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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없어도 되는 ‘~에 있어’

“그는 일에 있어서나 사랑에 있어 열정적이다”에서와 같이 흔히 쓰는 말에 ‘~에 있어(서)’가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식 표현이다. 일본어에서 ‘니오이테(において)’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에 있어(서)’가 된다.   이전에는 쓰이지 않던 이 말이 일제시대 들어 흔히 사용됐다는 것은 일본어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 요즘은 들어가지 않은 글이 없을 정도로 남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말에서 ‘~에 있어(서)’는 대부분 없어도 되는 군더더기 표현이다.   “당신은 나에게 있어 존재의 의미입니다” “마음이 열리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 삶은 고된 시련의 장일 수밖에 없다”에서 ‘~있어’는 모두 필요 없는 말로 ‘~에게’로만 해도 충분하다.   “남녀의 차이는 생리적인 것일 뿐 능력에 있어서는 대등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있어서는 확고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에서도 ‘~있어’는 불필요하다. 각각 ‘능력에서는’ ‘순간에는’으로 하면 된다.   다만 “나는 집에 있어서 바깥일은 잘 모른다”에서의 ‘어서’는 이유나 근거를 나타내는 연결어미로 ‘집에 있기 때문에’란 뜻이다. “돈이 없어서[없기 때문에] 결혼도 못 한다”에서의 ‘어서’와 같은 용법이며 위에서 얘기한 ‘~에 있어(서)’와는 다르다.우리말 바루기

2024-04-25

[우리말 바루기] ‘가지다’를 줄여 쓰자

번역투 표현으로 볼 수 있는 것 중에 ‘~를 가지다(갖다)’ 형태가 있다. 우리말에서 잘 어울리는 다른 서술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다’ ‘갖다’를 남용하는 것은 영어의 ‘have+명사’를 ‘가지다’ 또는 준말인 ‘갖다’로 단순 번역하는 데 익숙한 탓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즐거운 시간 가지시기 바랍니다”가 대표적인 예로 “Have a good time”을 직역한 것이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가 우리말에서 어울리는 표현이다. ‘가지다’는 소유의 개념 외에도 여러 가지 뜻을 지니고 있어 두루 쓸 수 있는 단어이긴 하다. 그러나 경우를 가리지 않고 마구 사용함으로써 어색한 문장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문제다.   ‘기자회견을 갖다’ ‘회담을 갖다’ ‘집회를 갖다’ ‘간담회를 갖다’ 등은 ‘열다’ ‘하다’ ‘개최하다’ 등이 어울리는 자리에 ‘갖다’를 쓴 경우다.     ‘가지다’를 남용하면 더욱 어색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나는 세 명의 가족을 가지고 있다”가 그런 예로 가족이 소유물인 듯한 표현이다. “나에게는 세 명의 가족이 있다” 또는 “우리 가족은 세 명이다” 등이 자연스런 표현이다.   이처럼 ‘가지다(갖다)’를 남용함으로써 정상적인 우리말 표현 방식이 무너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 ‘열다’ ‘있다’ ‘하다’ ‘보내다’ 등 다른 적절한 단어로 바꾸어 쓰거나 우리말답게 문장을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표현 명의 가족 우리 가족

2024-04-24

[우리말 바루기] ~에 의해’는 불필요

‘~에 기초해’ ‘~로 말미암아’의 뜻으로 쓰이는 ‘~에 의해’가 있다. 그러나 전혀 필요 없는 곳에 집어넣거나 다른 말이 어울리는 자리에 마구 사용하는 등 ‘~에 의해’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에 의(依)해’를 남용하게 된 것은 일본어에서 자주 나오는 ‘~니욧테(~に依って)’ 또는 영어 수동태 문장의 ‘by~’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친구들에 의해 소외당하고 있다” “적절한 교육에 의해 높은 소질을 키울 수 있다”에서는 각각 ‘친구들에게’ ‘교육으로’가, “자연은 일정한 목적에 의해 움직이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광고에 의해 자신의 욕구와 관계없는 제품을 구매하지는 않는다”에서는 각각 ‘목적에 따라’ ‘광고 때문에’가 어울린다.   더 큰 문제는 ‘~에 의해’를 사용하는 데 익숙하다 보니 영어의 ‘by’를 단순히 ‘~에 의해’로 번역해 우리말 체계와 다른 피동문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The book was written by Dr. Kim”을 대부분 “그 책은 김 박사에 의해 쓰였다”로 번역한다. 그러나 능동문을 주로 사용하는 우리말로는 “김 박사가 그 책을 썼다”가 정상적 표현이다.   이러다 보니 요즘은 ‘~에 의해’를 사용한 피동문을 흔히 볼 수 있다. “사회적 지위 이동은 교육에 의해 좌우된다” 등이 그런 예다. 능동문인 “교육이 사회적 지위 이동을 좌우한다”가 자연스럽다.우리말 바루기 불필요 사회적 지위 우리말 체계 영어 수동태

2024-04-23

[우리말 바루기] '왠'과 '웬'

