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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철학적 예술영화 ‘토리노의 말’

영화 ‘토리노의 말’은 매우 철학적이고 무거운 예술영화다. 헝가리의 감독 벨라 타르가 2011년에 발표한 146분짜리 흑백 작품이다.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수업’에 실린 글을 읽고 바로 유튜브를 찾아서 보았다. 영화관의 큰 스크린으로 보았으면 좋았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아쉽다.   이어령 선생의 표현대로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루한 영화”다. 하지만 볼수록 묘한 매력과 흡인력을 가진 작품이다. 영화가 전하는 철학적 메시지도 씹을수록 깊고,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작가주의 감독답게 화면을 밀고 나가는 영상 미학도 압도적이다.   영화는 철학자 니체의 일화를 내레이션으로 들려주면서 시작된다. “1889년 1월3일, 토리노 광장. 프리드리히 니체는 카를로 알베르토 거리 6번지의 집에서 외출을 한다.” 그 토리노 광장에서 늙은 말이 마부에게 채찍질을 당한다. 보다 못한 니체가 달려가서 늙은 말의 목을 끌어안고 운다. 말 대신 채찍을 맞으면서 “때리지 마, 때리지 마”라며 울다가, 미쳐버린다. 이웃에 의해 집으로 옮겨진 니체는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라고 웅얼거린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는 식물인간에 가까운 삶을 10년간 살다가 56세에 세상을 떠난다.   이후 영화는 한쪽 팔이 불편한 마부와 딸, 그리고 늙은 말이 황량한 벌판 외딴 오두막에서 사는 모습을 지루한 흑백화면으로 2시간도 넘게 그려나간다. 중간에 잠깐 이웃 사람과 집시 무리가 등장하지만, 화면을 채우는 것은 두 사람과 늙은 말이다. 이렇다 할 사건도 없고, 대사도 거의 없다. 단조롭지만 장엄하게 반복되는 음악과 바람 소리만 가득하다. 흙, 바람, 물, 불…. 그렇게 아름답고 장엄한 한 편의 영상시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   첫 대사가 “식사하세요”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22분 만에 나온다. 마지막 대사는 “먹어! 먹어야 해”다. 식사는 달랑 삶은 감자 한 알이 전부다. 그렇게 반복되는 엿새 동안의 단조로운 생활을 감독 특유의 롱테이크와 느림의 미학으로 묘사한다. 인간의 존재와 세상의 종말에 대해 사색하는 것이다. 그동안 불가사의한 자연현상이 일어난다. 말이 죽고, 바람이 그치고, 하나밖에 없는 우물이 마르고, 불이 꺼지고, 빛이 사라진다. 아버지와 딸은 오두막을 떠나기로 하고 마지막 식사를 한다. 성경 창세기를 거꾸로 돌리는 묵시록이다.   이 작품은 벨라 타르 감독의 10번째 장편영화로 큰 화제를 모으며 2011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국제비평가상 등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전주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특별 상영되었다. 벨라 타르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감독 은퇴를 선언했다. 영화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다, 이제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뜻일까?   세계 예술영화의 맥을 잇는 우리 시대 가장 독창적인 영화감독의 한 사람인 그는 유명 감독들과 동시대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는 동유럽의 대표적인 감독이다. 뉴욕타임스는 ‘현존하는 최고의 감독’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 ‘사탄탱고’(1994)는 상영시간이 7시간이 넘는 대작이다. “‘사탄탱고’를 보는 일곱 시간은 매 순간 압도적이었고, 매혹적이었다. 내 인생의 남은 시간 동안 매년 이 영화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수잔 손탁의 말이다.   혹시 시간이 나시면 영화 ‘토리노의 말’을 보시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가도, 머뭇거리게 된다. 할리우드의 상업적 오락 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영화일 것 같다는 걱정 때문이다.   오늘날 영화는 예술이 아니라 산업이다. 엔터테인먼트가 예술을 대신하고 디지털이 필름을 대신하고 있다. 그럴수록 더욱 진지한 예술영화가 그리워진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예술영화 토리노 세계 예술영화 베를린 국제영화제 전주 국제영화제

