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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옛부터’ ‘예부터’

예로부터 내려오는 민간요법에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쌓인 치료법도 많지만 잘못 알려진 것들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옛부터 시골에서는 벌에 쏘이면 민간요법으로 쏘인 부분에 된장을 바르기도 한다” “예부터 화상을 입었을 때는 소주를 부어 열을 빼곤 했다” 등이 잘못 알려진 대표적 민간요법이다.   지나간 과거를 가리킬 때 ‘예’와 ‘옛’ 중 어떤 걸 써야 할지 헷갈린다는 이가 많다. ‘예로부터’를 ‘옛로부터’라고 쓰진 않지만, ‘~부터’가 바로 뒤에 올 경우 ‘예부터’라고 써야 할지, ‘옛부터’라고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예’와 ‘옛’은 지나간 과거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품사가 다르므로 주의해 써야 한다. ‘예’는 아주 먼 과거를 뜻하는 명사이므로 조사나 접사와 결합할 수 있다. ‘옛’은 ‘지나간 때의’를 의미하는 관형사로, 뒤에 오는 체언(명사·대명사·수사)의 내용을 꾸며 주는 역할을 한다.   ‘~부터’는 어떤 일이나 상태 등에 관련된 범위의 시작임을 나타내는 보조사이므로 명사 뒤에 붙일 수 있다. 따라서 관형사인 ‘옛’이 아닌 명사 ‘예’와 결합해 ‘예부터’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예스러운’과 ‘옛스러운’ 중 올바른 표현은 무엇일까. ‘~스러운’은 ‘그러한 성질이 있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스럽다’를 활용한 표현이므로, 이 역시 명사와 결합할 수 있다. 따라서 ‘옛스러운’이 아닌 ‘예스러운’이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옛’은 ‘옛 추억’ ‘옛 친구’ 등과 같이 뒤에 체언이 올 때 쓸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우리 조상들

2024-12-19

[우리말 바루기] 느리다, 늘이다, 늘리다

‘길이’는 한끝에서 다른 한끝까지의 거리다. 그렇지만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낮과 밤의 길이’에서처럼 ‘시간’을 나타낼 때도 있고, ‘글의 길이’에서처럼 ‘분량’을 가리킬 때도 있다. ‘강폭’은 “강을 가로질러 잰 길이”인데, 이때 ‘길이’는 ‘면적’도 아우른다.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길이’는 더 섬세하게 의미가 갈라진다.   ‘느리다’ ‘늘이다’ ‘늘리다’는 이런 ‘길이’와 연관돼 있다. 길이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뜻이 구분된다. ‘느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동작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다. 단순히 시간의 길이가 길다는 걸 뜻한다. ‘늘이다’ ‘늘리다’와 명백하고 뚜렷하게 차이가 나서 이 말들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렇지만 ‘늘이다’와 ‘늘리다’는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때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한다면 경계가 선명해 보이지만, 이 기준을 따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사전은 표면적인 ‘길이’와 관련된 상황에선 무조건 ‘늘이다’를 쓰라고 안내한다. 그래서 “바지 길이를 늘이다”가 된다 ‘늘리다’는 ‘넓이’ ‘부피’ ‘분량’ 등과 관계될 때만 쓰라고 한다. ‘늘리다’는 ‘길이’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규모를 늘리다” “학생 수를 늘리다” 같은 때만 ‘늘리다’가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앞에서 밝혔듯이 ‘길이’는 단순하지 않다. ‘길이’는 면적이나 분량 같은 것들도 수반한다. ‘늘리다’도 ‘길이’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바지 길이를 늘이다”는 면적이 늘어나는 걸 의미한다. 따라서 “바지 길이를 늘리다”가 더 적절하다. ‘훈민정음 국어사전’도 그렇다고 설명한다.우리말 바루기 바지 길이 훈민정음 국어사전 사전적 의미

2024-12-18

[우리말 바루기] 어깨를 피지 말고 펴세요

겨울철엔 어깨 통증 환자가 늘어난다고 한다. 추운 날씨에 몸을 웅크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깨를 좁힌 자세는 특히 어깨 통증과 직결될 수 있다고 한다. 몸을 웅크리고 다니는 사람은 자신감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런 사람에게는 “어깨를 쭉 피고 다녀라” 또는 “허리를 쭉 피고 걸어라”고 얘기하곤 한다.   이처럼 굽거나 움츠린 것을 곧게 하는 것을 일컬을 때 ‘피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펴다’고 해야 한다. “어깨를 쭉 펴고 다녀라” “허리를 쭉 펴고 걸어라”가 바른 표현이다. “우산을 피다” “날개를 피다”와 같이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역시 모두 ‘펴다’를 써야 한다.   ‘피다’는 “개나리가 활짝 피었다”에서와 같이 꽃봉오리가 벌어지다, “숯이 피었다”에서처럼 연탄이나 숯 등에서 불이 일어나 스스로 타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또 “잘 먹어 그런지 얼굴이 피었다”에서와 같이 살이 오르고 혈색이 좋아지다, “먹구름이 검게 피었다”에서처럼 구름이나 연기 등이 커지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무언가 구겨지거나 구부러진 것, 접힌 것 등을 반반하게 만들 때엔 ‘펴다’를 써야 한다. “접은 종이를 폈다” “주름살을 폈다” “주먹을 폈다” 등 ‘펴다’가 사용된 문장을 살펴보면 모두가 이처럼 반듯하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어깨 피지 어깨 통증