글을 쓰면서 가장 헷갈리는 것 가운데 하나가 ‘왠/웬’이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막상 사용하려면 어느 것이 맞는지 또 아리송해진다.   가장 헷갈리는 경우는 ‘왠지’ ‘웬지’다. 발음이 거의 같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답은 ‘왠지’다. ‘왠지’는 ‘왜인지’가 줄어든 말이다. ‘왜 그런지 모르게’ ‘무슨 까닭인지’라는 뜻이다. “올해는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왠지 오늘은 달달한 것이 당긴다”처럼 쓰인다.   ‘왠지’가 ‘왜인지’의 준말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웬지’로 쓰지 않을 수 있다. ‘웬’은 ‘어찌 된’ ‘어떠한’을 뜻하는 관형사다. 관형사는 명사를 수식하는 말이다. 따라서 ‘웬’ 다음에는 반드시 명사가 온다. “이리 늦다니 웬 영문인지 모르겠다” “웬 걱정이 그렇게 많아” 등과 같이 사용된다.   그럼 ‘왠걸’은 어떻게 될까? ‘웬걸’이 맞는 말이다. ‘웬 것을’이 줄어 ‘웬걸’이 됐다. “웬걸 먹을 것을 이리도 많이 사왔냐?” “웬걸 사람이 이렇게 많이도 모였냐?” “안 먹던 술을 웬걸 그렇게 많이 먹었던지”처럼 쓰인다.   ‘왠일’도 틀린 말이다. ‘어찌 된 일’이라는 뜻으로 원래 ‘웬 일’ 형태였겠지만 ‘의외’라는 의미의 한 단어로 취급해 ‘웬일’이 됐다. “웬일로 여기까지 다 왔니?” “이게 웬일이냐” “지각 한 번 없던 그가 결석을 하다니, 웬일일까?와 같이 사용된다.우리말 바루기 웬일로 여기

2024-04-22

[아름다운 우리말] 참성이라는 말

오늘도 여러 책을 읽으며 진리를 공부하다가 ‘참성(僭聖)’이라는 표현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사전에 없는 말이 참 많다는 생각을 새삼 합니다. 참성의 참(僭)은 어긋난다는 뜻으로 ‘참람(僭濫)하다, 참칭(僭稱)하다’라고 할 때 쓰입니다. 참람하다는 말은 분수에 넘쳐 지나치다는 의미입니다. 참칭이라는 말은 멋대로 분수 넘치게 스스로를 무엇이라고 칭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전의 예에는 왕을 참칭하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착각할 때 쓰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성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스스로를 성인이라고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성인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책에서 참성은 깨달음의 적이고, 깨달은 이의 적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깨달은 이의 세 강적 중에서 가장 나쁜 강적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성인인 척하는 것이 깨달은 이를 모욕하고,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것보다도 더 나쁜 적인 셈입니다.     척하는 것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이 깨달은 척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척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없으면서 있는 척하고, 모르면서 아는 척합니다. 잘난 척, 예쁜 척 등도 있습니다. 갑자기 ‘귀여운 척’이라는 표현이 생각나네요. 척 중에는 위험한 게 많습니다만, 그중 최악은 깨달은 척, 성인인 척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을 나쁜 쪽으로 이끌고, 참된 사람을 욕합니다.   참성하는 이와 진짜 성인의 차이는 무얼까요? 일단 대부분의 성인은 스스로를 성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공자도 맹자도 성인이냐는 물음에 손사래를 쳤습니다. 성인이어도 스스로를 성인이라고 하기에는 두려움이 있었을 겁니다. 저는 성인은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겸손하게 진리의 길을 가고, 진리의 편이 되는 이가 성인인 겁니다.     참성하는 이는 정반대의 삶을 삽니다. 참성하는 사람을 설명해 놓은 것을 보고, 저도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참성하는 이는 스스로가 깨달았다고 착각하며, 다른 이를 무시(無視)하고 업신여깁니다. 무시한다는 말은 그야말로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뜻입니다. 진리의 길에 서 있다면 더 낮은 곳, 더 아픈 곳을 바라보아야 하고, 찾아야 합니다. 저는 업신여긴다는 말은 ‘없이 여기다’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즉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겁니다. 당연히 저 잘난 맛으로 사는 사람인 겁니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남도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모든 이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가짜입니다.   참성하는 사람이 나아가는 방향은 아프고 낮은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화려하고 높은 곳입니다. 권력에 집착하고, 명예에 집착하고, 돈에 집착합니다. 권력자와 가깝고, 돈 있는 자와 가깝습니다. 무슨 무슨 자리에 연연합니다. 권력자와 가까운 것이 자랑이고, 권력마저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돈 있는 자와 가까운 것이 기쁨이고,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합니다.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고 하지만, 들여다보면 직위를 탐내는 것입니다. 명예는 희생에서 오는 겁니다. 희생이 빠진 명예는 그저 자리에 대한 집착일 뿐입니다.     참성이 진리를 방해하는 강적이라는 말이 진리를 공부하고 생각하는 동안 더 다가옵니다. 왜 가장 나쁜 강적으로 표현하였는지 알겠습니다. 참성이라는 단어를 살펴보면서 내가 나아가는 방향을 돌아봅니다. 돈이 좋고, 힘이 좋고, 자리가 좋고, 그런 사람들과 아는 게 기쁜 삶이네요. 그러고 보면 참성은 멀리에 있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그런 사람임을 모르고, 그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면 참성의 삶을 살고 있는 겁니다. 나 스스로가 진리를 방해하고 있는 사람임을 뼈아프게 느낍니다. 참성이 아닌 척 살고 있었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진짜 성인 사람 취급