2023-07-20

[문화산책] 문화권력, 자본과 예술

돈의 힘은 막강하다. 세상을 쥐락펴락하며 마구 변형시킨다. 필요하다면 예사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망가트리고, 세계 평화와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오늘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갈등과 분쟁은 거의가 돈 때문에 생기는 것들이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이 진리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어떤 이는 “세상에서 가장 독한 바이러스는 돈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데 예술이라고 독야청청할 수는 없다. 섬세하고 나약한 예술이 그처럼 거친 풍파를 이겨낼 재간이 없다. 그 결과, 돈을 무기로 하는 문화권력이 주도하는 문화산업, 아트비즈니스라는 흐름이 주류로 자리 잡았고, 승자독식의 쏠림현상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이 비즈니스가 된다? 작품과 제품과 상품 사이의 구분이 없어지면 자연히 쏠림현상이 생긴다. 쏠림현상은 예술의 생명이랄 수 있는 다양성도 싹 쓸어버린다. 돈이 개입해서 창작자나 감상자 모두의 예술적 자유와 개성을 빼앗아가 버리는 것이다.     애당초 자본이 예술과 기술을 동원하여 탄생시킨 영화나 텔레비전 등의 대중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엔 거의 모든 분야의 예술이 돈에 오염되어 있다.    문학, 음악, 미술 등 모든 분야에서 예술가와 감상자를 이어주는 길목에 자본과 문화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출판사, 음반제작사, 공연기획자, 화랑, 수집가, 미술관, 경매 등이 버티고 서서, 마치 통행료(?)를 뜯는 것처럼 위세 등등 ‘갑질’이 대단하다. 통행료를 내야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유통구조와 예술가는 사이좋은 공생관계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돈의 힘이 커지면서 균형이 깨졌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는 욕심이 커지면서 이런저런 묘수를 부리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예술가를 조종하기에 이른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러이러한 작품을 그려야 잘 팔린다고 은근한 목소리로 조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입맛에 맞는 새싹을 골라서 기르는 식이다. 그래서, 미술대학이나 대학원 학생 전시회에 화랑 관계자나 컬렉터들이 사냥꾼의 눈길로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연예인 기르는 기획사나 스포츠계의 스카우터와 별로 다르지 않은 구조다. 사치나 가고시안 같은 막강한 갤러리의 간택(?)을 받으면 일단 출세가 보장된다. (출세와 함께 자유도 보장되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이런 식으로, 자본에 의해 예술의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곤 한다. 영화의 경우에는, 막대한 자본이 투자된 상업영화의 흥행을 위해 무리수를 두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 결과 사회성 있는 작품이나 작가주의 예술영화는 설 자리가 없어지고, 관객들이 골라서 볼 선택권도 박탈당한다.     문학과 출판 쪽에서는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사재기를 하는 악습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작가가 텔레비전 오락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팔면 책도 잘 팔리고, 인기 드라마에 등장한 책은 곧장 베스트셀러가 된다. 거칠게 말하면, 모든 판단의 기준은 오로지 돈벌이가 될 것인가에 달렸다.   이런 일들이 거듭되면서 예술계 전반에 독점과 쏠림현상이 생겨난다. 모든 것이 돈으로 수치화되면서 예술가들의 자유도 없어지고 설 자리도 점점 좁아져서, 날이 갈수록 힘들고 외로워진다.     하지만, 비싼 그림이 꼭 좋은 그림이 아니고, 베스트셀러가 꼭 좋은 작품도 아니고, 천만 관객이 들어야만 좋은 영화인 건 아니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장소현 / 시인·미술평론가문화산책 문화권력 자본 문화권력 자본 작가주의 예술영화 예술적 자유

2022-10-03

[문화산책] 문화권력, 자본과 예술

돈의 힘은 막강하다. 세상을 쥐락펴락하며 마구 변형시킨다. 필요하다면 예사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망가트리고, 세계 평화와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오늘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갈등과 분쟁은 거의가 돈 때문에 생기는 것들이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이 진리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어떤 이는 “세상에서 가장 독한 바이러스는 돈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바이러스에는 마스크도 별 효과가 없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데 예술이라고 독야청청할 수는 없다. 섬세하고 나약한 예술이 그처럼 거친 풍파를 이겨낼 재간이 없다. 그 결과, 돈을 무기로 하는 문화권력이 주도하는 문화산업, 아트비즈니스라는 흐름이 주류로 자리 잡았고, 승자독식의 쏠림현상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이 비즈니스가 된다? 작품과 제품과 상품 사이의 구분이 없어지면 자연히 쏠림현상이 생긴다. 쏠림현상은 예술의 생명이랄 수 있는 다양성도 싹 쓸어버린다. 돈이 개입해서 창작자나 감상자 모두의 예술적 자유와 개성을 빼앗아가 버리는 것이다.     애당초 자본이 예술과 기술을 동원하여 탄생시킨 영화나 텔레비전 등의 대중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엔 거의 모든 분야의 예술이 돈에 오염되어 있다. 오염 정도를 지나 종속되어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문학, 음악, 미술 등 모든 분야에서 예술가와 감상자를 이어주는 길목에 자본과 문화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출판사, 음반제작사, 공연기획자, 화랑, 수집가, 미술관, 경매 등이 버티고 서서, 마치 통행료(?)를 뜯는 것처럼 위세 등등 ‘갑질’이 대단하다. 통행료를 내야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유통구조와 예술가는 사이좋은 공생관계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돈의 힘이 커지면서 균형이 깨졌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는 욕심이 커지면서 이런저런 묘수를 부리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예술가를 조종하기에 이른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러이러한 작품을 그려야 잘 팔린다고 은근한 목소리로 조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입맛에 맞는 새싹을 골라서 기르는 식이다. 그래서, 미술대학이나 대학원 학생 전시회에 화랑 관계자나 컬렉터들이 사냥꾼의 눈길로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연예인 기르는 기획사나 스포츠계의 스카우터와 별로 다르지 않은 구조다. 사치나 가고시안 같은 막강한 갤러리의 간택(?)을 받으면 일단 출세가 보장된다. (출세와 함께 자유도 보장되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이런 식으로, 자본에 의해 예술의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곤 한다. 영화의 경우에는, 막대한 자본이 투자된 상업영화의 흥행을 위해 무리수를 두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 결과 사회성 있는 작품이나 작가주의 예술영화는 설 자리가 없어지고, 관객들이 골라서 볼 선택권도 박탈당한다.     문학과 출판 쪽에서는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사재기를 하는 악습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작가가 텔레비전 오락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팔면 책도 잘 팔리고, 인기 드라마에 등장한 책은 곧장 베스트셀러가 된다. 거칠게 말하면, 모든 판단의 기준은 오로지 돈벌이가 될 것인가에 달렸다.   이런 일들이 거듭되면서 예술계 전반에 독점과 쏠림현상이 생겨난다. 모든 것이 돈으로 수치화되면서 예술가들의 자유도 없어지고 설 자리도 점점 좁아져서, 날이 갈수록 힘들고 외로워진다.     하지만, 비싼 그림이 꼭 좋은 그림이 아니고, 베스트셀러가 꼭 좋은 작품도 아니고, 천만 관객이 들어야만 좋은 영화인 건 아니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장소현 / 시인·미술평론가문화산책 문화권력 자본 문화권력 자본 작가주의 예술영화 예술적 자유

202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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