히려 더 깊은 수수께끼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한국어 한국사 한국사 이야기 고구려 백제 후한서 삼국지

2025-01-05

[우리말 바루기] 일상과 다르다는 말 ‘채’

의존명사 ‘채’는 주로 ‘-은 채(로)’ 형태로 쓰인다. 어떤 동작이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걸 나타낸다. “옷을 입은 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노루를 산 채로 잡았다.” “벽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 때나 ‘채’가 오지는 않는다. 옷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건 일상적이지 않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어야 옷을 입은 상태로 물속으로 뛰어든다. 노루도 살아 있는 상태로 잡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 잠은 누구나 누워서 잔다.   ‘채’는 이처럼 일상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이나 상태를 나타낼 때 자연스럽다.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구두를 신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같은 문장에서도 역시 알 수 있다. 고개를 숙이는 건 잘못을 저질렀다든가 뭔가 사정이 있을 때다. 그런 상태에서 말할 때 ‘채’를 가져온다.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는 상황에 따라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숙이고’에서는 일상적이지 않다는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방에 들어갈 때 구두를 신는 것도 일반적이지 않다. 평범하지 않으니까 ‘구두를 신은 채’라고 하는 거다.   이런 기준이나 쓰임새에 기대면 다음 같은 문장은 어색해 보인다. “그는 모자를 벗은 채 인사했다.” 이 문장은 “그는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건 일반적인 일이니까.   ‘인사’ 대신 ‘거수경례’를 넣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는 모자를 벗은 채 거수경례했다.” 거수경례는 모자를 쓰고 하는 게 더 일상적이다. “한복을 차려입은 채 절했다”는 “한복을 차려입고 절했다”가 자연스럽다.우리말 바루기 입고 물속 기대면 다음

2025-01-02

[우리말 바루기] 이 자리를 빌어(?)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 출근, 회사 e메일을 열어 보면 대표의 신년사가 도착해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신년사에는 대부분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와 같은 문구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이처럼 ‘이 자리를 빌어’라고 돼 있다면 어색한 부분을 발견하지는 않으셨는지?   우리말 바루기를 열심히 읽어 온 독자라면 알 법도 하다. 바로 ‘빌어’라고 한 표현에 문제가 있다.   ‘빌어’는 많은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곧잘 나오는 표현이다. “이 자리를 빌어 임직원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어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에서도 ‘빌어’가 나온다. 여기에서 ‘빌어’는 모두 잘못된 표현으로, ‘빌려’가 맞는 말이다.   ‘빌어’는 ‘빌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간청하거나 호소·사죄할 때 사용한다. “그들의 앞날에 더 큰 영광이 있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범인은 피해자의 가족에게 용서를 빌었다”와 같이 쓸 수 있다.   ‘빌려’는 ‘빌리다’를 활용한 말이다. 남의 물건이나 돈을 나중에 다시 갚기로 하고 얼마 동안 쓴다는 의미가 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와 같은 경우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기회를 이용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린다”가 이런 예다. ‘이 기회를 이용해 말씀드린다’는 의미가 된다.   일정한 형식이나 이론 또는 남의 말이나 글 따위를 취해 따른다는 뜻을 나타낼 때도 ‘빌리다’가 쓰인다. “옛 성현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과 같은 경우다. 이때도 ‘빌어’라고 쓰면 틀린 말이 된다. “법률 전문가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수필이란 형식을 빌려~”처럼 사용된다.   ‘빌어’와 ‘빌려’는 헷갈리기 십상이다. ‘빌려’를 써야 할 자리에 ‘빌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빌리다’와 ‘빌다’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빌어’는 간청·호소·사죄를, ‘빌려’는 차용·임차를 나타낼 때 쓴다고 기억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감사 말씀 법률 전문가

2025-01-01

[우리말 바루기] ‘체신없는’ 행동은 없다

말이나 행동이 경솔해 위엄이나 신망이 없는 사람을 힐난할 때 “체신없게 행동하지 말라”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이에 맞지 않게 행동하거나 지위·위치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체신머리없다”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잘못된 것으로, ‘채신없다’ ‘채신머리없다’고 표현해야 올바르다.   ‘채신’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져야 할 몸가짐이나 행동을 의미하는 ‘처신’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이를 ‘몸 체(體)’와 ‘몸 신(身)’ 자로 이뤄진 ‘체신’으로 잘못 이해하고 쓰는 사람이 많다.   ‘체신(體身)’은 한자 뜻 그대로 ‘사람의 몸뚱이’를 의미하며, “체신이 작은 그는 평소에도 공깃밥 한 그릇을 채 비우지 못했다” 등과 같이 쓸 수 있다. ‘체신없다’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로, 의미상으로도 성립할 수 없다.   ‘채신’은 주로 ‘채신없다’ ‘채신머리없다’ 등처럼 쓰여 부정적 의미를 나타낸다. “다 큰 어른이 채신사납게 아이의 과자를 빼앗아 먹다니!”처럼 쓰이는 ‘채신사납다, 채신머리사납다’라는 표현도 있다. 이는 몸가짐을 잘못해 꼴이 몹시 언짢다는 말로, 역시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를 ‘체신사납다’ ‘체신머리사납다’라고 쓰는 경우도 꽤 있으나 이 또한 ‘채신’에서 파생된 말이므로 ‘체신’이라고 쓰면 안 된다.   이제 해가 바뀌어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고 생각하니 올 한 해 나이와 위치에 맞는 행동을 해 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년에는 ‘채신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 보다 성숙한 인간이 되길 소망해 본다.우리말 바루기 체신 행동 부정적 의미