2024-04-21

[우리말 바루기] “밥 한번 먹자”의 띄어쓰기

다음 중 ‘한 번’ 띄어쓰기가 바른 것은?   ㉠ 언제 밥 한 번 먹자   ㉡ 한 번 해보겠습니다   ㉢ 너 말 한 번 잘했다   ㉣ 한 번만 봐주세요   한국인의 뻔한 거짓말 1위가 “언제 밥 한번 먹자”라고 한다. 이를 글로 적는다면 ‘한번’을 붙여 써야 할까, 띄어 써야 할까? ‘한번’ ‘한 번’ 띄어쓰기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부분이다.   먼저 정리하면 ‘한번’은 기회·시도·강조를 뜻하고, ‘한 번’은 횟수를 의미한다.   ㉠“언제 밥 한 번 먹자”에서는 기회를 뜻하므로 ‘한번’으로 붙여 써야 한다. “시간 날 때 한번 놀러 오세요” “언제 한번 찾아뵙고 싶습니다”도 이런 경우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는 시도를 의미하므로 ‘한번’을 역시 붙여 써야 한다. “한번 먹어 보자” “일단 한번 가 보자” 등도 마찬가지다.㉢“너 말 한 번 잘했다”도 강조를 나타내므로 ‘한번’으로 붙여 써야 한다. “춤 한번 잘 춘다” “공 한번 잘 찬다”도 이런 예다.   ㉣“한 번만 봐주세요”에서는 위 예들과 달리 횟수를 나타내므로 ‘한 번’으로 띄어 쓰는 것이 맞다. ‘한 번’ ‘두 번’ ‘세 번’과 같이 횟수를 나타낼 때 띄어 쓰는 것은 대부분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답은 ㉣.   그렇다면 여기에서 어려운 문제 하나 더. ‘다시 한번’ ‘다시 한 번’은 어느 것이 맞을까? 이에 대해 다소 혼란이 있었으나 국립국어원은 2015년 의미 구별 없이 붙여 쓰는 것으로, 즉 ‘다시 한번’으로 통일하기로 했다.우리말 바루기 띄어쓰기 의미 구별 거짓말 1위 문제 하나

2024-04-21

[우리말 바루기] ‘대로’의 띄어쓰기

“보는 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그린다.” 피카소전을 찾은 관람객은 어김없이 이 문구 앞에 머문다. 관람평에도 빠짐없이 인용되는데 띄어쓰기를 잘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는대로’ ‘생각하는대로’와 같이 붙이면 안 된다. 이때의 ‘대로’는 의존명사이므로 앞말과 띄는 게 바르다. 의존명사는 혼자 사용하지 못하지만 문법적으로 독립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의존명사 ‘대로’는 어떤 모양이나 상태와 같이, 어떤 상태나 행동이 나타나는 즉시 또는 족족의 뜻으로 쓰인다. “아까 들은 대로 전할게”와 같이 동사나 형용사 뒤에 오며 앞말과 띄어 쓴다. “지칠 대로 지친 마음을 알까요”처럼 어떤 상태가 매우 심하다는 의미로도 사용한다.   ‘대로’를 앞말과 붙이는 경우도 있다. 조사일 때다. 체언 뒤에 붙어 앞에 오는 말에 근거하거나 달라짐이 없음을 나타낸다. “계획대로 하지” “네 마음대로 하렴”처럼 쓰인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생활하자”와 같이 따로따로 구별됨을 나타내는 보조사로도 사용된다.   ‘대로’가 놓일 자리에 ‘데로’를 잘못 쓸 때도 종종 있다. “마음이 이끄는 데로 하십시오”는 ‘대로’가 와야 뜻이 통한다. 반대일 때도 있다. “네가 있는 대로 우리가 찾아갈게”와 같은 경우 ‘데로’가 와야 한다. 우리말 바루기 띄어쓰기

2024-04-18

[우리말 바루기] ‘애시당초’는 없는 말

“애시당초 금연은 안 될 일이었어” “끼니를 거르고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애시당초 무리였다.”     위에서처럼 일의 맨 처음을 나타낼 때 ‘애시당초’라는 말을 쓴다. ‘애시’와 ‘당초’가 만나 ‘애시당초’가 된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이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애시’는 ‘애초’의 사투리이므로 ‘애초’라는 말을 써야 한다. ‘애시당초’ 역시 ‘애당초’가 맞는 말이다.   ‘애당초’는 ‘애시’와 ‘당초’가 아닌 접두사 ‘애-’와 ‘당초’가 만나 이루어진 단어다. ‘당초(當初)’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 처음을 나타내는 말로 “일이 당초의 생각과는 다르게 풀렸다” “그의 본심이 어디 있는지는 당초부터 알 만한 것이었다” 등처럼 쓰인다. 이 ‘당초’에 ‘맨 처음’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애-’가 붙어 ‘애당초’가 됐다. 즉 접사 ‘애-’를 붙여 ‘당초’의 뜻을 한 번 더 강조한 말이 ‘애당초’다.   ‘애당초’는 “그 일은 애당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끝까지 해낼 각오가 없으면 애당초 시작하지 마라” 등과 같이 사용된다. 줄여 ‘애초’로도 쓸 수 있다.     비슷한 말로 ‘애저녁’이 있다. 그러나 ‘애저녁’도 ‘애시당초’와 마찬가지로 표준어가 아니므로 ‘애당초’로 표기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생각 자체

