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섭 대신 자유…홈리스들 희망 싹튼다
LA한인타운에서 약 87마일 떨어진 빅토빌의 한 농장. 야외식당에 한인 10여명이 점심 준비에 한창이다. LA에서 가져온 간장게장, 김치가 이날 점심의 별미. 20대부터 70대까지 나무 식탁에 둘러앉아 같이 밥을 먹는 이들은 홈리스들과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지난달 20일 방문한 이곳은 아버지밥상교회(담임 무디 고 목사)에서 운영하는 치유센터다. 프리웨이에서 내린 후 10분 정도 비포장도로를 더 지나야 입구를 만나는데 규모만 10에이커에 달한다. 현재 이곳 치유센터에서는 한인·히스패닉·백인 홈리스 10여명이 머물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아버지밥상 측은 이들에게 간섭 대신 자유 시간을 보장한다고 전했다. “홈리스분들이 LA에서 이곳에 오면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 유혹을 떨쳐내는 환경이 조성돼요. 일단 이곳에 오시면 충분히 쉬면서 자연을 느끼도록 합니다.” 무디 고 목사는 이어 “LA 도심에 살던 홈리스가 이런 시골 농장에 오면 (사회로부터) 소외됐다는 생각도 한다. 답답해서 다시 LA로 돌아가려는 분도 있다. LA쉼터와 치유센터 두 곳을 오가도록 돕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자연에서 심신 치유 이곳에 들어오는 한인 등 홈리스는 1인실을 배정받는다. 이날 만난 한인 젊은이들의 표정이 유독 밝다. 한인 2세 한모(29)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LA 맥아더파크와 다운타운을 헤맸다고 한다. 지인의 도움으로 치유센터에 오게 됐고, 지금은 정신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LA에서 걸려온 아버지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 20대 후반의 데이비드 오씨는 샌프란시스코와 LA에서 4년 동안 홈리스로 지내다 메탐페타민 등 심한 약물 중독에 시달렸다고 한다. 7개월 전부터 아버지밥상 LA쉼터와 이곳 빅토빌 치유센터를 오가며 재활 중이다. 지금은 약을 끊었다는 그는 “견딜만하다”며 웃었다. “길바닥에서 잘 때 사람들이 밥은 줬어요. 비 오고 추울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여기서는 친구도 많이 사귀고 좋아요. 한인들이 거리에 살지 않게 해주면 좋겠어요. 약에 손대면 끊기가 정말 힘들거든요.” 아버지밥상교회 무디 고 목사, 교인, 자원봉사자는 2008년부터 16년째 LA 홈리스를 돕고 있다. 한인 홈리스가 늘면서 LA한인타운 교회(2551 W Olympic Blvd.)도 쉼터로 개방했다. 이 쉼터는 2층 침대 여러 개를 두고 한인 등 홈리스 약 30명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있다. ▶한인 독지가들 도움 앞장 지난 2022년 아버지밥상교회는 교인,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빅토빌 치유센터(시가 65만 달러)를 마련했다. 교회 측은 이곳을 활용해 홈리스 재활과 재기를 지원할 수 있도록 시설을 꾸미고 있다. 북한 함경북도 무산 출신인 글로리아 최(43)씨는 LA쉼터와 빅토빌 치유센터에 머문 1년여 동안 마음을 치유했다고 한다. 최씨는 탈북 후 2005년 한국에 정착해 결혼했다. 2018년 10월 아들 교육을 위해 미국행에 도전했다. 하지만 팬데믹 기간 중국 옷을 수입해 팔던 LA 도매사업이 망했다고 했다. “중국에서 옷을 가져와 LA 가게에 납품했지만, 돈이 안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받아들이기 힘들더라고요. 거리로 쫓겨나면서 아들은 친구 집에 맡겼고, 심한 우울증으로 8개월 동안 아팠어요.” 사업실패로 경제적 어려움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던 최씨는 아버지밥상교회의 도움으로 마음을 다독였다. 그는 “이곳 치유센터는 자연환경이 참 좋다”며 “홈리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집처럼 지낼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의 편안한 환경 덕에 내가 나아진 만큼, 새로 오시는 분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인력 도움 절실 치유센터는 거대한 농장이다. 본채, 창고, 차고, 주방 겸 휴게실로 쓰이는 비닐하우스 등은 홈리스 거주시설로 쓰고 있다. 한인 등 홈리스들은 농장 매실나무 600그루, 비닐하우스 10동을 직접 가꾸며 성취감을 느낀다. 비닐하우스에는 깻잎, 더덕, 상추, 파 등 한인들이 좋아하는 채소가 심겨 있다. 최근에는 동물사육 막사도 만들어 염소 5마리, 닭 15마리, 오리 10마리, 식용토끼 5마리도 키우고 있다. 다만 거대한 농장과 치유센터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전문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고 목사는 “봄철 갑자기 한파가 와서 올해 매실 수확은 망했다”면서도 “농장은 홈리스에게 재활공간 겸 직장이 될 수 있다. 매실나무를 잘 가꾸고 식용토끼를 100마리까지 늘리면 수익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목사와 자원봉사자들은 치유센터가 도움만 받던 홈리스들이 스스로 변하도록 돕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희망하고 있다. 치유센터에 머물기 원하는 누구라도 흔쾌히 받아주는 이유다. “지난 3년 동안 우리 쉼터가 도와줬던 한인 2명이 펜타닐 중독으로 목숨을 잃었어요. 한인, 몽골, 중국계 등 소수계 홈리스는 맞춤형 지원이 부족합니다. 경제적 이유로 홈리스가 된 분들은 6개월~1년만 숙식을 제공하면 바로 재기할 수 있어요. 한인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공동체형 쉼터를 더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관련기사 무허가 내몰린 한인 노숙자 쉼터…사각지대 놓인 한인 노숙자① '숨은' 쉼터…주민신고 무서워 앞마당도 못 나가 간섭 대신 자유…홈리스들 희망 싹튼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중앙일보 한인사회 홈리스 치유센터로한인 아버지밥상교회 치유센터 한인 홈리스