2024-12-17

[우리말 바루기] ‘밥힘’으로 살 수 없는 이유

한국인은 밥을 중요시한다. 의례적 인사말로 “밥 한번 먹자”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또 한국인이라면 ‘밥심으로 산다’는 관용적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정이 많은 한국인들은 위로를 건넬 때 “밥심이 최고다. 밥 굶지 말고 다녀라”와 같이 말하곤 한다.   밥을 먹고 생기는 힘을 가리켜 이처럼 ‘밥심’이라고 쓰는데, 혹자는 ‘밥힘’으로 써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을 법도 하다. ‘밥’과 ‘힘’이 만나 이뤄진 합성어이니 발음은 [밥심]이지만, 표기할 때는 ‘밥힘’으로 적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바른 표기법은 ‘밥심’이며, 발음은 [밥씸]으로 난다.   ‘힘’은 ‘심’의 본딧말로, ‘심’은 ‘힘’의 사투리 표현이다. 따라서 ‘밥심’을 ‘밥힘’의 사투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심’이 사투리라면 ‘심’이 붙은 낱말은 모두 사투리가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힘’이 다른 낱말과 결합할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다른 낱말과 짝을 이룰 때 발음하기 힘든 경우가 생긴다. ‘뒷힘, 뚝힘, 뱃힘, 입힘, 헛힘’ 등을 발음해 보면 자연스럽게 소리 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금세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힘’이 붙어 새로운 낱말이 만들어졌겠으나 세월이 흐르며 ‘뚝심, 뱃심, 입심, 헛심’ 등의 경우 발음하기 편한 ‘심’이 붙은 형태가 표준어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뒷심’ 역시 ‘뒷힘’으로 발음하기 힘들어 많은 이가 ‘뒷심’으로 쓰다 보니 ‘뒷심’이 결국 표준어로 등재된 경우라 할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모두 사투리 관용적 표현 의례적 인사말

2024-12-16

[우리말 바루기] '-에요' '-예요'

‘아니다’는 독립적으로 쓰인다. “사람이 아니다.” “사실이 아니다.” 그렇지만 반대말 같은 ‘이다’는 홀로 쓰이지 않는다. 조사여서 앞말에 붙인다. “사람이다.”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아니다’와 그리 관계가 없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다’는 어떤 사실을 긍정할 때, ‘아니다’는 부정할 때 짝이 되는 말처럼 온다. 국어학자 가운데는 ‘이다’도 ‘아니다’처럼 형용사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동사와 형용사는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는 형태로만 쓰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가다’가 그대로 쓰이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 ‘가고, 가는, 갔다’처럼 변하면서 쓰인다. 이렇게 변하면서 쓰이는 걸 ‘활용’이라고 한다. ‘아니다’도 ‘아니고, 아니었다, 아니어요, 아니에요’처럼 변하면서 쓰인다. 그런데 ‘이다’는 조사라고 하지만 특이하게도 형용사 ‘아니다’처럼 활용한다. ‘이고, 이었다, 이어요, 이에요’처럼 변한다.   ‘이다’와 ‘아니다’는 특별하게 어미 ‘-에요’도 공유한다. ‘-에요’는 다른 말에는 붙지 않고 ‘이다’와 ‘아니다’에만 붙는다. 잘 기억해 두면 ‘아니에요’인지, ‘아니예요’인지 헷갈리지 않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예요’는 없고, ‘-에요’라는 어미만 있다고 기억해 두면 되니까. ‘이다’는 ‘이에요’, ‘아니다’는 ‘아니에요’로 활용한다. “사실이에요.” “사실이 아니에요.”   “우리 거예요”의 ‘-예요’는 ‘-이에요’가 줄어든 형태다. 본래 ‘거이에요’인데, 줄여서 ‘거예요’가 된 거다. ‘사과예요’도 ‘사과이에요’를 줄인 표기다. 이렇게 줄인 형태가 더 널리 쓰인다.우리말 바루기 국어학자 가운데