2024-04-17

[우리말 바루기] ‘꾀다’와 ‘꼬시다’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으로 남을 속이거나 부추겨서 자기 생각대로 끄는 것을 ‘꾀다’라고 한다. “대출금리를 낮춰 주겠다며 꾀어 돈을 가로챈 일당” “대출을 받아 준다며 저신용자들 꾀어 사기 행각” 등처럼 쓰인다.   ‘꾀다’를 대신할 수 있는 동사가 또 있다. ‘꼬이다’로 표현해도 된다. “투자만 하면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꼬여 돈만 가로채는 유사수신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와 같이 사용한다. ‘꾀다’와 ‘꼬이다’는 복수표준어다. 어느 것을 써도 무방하다. 이런 유형의 복수표준어에는 ‘괴다/고이다, 쐬다/쏘이다, 죄다/조이다쬐다/쪼이다’ 등이 있다.   ‘꼬드기다’도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어떠한 일을 하도록 남의 마음을 꾀어 부추기다는 뜻이다. “금연한 지 두 달째인데 꼬드기지 마”처럼 사용한다.   입말에서 세를 넓힌 ‘꼬시다’는 뒤늦게 표준어가 됐다. ‘꾀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랐다. 원래는 ‘고소하다’의 강원·경상·전라도 사투리였다. 이성과 사귀려고 수작을 부리다 등의 의미로 실생활에서 널리 쓰이면서 2014년 표준말이 됐다. ‘꾀다’와 어감상 차이가 있다고 판단해 별도 표준어로 추가한 경우다. “먹는 걸로 꼬시는 거야?”와 같이 사용한다.   ‘꾀다/꼬이다, 꼬드기다, 꼬시다’는 말맛 차이가 있으나 상대의 마음을 꾀어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끄는 것을 뜻한다.우리말 바루기 별도 표준어 사기 행각 어감상 차이

2024-04-16

[우리말 바루기] 헷갈리는 ‘되레’와 ‘외려’

분명 화낼 사람은 따로 있는데 오히려 잘못한 당사자가 펄쩍 뛰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이 닥친다면 “잘못은 네가 해 놓고 되레 나한테 화를 내면 어떡해!” “잘못한 놈이 외려 큰소리야!” 등과 같이 말하게 된다.   이처럼 예상·기대와는 다르게 되는 경우 ‘되레’나 ‘외려’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도와주려고 한 일이 되려 폐만 끼쳤다” “자기가 잘못하고선 외레 큰소리친다” 등처럼 ‘되레’ 대신 ‘되려’, ‘외려’ 대신 ‘외레’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각각 어느 것이 맞는 말일까?   우선 ‘되레’는 ‘도리어’의 준말이다. ‘도리어’가 줄어들면 ‘되려’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되레’가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외려’도 ‘외레’가 맞는 말일까? 이 경우에는 반대다. ‘오히려’의 준말로 ‘외레’가 쓰이기도 하지만 ‘외려’를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비슷한 경우이지만 모양이 다른 ‘되레’와 ‘외려’가 각각 표준어다.   하지만 일반인으로선 같은 구조의 ‘되레’와 ‘외레’, ‘되려’와 ‘외려’로 짝을 지어 생각하기 때문에 헷갈릴 수밖에 없다. 즉 ‘되레’가 바른 표현이기 때문에 ‘외려’ 역시 ‘외레’가 아닌가 생각하기 쉽다. ‘도리어’의 ‘어’와 ‘오히려’의 ‘려’가 준말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기억하면 ‘되레’와 ‘외려’로 바르게 쓰는 데 도움이 된다.우리말 바루기

2024-04-15

[우리말 바루기] ‘원활’, ‘원할’

많이 쓰면서도 헷갈리는 단어가 ‘원활/원할’이다. “‘원활/원할’한 공급을 위해 사전 예약 서비스도 함께 도입할 예정이다” 등처럼 심심치 않게 나오는 낱말이지만 어느 것으로 적어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바른 표현은 ‘원활’이다. ‘원활(圓滑)’은 거침이 없이 잘되어 나감을 뜻하는 한자어다. ‘둥글 원(圓)’ 자와 ‘미끄러울 활(滑)’ 자로 이루어져 있다. ‘활(滑)’은 거침없이 매끄럽게 일이 진행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윤활유(潤滑油)’의 ‘활’ 자를 생각하면 ‘원활’도 바르게 적는 데 도움이 된다. ‘원할’은 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은 낱말, 즉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원활’은 모난 데가 없고 원만한 것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인간 상호 관계의 원활은 상대와의 충돌이 없음을 의미한다”처럼 사용된다.   ‘활’을 써야 할지, ‘할’을 써야 할지 망설여지는 단어로는 ‘역활’과 ‘역할’도 있다. 이때는 ‘역할’이 바른 말이다. ‘역할(役割)’은 ‘부릴 역(役)’ 자와 ‘나눌 할(割)’ 자가 만나 이루어진 단어다. ‘역활’은 없는 낱말이다. ‘원활’과 같은 모양의 ‘역활’로 잘못 쓰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활인’‘할인’ 역시 헷갈리는 단어 가운데 하나다. “활인/할인 행사가 어제 시작됐다”처럼 나올 때 어느 것으로 적어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나눌 할(割)’ 자와 ‘끌 인(引)’ 자를 쓴 ‘할인’이 바른 말이다.우리말 바루기 원활 할인 행사 단어 가운데 사전 예약

