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전쟁의 아픔, 통일 염원
6월 하순이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진다. 내가 삼팔따라지의 후손으로, 험난하고 설음 많은 피난살이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탓일 것이다. 70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인데, 아직도…. 두 동강으로 쪼개져 오물 풍선 날아오고, 대북 전단 날리고 확성기 왕왕 틀어대며 으르렁거리는 현실에서는 잊었던 아픔마저 되살아난다. 답답하다. 이런 아프고 답답한 마음을 달래는 방법으로 나는 좋은 음악이나 시 같은 예술작품을 찾아 기댄다. 거창하게 작품감상이랄 정도는 아니고, 그저 전쟁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작품 중 몇 가지를 집중적으로 듣고 읽는 정도이다. 예를 들자면, 베토벤의 9번 교향곡, 카잘스의 ‘새의 노래’, 시벨리우스의 ‘필란디아’ 같은 음악, 채플린의 ‘독재자’ 같은 영화, 문학작품으로는 윤석중 선생님의 통일시, 장용학의 소설 ‘원형의 전설’ 도입부, 노래로는 ‘삼팔선의 봄’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 정거장’ ‘단장의 미아리고개’ 같은 유행가,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 등등…. 미술작품 중에는 찾아보고 싶은 작품이 뜻밖에 많지 않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나 고야의 학살 같은 작품은 오히려 전쟁의 상채기를 건드리는 것 같아서 내키지 않는다. 케테 콜비츠의 조각작품 ‘피에타’ ‘비통한 부모’, 한운성의 ‘매듭’ ‘월정리역’ 같은 작품을 다시 본다. 전쟁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이 모두 살벌하고 참혹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완성도 높고 아름다운 작품이 오래 가슴에 남는다. 윤석중 선생의 시 ‘되었다 통일’도 그런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산맥들, 강들, 꽃들, 새들, 모두 이미 통일되었고, 이제 사람만 남았다는 안타까움….특히 마지막 구절이 아프다. ‘통일이 통일이/ 우리만 남았다. 사람만 남았다.’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도 동화처럼 쉽고 정겨운 노랫말로 겨레의 아픔과 극복의 의지를 절절하게 노래한다. ‘거기 서 있는 그대 숨소리 들리는 듯도 해/ 이렇게 가까이에 이렇게 나뉘어서/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쳐다만 보네.’ 이 노래는 ‘시인 김민기’의 빼어난 재능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겨레의 가장 큰 아픔과 통일 염원을 이토록 명징하고 아름다운 서정으로 담아낸 김민기는 뛰어난 시인이다. 김민기의 증언에 따르면, 이 노래는 1992년 노태우 정부 시절 남북 예술단 교류사업의 남측 공연단 기획팀으로 일하면서, 대단원을 장식할 노래가 필요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행사는 열리지 못했지만, 노래는 남아서 널리 알려졌다. 노래가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고 아름다워서 많은 후배 가수들이 다시 불렀고, 많은 행사에서 불리면서 매우 유명해진 노래다. 아무튼 이런 노래를 듣고 좋은 글을 읽으면, 마음이 한결 푸근해지고, 통일의 꿈도 한층 절절해진다. 하지만, 통일문제를 이렇게 감성적으로 대하는 건 나이 든 세대들뿐이고, 젊은 세대의 생각은 많이 다른 것 같다. 그저 짐작이 아니라, 각종 통계 숫자나 학문적 연구로 밝혀진 현실이다. 젊은 세대에서는 통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기성세대에서도 세월이 갈수록 통일 염원이 식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은 북한대로 살고, 한국은 세계 경제 강국으로 잘 살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물쭈물하다가는 두 나라로 완전히 갈라져, 끊임없이 마주 보며 으르렁거릴 것 같다. 답답해서 큰 소리로 노래한다.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 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가둬버려요/ 녹 슬은 철망을 거두고 마음껏 흘러서 가게.”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전쟁 통일 통일 염원 통일시 장용학 도입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