2024-12-15

[아름다운 우리말] 새로운 말과 문화번역

언어는 생명체와 같아서 늘 새로 태어나고 변화하고, 노쇠해지며, 사라지기도 합니다. 오래된 말은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어렵고, 새로운 말은 아직 배우지 않아서 어렵습니다. 번역에서 새말과 옛말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특히 새말은 계속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새로 생겼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세대 차이의 영향도 있습니다. 청소년이 새로 쓰는 말을 장년이나 노년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문명의 문제도 있습니다. 게임과 관련된 수많은 어휘나 표현을 게임에 관심 없는 사람이 알기는 어렵습니다. 경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새로운 경제 용어를 알기도 어렵겠죠. 기기에 관심이 없는 기계치들이 새로운 기계에 쓰이는 말을 알기 힘듭니다. 종종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말 중에도 모르는 말이 많습니다. 새로운 말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새말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새말 중에는 유행어도 있습니다. 물론 유행어가 모두 새말은 아닙니다. 유행어는 그 시기에 많이 쓰이는 말이기 때문에 사회와 문화를 반영합니다. 따라서 사회의 모습이나 문화를 모른다면 유행어의 이해는 더 어려워집니다. 과거에 유행어를 많이 생산해 내는 사람은 주로 연예인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유행시킨 말이 세상을 돌아다녔던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텔레비전보다 다양한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유행어가 만들어지고 퍼집니다. 이러한 말들 중에는 새로 만들어지 말도 많습니다. 새로 만든 말이 재미있어서 유행어가 되기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유행어는 말 그대로 유행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전 속으로 채 들어오기도 전에 사라지고 마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유행어가 일시적으로 사용되었다가 사라지기도 하여 더 어려운 단어나 표현이 됩니다. 유행어가 새로운 말로 굳어져서 사전 속으로 들어오면 신어가 됩니다. 신어는 보통 사회화의 과정을 거친 말입니다. 일시적인 말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유행어나 신어는 한국의 콘텐츠에도 널리 쓰입니다. 한국 예능을 번역할 때 신어나 유행어를 모르면 번역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자막에 쓰이는 말 중에도 유행어나 신어가 많습니다. 어쩌면 콘텐츠를 향유하는 층이 가장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표현이 유행어 속에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능을 번역하고자 한다면 더욱 신어와 유행어 공부를 해야 합니다. 또한 케이팝이나 케이 드라마에도 수많은 새말이 등장합니다. 한국 드라마와 한국 노래의 느낌을 잘 알기 위해서도 새말과 유행어를 잘 이해해야 할 겁니다.   주의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유행어는 아무래도 말초적인 성격이 있고, 감정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채 걸러지지 않고 세상에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행어에 욕설과 같은 비속어가 많이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또한 유행어나 신어에 차별어가 있기도 합니다.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인종, 성적 취향을 비웃는 표현을 담기도 합니다. 자칫하면 유행어가 혐오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유행어와 신어를 공부하되, 걸러내어야 할 차별어와 비속어는 잘 이해하여야 할 겁니다. 한국어를 공부했는데, 나쁜 표현을 잔뜩 알게 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닙니다. 물론 문화번역에 나쁜 말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해는 하되 표현은 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번역을 통해 스스로가 성장하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문화번역 새말과 유행어 유행어 공부 새말과 옛말

2024-12-15

[우리말 바루기] 김치 ‘담궈’ 드신다고요?

김장철을 맞았지만 요즘엔 직접 김치를 해 먹는 집이 많이 줄어든 듯하다. 품앗이해 가며 김장 일손을 돕는 모습은 이제 TV 속 자료 화면으로나 볼 수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주변을 보면 젊은 세대는 주로 사 먹거나 부모님께서 김치를 ‘담궈’ 보내 주는 경우가 많았고, 나이가 지긋한 분도 힘에 부쳐 김치를 직접 ‘담궈’ 먹은 지 오래됐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치·술·장·젓갈 등을 만드는 재료를 버무리거나 물을 부어서 익거나 삭도록 그릇에 넣어 두는 행위를 일컫는 낱말은 ‘담그다’이다. “매실주를 담그다” “된장을 담그다” 등처럼 쓰인다. 그런데 ‘담그다’를 활용하는 경우 “매실주를 담궈 두었다” “된장을 담궜다” 등과 같이 잘못 쓰는 이가 많다.   ‘담궈/ 담궜다’는 ‘담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그러나 ‘담구다’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잘못된 표현으로, ‘담그다’를 활용해 ‘담가/ 담갔다’라고 써야 바르다. ‘담그다’를 ‘담그고, 담그니, 담그면’ 등으로 활용할 때는 별문제가 없다. 문제는 ‘아’를 붙여 활용할 때다. 용언의 어간 ‘으’가 ‘아’나 ‘어’ 앞에서 탈락하는 용언을 ‘으불규칙용언’이라 하는데, ‘담그다’가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아’를 붙여 활용할 때는 ‘담그+아’는 ‘담가’, ‘담그+았+다’는 ‘담갔다’가 된다.   간혹 “1년 전 담은 김치”처럼 표현하는 걸 볼 때도 있다. 그러나 ‘담은’은 물건을 그릇 등에 넣는다는 의미를 지닌 ‘담다’를 활용한 것으로, 문맥상 ‘담다’가 아닌 ‘담그다’를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 따라서 ‘담그다’를 활용한 ‘담근’으로 바꿔 써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김치 자료 화면 김장 일손