2024-04-14

[아름다운 우리말] 따라 부르기를 통한 치유

저는 요즘 경기잡가 중 집장가(執杖歌)를 배웁니다. 집장가는 경기민요 12잡가 중 하나입니다. 소춘향가(小春香歌), 출인가(出人歌), 형장가(刑場歌), 십장가(十杖歌)와 함께 판소리 춘향가에서 따온 노래입니다. 춘향가의 내용 순서로 보면 오리정의 이별을 노래하는 출인가와형장가의 중간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장가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춘향을 형장을 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집장 군노(軍奴)는 형장(刑場)을 치는 군졸을 의미합니다.   노래의 내용은 춘향을 형틀에 묶고, 사또의 분부를 들으라고 하는 집장군노, 사또 앞에서 죽여달라는 춘향, 살살치겠다고 속이는 집장군노, 형장을 매우 세게 치는 집장군노, 고통스러워하는 춘향, 말을 들으라고 이야기하는 집장군노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습니다.   형틀에 묶여서 매를 맞는 장면은 매우 무서운 장면이지만, 경기민요에서는 이 장면을 해학적으로 풉니다. 따라서 집장가 노래를 듣는 청중이나 집장가를 따라 부르는 제자는 슬픔과 분노, 해학과 풍자를 넘나들게 됩니다. 이는 판소리의 주요한 특징이기도 하지만 고통 속에서도 웃음이 있는 우리 예술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으로만 취급하지 않고, 그 속에서도 희망 또는 웃음을 찾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실제로 인생의 고락(苦樂)이 오가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과 일치시키는 겁니다. 춘향전은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에서 시작하여, 이별, 고통을 거쳐 만남과 행복의 기쁨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각 부분 속에서도 희로애락이 엇갈리며 자리하게 됩니다. 집장가는 이런 우리의 인생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부르는 이’나 ‘따라 하는 이’, ‘듣는 이’가 모두 공감합니다.   집장가 가사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우선 한국어의 주요 특징인 음성상징어 즉, 의태어의 사용이 두드러집니다. ‘쫑그라니, 덥석, 좌르르, 느긋느긋, 는청는청, 허허, 풍기덩실, 지두덩실’과 같은 의태어는 모양을 흉내 낸 말로써 다른 언어로 번역이 어려운 표현입니다. 의태어는 동작이나 모습을 눈앞에 보듯이 나타내는 말이어서 이야기에 매우 잘 어울리는 언어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집장가는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는데 풍자와 해학의 대표적인 장치로는 속담과 과장법을 들 수 있습니다. 때리면서 ‘골 부러질라’라고 하는 장면, ‘지옥문 지키었던 사자가 철퇴를 들어 메고 내닫는 형상’이라고 집장군노를 묘사하는 장면, ‘좁은 골에 벼락 치듯 너른 들에 번개 하듯’과 ‘십 리만치 물렀다가 오 리만치 달려들어’와 같이 때리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은 극히 과장스러운 모습으로 듣는 이에게 해학의 즐거움을 줍니다.   주로 스승께 민요를 배울 때는 가사를 보는 경우도 악보를 보는 경우도 없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부르며 스승을 모방하는 것이 민요 배우기인 겁니다. 이는 우리 민요가 악보로만 전달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을 겁니다. 음의 세밀한 변화는 악보로 표시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가르침 속에서 완성됩니다. 따라서 민요를 배우는 과정은 철저히 스승을 따라 부르는 과정입니다. 즉, 모방 속에서 자기 완성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민요 배우기는 노래를 배우는 과정뿐 아니라 스승의 감정을 배우고 함께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밀한 감정의 변화가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고, 이러한 감정의 전이를 통해서 민요의 완성이 이루어집니다. 특히 집장가와 같이 다양한 감정이 담겨있는 민요의 경우는 더욱 감정의 전수가 중요합니다. 민요 따라 부르기는 스승과의 감정 공유를 통해서 치유의 과정으로 나아갑니다. 스승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희로애락의 감정변화를 겪고, 이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는 겁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치유 장면이지만 경기민요 집장가 노래 집장군노 형장