2024-12-30

[아름다운 우리말] 용어와 편견, 편견과 용어

공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용어입니다. 용어를 정하고, 용어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면 공부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시작은 반입니다. 용어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용어는 공부의 시작이면서, 자신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용어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용어가 등장하면 우선 궁금증을 갖고 물어야 합니다. 이 용어가 적당한지, 아니면 문제가 있는지. 언어교육과 관련된 용어도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용어는 그 말 때문에 편견이 생깁니다. 그것도 문제입니다. 용어는 가치 중립적이어야 하는데 용어 때문에 이미 선입견을 갖고 다가간다면 올바른 학문을 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용어는 관습이라고 이야기할 겁니다. 어떤 용어는 다른 사람이 쓰기 때문이라고 말할 겁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나 변명이 공부의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용어를 쓰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저는 용어가 나오면 계속 묻습니다. 내 생각을 가두는 용어는 아닌지, 나를 편견 속에 빠뜨리는 용어는 아닌지 궁금해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내 사고의 폭은 넓어집니다. 의심은 나를 키웁니다.     귀화라는 말은 늘 고민입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귀화했다고 하는데 귀화라는 말은 돌아와야 성립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외국에 가서 살다가 한국에 다시 돌아오면 귀화라는 말이 맞지만, 원래 한국에 살지 않았던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한국 국적을 따는 것을 귀화라고 하면 어색합니다. 귀화어라는 용어도 어색합니다. 외국어이지만 한국어 속에 완전히 동화되어 외국어인지도 모르는 말을 귀화어라고 합니다. 김치, 붓 등이 여기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말도 돌아온 말은 아닙니다. 귀화라는 표현이 왜 쓰였을까요?   귀국이라는 말을 보면 귀는 돌아오는 게 맞습니다. 돌아올 귀라고 해석도 합니다. 그런데 귀화라는 말을 찾아보면 돌아오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쓰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임금님이 덕으로 다스리면 이웃 나라의 백성이 감화를 받아서 그 나라로 몰려옵니다. 그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겁니다. 학정을 피해서 덕치 국가로 찾아가는 겁니다. 그러한 것을 귀화라고 했습니다. 즉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 나라 백성이 되기를 청하는 겁니다. 물론 귀화를 받아들인 나라에서도 차별은 없었을 겁니다. 귀화나 귀화어는 그런 개념입니다.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 살고 싶다고 청하는 것이 귀화이고, 한국어 속에서 구별되지 않게 자리 잡은 말이 귀화어입니다. 모국의 어려운 사정으로 난민 심사를 신청하는 것도 귀화 신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도입국자녀라는 말도 심각합니다. 이 말은 아이가 아주 어릴 때가 아니라 학생 시절에 한국에 들어온 아이를 말합니다. 성인도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듣기만 하여도 부모가 이혼 후 재혼 가정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보통 이혼 후에 전 배우자의 자녀와 함께 한국으로 입국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숨기고 싶어도 중도입국자녀라는 표현만 들으면 문제가 드러나게 됩니다. 요즘은 학령기 이주 청소년 등의 용어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결혼이민자라는 용어도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왠지 결혼을 통해서 경제적 사정을 바꾸기 위해서 입국한 사람이 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상 속에는 일반적으로 남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교적 선진국에서 온 경우에도 결혼이민자라는 범주에 넣지 않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주 여성이라는 용어로 폭넓게 보아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주 여성이라고 하면 이주 남성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용어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도 이주 노동자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근로자와 노동자의 정의만큼이나 어려운 논의로 보입니다. 용어에는 관점과 철학이 담기기도 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용어 편견 용어 때문 귀화 신청 편견 편견

2024-12-29

[우리말 바루기] ‘그 와중에’가 품은 뜻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현대인. 늘 시간에 쫓기며 지내서일까? “바쁘신 와중에도 송년회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귀한 시간을 내준 데 대한 감사의 표현이지만 적절한 인사말은 아니다. 딴 겨를 없이 바쁜 상황과 ‘와중’이란 단어의 의미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와중’은 소용돌이 와(渦)와 가운데 중(中)으로 이뤄진 한자어다. 소용돌이는 물이 빙빙 돌면서 흐르는 현상으로, 힘이나 감정 따위가 뒤엉켜 요란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이런 소용돌이 가운데가 ‘와중’이다. 그 속에 있는 것과 같이 일이나 사건이 시끄럽고 복잡하게 벌어지는 상황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그는 피란 와중에 헤어진 형을 찾고 있다”처럼 쓰인다.   ‘와중’은 전란·태풍·지진과 같이 큰일이 일어나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상황이 복잡하게 꼬일 때 사용하는 게 자연스럽다. 일상생활에서의 바쁜 상황을 나타낼 때 “바쁘신 와중에도”와 같이 표현하는 건 지나치다. “바쁘신 중에도” “바쁘신 가운데도”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등으로 표현하면 된다.   더한 오용 사례도 있다. “기차를 타고 가던 와중에 네 생각이 났다” “모두 잠든 와중에 홀로 깨어 있었다” 등의 경우다. “기차를 타고 가던 중에” “모두 잠든 가운데”라고 하면 충분하다.우리말 바루기 와중 소용돌이 가운데 오용 사례 감정 따위

202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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