2024-12-12

[우리말 바루기] 현해탄이 아니라 대한해협

해협은 육지 사이에 있는 좁고 긴 바다를 말한다. 물살이 거세고 매우 빠르다. 이순신 장군은 해협의 이런 점을 이용해 명량에서 큰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우리나라와 일본 규슈 사이에도 해협이 있는데, 대한해협이다. 대한해협은 황해와 남해, 동중국해, 동해와 연결된다. 길이는 약 200㎞. 우리는 대한해협이라 부르지만 일본은 쓰시마해협이라고 한다.   일부에선 대한해협 대신 현해탄(玄海灘)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때 현해탄은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현해탄은 규슈 북쪽 끝에 있는 일부 바다를 가리킨다. 일본에선 이곳을 ‘겐카이나다(玄海灘)’라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전에서 ‘겐카이나다’를 치면 ‘대한해협 남쪽 일본 후쿠오카현 서북쪽에 있는 바다. 방어·정어리 따위의 난류성 어류가 많이 잡힌다. =현해탄’이라고 돼 있다. 대한해협과 현해탄은 동일한 바다가 아님이 확인된다. 대한해협은 현해탄보다 더 큰 바다다. 쓰시마섬을 지나 규슈 앞쪽까지가 대한해협이다. 일본에선 대한해협을 쓰시마해협이라 부르지만 국제적으로도 대한해협이 공식적인 용어다.   현해탄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가 아니다. 일본의 작은 바다 이름이 왜 대한해협 대신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현해탄이 왠지 더 그럴듯해 보이는 모양이다. ‘현해탄 오가는 항공기’ ‘현해탄 넘은 야구 사랑’ ‘현해탄을 건넜다’ 등 현해탄이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인 것처럼 표현한다.     말맛은 다르겠지만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에서’ ‘대한해협을 가로질러’ ‘대한해협 건너 길을 찾다’처럼 쓰는 게 정확하다. 우리말 바루기 대한해협 현해탄 대한해협 남쪽 대한해협 대신 대한해협 건너

2024-12-11

[우리말 바루기] ‘으’가 아니라 ‘이’인 말들

가요 ‘황포돛대’는 이렇게 시작한다.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이미자는 ‘마지막’이 아니라 ‘마즈막’이라고 소리를 낸다. 처음에는 노래이다 보니 일부러 그렇게 소리를 내는가 싶었다. 그렇지만 그는 평소 말할 때도 ‘마즈막’이라고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글학회가 펴낸 ‘큰사전’(1947~57)에는 ‘마즈막’도 표제어로 실려 있다. 뜻풀이는 ‘=마지막’이다. 그렇다고 ‘마즈막’을 표준어로 인정한 건 아니었다. 저때도 ‘마지막’이 표준어였다. 다만 한쪽에서 ‘마즈막’이 쓰이고 있음을 알린 것이다. 옛날 신문들에도 ‘마즈막’이라고 쓴 기사들이 제법 보인다. 근래 들어 나온 국어사전들에는 ‘마즈막’이 경기·충청·평안·함경 방언이라고 돼 있다. 방언에는 우리말의 옛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근대국어 시기에는 ‘ㅅ, ㅈ, ㅊ’ 아래에서 ‘ㅡ’가 ‘ㅣ’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마즈막’도 ‘마지막’으로 바뀌었다. ‘오징어’도 ‘오증어’였다. 국어사전에서 ‘오증어’를 찾아보면 ‘오징어’의 방언이라고 돼 있다. 이전 시기 ‘아침’은 ‘아츰’, ‘거칠다’는 ‘거츨다’, ‘짐승’은 ‘즘승’이었다. ‘가지런하다’ ‘느지막하다’ ‘이지러지다’ 같은 말들의 ‘지’도 ‘즈’였다.   조금 헷갈리는 ‘나즈막하다/ 나지막하다’도 마찬가지로 ‘나지막하다’가 표준어다. 여기서 나온 말 ‘나지막히/ 나지막이’는 ‘나지막이’가 표준어다. 마뜩잖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로 소리가 난다고 봤기 때문이다. ‘부시시’ ‘으시대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부스스’ ‘으스대다’가 여전히 표준어다.우리말 바루기 근대국어 시기 가수 이미자 옛날 신문들

2024-12-10

[우리말 바루기] ‘치뤄진’ 선거는 없다

“지난달 5일 치뤄진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재도전에 성공하며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미국 상·하원 선거도 같은 날 치뤄졌다.”     ‘무슨 일을 겪어 내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이처럼 ‘치뤄진’ ‘치뤄졌다’와 같은 표현을 쓰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치뤄진’ ‘치뤄졌다’는 ‘치루어진’ ‘치루어졌다’를 줄여 쓴 말로, 모두 ‘치루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우리말에 ‘치루다’라는 단어는 없다. 그런데 많은 이가 ‘치루다’를 활용해 ‘치루고, 치루니, 치뤄서, 치룬, 치뤄야, 치뤘다’와 같이 쓰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치르다’의 어간 ‘치르-’에 어미 ‘-어/-아’가 이어지면 ‘ㅡ’가 탈락해 ‘치르+어+지+ㄴ→치러진’ ‘치르+었+다→치렀다’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치르다’가 기본형이므로 ‘치르고, 치르니, 치러서, 치른, 치러야, 치렀다’ 등과 같이 활용해야 올바르다.   따라서 위 예문 역시 “지난달 5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재도전에 성공하며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미국 상·하원 선거도 같은 날 치러졌다”처럼 고쳐야 바르다.   ‘선거를 치르다’뿐 아니라 ‘홍역을 치르다, 영결식을 치르다, 돌잔치를 치르다, 기념행사를 치르다, 모의고사를 치르다, 큰일을 치르다’ 등도 모두 ‘치루다’가 아닌 ‘치르다’를 활용해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우리말 바루기 선거 대통령 선거 하원 선거 트럼프 후보