2024-04-14

[우리말 바루기] ‘한참때’, ‘한창때’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전성기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내가 (한참때/ 한창때)는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나도 (한참때/ 한창때)는 어마어마하게 잘나갔다” 등과 같은 표현이다. 그렇다면 괄호 안에는 어떤 단어가 적절한 말일까?   ‘한참’과 ‘한창’은 각각 의미가 다른 단어이므로 문맥에 따라 정확한 것을 골라 사용해야 한다.   ‘한참’은 ‘시간이 상당히 지나는 동안, 오랫동안, 한동안’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너를 한참 동안 기다렸다” “강물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한참 뒤에 도착했다“ 등과 같이 쓰인다.   ‘한창’은 어떤 일이 가장 활기 있고 왕성하게 일어나는 때 또는 어떤 상태가 무르익은 때를 뜻한다. ”남해에는 벌써 봄이 한창이다“처럼 사용할 수 있다. ‘한참’은 시간의 흐름에, ‘한창’은 특정한 시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두의 예문에서는 두 문장 모두 기운이나 의욕이 가장 왕성하고 활발한 때를 뜻하므로 ‘한참때’가 아니라 ‘한창때’가 맞는 말이다.   기운이 한창인 젊은 나이를 표현할 때도 ”한참나이에 놀기만 해서야 되겠느냐“에서와 같이 ‘한참나이’라고 쓰는 경우를 볼 수 있으나 이 역시 ‘한창나이’가 바른말이다.   ‘한창때’는 ‘한창’과 ‘때’, ‘한창나이’는 ‘한창’과 ‘나이’가 만나 이루어진 합성어다. 우리말 바루기 한참때 한창때 문장 모두

2024-04-11

[우리말 바루기] ‘배 속’과 ‘뱃속’의 차이

태명과 관련해 반드시 띄어야 하는 말이 있다. “열 달 동안 무럭무럭 자라라는 의미에서 뱃속 아이를 ‘열무’라고 부른다”처럼 쓰면 안 된다. ‘배 속’으로 띄고 [배 속ː]으로 읽어야 한다.   ‘배 속’과 ‘뱃속’은 다른 뜻으로 사용된다. 신체 내부를 관찰하는 내시경으로는 ‘뱃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 뱃속은 ‘마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만 올라 있다.   신체 부위인 배 안을 가리킬 때는 ‘배 속’과 같이 띄어 쓴다. 사전에서 ‘태아’를 검색하면 ‘어머니 배 속에 있는 아이’라고 나온다. “그들의 검은 뱃속을 미처 몰랐다”의 경우에는 육체적인 배를 뜻하는 게 아니다. 음흉한 속내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므로 ‘뱃속’으로 붙여 적고 [배쏙/밷쏙]으로 발음한다.   띄어쓰기 하나로 뜻이 달라지는 단어로는 ‘가슴 속’과 ‘가슴속’도 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거칠게 울려 나오는 기침 소리”와 같이 가슴 안쪽 부분을 이르면 ‘가슴 속’으로 띄어야 한다. “가슴속에 고이 간직한 추억”처럼 ‘마음속’의 의미라면 ‘가슴속’으로 붙인다.   문제는 ‘속’이 붙는 단어들의 의미와 띄어쓰기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콧속’은 코의 안쪽, ‘귓속’은 귀의 안쪽을 나타내지만 붙인다. ‘뱃속’과 ‘배 속’이 다른 뜻임을 간과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효율성 측면에서 ‘뱃속’의 의미를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우리말 바루기 뱃속 뱃속 아이 가슴 안쪽 현재 표준국어대사전

2024-04-10

[우리말 바루기] ‘햇빛’, ‘햇볕’

눈부신 해가 비친다면 이를 ‘햇볕’이라 해야 할까, ‘햇빛’이라 해야 할까?   ‘햇볕’은 해가 내리쬐는 뜨거운 기운을 뜻한다. 태양의 열(熱)과 관련된 것으로, 살갗을 통해 뜨거움 또는 자극의 정도를 느낄 수 있다. 피부를 햇볕에 오래 노출하면 피부가 상하거나 벗겨지기도 한다. “낮에는 햇볕이 뜨거워 아직도 외출할 때 조심해야 한다” “햇볕에 피부를 그을렸다” 등처럼 쓸 수 있다.   ‘햇빛’은 해에서 나오는 빛을 뜻한다. 태양의 광(光)선과 관련된 것으로, 시신경을 자극해 물체를 볼 수 있게 하는 전자기파다. 이로 인해 ‘밝음’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햇빛에 눈이 부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한낮의 햇빛을 가리기 위해 집 안 곳곳에 커튼을 쳐 놓았다” 등과 같이 사용된다.   비가 그친 뒤 눈부신 해가 비친다면 이는 태양의 광선과 관련된 것이므로 ‘햇볕’이 아니라 ‘햇빛’이 적절한 표현이다. 즉 ‘눈부신 햇볕’이 아니라 ‘눈부신 햇빛’이 더욱 어울리는 표현이다.   문제 하나 더. “○○이 강하게 내리쬐는 바닷가에서는 선크림을 바르고 긴팔 옷을 입는 등 화상에 주의해야 한다”에서 ○○에 들어갈 적절한 말은 ‘햇볕’과 ‘햇빛’ 가운데 어느 것일까? 여기에서는 명암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뜨거움으로 인해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이므로 ‘햇볕’을 써야 바르다. 눈이 부신 건 ‘햇빛’, 뜨거운 건 ‘햇볕’이라고 기억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햇빛 햇볕 문제 하나