2024-12-09

[우리말 바루기] 전철을 밟다

“전철을 밟다”는 이전 사람의 잘못을 되풀이한다는 말이다. 관용구처럼 쓰이는 이 말에서 ‘전철(前轍)’은 탈것을 가리키는 ‘전철(電鐵)’이 아니다. 이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탈것이 지나간 흔적이다. 더 구분해 말하면 ‘전철(前轍)’에서 ‘철’은 바퀴 자국을 뜻한다. ‘전철’은 그러니 앞의 바퀴 자국이다. 그렇다고 ‘전철’이 이런 뜻으로 쓰이는 건 아니다. ‘전철을 밟다’에서 알 수 있듯 ‘전철’은 이전 사람의 그릇된 일이나 행동의 자취를 이르는 말로 쓰인다.   국어사전들은 친절하게 ‘전철’이 본래 가진 뜻도 알려 준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식이다. “앞에 지나간 수레바퀴의 자국”이라는 뜻으로. 어딘가 어색하다. 옛날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수레바퀴가 지나간다’는 표현은 하지 않는다. 차가 지나가고, 수레가 지나간다고 한다. 바퀴는 어떤 바퀴가 됐든 ‘돌다’ ‘굴러가다’와 잘 어울린다. ‘앞에 지나간 수레바퀴’가 아니라 ‘앞에 지나간 수레의 바퀴’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전철을 밟다”의 ‘전철’은 그리 쉬운 낱말은 아니다. ‘밟다’와 떨어지면 추측하기도 어렵다. 흔하게 뜻을 뭉개고 가는 말이 돼 간다. “선배들이 우승한 전철을 밟으려고 한다”는 식이다. 우승한 게 그릇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문장은 “우승한 선배들을 본받으려고 한다”여야 했다.  ‘전철’은 앞서간 사람의 그릇된 행동이다.우리말 바루기 전철 바퀴 자국

2024-12-08

[아름다운 우리말] 맛을 번역하다

한국어의 번역에서 정말 어려운 어휘는 맛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한국어의 형용사가 가장 발달한 부분도 맛이나 색깔 관련 어휘로 보입니다. 아마 한국어의 맛을 다른 말로 번역한다면 금방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겁니다. 따라서 그 맛의 느낌을 구별하고 이해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올바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번역은 어휘 대 어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휘 대 표현 혹은 표현 대 어휘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우리말에서는 한 단어인데 외국어에서는 설명해야만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는 겁니다. 이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한국어 단어를 외국어에서 문장으로 길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게 바로 맛 관련 어휘입니다. 한국어의 맛에 관한 어휘를 볼까요? 달다, 쓰다, 맵다, 시다, 짜다 등이 있겠습니다. 물론 이 밖에도 세밀한 맛을 나타내는 어휘도 많습니다. 갑자기 ‘텁텁하다’가 떠오릅니다. 또한 우리말의 감각어는 서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물이 시원하다고 하는데, 이는 맛을 나타내는 미각어도 될 수 있고, 날씨를 나타내는 촉각어도 될 수 있습니다. 종종은시각어나후각어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눈도 시원하고, 코도 시원하니 말입니다. 하긴 행동이 시원하기도 합니다.   달다의 경우에 외국어로 번역하면 한 단어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어는 정말 복잡합니다. 우선 달다라는 말은 안 좋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너무 달다는 말을 들으면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겁니다. 하지만 한국어 미각은 반복해서 사용하면 맛이 좋아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달달하다’가 바로 그 예입니다. 달달한 것은 좋은 겁니다. 사람들 사이에도 달달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달다는 표현을 입맛 돌게 하려면 ‘-콤’을 붙이면 됩니다. 달콤이라는 말의 느낌을 한국인이 좋아하는 듯합니다. 상표에도 달콤은 자주 등장합니다. 아주 달지는 않고 약간 단 경우에는 달짝지근하다고 합니다. 단맛이 좀 덜한 경우에는 모음을 음성모음으로 바꾸어 들쩍지근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달다의 경우만 봐도 정말 복잡합니다. 들다라는 말이 달다는 뜻으로 쓰이지 않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쓰다의 경우도 한국어에서는 나쁜 맛이 아닙니다. 써도 좋은 맛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역시 달달하다처럼 쓰다를 반복하는 겁니다. 그런데 씁쓸하다고 하면 맛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음을 바꾸어 쌉쌀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맛있는 쓴맛이 되기도 합니다. 맵다의 경우는 반복해서 쓰지는 않고, 콤만 붙여서 사용합니다. 매콤하다는 표현입니다. 맛있게 매운 느낌입니다.     시다의 경우는 시큼하다는 표현이 있는데, 역시 모음 때문인지 맛있는 신맛의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이때도 모음을 ‘애’로 밝게 바꾸어줍니다. 새콤하다고 하면 맛있는 신맛의 느낌이 납니다. 짜다는 쓰다와 비슷합니다. 콤이 붙을 수는 없고 반복해서 짭짤하다고 합니다. 짭조름하고 찝찔한 맛으로 조금씩 느낌이 변화해 갑니다.    한국인의 입맛이 복잡하네요. 맛에 관한 말이 많다는 것은 맛에 관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맛은 달달하고, 쌉쌀하고, 짭짤한 맛입니다. 또한 달콤하고, 매콤하고, 새콤한 맛입니다. 정말 복잡하면서도 다양하네요. 그 밖에도 외국인이 어려워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맛의 표현이 있습니다. 얼큰한 국물과 칼칼한 맛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새콤달콤한 맛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요? 만약 이런 말을 잘 번역하려면 설명을 더 해 주어야 할 겁니다. 번역을 맛있게 해야겠네요.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번역 한국어 단어 한국어 미각 색깔 관련