2024-04-09

[아름다운 우리말] 말하기의 단계

말을 잘 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현대사회는 아무래도 글의 시대라기보다는 말의 시대로 보입니다. 정교하고 수려한 글보다는 하루하루 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일 겁니다. 말하기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말을 하지 않는 것도 말하기라는 점입니다. 말을 잘하는 중요한 방법은 놀랍게도 말을 하지 않는 겁니다. 특히 듣는 사람이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거나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때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게 말하기의 첫 단계입니다. 우리는 종종 저 사람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답답해합니다.     말하기 전에 듣는 사람을 살피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듣는 이가 내 이야기를 알아들을 만큼 성장하였는지도 알아봐야 하지만, 듣는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살피는 것도 중요합니다. 도대체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가 하는 말은 그저 소음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그런 말을 ‘소리’라고 합니다. 말을 소리라고 표현하는 것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큰소리, 잔소리, 흰소리, 헛소리는 모두 의사소통에 실패한 말입니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우리는 일방향의 소리만 들려주고 있는 겁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말도 실패의 가능성이 높은 말하기입니다. 시간이 없는 이를 붙잡고 하는 말하기나 다른 관심사가 있는 사람에게 관심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듣는 이의 수준이나 관심을 살피는 노력이 필요한 겁니다. 저는 가르침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유학의 글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도 가르치는 방법이라는 내용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쉽게 가르칠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안 가르치는 것도 방법이라니요. 저는 안 가르치는 방법도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말하기입니다.     말하기는 일정한 것이 아닙니다. 즉, 상대에 따라서 말하기는 달라져야 합니다. 아이에게 하는 말이 다르고, 윗사람에게 하는 말이 다릅니다. 많이 아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다르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다릅니다. 저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잘 설명하는 말하기가 좋은 말하기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는 근기에 따른 설법을 이야기합니다. 상대의 정도에 따라 설명이 달라져야 하는 겁니다. 깨달음의 단계가 높은 사람과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이 똑같은 청자일 수는 없습니다. 상대를 보고, 달리 이야기하려는 태도야말로 늘 조심해야 하는 말하기의 단계입니다.   옛글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말하기는 진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언영색(巧言令色)은 가장 피해야 하는 말하기입니다. 교언영색은 그저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는 말하기와 표정을 말합니다. 말하기의 경계 1순위입니다. 거짓으로 남을 속이는 말하기는 남만 속이는 게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나를 속이는 말하기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솔직한 말하기는 쉬운 게 아닙니다. 솔직한 표현이 상처가 되는 일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말이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태도를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비뚤어져 있으면서 말이 바로 나가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듣는 이의 상태도 잘 살펴야 합니다. 나의 곧은 말이 그에게는 깊은 상처를 줍니다.     말하기의 마지막 단계는 저는 화엄경의 보현행원품 칭찬여래원에서 말하는 변재천녀(辯才天女)의 말하기라고 봅니다. 칭찬여래원은 여래 즉, 부처님을 칭찬하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을 칭찬하는 것이니 얼마나 정성껏 좋은 말로 하여야 할까요? 이때 변재천녀는 부처님을 칭찬하는 역할로 나옵니다. 그야말로 온갖 아름다운 말로 부처님을 칭찬합니다. 부처님에 대한 찬탄은 변재천녀로도 모자랄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부처님만 부처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뭇 중생이 불성을 가진 부처라는 생각은 칭찬에 고민을 더하게 됩니다. 저런 사람까지 칭찬을 해야 한다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겁니다. 그 순간이 깨달음의 ‘찰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은 상대의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말하기가 좋은 말하기입니다. 칭찬이 그대로 수행이듯이, 말하기도 그대로 깨달음이 됩니다. 말하기는 배려이고, 소통이고, 사는 기쁨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이때 변재천녀 큰소리 잔소리 모두 의사소통

2024-04-07

[우리말 바루기] 장애인에게 상처 주는 말

부지불식간에 사용하는 속담이나 관용구에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 들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러한 점을 지적한 적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꿀 먹은 벙어리’와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인권위는 ‘꿀 먹은 벙어리’는 문맥과 상황에 따라 ‘말문이 막힌’ ‘말을 못하는’ 등으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일부만 알면서 전체를 알듯이’ ‘주먹구구식’ 등으로 바꾸어 쓸 것을 권하고 있다.   이러한 관용구에는 ‘눈먼 돈’과 ‘외눈박이 ○○’도 있다. ‘눈먼 돈’은 임자 없는 돈이나 우연히 생긴 공돈을 뜻한다. ‘외눈박이 ○○’은 한쪽으로 기울거나 편파적인 경우에 사용되는 말이다.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는 상황에 따라 ‘눈먼 돈’은 ‘주인 없는 돈’, ‘외눈박이 ○○’는 ‘편파 ○○’ 등으로 바꾸어 쓸 것을 제안하고 있다. ‘장애를 앓고 있다’는 표현 또한 장애를 질병이나 결함으로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바꾸어 쓸 것을 권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역시 ‘눈 뜬 장님’ ‘벙어리 냉가슴 앓듯’ ‘귀머거리 삼년’ ‘절름발이 정책’ 등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 절름발이’ 등이 들어간 속담이나 관용구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표현이라며 사용을 자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우리말 바루기 장애인 상처 장님 벙어리 벙어리 냉가슴 절름발이 정책

2024-04-07

[우리말 바루기] ‘경신’, ‘갱신’