2024-12-08

[우리말 바루기] ‘징크스’

시험을 보러 가면서 “나는 이 샤프로 문제를 풀어야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징크스가 있어” “나는 시험 보러 갈 때 꼭 이 옷을 입어야 문제가 잘 풀리는 징크스가 있어” 등과 같이 말하는 이들이 있다.   중요한 시험이나 경기를 앞두고 자신만의 습관이나 규칙 등을 정해 이를 지켜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다. 이럴 때 위 예문에서와 같이 ‘징크스’라는 단어를 쓰곤 하는데, ‘징크스’가 이 같은 상황에 잘 어울리는 단어인지는 생각하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징크스’를 찾아보면 ‘재수 없는 일. 또는 불길한 징조의 사람이나 물건’ ‘으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악운으로 여겨지는 것’이라고 풀이돼 있다. ‘징크스’에는 이처럼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으나 사람들이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해 긍정적 의미로 잘못 쓰곤 한다.   다시 말해 ‘징크스’는 ‘악운’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는 부적이나 습관 등의 의미로는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시험 전날 미역국을 먹으면 꼭 시험을 망친다는 징크스가 있다” “그에게는 경기 전날 손톱을 깎으면 경기에 진다는 징크스가 있다” 등과 같이 부정적인 상황을 나타낼 때 ‘징크스’를 써야 한다.   모든 이가 ‘징크스’를 극복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우리말 바루기 징크스 부정적 의미 시험 전날 긍정적 의미

2024-12-05

[우리말 바루기] 앙꼬(?) 없는 찐빵

찐빵 속에는 달콤한 팥이 들어 있는데 팥과 빵의 조화에서 오는 맛이 일품이다. 만약 이런 찐빵에서 팥이 빠진다면 찐빵 고유의 맛을 살려내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일이나 생각 등에서 중요한 것이 빠졌을 때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관용구를 쓴다. 이 말을 자주 사용하다 보니 ‘앙꼬’를 순우리말로 알고 있는 이가 꽤 많다. 그러나 ‘앙꼬’는 일본어 ‘?子(あんこ)’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우리말인 ‘팥소’로 바꾸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팥소’는 떡이나 빵 등의 속으로 넣는, 팥을 삶아서 으깨거나 갈아서 만든 것을 의미하는 단어다. 하지만 ‘팥소’라는 낱말이 조금은 낯설다 보니 ‘앙꼬’라는 말을 쓰게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소’는 송편이나 만두 등을 만들 때 맛을 내기 위해 익히기 전에 속에 넣는 재료를 뜻한다. ‘소’는 팥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송편에는 콩·깨·밤 등을 소로 사용하기도 한다. 만두에는 고기·두부·채소 등을 소로 쓰기도 한다. 만두에 넣는 재료를 ‘만두소’, 김치에 넣는 재료를 ‘김치소’라 고 한다.   ‘앙꼬 없는 찐빵’ 대신 ‘팥소 없는 찐빵’이라고 하면 말맛이 살아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주 쓰다 보면 익숙해진다. ‘앙꼬’가 일본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팥소’로 써야 할 동기가 생긴다. 지금부터 ‘앙꼬 없는 찐빵’이 아니라 ‘팥소 없는 찐빵’이라고 해보면 어떨까.우리말 바루기 앙꼬 찐빵 찐빵 고유 소로 사용하기 소로 쓰기

2024-12-04

[우리말 바루기] ‘늘그막’?, ‘늙으막’?

“늘그막에는 고향으로 내려가 텃밭을 가꾸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 “고향에 집을 지어 형제들과 모여 사는 것이 늙으막의 유일한 꿈이다”와 같이 말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노년을 뜻하는 단어로 위에서와 같이 ‘늘그막’이나 ‘늙으막’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어느 것이 올바른 말일까?   ‘늙다’를 활용할 때 ‘늘금’이 아니라 ‘늙음’이라고 하듯 보통 ‘늙다’의 어간인 ‘늙-’을 살려 ‘늙으막’이라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올바른 표현은 ‘늘그막’이다.   한글맞춤법 제19항에 따르면 어간에 ‘-이, -음’이 아닌 그 외 모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 다른 품사로 바뀐 말은 그 어간의 원형을 밝히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고 돼 있다.   ‘늘그막’은 ‘-이’나 ‘-음’이 접미사로 붙은 형태가 아니므로 ‘늙으막’과 같이 원형을 밝혀 적는 것이 아니라 ‘늘그막’처럼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것이 바르다.   시간이나 기한이 매우 늦다는 의미를 지닌 형용사인 ‘느지막하다’가 있다. ‘늘그막’을 떠올려서인지 ‘느즈막하다’로 쓰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느즈막하다’가 아니라 ‘느지막하다’가 맞는 말이다.   ‘느지막하다’뿐만 아니라 우리말에서 ‘-즈막하다’로 끝나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말 바루기 늘그막 한글맞춤법 제19항

2024-12-03

[우리말 바루기] 그분, 이분, 저분

“아수라의 제왕, 그분은 누구인가?” “돈을 받은 자가 그분이 아니라 그분들이다.” ‘그분’은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대명사다. 한 단어이므로 ‘그 분은’ ‘그 분이’ ‘그 분들’처럼 띄면 안 된다.   ‘이분’과 ‘저분’도 마찬가지다. 각각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높여 이르는 삼인칭 대명사로 붙이는 게 바르다. 접미사 ‘-들’이 결합한 형태인 ‘그분들’ ‘이분들’ ‘저분들’ 역시 붙여야 한다.   ‘몇분’ ‘어떤분’은 한 단어가 아니다. “몇 분이나 오셨습니까?” “밖에서 어떤 분이 찾으시네요”와 같이 띄어야 한다. 이때의 ‘분’은 사람을 높여 부르는 의존명사다. 꾸며 주는 말이 앞에 놓인다. 높이는 사람을 세는 단위일 때도 의존명사이므로 앞말과 띄어 쓴다. “참석자는 총 네 분입니다” “두 분이 이곳을 방문하셨어요”처럼 사용한다.   ‘환자’에 ‘분’을 붙여 높여 부를 때도 의존명사로 생각하고 띄는 경우가 많다. “환자 분들이 뭘 궁금해하시나요?”와 같이 띄면 안 된다. 이때의 ‘-분’은 사람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앞말에 높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쓰였다. ‘환자분’ ‘친구분’ ‘남편분’ ‘산모분’처럼 앞의 명사에 붙인다. ‘분’은 명사 뒤에선 접사로 기능한다.   ‘분’이 의존명사일 때는 앞말과 띄고 접사일 때는 앞말에 붙이면 된다. ‘이분, 저분, 그분’의 경우는 하나의 단어이므로 항상 붙여 쓴다.우리말 바루기 이분 의존명사로 생각 삼인칭 대명사 이분 저분

2024-12-02

[우리말 바루기] 두 모습의 ‘밖에’

모습은 같은데 쓰임이 다른 말들이 있다. 앞말과 띄기도 하고 앞말에 붙이기도 하는 ‘밖에’가 대표적이다.   “아침마다 대문 밖에 놓여 있던 병우유의 추억”에선 ‘밖에’를 앞말과 띄어야 한다. 이때 ‘밖’의 품사는 명사다. 안의 반대인 바깥, 일정한 한도나 어떤 정해진 범위를 넘어선 쪽을 의미한다. 여기에 장소를 나타내는 조사 ‘에’가 결합한 형태다. 조사는 체언 뒤에 붙고 명사는 앞말과 띄어야 하므로 ‘대문밖에’ ‘관심밖에’처럼 붙일 수 없다. 명사 ‘밖’은 ‘에’ 말고도 ‘이, 은, 의, 을, 으로, 에서’ 등 여러 조사와 어울린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향수”에선 ‘밖에’를 앞말에 붙여야 한다. 이때의 ‘밖에’는 보조사다. ‘그것 말고는, 그것 이외엔, 기꺼이 받아들이는, 피할 수 없는’의 뜻으로 사용된다. ‘밖에’ 자체가 조사이므로 ‘하나 밖에’ ‘2장 밖에’처럼 띄어 쓸 수 없다.     ‘밖에’의 쓰임새를 어떻게 구분할까? 먼저 의미를 따져 봐야 한다. ‘밖에’가 명사 뒤에서 ‘오로지, 뿐, 그것 말고는’의 뜻으로 사용되면 조사다. “일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뒤에 ‘없다, 모르다, 못하다’ 같은 부정을 나타내는 말이 온다는 점도 알아 두면 유용하다. “일밖에 아는 사람”처럼 긍정적 의미를 지닌 말과는 못 어울린다. ‘밖’이 명사일 때는 긍정적 서술어든 부정적 서술어든 관계없이 결합하는 점과 다르다.우리말 바루기 긍정적 의미 반대인 바깥