총선에 대한 관심이 열기를 더해 갈 때마다 “이번 총선에서 투표율이 역대 최고를 경신/갱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전투표율이 사상 최고치를 갱신/갱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등과 같은 기사가 자주 눈에 띈다. 그런데 ‘경신’과 ‘갱신’ 중 어떤 것을 써야 할지 헷갈리곤 한다.   ‘경신’과 ‘갱신’이 혼재돼 쓰이는 이유는 둘 다 같은 한자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更新’은 ‘경신’으로도, ‘갱신’으로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각각 어떠한 경우 달리 읽는지 알아야 적확한 단어를 골라 쓸 수 있다.   ‘경신’은 기록경기 등에서 종전의 기록을 깨뜨리거나, 어떤 분야의 종전 최고치 또는 최저치를 깨뜨리는 일을 나타낼 때 쓰인다. 따라서 위 예문에 나온 표현들은 모두 ‘갱신’이 아닌 ‘경신’을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   ‘갱신’은 법률관계의 존속기간이 끝났을 때 그 기간을 연장하는 일이나, 정보·통신 등의 분야에서 기존 내용을 변동된 사실에 따라 변경·추가·삭제하는 일을 나타낼 때 사용할 수 있다. “전세 계약을 갱신했다” “여권 갱신을 하기 위해 구청에 들렀다” “시스템 갱신을 위해 업데이트를 받았다” 등과 같이 쓰인다.   정리하자면, ‘기록을 깬다’는 의미를 나타낼 땐 ‘경신’을, ‘다시’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을 땐 ‘갱신’을 쓴다고 생각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경신 갱신 시스템 갱신 여권 갱신 종전 최고치

2024-04-04

[우리말 바루기] 헷갈리는 사자성어

다음 사자성어 중 표기가 바른 것은?   ㉠ 야밤도주 ㉡ 포복졸도 ㉢ 산수갑산 ㉣ 성대모사   사업하다 망해 몰래 도망치거나 남녀가 사랑 때문에 부모 몰래 도망치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도망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도망은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밤에 주로 실행하기 때문에 ㉠ ‘야밤도주’가 맞는 표현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야반도주(夜半逃走)’가 정확한 표기다. 여기에서 한자 야반(夜半)은 밤 야(夜), 반 반(半)으로 구성돼 있으며 밤이 깊은 때, 즉 밤중을 뜻한다.   살다 보면 배를 그러안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는 경우가 있다. 심하게 웃다 보면 정말로 숨이 막혀 졸도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래서 ㉡ ‘포복졸도’가 옳은 표현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확한 표기는 ‘포복절도(抱腹?倒)’다. 여기에서 ‘포복(抱腹)’은 배를 그러안음을, ‘절도(?倒)’는 까무러쳐 넘어짐을 의미한다.   자신에게 닥쳐올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일을 단행할 때 ㉢처럼 ‘산수갑산’이라 얘기하기 십상이다. 산과 물이 있는 산을 생각하면 ‘산수갑산’이 맞는 말인 듯도 하다. 그러나 정확한 표기는 ‘삼수갑산(三水甲山)’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한 산골이라는 ‘삼수’와 ‘갑산’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 시대 귀양지의 하나였다고 한다.   ㉣ ‘성대모사(聲帶模寫)’는 맞는 표기로 정답이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나 새·짐승 등의 소리를 흉내 내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대묘사’라고 잘못 쓰기 쉬우니 주의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사자성어 다음 사자성어 사랑 때문

2024-04-03

[우리말 바루기] ‘멋쩍다’

‘멋적은 미소’ ‘멋쩍은 미소’ 어느 것이 맞는 표현일까.   ‘멋쩍은 미소’가 맞는 말이다. ‘멋쩍다’는 “그들을 다시 보기가 멋쩍었다” “자신의 행동이 멋쩍은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등처럼 사용된다.   ‘멋쩍다’ 외에 ‘겸연쩍다’ ‘수상쩍다’ 등도 비슷하게 헷갈리는 경우다. 이처럼 ‘-적다’로 써야 할지, ‘-쩍다’로 써야 할지 헷갈리는 것은 ‘-쩍다’의 어원이 ‘-적다(少)’에서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를 구분하려면 어원의 의미, 즉 ‘적다(少)’에서 멀어졌는지를 보면 된다. ‘적다’는 의미가 유지되고 있다면 ‘-적다’를, 어원에서 멀어져 ‘적다’는 의미로 쓰이지 않고 있으면 ‘-쩍다’를 붙인다.   따라서 재미나 흥미가 거의 없어 싱겁다는 뜻을 가진 ‘맛적다’의 경우 발음은 [-쩍다]로 소리 나지만 ‘적다’는 의미가 포함됐기 때문에 ‘맛적다’로 써야 한다. 기력이 약해 힘차게 앞질러 나서는 기운이 없다는 의미의 ‘딴기적다’ 역시 같은 이유로 ‘-적다’가 붙는다.   이와 달리 ‘멋쩍다’ ‘겸연쩍다(쑥스럽거나 미안해 어색하다)’ ‘수상쩍다(수상스러운 데가 있다)’ ‘객쩍다(행동 등이 쓸데없고 싱겁다)’ ‘맥쩍다(심심하고 재미가 없다)’ 등은 ‘적다’는 어원의 의미에서 멀어졌으므로 ‘-쩍다’를 붙여 써야 바르다. 우리말 바루기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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