2024-12-01

[아름다운 우리말] 사람을 번역하다

한국어 중에서 문화적 요소를 가득 담고 있는 것은 의외로 사람입니다. 사람을 부르는 말이나 가리키는 말만큼 문화를 담고 있는 게 없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문화인류학에서 언어를 조사할 때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은 친족명입니다. 한국어는 세계적으로 특이한 친족어 체계를 보입니다. 한국어에서 사람에 해당하는 말만 잘 번역해도 번역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볼 때 어휘가 세분화된 것은 발달하였다는 의미이고, 관심이 많다는 뜻입니다. 한국어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쌀’에 관한 어휘가 많다고 소개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국어에 쌀은 모, 벼, 쌀, 밥, 뫼 등으로 나타납니다. 뫼는 돌아가신 분께 바치는 밥입니다. 한국인은 쌀에 관심이 많고, 농경문화임을 보여줍니다.   한국어에서 친족명은 두 가지 특징을 보입니다. 하나는 위와 아래의 구별이 명확하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단어가 형, 언니, 누나, 오빠입니다. 많은 언어, 혹은 대부분의 언어에서는 위의 형제에 대하여 이렇게 자세한 구별이 없습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을 생각해 보시면 알 겁니다. 그런데 형제 중 아랫사람에 대한 구별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동생’이면 끝입니다. 물론 여동생이나 남동생이라는 말도 가능합니다만, 동생이라고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른 언어 중에 이렇게 한 단어만 있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이런 표현의 차이는 위와 아래를 바라보는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남녀의 차이도 명확합니다. 아버지 쪽 남자 형제는 큰아버지, 작은아버지의 구별이 있는 반면 어머니 쪽 남자 형제는 그냥 위와 아래 상관없이 외삼촌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여자 형제는 그저 고모입니다. 아버지의 누나인지 여동생인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큰아버지의 부인은 큰어머니, 작은아버지의 부인은 작은어머니라고 하는데, 외삼촌의 부인은 외숙모입니다. 어머니 오빠의 부인인데도 숙모라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각 언어마다 친족어의 구별이 다르기 때문에 번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외국인인 한국어 중에서 ‘내 동생’이라는 말이 가장 번역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일리가 있습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내 동생이라는 말을 번역해 보세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영어로 이모, 고모, 외숙모, 큰어머니, 작은어머니를 구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번역에서 사람을 어떤 어휘로 번역할 것인가가 고통인 경우입니다.   선생님이라는 말도 번역이 어렵습니다. 한국에 오면 선생님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해가 갑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선생님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예전에는 사장님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직위를 모르면 무조건 사장님이라고 불렀던 겁니다. 요즘 가장 묘한 표현은 ‘언니’입니다. 언니라는 말은 나이 많은 사람에게 하는 말인데 나이 적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언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외국인이 한국어 배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씨’를 높이는 말이라고 가르쳐서도 안 됩니다. ‘김 씨’라고 부르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군이나 양은 이제 거의 쓰지 않는 말이 되었습니다. 누구를 존중에서 쓰는 말이라고도 하기 어렵습니다. 김 군이나 김 양은 오히려 무시하는 표현처럼 여겨집니다. 심지어 여사님이라는 말도 최근에는 일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손님과 고객님은 어떤가요? 와이프나 서방님이라는 호칭어도 쉬운 말이 아닙니다.   한국어의 사람을 번역하는 게 정말 복잡합니다. 어쩌면 좋은 번역은 한국 사람을 잘 구별하여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어 공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에서 시작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번역 큰어머니 작은아버지 한국어 배우기 한국어 공부

2024-12-01

[우리말 바루기] ‘반듯이’냐 ‘반드시’냐

‘반듯이’와 ‘반드시’는 대표적으로 헷갈리는 단어다. 두 단어의 발음이 [반드시]로 같기 때문에 말할 때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적으려고 하면 어느 쪽인지 아리송하다.   ‘반듯이’는 ‘반듯하다’에서 온 부사로 ‘비뚤어지거나 기울거나 굽지 않고 바르게’라는 뜻이다. “자세를 반듯이 해야 한다” “허리를 반듯이 펴라” “신발을 꺾지 말고 반듯이 신어라” 등처럼 쓰인다.   ‘반드시’는 ‘틀림없이 꼭’을 나타내는 부사어다. “반드시 시간에 맞춰 와라”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거다” “언행이 받드시 일치해야 한다” 등과 같이 쓰인다.   ‘반듯이’와 ‘반드시’는 부사어로, 부사는 뒤에 오는 말을 수식하는 역할을 한다. 동사나 형용사를 수식하므로 부사의 주인은 동사·형용사인 셈이다. 주어·목적어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을 반듯이 세우겠다”는 구조의 문장을 보자. 수식하는 말인 ‘세우겠다’에 어울리는 단어인지만 따져보면 된다. ‘반듯하게 세우겠다’는 뜻이므로 ‘반듯이’는 맞게 쓰인 것이다.   “~을 ○○○ 따르겠다”의 경우엔 어떤 것이 들어가야 할까? ‘틀림없이’ ‘기필코’ ‘꼭’ 등의 내용이 와야 하므로 이에 해당하는 ‘반드시’가 적절한 말이다.   ‘반듯이’와 ‘반드시’가 헷갈릴 때는 ‘반듯하게’로 바꾸어 보면 된다. 바꾸어서 말이 잘 되면 ‘반듯이’로 쓰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반드시’로 적으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직접적 관계

2024-11-28

[우리말 바루기] ‘드리다’, ‘들이다’

‘받아드리다, 벌어드리다, 거둬드리다, 불러드리다, 잡아드리다’ 등은 바른 표기일까?  ‘드리다’가 ‘주다’의 존칭 또는 존대 표현이라는 것은 대부분 잘 알고 있다. ‘선물을 드렸다’ ‘말씀을 드렸다’ ‘문안을 드렸다’ 등이 이러한 예다.   ‘드리다’는 명사와 결합해 동사를 만들기도 한다. 이때도 ‘드리다’는 공손의  뜻을 더한다. ‘말씀드리다’ ‘불공드리다’가 이런 유형이다. 이처럼 ‘드리다’가 존대나 공손을 나타낼 때는 표기에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문제는 ‘들이다’가 쓰일 자리에 ‘드리다’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존칭 ‘드리다’에 익숙하다 보니 발음이 같은 ‘들이다’도 무의식적으로 ‘드리다’를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두에 나열한 단어들이 모두 ‘들이다’ 자리에 ‘드리다’를 쓴 것이다. 대체로 ‘들이다’는 안쪽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손님을 안으로 들였다” “신입생을 동아리에 들이려고 열심히 홍보했다”에서도 안쪽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뜻을 가진 ‘들이다’가 쓰였다.   ‘받아들이다, 벌어들이다’ 등에 포함된 ‘들이다’ 역시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들이다’와 결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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